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12-22 10:14
[사찰문화실] 4) 고려시대의 불상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6,140  

 


4) 고려시대의 불상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로 자리잡으면서 전국 각지에 많은 사찰이 지어졌고 이에 따라 마애불, 원각불 등 송나라와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불상이 많이 조각되었다. 그러나, 신라말과 고려초에 들어서면서 불상에 대한 신앙성이 약화되어 불상의 자세가 경직되고 고유의 신체비례도 조금씩 깨어지기 시작한다. 통일신라시대로부터 유행하던 촉지인의 불상은 계속되지만, 상호가 훨씬 통통하고 풍만해졌다.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비만형 얼굴에는 미소가 나타나고, 무릎에는 긴 타원형의 동심원이 나타난다.

  점차 규모가 크고 얼굴과 몸체 등 인체비례가 무시되어 사실성이 많이 떨어지는 불상이 나타난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세상을 뜨자 고려는 중앙집권력이 약화되고 혼인정책의 부작용으로 지방 호족들이 할거하는 한때의 혼란을 보인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중앙권력은 전국에 거대한 불상들을 조성하게 되는데, 후백제 길목의 논산 개태사 불상과 관촉사 은진미륵, 신라 길목에 안동 제비원 미륵불, 개성에서 서울로 오는 길목에 용미리 미륵불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관촉사 불상과 개태사 불상에서 보듯이 기둥처럼 생긴 큰 몸체에 관을 쓴 모습의 미륵불상이 유행했는데, 이같은 고려 불상의 양상은 외침과 내부 갈등으로 인해 새로운 사회를 아래로부터 갈망해옴으로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게 아닌가 여겨진다.

  또, 민간신앙과 민속에서 영향받은 석불도 생산되었는데, 특히 경기도와 충북의 일부지방에서 두드러진다. 고려후기 불상의 특징으로는 원나라의 영향으로 티베트?네팔 계통의 이국적인 요소 가미된다. 고려말에 들면서 불상에 이같은 토속성이 보태진 것은 불교 내부의 모순과 실정으로 왕실이 민중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시대상황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재료에서는 철불이 전대에 비해 크게 유행했으나, 전반적으로 조성의 기술이 다소 떨어지고 있다. 고려 불상의 또다른 특징은 석탑에서와 같이 지역적인 특성을 많이 갖는다는 점이다. 강릉을 중심으로 월정사, 한송사지, 신복사지 등 관동지역에서 보게 되는 불상들은 양식에서 다른 지역의 불상들과 크게 비교되며, 단호사 철불좌상 등 남한강 중류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거대한 철불상들 역시 재료면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된다. 또, 부여 대조사와 논산 관촉사의 거대한 석불들도 지역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보겠다. 이러한 양상은 고려 초기 해당지역에 기반을 둔 호족들의 불교 후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