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07 10:32
[경전공부방] [반야심경] 서론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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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般若心經) 강의

 

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반야부경전 중 하나로 원 제목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이 경은 불교의 모든경전중 짧으면서도(260글자) 그 품은 뜻은 여타의 다른경전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어 불교의 모든 의식에서 반드시 독송되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



1. 서 론


1. <반야심경>의 위치

대승불교운동

부처님의 가르침에 소승이니, 대승이니 하는 구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흔히 불교의 사상을 크게 소승과 대승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소승이란 범어로 히나야나라고 하는데, '작은 수레'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소승이란 의미가 그렇듯이 소승불교는 출가인의 개인적인 수행만을 제일주의로 여겼습니다.

소승과는 대조적으로 대승이란 범어로 마하야나라고 하는데, '큰 수레'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긍극 목표는 부처님께서 가르치고자 하는 근본 뜻을 좇아 자기 자신은 물론 모든 중생이 다함께 불도를 이루자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리와 이타라는 보살행의 실천을 통해서 다함께 성불하자는 데에 최고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생존 당시부터 입멸 후 백년까지를 흔히 원시불교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 후 부파불교 시대를 맞이했는데, 그것은 계율의 해석 차이로 인해 갈라진 불교시대를 말합니다. 대승불교 운동은 부처님의 입멸 후 오백년 경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원시불교와 부파불교 시대를 거치면서 일어난 대승불교 운동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볼 때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습니다. 대승불교 운동은 한 마디로 부처님의 근본 사상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는 진정한 뜻을 찾는데 있어서 단지 이론이나 관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살행의 실천을 부르짖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근본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을 표방하는 대승불교 운동은 곧 공사상(空思想), 반야사상(般若思想), 연기설(緣起說), 중도사상(中道思想), 유심사상(唯心思想), 열반사상(涅槃思想), 보살사상(菩薩思想) 등을 그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공사상은 <반야심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중요한 핵심 사상입니다. 공사상은 존재의 원리를 파헤친 것으로 반야사상과 연기설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반야사상은 우주 삼라만상의 실상을 설한 공사상을 실천적인 면에서 완성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야는 공의 이치를 완전히 체득함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연기설은 우주와 인생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 법칙입니다. 생사윤회의 순환고리인 십이연기는 부처님의 직접적인 깨달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연기법은 공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우주와 인생에 대해 철저히 파헤침으로써 존재의 실상을 올바로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이론입니다.

대승불교의 사상 중에서 공사상, 반야사상, 연기설은 앞으로 공부하게 될 <반야심경>의 근간이 되는 중심 내용이므로 간략히 살펴 보았습니다.

 

2. 오시교(五時敎), 삼종(三宗), 삼관(三觀).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이루시고 사십구년 동안 각처를 다니시면서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설해졌기 때문에 그 양과 내용은 참으로 방대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남겨진 말씀들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전문적인 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재정립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께서 사십구년 간 설하신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입니다. 팔만대장경의 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섯 단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오시교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화엄시(華嚴時)로, 성도 후 최초의 삼칠일간 <화엄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에서 깨달음 전체를 설하셨지만 일반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쉬운 차원으로 끌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는 아함시(阿含時)로, 그 다음의 십이년 간 <아함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객관적인 물질계에 대한 가변성과 욕망의 절제 등에 대해서 설하셨습니다.

셋째는 방등시(方等時)로, 그 다음의 팔년 간 <유마경>.<금광명경>, <능가경>.<승만경>.<무량수경> 등 방등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연기의 법칙과 주관에 대한 부정을 언급하셨습니다.

넷째는 반야시로, 그 다음의 이십일년 동안 <반야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부정의 부정을 통하여 공의 세계를 밝히셨습니다.

반야부 계통의 경전은 무려 육백여 부에 해당되며, 그 중에서 <반야심경>은 반야의 골수만을 간추린 경전에 속합니다. 반야시는 설 법 기간도 가장 길며 반야부의 경전들을 통하여 깨달음의 정수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반야부 경전은 가장 방대한 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교리적인 면에서도 가장 중심에 들어 있습니다. 반야부 경전은 소승불교에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여 반야사상을 바탕으로 대승불교를 꽃피운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반야부 경전의 중심 내용인 공사상, 반야사상은 대승불교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다섯째는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로, 최후의 팔년 간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부정의 부정을 거쳐서 대긍정의 세계를 설하셨습니다.

이상의 다섯 가지 분류를 내용면으로 볼 때 아함시는 소승경전에 속하고, 그 나머지는 대승경전에 속합니다. 또 아함, 방등, 반야, 법화열반의 네 가지는 하나의 화엄으로 종합할 수 있습니다.

 

삼종(三宗)

다음으로 오시교와 연관지워 불교경전을 내용적인 면에서 다시 삼종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은 처음에는 자신이 깨달으신 전체 내용을 화엄사상으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차원이 너무 높아 아무도 알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통한 법락(法樂)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낮은 단계로 끌어내려 차츰 높은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추어 세 가지 단계로 설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모든 경전들은 이 세 가지 삼종의 범주 안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모든 현상계를 '있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는 상(相)과 유(有)의 차원입니다. 이것은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괴로움도 있고, 괴로움의 원인도 있고, 괴로움의 소멸도 있고,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분명히 있는 괴로움과 그 괴로움에 대한 원인과 해결 방법이 있다는 입장에서 사성제와 팔정도가 설해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십년 간을 주로 모든 현상계가 있다고 하는 유와 상의 상식에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아함경>은 주로 유의 입장에서 설해진 경전에 속합니다. 유의 차원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세계로, 많은 부분이 방편설(方便說)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있다고 하는 유의 사상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도 잘 통하는 세계입니다. 또 있는 것을 있다고 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차원입니다. 그러나 유의 상식으로 풀어지지 않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단계가 설해진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현상계를 '없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는 공과 무의 차원입니다. 이것은 모든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여기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공의 사상을 낳게 했습니다. 모든 현상계는 텅 빈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실상을 공한 것으로 보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십일년 간을 주로 공의 입장에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반야부의 많은 경전들은 모두 여기에 속하며, 앞으로 공부하게 될 <반야심경>은 바로 공이나 부의 입장에서 설해진 대표적인 경전 에 속합니다.

셋째는, 모든 현상계를 존재하는 그 자체로 '진리'라고 보는 성(性)의 차원입니다. 이것은 진성(眞性).법성(法性).진여(眞如)의 차원입니다. 성의 차원은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대로 진리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가장 차원이 높은 견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팔년 간을 성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설하셨습니다. 성의 차원에서 설해진 경전으로는 <화엄경>.<법화경>.<능엄경>.<열반경> 등이 있습니다.

성의 차원은 또 '비유비무 역유역무(非有非無 亦有亦無)'라고 표현됩니다. 그것은 곧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이기도 하고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의 입장은 우리가 흔히 잘 쓰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과도 잘 통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그대로 진리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경전의 모든 말씀, 즉 팔만대장경은 상.공.성의 삼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법문이든지 이 세 가지의 열쇠로 풀리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선사의 법문을 빌려 삼종을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상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됩니다. 그러나 공의 입장에서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의 입장에서는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 만 물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사홍서원에 나오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를 상.공.성의 각기 다른 안목에서 살펴 볼 수도 있습니다. 상의 입장에서는 제도해야 할 중생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공의 입장에서는 우주 만물이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에 중생 또한 공한 것으로 보아 공한 중생을 제도한다는 견해입니다. 성의 입장에서는 중생이 곧 부처이므로 부처인 중생을 제도한다는 견해입니다.

삼종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있는 그대로가 전부인 양 착각하여 사는 것은 상이나 유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공한 것인 줄 알면서 살아가는 것은 공이나 무의 입장입니다. 공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살 것이 있는 것입니다.

상의 입장에서는 사는 일 그 자체에만 매달려 살지만 공한 입장에서는 인생의 공한 일면을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는 지혜의 안목이 있는 것입니다. 가장 차원이 높은 성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인생을 진리 그 자체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크게 뭉뚱그려 보면 위의 상.공.성 세 가지 견해에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현상계를 볼 때 한 가지 견해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바라볼 줄 아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삼관(三觀).

상.공.성 삼종과 함께 우리의 안목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시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삼관이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공관입니다. 모든 현상을 공하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공관은 결국 공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관찰하는 입장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의 실체는 본래 공한 것이며, 인연에 따라 잠깐 생긴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공관은 삼종에서 무와 공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이해하는 차원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가관(假觀)입니다. 모든 현상계는 본래 공한 것인데 거짓 모습에 속아서 보는 것을 말합니다. 가관은 앞의 삼종 중 유와 상의 입장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가관은 모든 현상을 가상의 입장에 집착해서 보는 안목을 말합니다.

셋째는 중도관(中道觀)입니다. 중도관은 현상계를 그대로 진리의 차원에서 보는 안목을 말합니다. 중도관은 가장 이상적이고 차원 높은 입장으로, 삼종 중 성의 견해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오시교와 삼종, 삼관을 통하여 <반야심경>의 경전 상 위치와 내용적인 면을 대강 살펴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반야심경>은 반야부 경전의 중심이며, 동시에 불경의 심장부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팔만대장경 전체의 정수는 반야부의 경전이며, 그 반야부의 정수가 바로 <반야심경>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