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진전(應眞澱)
일명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부르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제자인 아난과 가섭이 협시로 봉안되어 있고, 16나한 또는 5백나한상이 범천과 제석천과 함께 안치되어 있다. 나한은 일명 아라한으로서, 수행이 완성되어 이미 성자의 위치에 오른 자에게 두루 붙이는 호칭으로, 부처님 열반 후 미륵불이 강림할 때까지 불법을 수호하도록 수기를 받은 분들이다. 좁게는 부처님 열반 후에 대장경 간행을 위해 이루어진 제1결집 때 동참한 가섭존자를 비롯한 5백비구들을 지칭하지만, 넓게는 출가수행자 모두를 일컫기도 한다. 이는 불교가 오랫동안 국교가 되면서 출가자(스님)에 대한 숭상심에서 깊어지면서 비롯되었으며, 나한상 개개의 모습도 대덕스님 모습을 하고 있다.나한신앙은 당나라 중기 때 크게 성행하였으며, <삼국유사>의 가락국기 부분에 김해지방을 ‘...然而秀異可爲 十六羅漢住地(산천이 수려하여 16나한이 머물만한 곳’으로 표현한 것으로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 들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나한신앙은 고려 때 더욱 성행하여, 왕실이 직접 나서서 나한제를 열어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한 예가, 의종 5년(1151)에는 문무반 관리들이 참여하여 5백나한제를 지냈다는 기록이다. 나한신앙은 미래가 아닌 현세에서 성불을 이루는 데 그 요체가 있다.독성(獨聖)으로 불리는 나반존자는 16나한 중의 한 분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성은 일부에서 단군신앙이 불교에 습합된 것으로도 보고있다. 한편, 팔공산 거조암의 경우에서 보듯이 고려시대 한때는 나한을 봉안한 영산전이 중심전각이었던 때도 있다. 나한전 후불탱화로는 영상회상도 또는 16나한도가 대부분이다. 나한전은 경내에 따로 정해진 위치가 없으나, 큰법당 뒤쪽에 남향하는 예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