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16 10:47
[기타자료실] 부처님 성도의 의의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0,319  
***부처님 성도의 의의***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시고 쿠시나가라의 사라나무 숲에서 열반에 드시기까지
부처님께서는 꼭 80해를 사셨습니다.
이 80년 생애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일을 꼽는다면 그것은 바로 위 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일, 즉 성도하신 일일 것입니다.
기실 이번 생에서 부처를 이루리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일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과거 무수한 생(生)을 쌓아온 선업의 과보로 약속 된 일이었습니다.
여타 종교들에서 처럼 본래부터 신(神)적 존재로 태어나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어떤 노력없이 하고 싶은 일은 언제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지전능의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윤회의 수레 바퀴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는 수행을 거듭하고, 대자비심과 반야의 지혜를 익힌 공덕으로 비로소 성도(成道)를 이루리라 수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직접 자신의 전행 이야기를 설하여 가르침을 주신 <자타카(본생담)>란 경전이 이를 증명해 줍니다.

<자타카>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때로 사자나 사슴과 같은 짐승의 몸을 받아 사시기도 했습니다.
허나 사람들도 능히 행하기 어려운 갖가지 보시행을 행하여 뭇 짐승들을 여러 고통으로부터 구해내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또 때로 귀한 신분의 귀족으로 혹은 상인, 바라문으로 생을 받아 온갖자비행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자기가 가진 재물 뿐이 아니라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인 존귀한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놓는 무주상 보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행하셨습니다.
아사 직전의 호랑이 어미와 새끼를 살리기 위해 흔쾌히 목숨을 버리시기도 하고, 사악한 도적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그들의 악행을 아무 저항없이 받아들이시기도 했습니다.
범부 중생들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선업들을 부처님께서는 수 많은 전생동안 쌓아오신 것입니다.
물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도 용맹히 하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스승의 가르침을 구하고 배운 바는 기필코 내것으로 습득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무한한, 대자비의 선업을 쌓은 과보로 이제 비로소 부처님께서는 한 조각 깨달음을, 등정각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부처의 자리에 오르시기까지 인간으로서 살았던 35년의 세월도실은 정각을 이루기 위한 수행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것도 범부들과 꼭 같은 고해(苦海)의 삶을 살면서 수행을 계속해 가신 것입니다.
가령 어머니의 사랑을 한번도 받아 보지 못한 슬픔을 느꼈고, 숱한 미녀와 맛난 음식들, 놀이 등을 통해 환락의 달콤함도 알았습니다.
또한 아내와 자식을 둔 가장으로서의 아린 마음도 여실히 느끼며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들 중생들이 겪는 고통이 무엇인지 부처님께서는 체험을 통해 온전히아셨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더욱 절실히 인생의 고통들에서 능히 벗어날 방도를 찾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같은 인간으로서의 부처님의 삶은 우리들에게 왜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 지를 자상히 안내해주는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 부귀와 권력과 명예가 이미 손에 쥐어져 있었지만 부처님께서는 이것들을 아무 미련 없이 훌훌 떨치셨습니다.
세속의 안온과 영달의 허망함을 이미 관하여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수행자가 되어 궁을 떠났던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기까지 그 유례가 없는 모진 고행이 닥쳐 왔지만 기꺼이 이를 감수해 이겨내셨습니다.
마왕 파피야스가 그토록 달콤한 유혹을 하였지만 대자비심만을 더욱 키우실 뿐 몸도 마음도 미동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같은 세속적 욕망의 허망함을 여실히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 싯달타가 위대한 인류의 스승, 부처님으로 출현하신 것은 이같은 과정을 통해서였습니다.
즉 끊임없는 정진과 보시행을 통해 무상정변정각을 증득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밝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 범부 중생도 열심히 수행을 해간다면 언젠가는 부처를 이를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삶에 끄달려 살 줄 밖에 모르는 미혹한 존재이지만 이 생이 다하면
다음 생에서, 또 다음 생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을 거듭해 가면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의 삶이 힘겹고 고달플지라도 우리들은 이들을 달게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미 온갖 고행을 이겨내시어 그 공덕으로 드디어 위 없는 깨달음을 얻어 영원한 자유, 유전(流轉)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실증해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수행자 싯달타의 성도, 부처님의 출현은 부처님 자신은 물론이요, 세상 뭇 중생들에게 두루 영향을 미친 대사건 이었습니다.
마치 온 하늘을 두텁게 내려 덮었던 회색 구름을 헤치고 한 줄기 밝은 광명이 세상을 환히 밝히기 시작한 것처럼 말입니다.
구름 뒤에 가려져 있던 늘 푸른, 밝은 하늘을 기대하며 우리들은 더이상 삶을
고통스럽게만 받아들일 필요가 없어 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일대사 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셨는가.
부처님께서는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어가도록(開示悟入) 청정케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셨느니라."
<묘법연화경>방편품의 말씀입니다.
이 귀절은 부처님께서 굳이 인간의 몸을 받아 세상에 나시고 성도를 하신 뜻을
확연히 되새기게 하여 줍니다.
중생들에게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종자가 심어져 있습니다.
즉 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도록 무명에 싸여 지내다 보니 이같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게 되었습니다.
고달프지만 삶은 근근히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성도로 중생들의 삶은 새롭게 열릴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부처도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성도는 중생들에게 대자비심을 심어주는 또 한번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전에도 많은 부처님들이 계셨음을 설하시곤 하였습니다.
부처님께 수기를 주었다는 연등불 등 과거불이 그들입니다.
하지만 이들 과거불들은 자신의 깨달음으로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로지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당신이 깨달으신 진리의 세계를 우리들에게 펼쳐 보여 주셨습니다.
팔만 사천의 법문으로 중생들의 귀를 열어 주시고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당신만의 깨달음이 아니라 중생들 모두의 깨달음으로 회향하신 것입니다.
그랬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불교를 신앙하며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정진하는 삶을 살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것으로 만족하셨다면 아마도 이 세상은 아직까지도 암흑의 세계, 고통만이 넘실대는 고해(苦海)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지극하신 중생에 대한 사랑, 대자비심이 부처님으로 하여금 진리의 법륜을 굴리시게 한 것입니다.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듯 중생들을 두루 자신의 가슴 속으로 안으신 부처님, 그 지극한 사랑을 우리는 부처님의 성도를 통해 여실히 느낄 줄 알아야 겠습니다.

-옮겨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