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5-18 10:01
[사찰문화실] 45) 한국 탑 역사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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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탑 역사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10년(549)에 양나라에서 사리 몇 과가 전해져서 왕이 흥룡사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삼국유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불정골(佛頂骨)과 불아(佛牙)를 가져왔다고 기록돼 있다. 물론 이 시기는 불교가 법흥왕대에 공인된 이후이며, 불정골이나 치아사리를 갖고 왔다면 그것을 봉안할 탑도 어디엔가 세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의 탑은 6세기 이후에 조성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아서 석탑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일본은 화산지질이라 전탑이나 석탑을 세울 여건이 되지 못한 관계로 목탑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일본은 산성 기후인 우리와는 달리 알카리성 기후이므로 목탑이 적합하다는 설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전탑이나 목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옛탑은 1천5백 개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데, 동양삼국 가운데 석탑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다. 중국의 기록을 보면 백제를 ‘寺塔甚多’라 하여 석탑의 나라로 표현하였고,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서라벌에 탑이 기러기처럼 줄지어 있다고 묘사해 놓고 있다. 이처럼 많은 탑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불교가 국교였던 까닭도 크게 작용한다. 실제에 있어서 탑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는 많은 자금력이 동원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탑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며, 따라서 석탑 조성은 거의가 국책사업이었거나 국가의 재정이 뒷받침되었으로 유추된다. 그것은 국책으로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시대에 석탑문화가 현격하게 쇠퇴한 데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우도 중국과 같이 목탑이 먼저 세워졌는데, 이미 고구려 광개토왕때 7층 목탑이 세워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석탑 이전의 우리 탑은 거의 목탑이었다. 그러다가 서기 6백년에 이르러 탑의 재료가 나무에서 돌로 바뀌면서 익산 미륵사지 백제석탑에서 보듯이 목탑 양식을 빌린 석탑들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구려 탑에 대해서는 고증할 만한 것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