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般若心經) 강의
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반야부경전 중 하나로 원 제목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이 경은 불교의 모든경전중 짧으면서도(260글자) 그 품은 뜻은 여타의 다른경전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어 불교의 모든 의식에서 반드시 독송되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
1장 지혜는 참으로 위대한 것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옮김>
위대한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길
<풀이>
지혜의 완성 - 삶의 완성, 성공적인 인생이란 모든 고난과 불행과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진정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삶을 말한다. 그 길은 오로지 위대한 지혜로써만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위대한 지혜로써 모든 고난과 문제를 해결하고 보람과 행복의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해설>
<반야심경>은 아주 짧은 경전입니다. <천수경>. <예불문> 등과 함께 의식을 행할 때 반드시 독송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불자들은 잘 외우고 있습니다.
<반야심경>이 비록 짧은 경전에 속한다고 해도 내용면으로 볼 때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생을 두고 공부하지만 그 이치를 제대로 깨닫기는 매우 어려운 경전에 속합니다.
팔만대장경 안에는 일곱 종류의 <반야심경> 번역본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이 중국 현장(玄奬) 법사의 번역본입니다. 여기에 강술하는 <반야심경> 또한 현장 법사의 번역본입니다.
<반야심경>의 일곱 가지 번역 중에는 간단히 해 놓은 것과 체계적으로 된 번역이 있습니다. 간단한 번역을 약본(略本)이라 하고, 구체적으로 된 번역을 광본(廣本)이라고 말합니다.
광본에는 서론, 본론, 결론이 다 갖추어져 있으나 약본에는 서론과 결론은 모두 생략되고 본론 부분만 요약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이 바로 본론부터 시작하는 약본 <반야심경>입니다.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경의 제목은 상당히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경전의 제목에는 그 경이 가르치고자 하는 중심 사상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야심경>의 원래 제목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인데 그것을 줄여서 <반야심경>, 혹은 그냥 <심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맨 앞의 "마하"는 원래 없었던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붙여진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옮김>
위대한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길
맨 앞의 "마하"는 범어로 마하(Maha)라고 하는데 그것은 '크다(大), 수승하다(勝), 많다(多)'라는 뜻이 있습니다. "마하"는 우리가 단순히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하"의 크기는 어떤 한계나 제한이 없는 무한대의 크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하의 크기 속에는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을 말합니다.
"마하"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절대적인 크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뜻을 번역해서 쓰지 않고 그냥 "마하"라는 말을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반야"라는 말은 앞에서도 살펴 보았듯이 인도말로 프라야나라고 합니다. 그 뜻은 '지혜, 명, 혜'등이 있습니다. 흔히 "반야"를 지혜라고 번역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야"는 법의 실다운 이치를 깨달은 최상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반야"를 얻은 사람은 성불하여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야"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 힘은 평등, 절대, 무념(無念), 무분별(無分別)의 경지일 뿐 아니라 반드시 상대의 차별을 관조(觀照)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반야"는 한 마디로 깨달음의 지혜를 말합니다. "반야"는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현명함이나 지식이 높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야"의 지혜는 우리의 참 모습에 대한 눈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잠자는 동안에도 꿈을 꿉니다. 꿈 속에서 죽음이 눈 앞에 닥쳐와 온 힘을 다해 발버둥치고 애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깨고 나면 자기 자신은 따뜻한 이불 속에 편안히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꿈을 깨고 나면 꿈 속에서 몸부림쳤던 것은 현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불 속에 편안히 누워 있는 모습이 현실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헤는 꿈 속에서 살기 위해서 꾀를 부리고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꿈 속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은 자신의 실상이 아닙니다. 꿈을 깬 모습이 바로 자신의 참 모습임을 깨닫는 일,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반야" 곧 지혜입니다. 우리는 꿈 속의 것이 현실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야"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깬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반야"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문제 해결이 "반야" 속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살이의 자질구레한 문제에서부터 경제적인 문제, 감정적인 문제, 사회 문제, 정치 문제, 노사 문제 등 그 어떤 문제라도 "반야"의 지혜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야"를 얻기만 하면 그것은 아무도 훔쳐갈 수 없습니다. 또 "반야"는 빌려줄 수도 없습니다. "반야"는 문제 해결의 핵심이 되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누구나 수행을 통해서 "반야"의 지혜가 구체화될 수 있으며,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야"는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는 일이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해탈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반야"를 통해 삼세제불은 정각(正覺)을 이루고, 보살은 열반을 얻고, 중생은 당면한 문제와 나아가서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을 지혜의 완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옮김>
위대한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르는 길
다음으로 "바라밀다"는 "반야"와 함께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범어로는 파라미타(Paramita)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도피안(到彼岸), 도무극(到無極), 사구경(事究竟)'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바라밀다"는 도피안이니 '저 언덕을 건너간다'는 뜻입니다. 저 언덕이란 바로 지혜의 열쇠로서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말합니다. 도피안이라고 해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피안은 궁극적으로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이며, 그래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상적 경지인 깨달음의 세계를 피안이라고 하는 반면에 미혹의 중생 세계는 차안(此岸)이라고 합니다. 차안은 곧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피안, 곧 "바라밀다"는 결국 꿈을 깨고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며, 자신의 실상을 올바로 관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편안함과 안락함이 항상 깃든 곳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꿈꾸는 극락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심경"은 '핵심되는 경전'이란 뜻입니다. 범어로 흐릿다야 수트라(Hrdaya - Sutra)라고 하는데, 그 뜻은 '마음의 경'. '진수(眞髓)의 경'. '심장의 경'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심경"이라고 해서 단순히 마음의 경전이란 뜻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모두 마음의 경전인 까닭에 <반야심경>에서 굳이 마음의 경전이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심경"이란 반야부의 가장 중심되는 경전이 바로 <반야심경>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체 반야부의 경전 중에서 심장과 같이 핵심적인 진수만을 요약한 것이 바로 <반야심경>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전체 제목이 담고 있는 뜻은 곧 '큰 지혜로써 저 언덕을 건너가는 도리를 밝힌 중심되는 가르침'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흔히 '지혜의 완성'이란 말로 압축하여 이해하고 있습니다. 경의 제목에서 가장 중심되는 말은 역시 "반야"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반야"를 얻음으로써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야"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열반을 얻고, 정각을 이루는 것입니다.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열쇠가 곧 "반야"이며, 그 열쇠로써 문제가 해결된 상태가 바로 "바라밀다"입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큰 지혜로써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되는 말씀'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야심경>은 공의 도리를 밝히고 지혜로써 깨달음을 이루는 이치를 밝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