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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7-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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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공부방] [천수경] 본장 - 6 복덕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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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4,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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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처님의 어머니 준제보살
준제공덕취(准提功德聚)
적정심상송(寂靜心常誦)
일체제대난(一切諸大難)
무능침시인(無能侵是人)
준제공덕취 '준제공덕취'는 준제보살님의 공덕의 큰 무더기란 뜻입니다. 준제보살은 어마어마한 위신력을 지닌 분이십니다. 준제보살은 한량없는 공덕을 지은 분이십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를 서서히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한 프랜시스 따벨의 법칙을 잊지 마십시오. 남을 미워하는 자체가 커다란 죄악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안아들이는 마음을 양성하십시오. 준제보살님은 한없이 안아들이시는 보살님이십니다. 부처님의 어머니와도 같은 마음의 보살이라 불리웁니다. 우리들은 모두 다 준제보살님의 가호지묘력을 힘입고 있습니다. 준제보살님은 부처가 되기로 마음 먹고 난 순간부터 부처가 되는 먼 미래세까지 우리모두를 가호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준제보살님은 불모(佛母)입니다. 부처님의 어머니이십니다.
따지고 보면 여러분도 다 불모입니다. 집에서 기르는 아들딸들이 다 부처가 되실거니까 부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헐뜯고 비난하지 말고 불모가 되도록 노력하십시요. 누가 순간적으로 미워지면 '아서라'하며 멈춰야 합니다. 그 마음이 쏘아지면 그 영향력은 언젠가 나에게 닥쳐오게 될 것입니다.
영혼의 등급도 잊지 마십시오. 첫번째 마음의 세척정도, 두번째 공덕의 정도, 세번째 지혜의 정도, 그 다음에 포용력의 정도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가르침입니까. 공부많이 해서 마음의 뜨락을 넓히도록 해야 합니다. 불모가 되도록 정진하십시오.
불모보살님이 준제보살님입니다. 저 먼 과거로부터 미래세까지 길고 긴 세월 동안 무량한 많은 중생들을 부처가 될 때까지 가호하는 분이십니다. 그 공덕이야 말로 헤아릴 길 없을 것입니다.
'준제공덕취', 무더기 취자입니다. 준제보살님의 공덕의 무더기가 천수경에 들어 있고,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들어 있고, 관세음보살님께 기도 드리는 마음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준제보살' 그 이름은 듣기만 해도 편안하지 않습니까?
우리들도 삶을 살아 가면서 상대방이 우리들의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이름을 들을 때 소름이 끼치는 사람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고재봉, 카포네, 마피아 이런 사람들이 그런 부류입니다.
나옹화상 발원문에도 '내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를 벗어나고 나의 모양 보는 이는 해탈도를 이루어지이다'고 했습니다. 이름 듣는 것만으로 삼악도를 벗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장보살님 이름 한번 부르는 것만으로도 공덕이 크다고 합니다. 또 지장보살본원경을 보면 지장보살 명호를 듣기만 하요도 삼악도보(三惡道報)를 멸한다고 했습니다. 지장보살 명호를 외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관세음보살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자꾸만 독송하게 되면 삼도식고(三途息苦)라, 삼악도 중생들이 악도의 과보를 받지 않고 쉰다고 했습니다. 염불을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하면 악도 중생들이 그 명호를 득고 고통을 쉬게 됩니다. 그 얼마나 큰 공덕입니까? 그래서 염불하는 공덕이 큰 것입니다.
얼굴을 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푸근하고 가라앉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같은 사람은 끊임없이 기도 정진하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얼굴뿐이겠습니까, 온 몸으로 그러한 분위기를 풍겨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다 기도 정진력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몸 자체가 '준제공덕취'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이 공덕을 갈고 닦았는가를 몸 자체가 말을 하는 도리가 있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산란해서는 도(道)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도답게 되어야 하고, 행동거지와 말도 도답게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스스로 수행자 경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말로 되는게 아닙니다. 연습이 대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러러 보지 말라고 하더라도 저절로 그렇게 보이게 됩니다. 그가 하는 모두가 경외로와 집니다. 행하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도이며 법이니까요. 그런 경계는 적정심으로 갈고 닦아야 합니다. 무엇하나 함부로 해서는 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적정심상송 '적정심상송(寂靜心常誦)', 항상 번뇌망상이 떨어진 마음으로 독송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적정심이란 번뇌망상이 가라앉은 마음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얘기입니다. 항상 천진하게 웃으시던 경봉(鏡峰)스님의 미소의 뜻이 지금에서야 느껴집니다. 그것이 도(道)의 미소였구나, 도의 흐름속에 있는 웃음이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같이 있을 땐 모르기 쉽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자기가 그런 경계에 임박해서야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시대를 걸러 뛰어가는 인간은 그 시대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야 위대함이 나타나고 흠모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말 한, 행동 하나, 생각 한, 그 모든 것들이 아무렇게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자들은 생각을 하나 하더라도,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하더라도, 그 하나 하나를 생각한 후에 나타냅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올바른가, 그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하여 하나하나 점검하고 반성하면서 행동을 완벽에 가깝도록 끌어올려나갑니다.
몸과 마음과 행동이 도를 통해 승화된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고행의 산물입니다.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거쳐왔을까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하나의 생각과 행동과 말이 가다듬어질때까지는 많은 연단과, 고뇌와, 쓰라림의 능선을 넘어야만 합니다. 하나의 동작과, 하나의 표정과, 하나의 행동과, 하나의 웃음조차도 인고의 수행으로 영글어 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조용히 완상해 보십시오, 항상 적정심으로 돌아가서 스스로의 행동과 말을 체크해 보십시오, 그런 작업에 익숙해져 본 삼람만이 도인의 경계를 알 수 있습니다.
도인의 경계는 말을 안 해도 느껴집니다. 말하는 것만이 법문이 아닙니다. 그런 도리를 펼쳐보이는 분이 눈에 잘 띄지 안흔 것이 오늘날 한국불교의 비극입니다. 반드시 저 먼 깊은 산 중에 있어야만 되는 것일까요? 우리들의 주변에도, 시정 한복판에도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있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일체제대난 적정심으로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삶을 엮어 나간다면 '일체재대난(一切諸大難)', 일체의 모든 어려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어려움도 많고 고통도 맣고 액난도 많습니다. 어떤 보살님께서 저에게 와서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어떤 사건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기 남편을 직장동료 한 사람이 물귀신작전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참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런 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근거가 없는데도 괴로움을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눈딱감고 가만히 놓아 두어야 합니다. 근거가 없는 것은 세월이 흐르면 자연히 잠자게 되어 있습니다. 반응을 보이면 사람들은 더욱 극성을 떨게 마련입니다. 그럴땐 딱 무시해 버려야 합니다. 미친개한테 물린 셈 치고 가만히 두어야 합니다.
소문의 심리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억울함을 밝히려 들면 점점 얘기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고 사람들은 소문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뜬소문이 사람 잡는 수가 있습니다. 가만히 놔 두십시오, 그저 아무 근거없이 비난하고 욕하던 것은 얼마가 지나면 잠잠해집니다. 뜬소문우로 다 날아가버립니다. 머리깎고 살다보니 많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자신있는 사람은 묵묵히 나가십시오.
인생은 항상 조용한 마음으로 관조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음으로 스스로를 회광반조(廻光反照)해야 합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를 가만히 돌아보며 모든 것을 마음의 광명으로 비춰보세요. 과연 내가 하는 일이 올바른 행동인가, 나에게도 이롭고 상대방에게도 이로운 행동인가,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만 이롭고 상대방에겐 이롭지 않은 행동인가를 생각해보야야 합니다. 나에게는 이롭지 않다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이로운 일은 해야 합니다. 지금은 나에게 이롭지 않지만 언젠가는 이로워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지금은 모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에 이 세상에서 꼭 해야 될 일은 상대방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좋고 나도 좋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좋고 내가 좋지 않은 것은 해야 하지만, 나만 좋고 상대방이 좋지 않은 것은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좋지 않고 상대방도 좋지 않은 일은 물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선행(善行)은 비록 지금은 상대방이 그것을 모른다 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그것은 공덕으로 작용해서 자연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와 같은 도리를 분명히 알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후에 마음을 가라 앉히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액난닝 덜합니다. 아무리 전생의 업장이 많다 하더라도 항상 적정시므오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밝게 보입니다. 그리고 세상사 어려운 일들 앞에서도 슬기로운 방법론이 스스로 추출됩니다.
어떤 일이 닥쳐올 때는 꼭 기도하십시오.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관세음보살님을 부르십시오. 열심히 108배를 하십시오, 해답이 제시되지 않고, 어떻게 해야될지 모를때. 그럴때는 무조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부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메시지(message)가 옵니다. 앞으로 나가야 좋을지, 뒤로 물러서야 좋을지, 일어서야 좋을지 , 앉아야 좋을지, 이 모든 것을 결정해 주시는 분은 부처님 한분밖에 안계십니다.
인간의 사량분별로 함부로 결정해 버리면 그 다음에 괴로움이 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다 보면 한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 생각을 따라가면 실수가 없습니다. 전 항상 그렇게 삽니다. 해답이 올때까지 항상 기다리며 삽니다.
무능침시인 '일체제대난(一切諸大難)'이라, 열심히 기도 정진하며 살아가면 일체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이 그 사람을 침노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입니다. '무능침시인(無能侵是人)'이라, 열심히 기도 정진하며 살아가면 일체의 액난이 그 사람을 덮쳐들어 오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기도 정진하면 액난이 들어올 구석이 없습니다. 게릴라전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액난이란 항상 헛점이 있어야만 파고 들어옵니다. 전투경기를 보십시오, 상대방 헛점이 있어야 파고 들어오지 않습니까? 항상 적정심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주시하면 헛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준제보살의 거대한 공덕이 갈무리된 것이 바로 천수경입니다. 기도한 가운데 그 많고 많은 공덕이 흘러들고, 그래서 일체 큰 액난들이 그 사람을 침노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 아니니까?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겠는가 하는 해답이 저절로 마음 가운데 떠오르셨을 것입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정진입니다. 수행은 어떻게 해야만 되는 것인가 하는 방법이 저절로 마음 가운데서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 가운데에서 수행의 방법론이 저절로 제시되는 것입니다.
2. 부처님같은 복을 받으리라
천상급인간(天上及人間)
수복여불등(受福如佛等)
우차여의주(遇此如意珠)
정획무등등(定獲無等等)
천상급인간 끊임없이 기도정진을 하게 되면 '천상급인간(天上及人間)'이라, 천상에 있는 인간이나 이 세상에 있는 인간을 막론하고 준제보살의 거룩한 복을 받게 됩니다. '수복여불등(受福如佛等)'입니다. 등(等)은 같다는 뜻으로 부처님과 꼭 같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과 꼭 같은 복을 받는다니 정말 놀랍고도 놀라운 일입니다.이렇게 기가 막히는 도리를 깨닫지 못하니 안타까운 마음 한량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항상 '여보소도 이불기행(如寶所導而不起行)'이라, '내가 보배있는 밭을 가르쳐 주는데도 가지 않으니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저기 보배 밭이 있다. 다이아몬드 밭이 있다'고 항상 말씀하시는데도 안 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모두 다 그렇습니다.
이같은 큰 도리를 아는 사람은 의심하지 않고 시작해서 엄청난 보배 밭을 얻습니다. 보배 밭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정말 이 도리를 아셔야 합니다.
수복여불등 어떤 거사님이 제게 "스님, 제가 직장을 뛰쳐 나온것이 잘못된 것 샅습니다"라며 하소염을 했습니다. 일류 재벌기업에 있다가 마음에 맞지 않아 사표를 내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회사퍽 차려 사업을 경여해 보려니까 굉장히 어렵거든요. 자기가 다 꾸려 나가야 하니까요. 그 거사님은 후회하듯 거듭 말하시더군요. "샐러리맨 생활할때가 백 번 나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사님께서는 결코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제가 산 중에서 정진이나 하고 참선이나 하고 있었으면 지금보다 훨신 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와서 살다보니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궂은 일 다맡아서 스스로 해야만 됩니다. 계획단계에서부터 일의 마무리가지 일일이 챙기고 또 이끌어가야 하니 피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이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무엇이며,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겠습니까? 공덕을 짓는다는 차원보다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승화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산 속에 가만 앉아 있으면 그런 기여는 할 수 없었을 것 아닙니까? 하고 그 거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거사님께서 직장에서 이사님이 되셨다고 칩시다. 월급을 몇백만원씩 받고 편안하게 사셨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일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이 다음 언젠가는 또 다시 한번 나와서 부딪쳐야 했을 것입니다. 지금 거사님은 아직 나이도 있으시니까 평상시의 거사님의 능력을 사업을 통해 이 세상에 펼쳐본다고 생각하시고 일을 도모해 보십시오. 용기를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해보십시오."라고 당부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많이 계실 것입니다. 일도 하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만 지내시다 보면 여러분의 공덕과 능력은 결코 늘어나지 않습니다. 공덕과 능력은 공짜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괴롭고 마음이 아픈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수행자적 자세로 피오 땀과 눈물의 능선을 넘지 않고선 이뤄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그와 같은 짐을 지워주신 부처님께 진실로 고맙고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를 부처님께서 지어주셨구나, 너무나 고맙다' 이렇게 느껴야 합니다.
그 거사님께서 사업이 어렵다고 낙담만하고 좌절했다 칩시다. 그 가정은 어떻게 되며 개인은 또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폐인이 되기 쉽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간곡하게 "분연히 일어나 열심히 한 번 해보시면 부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나의 능력이 얼마만큼이나 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셔야 됩니다. 그것이 거사님이 이 땅에 오신 사명일 것입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차가지압니다.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기에 일단 부딪쳐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이 땅에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스스로 능력을 펼쳐 보이고 일하러 온 것 아닙니까? "나는 못해요. 나는 몰라요" 그런 삶은 가치가 없는 삶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입니다.
부처님께서 분명히 하신 말씀이 '여보소도 이불기행(如寶所導而不起行)'이 아닙니까? 적정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부처님이 다 가르쳐주십니다. 오로지 '피곤하고 어렵긴 하지만 이 일을 맡겨 주신 부처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셔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부처님께서 다 알아 주십니다. 가만히 보면 일 잘하는 사람은 별다른 불평 불만업히 잘 합니다. 일못하는 사람들이 괜히 말이 많고 불평이 많습니다. '천상급인간 수복여불등', 하늘인간이나 지상인간이나 그 누구도 끊임없이 기도 정진하는 사람은 부처님과 꼭같은 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차여의주 '우차여의주(遇此如意珠)'란 이 여의주를 만나면 하는 뜻입니다. 여기서 여의주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천수경이며,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기도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분은 마음가운데 여의주를 품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모든 것을 다이아몬드와 황금으로 변모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저는 항상 능인선원에 오신 불자님들에게 무언가 보여드리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가 보여드린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그분의 능력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저와 능인선원을 통해 보여실 것이 무엇인가 기대해 보십시오. 부처님의 위신력은 무한입니다. '우차여의주'의 의미를 놓치지 마십시오, 어떤 겨우에라도 기도하는 마음을 놓아선 안 됩니다. 힘들지요. 피곤할 것입니다. 어려울 것입니다. 남들보다 괴로운 삶입니다. 그러나 그 괴로움속에 여의주가 들어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다이아몬드를 캐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금 10g을 캐내려면 천kg 의 바위를 깨야 합니다. 금광은 전부 다 암반으로 되어 있기때문에 천kg 1톤이상의 바위를 깨내야 고작 10g의 금이 나오는 것입니다.
고통을 안 들이고 되는 일이 없습니다. 누워서 떡을 먹는 것도 체하는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가운데 기도하는 마음과 정진하는 마음만 가지면 언젠가는 다이아몬드를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결혼반지의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정말로 어마어마한 부처님의 다이아몬드를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차여의주', 정말로 기도하는 마음하나가지면 여의주를 지닌 것과 같습니다. 여의주는 모든 것이 다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구슬입니다. 다만 그 대상에 따라 시간이 많고 적게 걸리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정획무등등 '정획무등등(定獲無等等)'의 무등등은 부처님을 의미합니다. 결정코 부처가 된다는 것이며, 무등등을 획득한다는 것입니다. 무등등은 부처님으로 해석해도 좋습니다. 깨달음으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또 '정말로 바라는 것 모두가 다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뜻으로 보아도 좋습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부처가 된다면 결정코 무엇이든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나무칠구지불모 대준제보살 진정으로 우리는 '나무칠구지불모 대준제보살(南無七俱지佛母 大准堤菩薩)'해야 합니다. '나무'는 귀의한다는 뜻이며 '칠구지'는 무진장한 숫자를 가리키는 뜻입니다. '저 먼 과거로부터 저 먼 미래까지 칠구지 무량한 부처님의 어머니이신 준제보살님께 간절한 마음로 귀의하옵나이다' 이런 뜻입니다. 천수경은 참으로 중요한 경전입니다. 천수경만이라도 절들마다 제대로 강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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