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탑은 산치대탑과 같은 대형 복발탑이다. 복발탑은 밥그릇을 엎어놓은 모양의 탑이다. 복발탑은 규모가 커서 탑의 기단부 위로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도록 난간과 계단이 설치되어있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사방에 문이 나있다. 재료는 흙이나 벽돌이 대부분이다. 중국은 흙을 구워서 만든 벽돌탑(전탑:塼塔)이 많은데, 기와지붕 형태의 옥개석이 얹혀져 누각 형태가 된 것도 중국에서부터다.
이러한 중국의 누각형 탑은 인도탑의 중국식 변형이라고 볼 수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의 탑은 중국탑의 한국식 변형으로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탑은 사리를 봉안하는 장엄물이다. 따라서 사리를 봉안할 목적으로 세워진 탑은 사리가 들어오고 난 다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탑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의 ‘三寶感通錄’ 부분에 처음 보이는데, 그 내용은, 고구려 성왕이 요동성 국경을 순행하다가 흙탑을 발견하였는데, 그 모양이 삼층 흙탑(기단부로 추정) 위에‘가마솥을 엎은 것’과 같은 모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모양은 그대로 인도의 초기 탑 양식이며, 이를 토대로 유추를 한다면 우리나라에도 중국의 누각탑이 들어오기 훨씬 전에 인도의 복발탑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보면 탑의 발견 시기가 고구려의 불교 도래시기에 비해 훨씬 전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아울러, 저자인 일연선사는 기록에 나온 성왕(聖王)이 동명성왕은 아닐 것이라고 토를 닭 있어서 그 신빙성은 더욱 떨어진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