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16 13:39
[기타자료실] 성도절을 맞는 불자의 자세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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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절을 맞는 불자의 자세***
 

납월 8일, 즉 음력 12월 8일은 자비하신 부처님께서 성도를 하신
매우 기쁜 날입니다.
인간 싯달타로 태어나시어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셨기에 우리
중생들은 비로소 고통뿐인 삶 속에서도 행복과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삶은 비록 괴로움의 연속이지만 이는 모두가 전생의 내 업보라 부처님께서는 밝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괴로움들을 오히려 달게 받아들이고 나보다는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늘 삶을 갈무리해 가면서 다음 생에는 복되게 살 수 있음도 일러 주셨습니다.
또한 이 같은 자세로 생(生)을 거듭해 가노라면 중생인 우리도 능히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누누히 설하여 주셨습니다.
당신이 직접 행해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생을 이어가는 것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맛난 음식을 먹고, 훌륭한 의복으로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갖가지 일들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일 등은 모두 살아가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삶을 엮어가는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보다 나은 내일을 맞기 위함입니다. 즉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희망, 나도 언젠가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세 속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생노병사에 끄달려야 하는 인생의 본질을 환히 꿰뚫을 수 있는 지혜, 영원 불변의 진리를 깨달아 부처를 이룬다 함은 영원한 자유를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복을 누리게 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희망도 자신의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한낫 허공에 부서지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무려 45년 동안이나 세상을 돌아다니시며 당신의 깨달은 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지만 이것 역시 우리의 수행 노력이 없다면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맙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러 인간으로 태어나시어 인간의 삶을 사시면서 우리에게 성도의 과정을 낱낱이 보여 주셨습니다. 
무수한 전생을 통해 이렇게 노력하여 선업을 쌓았노라고, 그리고 그 공덕으로 이렇게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었노라고 말입니다.
마치 부모가가 사랑하는 자식을 가르치듯이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이 세세한 부분까지 부러 드러내 보여 주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깨달으신 바를 자상하게 일러 주시기도 했습니다.
저마다 다른 중생들의 근기를 염려 하시어 똑같은 가르침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가며 일일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불교가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많은 경전을 갖게 된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생전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 8만 4천가지나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수행을 한다 함은 부처님의 가르침들을 따라 그저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잘 포장된 탄탄대로를 달리듯 부처님께서 일러 주신 바를 그대로 행해 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이전의 수행자들 처럼 애써 고행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수행자 싯달타처럼 스승들을 찾아 다닐 이유도 없습니다.
단지 자신을 잘 단속하고, 부지런히 법의 가르침을 익혀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 하시길 누구라도 갈증이 난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말 스스로가 물을 먹고자 하여야만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일도 이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8만 4천의 법문을 설하였어도 이를 듣고자 하는 귀와 마음이 없다면 삶의 고통에서 헤어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순간의 즐거움, 기쁨들이란 허망한 것일 뿐이라고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이를 믿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왜 그런지 알고자 하는 수행을 게을리 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진리는 돌 속에 숨어 있는 금강석으로 사장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납월 8일, 부처님 성도일을 맞는 우리들은 다시 한법 우리도 성불할 수 있다는 확신을 굳건히 해야만 합니다.
비록 내강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게는 존귀한 불성이 엄연히 존재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되새겨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다 확고한 믿음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도 사라진다는 연기의 도리를 거듭 마음 깊이 새기고 일거수 일투족 놀림에 자비정신으로 하여야 하겠습니다. 
또한 나와 남이 따로 없고 세상 모든 중생들이 실은 한 몸이나 다름없음도 바로 알아 더불어 사는 지혜를 익혀야겠습니다.
방울 방울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이지만 끈내는 바위에 구멍을 뚫어 놓습니다. 
부드럽기만 한 새의 깃털도 나뭇가지를 반질반질 닳게 만듭니다.
부처님을 믿고 따른 불자들의 수행 자세도 이와 같아야만 합니다.
일거에 소득을 얻고자 욕심내기 보다 부처님이 그랬듯이 끊임없는 정진으로 반드시 부처의 자리에 오르고야 말리라는 원을 세워야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이후 매년 성도일은 찾아 옵니다.
삶에 끄달리느라 다소 늦추어졌던 수행의 고삐를 이 성도일을 기해 우리 스스로 단단히 추스려야겠습니다. 그리고 가일층 여법하게 살고자 노력을 경주해 가야겠습니다.
그간 우리 불교계에서는 부처님의 탄신일을 성대히 기념하곤 했습니다만 최근 들어서는 부처님 성도와 출가, 열반의 뜻을 새삼 되새기며 기념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불자로서 부처님의 일생 중 하나의 전기가 되었던 날들을 특별히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지당한 일입니다.
어느것 하나 중생을 구제하시려는 부처님의 자비하신 마음이 깃들지 않은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태국이나 스리랑카등 남방 불교 국가에서는 부처님 탄생과 출가, 성도, 열반일을 다 한 날로 정하여 국가적인 축제를 열기도 합니다.
그들의 고유 달력 계산에 의해 봄에 해당하는 일년의 가장 첫째 달인 바이샤카 달의 보름날이 바로 그때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은 나름의 달력으로 탄신은 음력 4월 8일, 출가는 2월 8일, 성도는 12월 8일, 열반은 2월 15일로 각각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비록 서로 날짜는 다르다 해도 부처님을 기리는 그 마음은 불자 모두가 꼭 같다 할 것입니다.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마음을 우리도 가지게 되길 간절히 원하고 그분처럼 정진하고, 실천하며 살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불자들의 마음이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바의 한 송이 연꽃으로 태어나신 것과 같이 부처를 이루신 그 마음도 청정한 연꽃과 꼭 같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세상으로 널리, 환히, 오래도록 빛을 발하는 저 연등처럼 바른 가르침을 따라 살겠노라 성도일을 맞으며 더욱 굳건히 다짐하여야 겠습니다.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