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般若心經) 강의
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반야부경전 중 하나로 원 제목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이 경은 불교의 모든경전중 짧으면서도(260글자) 그 품은 뜻은 여타의 다른경전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어 불교의 모든 의식에서 반드시 독송되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
3장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다
2. 모든 것은 언제나 그대로다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옮김>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은 것이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며, 불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은 것이다.
<풀이>
사리자여,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여, 앞서 말한 몸도 마음도 텅 비어 일체가 공하다는 것은 새롭게 생기는 일이 있을 수 없으며, 생기는 일이 없으므로 소멸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더럽다느니 깨끗하다느니, 좋다느니 나쁘다느니 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아예 생기고 소멸하는 법이 없는데 무엇이 불어나고 줄어드는 일이 있겠는가. 우리가 보아온 모든 불어나고 줄어들고, 더럽고 깨끗하고, 생기고 소멸하는 일체의 현상은 실은 환상인 것이다. 우리의 진실 생명에게 그런 일은 본래로 없는 것이다.
<해설>
이 대목은 공에 대한 참모습을 밝히는 부분입니다. 지혜제일 "사리자"를 불러 주위를 환기시키며 공상(空相)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법"이란 이 현상계의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제법" 속에는 광물, 식물, 생물, 무생물을 비롯하여 인간까지 포함됩니다. 다시 말해서 형상을 가졌거나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켜 "제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법"이란 진리라는 뜻보다는 그냥 일반적인 사물을 나타내는 말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법"의 본질이 곧 "공상"입니다. 즉 "제법"은 공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서 본질적으로 텅 빈 것입니다. 공의 본질 속에는 모든 것을 흡수함과 동시에 표상(表相)으로 확산시키는 상반된 작용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의 공한 모양은 바로 다음으로 이어지는 "불생불멸"이며, "불구부정"이며, "부증불감"입니다. 이것은 곧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며, 더러움도 아니고 깨끗함도 아니며, 더함도 아니고 덜함도 아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세 가지 상대 개념은 이 세상의 모든 상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속에는 남.녀, 남.북, 밤.낮, 좌.우, 노.소, 노.사 등 온갖 상대 개념이 다 포함됩니다.
일체법(一切法)이 존재하는 모양은 바로 공이기 때문에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니며, 깨끗함도 아니고 더러움도 아니며, 더함도 아니고 덜함도 아닌 것입니다.
우선 "불생불멸"의 의미를 새겨보면,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본질에 있어서 생성과 소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모든 현상은 생할 수도 있고, 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면에 숨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공이기 때문입니다. 곧 "불생불멸"은 "역생역멸(亦生亦滅)"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불교에서 "불생불멸"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대승경전의 대표되는 가르침이라 불리우는 <화엄경>.<법화경>.<반야심경>에서 공통적으로 존재의 실상에 대해 밝히고 있습니다.
<화엄경>에서는 "일체법불생 일체법불멸(一切法不生 一切法不滅)"이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모든 법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법화경>에서는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그 자체로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현상계는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이 세간에 늘 그대로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야심경>의 "제법공상 불생불멸"도 같은 맥락에서 존재의 본질을 명확히 밝힌 대목입니다. 존재의 본질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현대 과학의 이론을 도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물질에 대한 세 가지 해결하지 못하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질량은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떤 물체라도 그 근원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완전히 새로운 물체는 만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불교의 "공상"과 잘 들어맞는 이론입니다.
"제법"의 공한 모양이 "불생불멸"인 것을 과학이 증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이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을 태우면 외형은 달라집니다. 종이를 태우면 에너지로 변하든지 재로 바뀌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어떤 모양으로든 우주 공간의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니 "불멸"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작은 물질도 새로 만들어 낼 수 없으니 "불생"입니다.
이처럼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얽히고 설켜서 잠깐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종이 한 장도 완전히 없애지 못하며, 또 새롭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기계를 동원한다고 해도 종이는 못 없앱니다. 태운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종이를 태운 재는 없애지 못하며, 또한 허공 중에 날아간 에너지는 더 이상 없애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멸"입니다.
또 이 세상에는 그 어떤 것도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합니다. 아무리 신소재라고 해도 그것은 이미 있던 물질을 화학적 반응으로 배합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불생"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를 터득하는 일이야 말로 괴로움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불구부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구정"은 '더럽다, 깨끗하다'의 뜻이지만 그 속에는 '좋다, 나쁘다'고 하는 선악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구부정"의 본질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구부정"은 좋은 것도 되고 나쁜 것도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쇠붙이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이 시계가 되면 좋은 것이 되지만, 무기가 되면 아주 나쁜 것이 됩니다.
또 인도에서는 사람이 타는 차에 소가 함께 타고 갑니다. 그러다가 소가 차 안에 분비물을 배설해도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식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다른 기준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불구부정"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뜻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표현을 잘 씁니다. 마음의 본질이 텅 빈 것이므로 거기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일체유심조가 되는 이유가 바로 존재의 실상이 공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부증불감"은 '더한 것도 아니고 또한 덜한 것도 아니다'는 뜻인데, 이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부증불감"도 본질에 있어서 더한 것도 아니고, 덜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하기도 하고, 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의 저쪽에서 아무리 큰 홍수가 일어나도 지구 전체의 수분 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또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로 이주해 간다고 해도 전체로 볼 때는 아무런 변동이 없는 것입니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은 바로 물질을 위시해서 우주와 마음의 존재 법칙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법의 공한 모양이 "불생불멸"이며, "불구부정"이며, "부증불감"인 것입니다.
태양을 쫓아가 보면 태양만 떴다, 졌다 하는 것이지 공간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공간은 언제나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것이 존재의 본질입니다.
또 더위를 생각할 때도,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연에 의해 잠시 더워졌을 뿐이지 인연이 다 하면 더위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본질 그 자체는 텅 빈 것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자리 또한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닙니다. 다만 인연에 따라 생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운 생각, 고운 생각, 아픈 생각, 그리운 생각 등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우리의 마음자리를 추적해 보면 그 근본 자리는 없는 것입니다.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한 순간 생각을 일으키지만, 가만히 생각의 뿌리를 추적해 들어가면 도저히 찾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 생각의 뿌리는 텅 비어서 없는 것입니다. 수행이 부족해서 못 찾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없기 때문에 못 찾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자리는 텅 빈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숱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룻 동안 분별하고 인식하며 일어나는 생각의 양을 형상으로 만든다면 아마 엄청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은 아무런 형체도, 뿌리도 없으므로 그런 것을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입니다.
마음이란 참으로 불가사의해서 얼마든지 생각을 일으키지만 그 근본은 텅 비어서 찾을 수 없습니다.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법이 모두 그와 같이 공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은 공의 실상을 파악하는 실마리가 되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할 때 생이 있고, 멸이 있는 것이지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생도 없고, 멸도 없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도 결국 현상계의 본질이 공하다는 불변의 법칙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