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06 17:27
[경전공부방] [천수경] 본장 - 2 발원의 장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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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몸과 마음을 다하여

`나무'는 기도의 극치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지일체법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知一切法)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지혜안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智慧眼)


부처님 말씀들은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어떤 것이 덜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게 다 중요한 것들 뿐입니다. 이 `나무대비관세음(南無大悲觀世音)' 할 때의 `나무'란 몸과 마음을 다 내던져서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귀의하는 마음이란 몸과 마음을 다 내던져서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나무'란 말은 그러니까 기도의 극치를 이르는 말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을 대변하는 대명사가 바로 이 `나무=나모(namo)'란 말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 한다는 의미를 기도 정진하는 외에 또 어디서 찾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나무대비관세음'이란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님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귀의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는 마음이 들 때라야만, 우리의 마음 가운데 많고 많은 번뇌들이 모두 다 녹아져 내릴 수 있습니다.


`원아속지일체법(願我速知一切法)' 할 때, 일체법이란 우주의 근본 법성을 말합니다. 공부를 할 때도 마음 가운데 잡념이 있으면 그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해야 할 학생이 매일 연애나 하고 쓸데없는 일이나 하며 돌아다니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나무대비관세음'의 근본 뜻은 진실로 우리 인간들이 발전을 지향할 때 지녀야 되는 근본적인 자세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출세간(出世間)이건 또 세간(世間)이건 정말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일체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마음 가운데 오염된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람은 공부를 제대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 가운데 부정적인 마음들을 전부 다 녹여야만 우주의 일체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자기 마음 가운데 오염된 세계를 제거한다는 것이죠.


옛날, 우리 선조님들은 무슨 일을 도모하기 전에는 반드시 목욕재계했습니다. 그리고 탁자에 조용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대자연의 비밀, 이 광대무변한 우주의 비밀과 법도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바꿔야만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우리가 정말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만법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일체 모든 우주의 법칙을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들은 마음 가운데 여러가지 생각들을 다 내려놓으시고 부처님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곗돈 생각을 한다든지 쓸데없는 생각들을 많이 하면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우주의 비밀은 마음을 비우고,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그 비밀의 문을 열어 줍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처럼 말입니다.


`원아조득지혜안(願我早得智慧眼)' 할 때 `지혜안'이란 탁월하고 걸출한 아이디어를 말합니다. 우리가 직장에 다니거나 사업을 하거나, 머리가 맑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그 직장이나 기업을 이끌고 나가는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도 어떤 문제를 풀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풀어야만 잘 풀려나갑니다. 인생의 제반 문제를 해결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닥쳐 들어올 때 욕망의 포로가 된다거나 여러가지 오염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 문제를 제대로 풀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보편타당한 마음이 될 때 `속지일체법', 모든 일체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만이 지혜의 눈이 열립니다. 천수경은 일체법을 단계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내용들로되어 있습니다.

남편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우선 `나무대비관세음'하며 기도를 하도록 시키셔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들이 지혜의 눈을 갖게 됩니다. 지혜의 눈을 갖는다는 것은 마음속에 지혜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죠. 머리가 맑아야만 그 머리속에 지혜의 세계가 열립니다. 이것은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사바세계의 모든 일도 그러하지만 불교의 모든 세계도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이 없이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발전을 하려면 먼저 이우주의 법도를 알아야 합니다. 함부로 살아서는 바람직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함부로 사는 길은 재앙의 길이요, 고통의 길이요, 실수와 질병과 장애의 길입니다. 시험문제를 풀 때도 푸는 길이 있고 요령이 있습니다. 그런데 눈이 맑은 사람은 그 길과 요령이 잘 보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도 평상시에 항상 기도를 하며 사셔야 합니다. 기도를 하고 살지 않으면 자기 마음 가운데 오염된 부분이 녹아지지 않아서 항상 교만심과 이기심 같은 것들로 가득차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진인가, 퇴보인가
이 지구라고 하는 별은 초속 30Km로 우주공간을 질주합니다. 초속 30Km면 이 지상의 그 어느 것 보다 더 빠릅니다. 미국의 패트리엇(Patriot)미사일이 이라크의 스커드(Scud)미사일을 요격할 때의 속도라 해도 지구의 초속에 비하면 많이 떨어집니다. 초속이 30Km면 똑딱하는 순간에 우주공간을 질주해 버립니다.

부처님께서 제행무상이라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다 이렇게 빨리 빨리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이다지 빠르게 변화해 가는 세상을 살며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으로 일체의 모든 법을 터득해 나가는 그러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우주에는 전진과 퇴보의 두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총알처럼 날아다닙니다. 로켓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만상이 다 움직여 가고 있습니다. 모든 만상은 다 이렇듯 현기증나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가 정말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인생을 살려는 마음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정지는 없습니다. 정지한다는 자체는 퇴보를 의미합니다. 모든 만상은 움직여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전진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전진의 기상이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여기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데, 다른 한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 잠깐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짧은 사이라 할지라도 두사람의 사이는 크게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잠깐의 정지가 전진과 퇴보를 좌우하는 분기점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로 이 우주의 속성, 보이는 세계의 속성은 전진이냐 퇴보냐, 발전이냐 패망이냐,이 두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전진을 할 것이냐 패배를 할 것이냐, 그것은 얼마나 노력하며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의 정도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일체만법을 통달하는 그런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법당에 나오셔서 부처님의 거룩하신 법을 터득해 나가는 이 작업은 영원의 법인 일체법을 터득해 나가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퇴보요, 패망이며, 패배입니다.

지혜의 눈을 열려는 사람은 공부를 해야만 합니다. 지혜의 눈을 열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지혜의 눈을 뜨려고 노력하지만 그것 역시 마음을 가다듬고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될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노는 입에 염불이라고, `나무관세음'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요. 그러면 저절로 길이 열려옵니다. 길이 열리면 지혜와 아이디어가 샘물처럼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고 많은 물건들은 모두 아이디어의 소산입니다. 여자들이 쓰는 안경 가운데 삐죽하게 칼모양으로 생긴 안경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일이 있습니다. 그 안경 만드는 사람이 어느 날 부인이 부엌에서 식칼을 가지고 일을 하는 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아 저런 모양으로 안경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만들었더니 불티나게 팔렸다는 것입니다. 넓은 마음으로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값싸고 이용하기 쉽고 보탬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하는 사람들, 정말 자기만의 이익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탁월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법입니다.



기도와 아이디어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도일체중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度一切衆)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선방편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善方便)



탁월한 제품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속도일체중(速度一切衆)'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혜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제도합니다.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은 내 마음을 텅 비우는 마음입니다. 사심을 녹이고, 이기심을 녹이며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속도일체중', 속히 일체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위대한 인물들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고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열어 주십사고 기도했던 사람들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기도를 올렸던 사람들입니다. 기도하는 마음 가운데 일체 중생을 위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기심을 가지고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인간들은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많이 느끼는 일인데, 자꾸만 기도를 하다보면 이상스럽게 이기심과 업장이 녹아들면서 항상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중생을 포용하려는 이해심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절에 수십년 다녔다 해도 전혀 기도가 안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으로 `속도일체중' 즉 모든 사람들을 속히 제도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진실로 아이디어를 원하는 사람들은 기도를 하며 마음을 크게 비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나무대비관세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남편들과 아이들에게 항상 이야기 하십시요. "얘야, 기도 좀 해라. 기도라는 것을 꼭 종교와 연관시키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좀 해 봐라"고 말씀해 보십시요.

기도는 마음을 비우는 작업입니다. 명상을 하며 참선을 하는 것입니다. 염주를 잡고 자꾸만 기도를 해 보는 것입니다. 머리가 모자란 사람들도 10년, 20년, 끊임없이 기도를 하다보면 머리가 화통하게 열리게 됩니다. 아이들 가운데 공부를 못하고 속을 썩이는 녀석이 있으면 자꾸만 절을 시키십시요. `관세음보살'하면서 1년이고 10년이고 계속 절을 하다보면 머리가 틔여집니다. 오염된 좋지 못한 생각들이 다 녹아져 버립니다. 자기 능력이 쌓이고 지혜의 안목이 쌓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재산입니다.


여자들이 입는 브레이저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재단하는 사람이 자기 어머니가 나이가 많이 드셔서 젖무덤이 흘러내려 불편해 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재단사이다 보니까, 헝겊을 모아 재봉틀로 박아서 어머니의 젖가슴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가슴받이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순전히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려는 마음으로 생각해 낸 것이지요. 그런데 이 어머니가 동네를 다니면서 아들이 만들어 준 가슴받이가 그렇게 편하고 좋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너도 나도 하나씩 만들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소문이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은 하는 수 없이, 이왕 시작한 김에 여러 어머니에게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이 재봉틀로 대량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히트를 쳐 버렸다는 것입니다. 특허를 내고 전세계를 석권해 버린 것이 지금 여러분이 입고 있는 브레이저입니다.


볼 포인트 펜(ball point pen), 흔히 볼펜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펜을 쓰다보니 잉크가 다 떨어져버리면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만년필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만년필도 불편한 점이 많던 차에, 잉크를 채워야 되는 불편함이 없는 볼펜이 나오게 되니 단번에 세계를 석권해 버린 것이죠. 이 모든 것이 다 아이디어(idea)입니다.

우리 한국에도 그런 아이디어로 돈을 크게 번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급이 되지 않았지만, 담배불을 붙이려면 성냥이나 라이터를 켜야 되니까 번거롭거든요. 그래서 성냥이나 라이터가 필요없이 담배 끝에다 인체에 유해하지 않는 물질을 발라두어 사람의 입에서 입김이 나가면 발화되도록 고안한 담배를 발명한 것입니다. 한 번 빨면 저절로 불이 붙어버리는 담배지요. 우리나라 사람이 그걸 발명해 냈는데, 전매청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스위스에 가서 특허를 내어 유럽 전역에 그 담배를 팔아서 졸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밖에도 예를 들자면 많습니다. 소화제도 한약을 달이기가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한 모금만 마시면 쉽게 배가 낫게 만드는 그러한 약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까스명수나 활명수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 작은 아이디어가 다 제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득지혜안', 지혜의 눈이 열리면 `속도일체중'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금생에도 그렇고 내생에도 그렇겠지만,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길따라 가려면 남들 보다 한 걸음 앞장서서 가야합니다. 그런 마음이 곧 `나무대비관세음'하고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일체법을 터득하게 되려면 마음이 맑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진리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공부를 하는 것도 마음이 오염된 사람들은 잘 안 됩니다. 아침에는 공부하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냈다가도 친구들이 꼬득이면 그만 마음이 변해 따라가고 맙니다. 그런 것도 다 아직 마음이 맑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항상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일체의 모든 법칙을 보다 빠르게 깨닫게 되고 지혜의 눈을 일찍 열게 되어, 보다 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의 눈을 열어가지고 삶을 살게 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선방편, 악방편(善方便, 惡方便)
마음을 비우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항상 승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자꾸 내다보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하고 여러가지 궁리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탁월한 방편문이 열려지게 되는 법입니다. 저도 오랜 세월동안 법회를 하다보니까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것이 좋고, 저럴 땐 저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항상 마음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이끌어서 의미성있는 세계를 함께 열어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좋은 방편문이 열려옵니다.

방편에는 악방편(惡方便)도 있습니다. 남들을 자꾸만 나쁘게 생각하다 보면 악방편이 열립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은 아주 기기묘묘한 범죄를 많이 만들어 냅니다.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이런 궁리만 하는 인간들은 결국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으로 이끌어갑니다.


법문 들으러 법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차원이 좀 다르신 분들입니다. 똑같이 능인불교학교를 졸업했는데, 나오시는 분들과 나오지 않으시는 분들과는 지금 당장 무슨 차등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차이가 점차 나타나게 됩니다. 법당에 열심히 나오시는 분들은 마음 가운데 자꾸만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니까 세월이 흐르다 보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천수경 강의를 들으시는 분은 앞으로 천수경을 독경할 때 `아, 이게 이런 뜻이었지'라고 새기며 살게 됩니다. 아무런 의미도 모르고 입으로만 줄줄 외는 사람과 구분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큰 차이입니까? 마음 가운데 한번 느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전혀 그 감도가 다릅니다.

또, 처음 들으시는 분들과 두번째 들으시는 분이 다르며, 세번째 듣는 사람과는 더욱 다를 것입니다. 점차로 부처님의 말씀이 내 것이 되어가고 몸에 익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단지, 몇발이라도 먼저 들은 사람들은 그만큼 앞서 공부하게 되니까 그 성취도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인생에 몇달쯤 앞선게 무슨 문제가 되며, 뒤에 사람이라도 더 열심히 공부하면 따라 갈 수도 있는 일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공부는 늦고 빠르고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육조단경에도 `전념이 미즉 범부중생이요, 후념이 오즉 부처님[前念迷卽凡 後念悟卽佛]' 이라고 말했듯이, 한 생각 깨닫고 깨닫지 않는 차이가 범부중생과 부처님의 차이입니다.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먼저 알면 행동을 할 때도 그 만큼 확신에 차서 하게 됩니다. 따라서 위정자나 정책을 담당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지혜로워야 되고 공부를 많이 해서 많이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보다 빨리 판단을 내리고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게 됩니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과 애매모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의 차이는 큽니다. 확고부동하게 아는 사람은 카드를 빨리 선택합니다. 결정도 빨리하고 단념도 빨리합니다. 무엇이든 빨리 일을 해결하고 처리해 나갑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명쾌한 결정을못합니다. 이것 저것 살피다보면 벌써 늦습니다. 수학문제를 풀 때도 기본을 잘 알면 자꾸만 응용이 되지 않습니까? 방편이란 응용을 의미합니다. 훌륭한 방편을 구하는 마음, 그것이 `원아조득선방편(願我早得善方便)'입니다. 방편문이 열린 사람들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교육의 재산, 지식의 재산, 지혜의 재산 등 폭넓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생을 폭넓고 풍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서 사색하며 열심히 일하며 살아갑니다. 발달된 머리와 지식이 출중한 인간들은 좋은 아이디어로 많은 사람이 일하는 몫을 단번에 해 치울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교육도 없고 지혜도 지식도 없는 사람들은 삶을 폭넓고 풍요롭게 살지 못합니다. 평생을 몸으로 때워야 됩니다.

막노동의 수명은 남녀를 불문하고 길지가 못합니다. 30대만 넘으면 벌써 막노동은 힘겹습니다. 40대까지도 힘듭니다. 이 고깃덩어리의 수명이 오래 못 갑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받는다 해도 교육과 지혜의 재산이 없으니까 그네들은 몸으로 때우는 것입니다. 또 유곽지대나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공부가 없으니 힘겹게 사는 것이지요. 자기의 인생을 소중하고 값지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를 하고 검정고시라도 보아서 대학교에 가려고 피눈물을 쌓으면서 직장생활을 하며 뜁니다. 무엇때문에 어렵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를 가려고 하겠습니까. 그게 다 자기 인생을 값지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법당에서 공부하는 작업은 여러분들의 인생을 아주 값어치있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고통을 겪는 것만큼 미래가 밝아지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 법당에 나와 부처님 공부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살아가실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부처님 말씀 듣고 깨닫고 사는 삶과는 질적으로 결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인생 소중한 줄 아는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노력하며 삽니다. 정말 인생이 소중한 줄 아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안정감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주위가 산만하고 안정감이 없는 데는 부모의 원인이 큽니다. 부모 사이가 좋지 않아도 그렇고, 부모의 교육정도가 떨어져도 그렇습니다. 부모가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면 아이들도 안정감이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학교를 다녔다 하더라도 제대로 공부를 하는 자세가 마음 가운데 쌓여있지 않으면 매사에 안정감이 적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해서 지혜롭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부처님 나라로 가는 배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승반야선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乘般若船)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득월고해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得越苦海)


`원아속승반야선(願我速乘般若船)'의 반야선은 부처님 나라로 가는 배입니다. 이 반야용선만 타면 부처님 나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요. 새마을호 특등칸을 타려면 다른 자리보다 더 많은 돈을 내야합니다. 기차도 그만한 값을 치러야 특등칸에 탈 수 있듯이 부처님 나라에 가는 배를 타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의 댓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반야선은 아무나 탈수 있는 배가 아닙니다. 우리들 모두가 마음 가운데 부처님을 모시고 계시지만 부처님 나라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그러므로 `원아속승반야선'이란 말은 함부로 살지 말고 반야용선을 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스님, 우리 애는 중학교 때까지는 우등생이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왜 이렇게 멍충이가 되어가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보살님들이 계십니다. 그것은 그 학생이 처음에는 마음을 잘먹고 기차를 탔는데 중간에 그 기차를 내려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나라에 가는 배도 한 번 탔다 하면 끝끝내 가는 것이 아니라, 가다가 마음자리가 바르지 못하면 도중하차되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고 기차를 탔는데 대전쯤 내려가서 배가 고프다고 가락국수를 먹고 있는 순간에 그만 기차가 가버렸단 말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다가 반야의 기차를 놓치지 않도록 하세요. 기차를 놓쳤다 하면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원아속승반야선', 우리는 절대절명으로 반야용선을 타야합니다. 능인불교학교와 경전연구반에 오신 분들은 지금 이 순간에 반야용선을 타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이미 반야용선을 탔다면 하루 온 종일 어딜 가더라도 반야용선을 탄 부처님의 아들딸 된 마음가짐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법당문만 열고 나가면 금방 잊어버리고 뭘 들었는지 깜깜해집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번 반야용선을 타셨으면 중간에 내리지 마시고 꾸준하게 이 고통의 바다를 빨리 건너서 부처님되는 나라에 갈 수 있도록 항상 마음을 다스려야만 합니다.



계·정·혜(戒`定`慧) 3학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득계정도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得戒定道)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등원적산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登圓寂山)


`원아속득계정도(願我速得戒定道)' 계·정·혜 삼학을 속히 공부하도록 하여, `원아조등원적산(願我早登圓寂山)', 부처님 계신 원적산으로 빨리가게 해지이다의 뜻입니다.

`속득계정도'란 반야용선을 타는 사람들은 항상 계·정·혜 삼학(三學)을 잘 지켜야 된다는 뜻입니다. 계·정·혜란 반야용선을 타고 부처님 나라로 가려는 사람들의 자격요건입니다.

계`정`혜 삼학을 잘 지켜 나가면 부처님께서 계신 원적산(圓寂山)에 갈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부처님이 계신 집이 있는데 이름이 무위사(無爲舍)입니다.

부처님 계신 원적산이 실지로 저 멀리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가운데 계`정`혜 삼학을 잘 닦아 나가면 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 계신 원적산이 된다는 뜻입니다.



속히 법성의 몸 되소서!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속회무위사
(南無大悲觀世音, 願我速會無爲舍)
나무대비관세음, 원아조동법성신
(南無大悲觀世音, 願我早同法性身)


이 천수경은 전부가 아름다운 한편의 시(詩)이며 장엄한 발원문입니다. 이 이상 더 아름다운 발원문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원적산에 오르면 부처님 계신 집이 있고, 부처님이 계신 무위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원아조동법성신' 할 때의 `법성신'은 법성의 몸이니까 곧 부처님을 가르킵니다.

제일 처음단계인 `원아속지일체법'에서 열번째 단계인 `원아조동법성신'까지에는 우리가 처음에 어떤 마음을 내고, 어떻게 서원을 시작해서, 어떻게 부처님이 될 것인가 하는 방법이 차근차근 10단계로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삶의 모든 지침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천수경을 독경할 때 내용도 뜻도 모르고 입으로만 외운다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강남에 처음 들어왔을 때 천수경 몇줄을 펴놓고 불자님들께 얘기해 보라 하면 대부분이 대답을 못했습니다. 흰건 종이고 까만건 글자란 식이었지요. 천수경에 나오는 한줄 한줄이 무슨 소리를 담고 있는지 모르시는 것입니다.

천수경 뒷부분을 보면 `공점이엄지(空點以嚴之)'란 말씀이 나옵니다. 천수경에 나오는 한점 한점이 모두 다 부처님의 말씀, 진리의 귀절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의점들이 `여피계명주(如彼 明珠)', 마치 아름다운 구슬을 꿰놓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천수경은 항상 `치지어정상(置之於頂上)', 가장 윗쪽에 갖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기가 막히도록 아름다운 천수경을 절에 몇 십년씩 다녔다는 보살들도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불교가 점점 망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천수경 한줄도 무슨 뜻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어디 다니냐"고 물으면 절에 다닌다는 말도 못하고 입을 딱 다물어 버립니다. 다른 이야기는 너무나 잘합니다. 그런데 종교얘기만 나왔다 하면 벙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줄줄줄 얘기를 잘도 하는데 우리 불교신자들은 그렇지 못해요. 그러면 저쪽 친구들은 "내가 너를 위해 교회에 나올 때까지 기도하겠다" 이럽니다. 교회 믿는 사람들은 특허가 "내가 너 교회에 나올 때까지, 하느님아버지 구원받을 때까지 기도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에 약해지고 마음에 켕기게 되어 그 쪽으로 한사람 두사람씩 따라가서 예수교인이 되곤 합니다.



연애와 공부
이 천수경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르침입니까? 한귀절 한귀절 읽어보세요. `나무대비관세음. 몸과 마음을 다 해서 부처님 전에 귀의하옵나이다. 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옵나이다'의 뜻 아닙니까?

우리가 한창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한테 "여자친구를 사귀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연애 걸면 공부가 어렵지요. 대체적으로 대학교 때 연애거는 학생들을 보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취직이나 해서 장가를 가 그럭저력 살고 있는데 반해, 불같이 공부한 학생들은 확실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서 남자들이 무슨 일을 열심히 할 때 그 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의 하나가 뭔지 아세요? 여자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이 세상에서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이있는 순간처럼 즐거운 순간이 또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국민학교 3학년 때 연애를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상대는 제 짝꿍이었는데 그 아이가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다 해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란 한번 보고 두번 보면 자꾸만 더 보고 싶어지는 법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창 공부할 나이에 문제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머리깍고 사는 스님들에게도 여자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크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여자와 같은 존재가 하나만 더 있었어도 이 세상에 도(道) 닦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가만히 관찰해 보면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일입니다. 본인 당사자들은 즐거워서 어쩔 줄 모릅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다 썩어도 모릅니다. 그러니 중요한 시간을 모두 뺏어가 버립니다. 그래서 남녀공학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학교 입학시험에 합격률이 낮다고 합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공학을 하기 전과 공학을 한 후의 대입합격률을 비교해 보았더니 공학을 한 후가 훨씬 나쁘게 나왔다고 합니다.

이해가 가는 이야기입니다. 남녀공학을 하면 아무래도 옷이나 머리에도 신경을 쓰게 됩니다. 공연히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쓰게 됩니다. 연애하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청춘의 귀중한 시간이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야할 일 다 해놓고 연애하는 건 상관없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입니까? 인생은 `나무대비관세음'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뜻을 알아듣도록 잘 이야기 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대비관세음',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이 천수경만 제대로 안다해도 삶의 근본원리를 터득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 정진하는 마음, 번뇌를 제거하는 마음에 바탕을 두어야만 원(願)을 발하게 됩니다. 그런 기본단계가 되어 있어야만 일체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욕망으로 눈이 어두워진 인간들에게는 이 지혜의 문, 진리의 문, 대자연의 비밀의 문이 열리지 않는 법입니다. 정말 여러분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집이 멀어서 새벽기도에 못 나오시는 분들은 집에서라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해 보십시오. 남편과 함께 하시면 더욱 좋고요.

우선, 여러분들의 신랑을 꼭 법당으로 모시고 나오셔야 됩니다. 아들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가 맑아지고 일체법을 다 알아 지혜의 눈이 열리고 건강해지는데, 무엇을 망설이는지요? `원아속지일체법' `원아조득지혜안' 아닙니까? 제일 처음 기본조건은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이고, 그 다음 일체법을 알게 되면, 지혜의 눈이 떠지고 창의력을 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어느 회사에 강의를 하러 갔을 때인데 그 사장님이 "스님,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들에게 어떤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기풍을 진작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종교문제를 떠나, 정기적으로 단 몇분이라도 조용히 앉아서 마음모아 참선을 하던지 명상 좀 할 수 있도록 회사내에 방부터 하나 마련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참선을 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능인선원을 이끌고 나가는 것도 모두 다 이런 아이디어의 소산입니다. 어떤 조직이건 그 나름대로 다 운영방안이 필요합니다. 경영학이라는 것도 다 조직의 운영학입니다. 법당에서 쓰는 것도 세속의 경영학이 아니라 부처님의 경영학입니다. 지혜의 눈이 있으면`속도일체중'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의 안목을 가지고 있으니까 좋은 방편문이 열려 오고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보다 빨리 제도할 수 있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하게 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다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선택받은 사람
제가 여러분들께 자주 기도할 것을 강조하는데 기도를 무슨 종교상에 등장하는 어떤 원리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생명과도 같다고 생각하십시오. 마음을 가다듬는 방법 가운데 기도외에 다른 방법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을 뜻있게 살려고 한다면 삶의 패턴을 바꾸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기도는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기도는 법력과 추진력과 적극성의 배양입니다. 기도를 항상하면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열심히 하면 일체법을 분명히 알게 되니까 자신만만해지거든요.

능인선원 운영만 해도 그렇습니다. 수만명이 드나드는 능인선원인데, 제가 많은 사람들을 모시고 부처님께 나아가려면 무언가 열쇠를 하나 가지고 있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되지를 않습니다. 세속의 법과 부처님의 법은 그 패턴이 다릅니다. 많은 분들의 인생을 앞장서 같이 도모하며 나가고 있는데, 자칫 뭔가 잘못 이야길 해 보세요. 능인선원의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하루도 걸르지 않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기도를 열심히 한 보살들을 보면 대체로 잘 되어갑니다. 삶을 부처님세계로 열어가니 다 잘 됩니다. 잘 되니까 신심이 나서 잘 나오시구요. 신심이란 믿는 마음이요, 믿어지는 마음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뭔가 믿어지니까 자꾸만 부처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좋은 일들이 겹쳐서 일어나고, 좋은 방편문이 계속해서 열립니다. 결국은 선택받은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속승반야선'이란 것은 `선택받은 사람[chosen people]'이 된다는 뜻입니다. 선택받은 인간이 되려면 기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적당히 가다가 끊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등원적산'이란 항상 계`정`혜의 삼학을 잘 닦아서 부처님이 계신 원적산으로 가자는 뜻입니다.

산 속 마다에 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절은 산 밑에 있어야 제격입니다. 너무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도 곤란합니다. `속회무위사'라, 부처님이 계신 무위의 집에서 속히 만나 모두 법성신이 되자는 것이 `조동법성신(早同法性身)'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지극 정성 기도하는 마음이 있으면, 남자들 고집이 아무리 세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말씀에 관심을 두고 수용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공부한 것을 남편들에게 정성들여 얘기해 보십시오. 그러면 처음엔 시큰둥하다가도 나중엔 뭔가 한 줄거리 들으려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능인선원에 나오시는 어떤 보살님의 남편이 회사를 경영하시는데, 어떤 파티에서 남편이 직원들을 모아놓고 하는 훈화를 가만히 들어보니까, 자기가 얘기한 걸 그대로 다 말씀하시더랍니다.


2. 기도 속에 녹아지는 악도의 마음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我若向刀山 刀山自催折)

아약향화탕 화탕자고갈 (我若向火湯 火湯自枯渴)

아약향지옥 지옥자소멸 (我若向地獄 地獄自消滅)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 (我若向餓鬼 餓鬼自飽滿)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我若向修羅 惡心自調伏)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我若向畜生 自得大智慧)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아약향도산(我若向刀山), 도산자최절(刀山自催折)'은 `칼산지옥 내가 가면, 칼산 절로 무너지고'의 뜻입니다.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으로 살게되면 `도산자최절'된다는 것입니다. `나무관세음'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이 만일 도산지옥의 마음이 되었더라도 내가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스스로자, 무너질최, 꺽어질절, 스스로 도산지옥의 마음이 무너지고 꺾어진다는 뜻입니다.

`아약향도산(我若向刀山)', 우리의 마음속에 칼산지옥의 마음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콕콕 찌르고 아프게하는 못된 마음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스런 마음들입니다. 남 안되길 바라는 마음, 남이 아파서 괴로워하고 비명을 울리면 위로해 줄 생각을 하지 않고 고소하다는 식으로 좋아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아약향도산'이란 `내가 만약에 도산 지옥에 가게 되면'으로 풀이되지만, 이 말의 참뜻은 `내 마음이 그와 같은 도산지옥의 마음이 된다면'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정말 아름답게 갖고 기도 정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 마음이 도산지옥이 되었을 때라도 `나무대비관세음'하게 되면 그 마음은 즉시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분명한 사실은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집에 돌아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점점 풍요로워집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하기 때문에 하루 온종일 마음이 맑아지고 쓸데없는 말을 안 하게 됩니다. 기도하며 살아가시는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백일기도를 몇번 하다 보니까, 처음엔 몰랐는데, 점차 속된 모임에는 참석하기도 싫고 쓸데없는 얘기도 하기 싫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저절로 마음이 착 가라앉고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더라"고 하더군요. 여러분도 꼭 필요한 모임이 아니면 자주 나가지 마세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마음의 발전을 도모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셔야 합니다.

우리들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고 아프게 해서 상대방의 마음에서 피를 흘리게 합니다. 우리 피부에서 나오는 상처는 이내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에서 흘러 나오는 피는 아물기가 힘듭니다. 마음에 상처를 낸 상대방을 용서하기가 무척 힘든 모양입니다. 많은 분들을 만나고 느끼는 것은 `용서해야지, 용서해야지'하면서도 용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해해야지,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면 안 됩니다. 남편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하루에도 몇번이나 부처님 말씀 생각하면서 남편을 이해하려 해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그 말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마음을 맴돈답니다. 그래서 밉살스러워 쏘아댄다는군요. 어느 보살님의 얘기입니다.

남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히면 안 됩니다. 부부라도 서로 이해를 도모하고 서로 참회하며 살아야지, 서로의 마음에 피를 흘리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럴 경우 마음은 안 만나고 고깃덩어리만 만나 사는 부부가 되고 맙니다.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도산의 마음'입니다. 비수같은 마음으로 서로 찌르고 째고 하니까 서로가 비명을 울리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내가 하는 이 말이 비수가 되지 않을까, 상대방의 마음에 피를 내지 않을까를 생각하면서 대화를 나누도록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상처는 참으로 아물기 힘든 것입니다.



아약향화탕, 화탕자고갈
`아약향화탕(我若向火湯)' 화탕지옥 내가 가면, `화탕자고갈(火湯自枯渴)' 화탕 절로 말라지고의 뜻입니다.

화가 너무나면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오릅니다. 내 마음이 화탕지옥의 마음이 될 때`나무대비관세음'하게 되면 그 화탕이 다 고갈되고 소멸되어 말라버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항시 기도를 하고 살면 비수같은 마음도, 화탕같은 마음도 다 녹아져 버립니다.



아약향지옥, 지옥자소멸
`아약향지옥(我若向地獄)' 모든 지옥 내가 가면, `지옥자소멸(地獄自消滅)' 지옥 절로 없어지다의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지옥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그런 지옥같은 마음이 되어질 때가 있습니다. 정말 어떻게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신문 사회면에 보면 그런 지옥의 마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술집여자와 바람을 피웠는데, 그 여자가 걸핏하면 부인한테 알리겠다면서 돈을 요구했답니다. 그 남자는 돈을 갖다 주면서도 지옥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여자들에게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자칫 실수로 악마들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시달림을 주고받는 마음들이 다 지옥의 마음들입니다. 지옥의 마음이 그런 것뿐일까요? 자신의 실수를 남들이 비난하고 질시할 때 마음은 찢어지는 듯이 아픕니다. 그럴때 `나무관세음보살'하는 기도로 마음을 다스리면 `지옥자고갈', 지옥이 다 말라 버리게 됩니다.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
`아약향아귀(我若向餓鬼)' 아귀세계 내가 가면, `아귀자포만(餓鬼自飽滿)' 아귀 절로 배부르고의 뜻입니다.

내 마음이 만약 아귀의 마음이 되면 어떠하겠어요? 우리 중생들은 그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합니다. 죽을 때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쌓아 놓고 구경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입니다. 죽은 다음 묘자리만 잘 쓴다고 발복(發福)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크고 호화롭게 만든다 하더라도 아귀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다간 사람에게는 쓸모 없는 것이 됩니다.

내 마음 가운데 아귀의 마음이 생길 때 기도하면, 아귀가 스스로 포만감을 느껴 물러갑니다. 기도는 불안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아귀도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자꾸만 기도를 하면 마음이 안정됩니다.


어느 보살님이 다음과 같은 리포트를 쓰셨습니다. 보살님의 남편이 상당히 청렴결백한 공무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보살님은 적은 월급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어 남편에게 항상 불평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능인불교학교 공부를 하고 계속 기도를 하다 보니까 저절로 마음이 채워지더라는 것입니다. 옛날엔 항상 마음이 허전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혈압, 당뇨병 같은 병도 많은데, 우리 남편은 항상 건강하고, 아이들도 공부 잘하고 속 안 썩이니 `부처님 감사합니다'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대비관세음'을 계속하면 욕망의 때가 제거되니까 나름대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자꾸만 기도를 하게 되면 마음이 뿌듯하게 부처님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자꾸 좋은 일을 베풀어주십니다. 사람들이 다 좋아 보이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착하고 고맙게 보이며 의미로운 존재로 생각됩니다. 기도는 참으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아약향수라(我若向修羅), 악심자조복(惡心自調伏)'이라 했습니다. `내가 만일 수라도의 마음이 될 때 수라와 같이 화내는 나쁜 마음들을 스스로 다 항복받게 해 주소서'하는 뜻입니다.

수라의 의미는 전투를 일삼는 귀신의 일종을 의미합니다. 경전에서는 천인(天人), 즉 제석천 등과 항상 싸움을 벌이는 악신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수라도에 떨어진 존재들은 본래 마음이 닦이지는 않았으나 공덕을 지은 바가 있어 받게 되는 경계라 합니다. 공덕은 있어 아수라에 태어났으나 마음이 닦이지 않아 항상 싸우기만을 즐겨한다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수라장이니 아수라 같은 놀이터 등으로 무엇인가 혼란되고 마음이 악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싸우기 잘하는 마음, 화를 내서 다투기 잘하는 악심을 스스로 항복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흔히 싸우기 잘하고 흥분을 잘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이 같은 마음 역시 기도 가운데,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 가운데 녹아진다는 뜻입니다.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아약향축생(我若向畜生), 자득대지혜(自得大智慧)', `내가 만일 축생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큰 지혜로서 내 마음 다스려지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는 뜻입니다.

축생의 마음이란 동물의 마음, 돼지 소의 마음을 말합니다. 벌레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머리가 없어 지혜의 마음이 없습니다. 정신병원에 가보면 동물같은 행태를 부리는 이상한 증세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보, 멍충이 같은 이런 사람들도 자꾸만 `나무대비관세음'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키면 `자득대지혜' 큰 지혜를 얻게 됩니다.

흔히 `저 사람은 돼지보다도 못하고 개만도 못하다'는 참혹한 욕을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도 동물의 마음들이 있습니다. 뱀의 마음도 있고, 여우의 마음도 있고, 강아지의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러한 축생의 마음을 자꾸만 녹여내려야 합니다. 축생들은 머리가 나쁘니까 계속 축생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머리, 가슴, 배의 순서로 됩니다. 머리를 많이 쓰는 인간들은 무언가 긍정적으로 살지만, 머리를 안 쓰는 인간들은 가슴으로 살고, 배로 사는 인간들은 그저 육체의 욕구밖에 채울 줄 모릅니다. 머리를 쓰는 인간들만이 학문적인 어떤 즐거움이나 부처님 말씀 공부하는 즐거움 같은 것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기도도 계속하다 보면 즐겁습니다. 산중에서 목탁들고 기도하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 어떤 때는 기도에 몰두하다 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고픈 것도 모릅니다.

다른 절에서는 기도를 간단히 하는데 능인선원에서는 2~3시간씩 하니 너무 힘들다는 얘길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도를 하는 순서는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하나도 빼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약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은 곤란합니다. 근기가 강해져야 됩니다. 부처님이 가르쳐 주시고 남겨주신 대로 해야됩니다. 천수경 같은 것도 자기들 멋대로 뚝뚝 잘라 버리고 간단하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공부를 할 때 공부한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도 선생님으로부터 한번 배운 다음에는 항상 무엇이든지 몸으로 익히고 마음으로 새기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들을 때 그저 귀로만 듣는 그러한 자세를 버리고, 마음으로 익혀서 참다운 부처님의 아들딸이 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참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무량한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그리고 언제 어느 곳에 간다 하더라도 항상 복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다운 삶이 아니고 그릇된 마음을 가진 삶은,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항상 긍정적인 삶을 엮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항상 부처님 말씀을 벗삼아서 삶을 슬기롭게 이끌어 가는 그런 자세를 끊임없이 몸과 마음 가운데 익혀 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언제 어느 곳에 어떠한 삶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항상 무량한 복덕이 가득한 그러한 삶을 열어 갈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대개 그 사람이 잘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을 나름대로 예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부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가에 따라 그의 앞날을 어느 정도 판별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진리를 몸과 마음에 익히면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만 합니다.


3. 대자대비의 화신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南無觀世音菩薩摩 薩)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南無大勢至菩薩摩 薩)

나무천수보살마하살(南無千手菩薩摩 薩)

나무여의륜보살마하살(南無如意輪菩薩摩 薩)

나무대륜보살마하살(南無大輪菩薩摩 薩)

나무관자재보살마하살(南無觀自在菩薩摩 薩)

나무정취보살마하살(南無正趣菩薩摩 薩)

나무만월보살마하살(南無滿月菩薩摩 薩)

나무수월보살마하살(南無水月菩薩摩 薩)

나무군다리보살마하살(南無軍茶利菩薩摩 薩)

나무십일면보살마하살(南無十一面菩薩摩 薩)

나무제대보살마하살(南無諸大菩薩摩 薩)


나무본사아미타불(南無本師阿彌陀佛) (3번)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관세음보살님의 열가지 다른 이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무량하고도 불가측한 존재이십니다. 대자대비의 화신이며 상징입니다. 대세지보살님이나, 천수보살님은 관세음보살님의 또 다른 별호(別號)이며 별명들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무량한 위신력 가운데 하나의 부분을 따서 이름을 부치게 된 것으로 모두 다 관세음보살님이라고 불러도 좋을 보살님입니다. 하나하나 그 보살님들이 무엇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봅니다.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의 보살마하살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버금가는 위신력을 가지고 무량중생들을 이끌어 가는, 이미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간 그런 보살님들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여자 신도들을 보살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보살마하살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아직 부처님과 같은 여법한 역량과 그런 능력을 구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부처님에 버금하는 그런 능력을 구족하게 되면 아무아무개 보살마하살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나무(南無)'란 말은 `귀의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귀의란 말은 몸과 마음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나의 모든 것, 피 한방울, 땀 한방울까지도 아낌없이 바램없이 다 내던지는 그런 자세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순교자적인 자세하고는 또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 불교신자들은 나무아미타불이니, 나무관세음보살이니 하면서 `나무(南無)'란 말을 참 많이 쓰면서도 그 참뜻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화엄경 보원행원품에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가까이는 남편과 아내부처님께 귀의하고, 아들 딸 부처님에게 귀의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몸과 마음을 다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아내에게 서로가 귀의하는 그런 가정은 이 땅에서 극락국토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마가렛 미드여사는 미국의 세계적인 인류학자입니다. 그레고리 베이츤이라고 하는 유명한 석학의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모두 노벨상 수상자 집안으로 대단한 가정입니다. 그 마가렛 미드여사도 무엇보다도 먼저 가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자(孔子)님께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구조의 최소단위가 가정입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문화와 행동양식과 소비구조 등 모든 의사를 결정하는 단위가 가정입니다. 그런 가정 하나하나가 잘 되어 나갈 때 그 사회도 잘 되어 나가기 마련입니다. 예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가정을 제일 중요시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서양보다도 동양이 더 가정에 대해서 소홀히 하고 경시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전의 우리 선조들은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쏟아 정성을 다해 만드셨습니다. 계절따라 고추장 담고 된장 간장 담으며 열심히 삶을 살았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음식들은 그들의 자랑이었으며, 삶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의 가정 주부들을 보면 너무나 전통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통음식들을 만드는 방법과 그것을 보존 계승하는 음식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요즘의 주부들은 아이들에게 피자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나 햄버거를 먹입니다. 우리 가정의 음식문화에까지 서구식단이 침투되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원래 요리를 많이 만들고 잘 만드는 여인들은 머리가 좋고 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손[手]이라고 하는 것은 밖에 있는 뇌(腦)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요즘의 가정주부들은 요리하기를 싫어합니다. 큰 문제입니다. 아름다운 요리를 만드는 나라로 불란서를 꼽는데, 그것은 불란서 여인들이 요리하는데 많은 정성을 쏟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불란서 요리가 세계적으로 정평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에도 예로부터 아름다운 음식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그것을 보존하고 전달하고 개발해 나가는 그러한 전통적인 흐름이 단절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 가정 주부들이 게을러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것은 가정에 귀의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대자대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께 항상 귀의하는 자세로, 그리고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 귀의하는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삶이 복받는 삶입니다.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
대세지(大勢至)보살님은 지혜와 용기의 화신입니다. 용기라고 하는 것은 마음 가운데 자신감이 가득할 때 나옵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능력이 축적됐을 때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아함경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 마음가운데 자신감이 넘칩니다. 모든 사안을 분명하게 신속히 깨닫게 됩니다. 지금 내가 나가야 할 때인가 아닌가를 보다 지혜롭게 알게 됩니다. 어떤 사안을 만났을 때 주저하는 것은 판단력과 능력이 쌓이지 않아서 입니다. 명쾌하게 분명히 알 때는 즉시 `나가자! 앞으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만용과 용기는 큰 차이가 있는 단어입니다. 용기는 그 사안을 분명히 파악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판별하며 지혜와 능력을 바탕으로 해서 밀고 나가는 힘입니다. 사전지식도 없이, 옳고 그름의 구분도 없이 그저 `가자!'고 큰소리만 치는 것은 만용입니다. 실패만 따를 뿐입니다.

우리는 만용을 부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용기는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바탕으로 할 때 나오는 것입니다. 지혜란 낱말과 용기란 낱말은 한 덩어리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용감해져야만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수지신시광명당(受持身是光明幢)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모든 사안을 분명히 파악하기에 용감합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정진을 하는 것은 어떠한 사안이 나에게 부딪혀 왔을 때, 그 사안을 슬기롭게 선별해서 헤치고 나가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입니다. 실력있는 사람이 될 때 용감해 집니다. 바르게 알 때 용감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본래 대세지보살은 대정진(大精進)보살, 득대세(得大勢)보살이라고도 부릅니다. 아미타부처님에게는 두분의 보살님이 계십니다. 우보처가 대세지보살로 지혜문을 나타내며, 좌보처 관세음보살은 자비문을 나타냅니다. 대세지보살님의 지혜와 용기의 광명이 모든 중생에게 비추어 삼악도를 여의고 위없는 용기를 얻게 하므로 대세지라 부릅니다.

`나무대세지보살마하살'이라고 하는 이 귀절은 대세지 보살님을 배워 지혜롭고 용기있게 살자는 의미입니다. 대세지보살님은 우리들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 줍니다. 대세지보살님은 용기의 화신입니다. 불교는 용기의 종교입니다.

용기를 마음 밑바탕에서 우러나오게 하려면 평상시에 끊임없는 공부와 기도 정진을 거듭해야만 합니다. 능력을 탁월하게 기른 사람만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남들보다 훨씬 많은 공덕을 지을 수 있습니다. 용감하고 결단성 있는 사람들이 앞에서 이끌고 나갈때 그 사회는 그들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사회가 발전해 나가려면 그렇게 앞장서 이끌고 나가는 용기의 화신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속담에 `공격이 최상의 방어이다(Offense is the best defense)'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선공이 필요합니다. 자녀들도 용감하게 키워야 합니다. 왜 여자가 남자에게 지는 줄 아십니까? 용감성에서 뒤지기 때문입니다. 대세지보살마하살은 용기의 상징입니다. 그 용기는 자신감에서 나오며 자신감은 능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천수보살마하살
천수(千手)보살님은 포용력의 화신입니다. 손이 천개라고 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이끌어 안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는 것입니다.

천수보살상은 양쪽에 각각 20개의 손이 있습니다. 손바닥마다 눈이 있으며 한눈과 한손이 각각 25유(有) 중생을 제도하므로 천수천안(千手千眼)이 됩니다. 천수보살은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포용하시는 관음보살의 대자비의 포용력을 상징적으로 보인 관음보살입니다. 관음보살의 화신 가운데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악도중생의 혹심한 고통을 해탈케 해주시는 보살로 일체중생의 소구소망을 빨리 성취케 해주는 관음보살의 분신입니다.


요즘 능인불교학교에 오시는 분들을 보면, 처음 들어오신 보살님들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경직되어 있습니다. 눈[眼]이 모두가 매눈 같이 날카롭습니다. 저 스님이 잘하시나 못하시나 의심하는 듯한 표정입니다. 그러나 불교학교를 마치고 전법사반에 들어오신 보살님들의 눈은 비교적 많이 부드러워져 보입니다. 눈이 아름다워졌습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같이 잘 웃게 됩니다. 그 만큼 마음이 많이 맑아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공부하시는 보살님들은 무슨 얘길해도 자세가 굳어져 있습니다. 그 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