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아시티이가 그 남편에게 말했다.
‘비록 자식이 수천 있어도 인연의 화합으로 생긴 것이다. 영원히 서로 갈려 떠나가거니 나와 그대도 또한 이러하니라.’
-잡아함경-
「외딸 외아들 사랑」
그러나 이것은 맹목적인 사랑은 아닙니다. 짐승이 제 새끼 사랑하는 그런 본능적 충동의 사랑은 아닙니다. 여기에 불교적 사랑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습니다.
바아시티이 여인은 애지중지하던 자식을 병으로 잃고 말았습니다.
여인은 미쳐 헤매다가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듣고 보다 참된 진실에 눈 뜨고 제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제 깬 마음으로 남편에게 담담히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자식이 수천 있어도 인연의 화합으로 생긴 것이다.’
이 말은 ‘자식이라고 해서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자식이 나의 점유물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스스로 주인이며, 부모는 육체적 탄생의 매개체가 될 뿐이다.’ 이런 불교적 생명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스스로 이성(理性)의 한계를 지녀야하고, 소유욕이 아닌 훌륭한 관계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요즘 어버이의 양육 태도에는 두 가지 위험한 극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이 뜻은 무시하고 부모 뜻대로 만들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 생각은 제쳐놓고 아이들 뜻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은 훌륭한 관계입니다. 서로 역할이 있는 것이지요. 아이들 개성을 존중하되 그것이 법도에 어긋날 때 단호히 훈계하는 것이 어버이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