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본래 부처***
불교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불교,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이며,
그 가르침에 의하여 생활하면 내가 어떻게 되는가를 가장 알고 싶
어 합니다.
불교를 믿는 우리 불자들! 과연 부처님의 가장 근본이 되는 가르침
이 무엇입니까?
먼저 옛 조사의 말씀부터 음미해 보십시오.
옛날 한 수행승이 도를 깨달은 큰스님을 찾아가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큰스님은 어떠한 방편도 설하지 않고 깨달은 분의 경지에서 사실 그
대로 답을 했습니다.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왜 천민이 되려고 하느냐?"
"?"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 역시 이 수행자처럼 어리둥절해 하겠지만, 도
인스님의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왜 천민이 되려고 하느냐?'하는
이 말씀 속에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결코 질문을 한 사람을 일부러 어렵게 만들기 위해 이렇게 답한 것이
아닙니다. 불교를 체험한 그 분의 자리에서 사실 그대로 답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뜻을 곧바로 알게 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확실히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한번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고귀한 신분에 계신분이
오히려 천민이 되려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안 물으면 고귀한 신분으로 그대로 있을텐데 왜 묻느냐?' 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도인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진의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것입니다. 본래부처! 이것이 믿어집니까?
이에 대해 우리불자들은 선뜻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성불하신 직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 기특하도다. 모든 중생들이 다 부처의 지혜와 덕상를 갖추었건만,
오로지 망상에 집착되어 스스로 체득하지 못하는구나. 만일 이 망상의
집착만 여읜다면, 바로 일체지, 자연지, 무사지를 얻게 되는 것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불 후 첫 일성은 일체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것이었
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시작이요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45년을 하루같이 갖가지 방편
으로 설법하셨습니다.
본래부처! 우리는 본래 부처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착각에 의해 '내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그날부터 부처자리에서 어긋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도 착각에 의해서...
허나 착각에 의해 '내가 고귀한 부처'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할지라도,
본래 부처라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가 않습니다.
그 원리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법상종에서는 '새끼와 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어둠이 내린 밤중, 마당에 새끼줄 한토막이 있다. 그런데 어떤이가 그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을 하였다. 그는 깜짝 놀라 매우 당황해
하였다.
여기에는 굉장히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져 있습니다. 무엇인가?
뱀으로 착각을 하여 놀라고 당황할지라도, 새끼줄은 뱀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끼줄은 여전히 새끼줄일 뿐입니다.
우리 또한 본래가 부처인데, 착각에 의해 부처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부처님과 같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끼줄이
뱀으로 변화하지 않듯이, 우리가 본래 부처인 그 원리는 변하는 것이 아
닙니다. 그대로 있습니다.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나'의 착각을 깨고 '본래부처'
라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서 입니다. '본래 부처'라는 사실!
이제 능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인스님께서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왜 천민이 되려고 하느냐?'고 하신 까닭을...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알지도 믿지도 못하여 아무리 아니라 할지라도 새
끼줄이 뱀으로 변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는 여전히 '본래부처'인 것
입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새끼줄을 만든 재료인 짚에 대해 살펴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짚으로는 새끼줄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짚신도 만들고 가마니도 만
들고 멍석도 만들고 삼태기도 만들고 망태기도 만듭니다. 또 초가지붕을
잇기도 합니다.
그런데 짚으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 재료가 짚이라는
사실보다는 선호하는 바를 따라 차별심을 짓습니다. 농사 짓는 사람은
가마니를 좋아하고 포장하는 사람은 새끼줄을 좋아하며, 여행하는 사람은
짚신을 좋아하고, 약초 캐는 사람은 망태기를 좋아합니다.
가마니, 새끼줄, 짚신, 망태기, 멍석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본래의 재료로 보면 하나입니다. 곧 짚이요, 이 짚이
지금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본래 부처'입니다.
우리는 이 짚, 본래 부처를 알려고 불교를 배웁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짚이 아닙니다. 가마니로도 되어 있고 새끼로도 되어
있고 짚신으로도 되어 있습니다. 각각 다른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남자, 여자, 나이 많은 사람, 적은 사람, 예쁜사람, 못생긴 사람, 부자,
빈자, 귀한 사람, 천한 사람 등...
그리고 현재의 모습에 집착하여 갖가지 망상과 차별심을 스스로 일으킵니다.
하지만 본래의 재료를 보십시오. 근본을 보십시오. 근본이 되는 본래의 자료
에서 볼 때는 조그마한 차별도 없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현재의 모습은 다 달라도 근본은 하나입니다. '본래 부처'라는 이 근
본을 알게 되면 부처를 보게 됩니다. 새끼가 짚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그 짚으로 여러 가지 물건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활용하는 이가
부처님입니다./각화사 태백선원장 고우 큰스님(계속)
-월간 [법공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