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佛糧)이란 절에서 쓰는 양식을 말합니다. 불공에도 쓰이고 사중의 공양에도 쓰입니다. 사회복지시설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사찰이 그 역할을 해왔는데, 사생아들이 절에 몰려버려지기도 하고,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찾아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절에는 많은 양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불교탄압으로 토지를 몰수 당하여 사찰은 궁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산중에 박힌 절은 곡식을 얻을 논밭이 아예 없거나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저자거리로 나가 한줌씩 탁발을 해오기도 하고, 신도들이 절을 찾아올 때마다 부처님께 올린다는 명분으로 공양미(供養米)를 갖고 왔습니다. 일부 타종교인들은 부처님께 쌀을 올리는 것을 보고는 미신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그런 안타까운 속내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찰의 양식이 턱없이 부족해서 스님들은 하루에 한끼만을 먹는 고행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은 탁발을 나가기도 어렵고 저자에 내려가봐야 빈 발우로 돌아오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재력이 있는 신도들이나 고을 사람들이 계를 모으거나 또는 십시일반 성금을 거두어 논이나 밭을 사서 기증하였습니다. 이 논밭을 불량답(佛糧畓)이라 하고, 그 내용을 새긴 비석을 불량답비(佛糧畓碑)라고 합니다.
불량답비에는 시주 연도, 시주자들의 이름, 불량답의 면적 등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 숙종 때 세운 선산 도리사의 불량답비입니다. 따로 자운비(慈雲碑)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강원도 정선 정암사에는 조선 영조 때 고한 산간사람들이 절에 땅을 시주하고 세운 불량답비가 천연기념물 주목 옆에 서 있습니다.
경기도 양평 사나사에는 영조 51년에 양평군내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당산계(堂山契)를 조직해 절에 불량답을 시주하고 세운 당산계불량비가 있습니다.
충북 옥천 문수암 마당에 서 있는 난국계원지비(蘭菊契員之碑)는 조선 고종 때 주민들이 계를 모아 세운 불량답비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경남 울주 운흥사는 목판에다 ‘불량답모연기(雲興寺佛粮畓募緣記)’를 새겨서 후대에 전했는데, 그 목판이 통도사성보박물관에 지금 보관되어 있습니다.
경북 울진 불영사는 울진부사였던 남편을 극락왕생시켜준 데 대한 보답으로 한 부인이 절에 불량답을 기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 5백년 동안 그 참혹한 불교탄압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민중들의 이러한 감동적인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산 도리사 불량답비-자운비)
(정선 정암사 불량답비)

(옥천 문수암 난국계원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