작성일 : 10-06-28 10:37
[사찰문화실] 58) 탑의 비보성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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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설에 의거하여 어떤 특정지역의 지기(地氣)가 너무 강하거나 쇠할 때 탑을 세워 이를 비보하는 탑을 흔히 비보탑(裨補塔)이라고 한다. 이러한 비보신앙은 거슬러 올라가면 토속신앙에까지 닿는다. 어떤 영력을 기대하며 주물(呪物)을 만들어 세우거나 부적과 같은 부문(符文)을 붙이거나 해서 나쁜 것을 누르고 좋은 것의 기를 북돋워주는 것도 비보의 한 방편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비보방술(裨補方術)로 세운 탑이 전국에 많이 산재해 있거니와 사료를 들춰보면 쉽사리 발견하게 된다. 다음은 우리 비보탑의 한 예들이다.

  <삼국유사>에는 가락국 수로왕의 왕후가 된 인도의 허황후가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올 때 거센 파도를 막기 위해 배 안에 파사석탑을 싣고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귀국할 때 부처님 사리를 얻어와서 경주에 황룡사 9층탑을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선덕여왕은 주변국으로부터 여왕이라는 업신여김을 받았는데, 자장이 그 비보탑을 세운 후로 그런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뒤이어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충주호 강변에 있는 중원칠층석탑은 그 위치가 한반도의 중앙일 뿐만 아니라 주위에 왕기(王氣)가 서려있어서 이를 비보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경북 안동은 너무 지형이 넓고 너무 트여서 지기가 쉽게 흩어져 나가므로 이를 막기 위해 읍내에 많은 사탑을 지은 것으로 구전되고 있고, 현재 그 탑들이 남아있다.

  모악산 기슭의 국신사 법당 뒤에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탑 앞의 돌사자가 남성성기 모양의 석조물을 짊어지고 있다. 이것은 그곳 지형이 음국(陰局)을 하고 있어서 구신(狗腎) 형태의 석물을 세워서 액을 막고자 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조선 철종 때 세운 익산의 쌍석불 중건비에는 ‘읍의 남쪽에 쌍석이 있어서 이곳의 허함을 막기 위해 그 바위에다 석불을 조각하여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