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앞에는 장승들이 흔히 세워져 있습니다. 경북 상주 남장사, 경남 창령 관룡사, 전남 나주 불회사... 대개는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진 것들입니다.
장승의 시작은 양산 통도사에 있는 국장생(國長生) 돌비석[石標]입니다.
고려 때 나라에서 세운 것이라 하여 '국장생'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고려 선종 때(1085년) "통도사 손내천 국장생 일좌(一座)는 통도사에서 문의한 바, 상서호부(尙書戶部)에서 을축년 5월의 통첩(通牒)에 있는 이전의 판결과 같이 세우게 하므로 이를 다시 세운다."는 내용이 비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장생표는 통도사의 사역(寺域)과 비보(裨補)를 목적으로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사방사천의 비보를 위하여 열두 곳에 장생표를 세웠다는 것은 천재(天災)로부터 자연환경을 지키려는 소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역 안에서 사냥과 땔감(시목 柴木) 등 인재(人災) 막기 위한 환경보호 경고석 기능도 겸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