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문제집조재론불교(宋文帝集朝宰論佛敎)***
문제는 송 고조의 셋째 아들이다.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영특하고 해박하여 '영달(令達)'이라
아칭(雅稱)되었다.
재위 30년 되는 해, 일찍이 한가한 날을 틈타 조용히 시중
하상지와 이부 양현보에게 의견을 물어 말하기를 '짐은
어려서부터 읽은 경전이 많지 않은데 근자에 더욱더 틈이 없도다.
삼세의 인과는 아직 분명히 하여 마음에 품어두지 못하고 있으나
다시 감히 이견을 세우지 않는 것은 바로 경과 같은 이 시대에
빼어난 인물들이 따르며 공경하고 믿는 바이기 때문이다.
범태와 사령운이 항상 말하기를 {육경의 전적은 본디 세속을
구제하고 정치를 위하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반드시 성품과 신령의 참되고 오묘함을 구하고자 하면 어찌 불교의
이치로써 지침을 삼지 않는 것입니까?} 하였다.
얼마 전에 안연지의《절달성론》과 종병의《난백흑론》을 보니
불법을 깊이 있게 밝혀 놓았는데 더욱이 명가의 이론이 됨직하여
아울러 사람들의 뜻을 족히 깨우쳐 장려할 만하였다.
만일 온 천하로 하여금 모두 이 교화에 돈독하게끔 한다면
곧 짐은 앉아서 태평에 이를 것이니 무릇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하였다.
하상지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유유자적하는 무리들은 흔히 법도를
믿지 않습니다.
신의 용렬함과 피폐함으로써 다시 포양하고 보필함을 떠맡았으나
감히 감당할 바는 아니옵고, 만약 앞 시대의 군웅들이라면 곧 밝으신
조서를 저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조(中朝)는 이미 요원하여 모두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장강을 건너온 이래 곧 왕도 주의 유량 사몽 사상 극초 왕탄 왕공
왕밀 곽문거 사부 대규 허순 및 돌아가신 고조의 형제와
왕원림의 형 및 동생과 범왕 손작 장현 은의 등이 혹은 재상의
재목으로, 혹은 인륜의 의표로서, 혹은 뜻을 하늘사람의 영역에 두고,
혹은 노을 밖에 자취를 남겼으니, 모두가 뜻을 받들어 돌아가
의지하였고 마음을 두어 귀의하여 믿었습니다.
그 사이에 견주어 짝 할 수 있는 이들로는 곧 우법란과 축법호와
우법개와 축도잠 및 법심(→康僧淵)과 지둔과 축법숭과 우도수 등인데,
모두 행적이 황중(黃中)에 버금가며 혹은 예측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혜원법사가 일찍이 말하기를 {석가의 교화는 가능하지 않은 바가
없습니다.
도에 나아감에 진실로 가르침의 근원으로부터 하며, 세속을
제도하는 일 역시 요긴하게 힘 쓸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였는데
이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치의 요점과 계합하는 바가 있습니다.
만약 집집마다 계를 받들도록 한다면 곧 죄는 쉬어들고 형벌은 맑아질
것이니 폐하께서는 일컫는 바 처럼 앉아서 태평에 이르게 될 것이므로
진실로 성지(聖旨)와 같다 할 것입니다' 하였다.
양현보가 나아가 이르기를 '이러한 얘기는 모두 하늘사람의 영역임에
어찌 신(臣)이 마땅히 간여할 바이겠습니까?
가만히 생각건대 진나라와 초나라는 군사를 강성하게 하는 일 만을
논의하였고 손자와 오자는 삼켜 아우르는 술책에만 진력을 다하였으니
아마도 여기에서는 취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제께서 말하기를 '이는 전쟁하는 나라의 도구가 아니니 참으로 경의
말과 같도다' 하였다.
하상지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무릇 은둔자들을 예우하면 곧 전사들이
태만해지고 어짊과 덕을 귀하게 여기면 곧 병사들의 기운이 쇠퇴해진다
하였습니다.
만약 손자와 오자의 술책으로 뜻을 삼아 씹어 삼키는데 진력한다면
역시 요순의 도 또한 취할 것이 없거니와 어찌 한갓 석가의 가르침일
따름이겠습니까' 하니 제께서 말하기를 '석가의 문중에 경이 있음은
마치 공자의 문중에 계로가 있음과 같을지니, 소위 악한 말이란 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였다.
이로부터 문제는 불경에 뜻을 두었으며, 혜엄과 혜관 등 모든 승려들을
보게 되자 번번이 도의 뜻을 논하였으며 누차 궁전에서의 모임을 베풀고는
몸소 바닥의 대자리로 나아가 승려와 같은 반열에서 공양하였다.
이 때 사문 축도생이란 자가 있어 그 무리 가운데에서 빼어나고 영명하며
의로와 홀로 특출하기에 제께서 그를 중히 여겼다.
일찍이 축도생의 돈오(頓悟)한 뜻을 찬술하였는데 승려들이 모두 크게
비난하거늘 제께서 말하기를 '만약 죽은 자를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있다면
어찌 여러 경들에게 굽힐 바가 되겠는가' 하였다.
이 때에 안연지가《이식론》을 지으니 제께서 엄법사에게 명하여 그 같고
다름을 가리게 하고는 종일토록 문답이 오가게 하고는 웃어 가로되
'경 등은 오늘에 지둔과 허순의 담론에 부끄러움이 없도다' 하였다.
번역/현진스님 /치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