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16 14:22
[기타자료실] 불법을 유지하는 세 가지 보물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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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삼보(住持三寶)***

 
세상에 불법이 머물러 유지하게 하는 삼보란,
사람은 능히 도를 넓히니 만년토록 자비를 흐르게 하는 바이며,
도는 사람에 의지하여 넓혀짐에 세 가지 법은 여기에서
지위를 여니 마침내 대대로 일으켜 세우게 하고 곳곳마다 전하여
넓혀지게 하는구나.
승려에 의지하여 선양된 것이 아니면 불법은 마침내 잠기어
가라앉을 것이다.

한나라 무제 때 국운이 융성하게 됨에 처음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듣게 되었으나 이미 승려를 통해 전해짐이 끊어졌기에 열리려던
실마리가 이로서 고갈되었다.
현종이 교법을 열게 되면서 멀리 신독을 방문하여 가섭마등과
축법란을 오게 하고는 불법을 널리 퍼트려서 만물을 열어주는
것으로 임무를 삼으며 믿음을 발하여 마음으로 돌아오게 하였으니,
진실로 불법을 펴서 연설하는 수고로움에 의지한 것이요
진실로 모습과 형상의 힘에 도움 받은 것이기에 이름하여
'승보'라 한다.

말씀한 바의 명구(名句)는 진리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우선을 삼으니
진리는 글이나 말이 아니면 깨달음을 취할 연유가 없다.
그러므로 가르침(敎)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니 말하고 듣는 반연을
이름하여 '법보'라 한다.

이 이치는 그윽하고도 오묘하여 성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지라,
성인이 비록 돌아가셨다지만 진영(眞影)과 형상이 이에 세워졌으니
이름하여 '불보'라 한다.

다만 중생들이 복이 얕아 교화의 근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엷으나마 남아있는 밑천이 있기에 그래도 남겨주신 법을 만났으며,
이 삼보는 그 바탕이 유위(有爲)이기에 유루(有漏)와 염법(染法)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공경을 베풀기에는 부족하지만 이는 진리의
삼보가 의지하여 지탱하는 바이므로 능히 존중함이 있으면
서로 좇아 유위(有爲)에서 벗어나나니, 마치 세속에서 왕의 사신이
변두리 지방을 순찰하며 돌 때 그 형상으로써 따지지 않는 까닭에
공경하기를 하나 같이 가지런하게 함과 같다.

경전에 이르기를 [만약 세상에 은이 있더라도 금이 있으면 금을
최고의 보물로 여기지만 금과 은이 없이 놋쇠만 있다면 그 놋쇠를
역시 무상의 가치를 지닌 보배라 일컬을 것이다]라 하였으므로
말삼보(住持三寶)는 공경하기를 더욱이 참된 것(實相三寶)과
가지런히 해야하는 것이니, 이제 공경을 더하지 않고 게다가
존중할 곳이 없다면 마음을 어디에 의탁할 것이며 귀의할 마음을
일으켜서는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그러므로 응당 형상은 신령스러운 위의를 공경하고 마음은 진리에
둘 것이니, 인연을 이끌어 교화를 베푸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뜻이 지극한 것이다.

경전에 이르기를 [불상 조성하기를 마치 보리알 만하게 하더라도
얻어지는 복락은 무량하리다] 하였으니 이는 바로 법신의
그릇이기 때문이다.
《논》에 이르기를 [쇠와 나무와 흙과 돌은 그 바탕이 정(情)은
아니지만 그것으로써 불상을 조성하는 까닭에 공경하거나 훼손하는
사람이 스스로 죄업과 복락을 얻게 된다] 하였으니, 법신을 표현하지
않음이 없기에 그 효능이 끝이 없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행하는 바가 있는 자로 하여금 이 신령스러운
불상에 대해 눈물이 좌우로 흘러내려 자신도 모르게 더욱 공경하게
하는 것이니, 다만 참된 모습은 이미 떠나가고 오직 남겨진 자취만
보는 것이지만 마치 청정한 묘역에 임하자 자연히 슬프고도 숙연하여
눈을 들고 감정을 억누르며 신명이 와 있는 듯 함을 의심치 않는
것과도 같으니, 지금의 나 또한 그럴 따름이다.

자애로운 세존께서는 오래 전에 떠나시고 오직 진영과 형상만을 남겨
내 자신의 교만의 깃대를 이끌어 교화하시니, 이에 모름지기 몸을
기울이고 구부려 발에 접촉함으로써 예의와 공경을 행하기를 마치
참된 위의로 설법하심을 대하듯 해야 한다.

지금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함은 마음에 믿음이 없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어찌 그것을 아는가?
단지 마음을 써서 헤아리는 바에 의해 삼계도 오히려 이루어지거늘
어찌 이 한 무리만이 완고하고 어리석게 움직이지 않겠는가.

《대론》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이 항시 밝은 빛을 발하며 법을
설하지만 중생은 그 죄업 때문에 마주 대하고도 보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는 모름지기 하나의 상(像)에도 이미 그러할 뿐만 아니라 여타의
상(像)에도 예외 없이 그러하므로 산의 숲 속에 돌을 세우고
그 모습을 따라 표식을 세울 것이니 나의 마음 길을 이끄는 것으로는
성스러운 불상보다 낳을 것이 없다.

번역/현진스님 [緇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