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13 17:18
[사찰문화실] [불,보살] 12지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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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야차대장(十二夜叉大將), 12신왕(十二神王)이라고도 불리는데 약사불의 12대원에 대응하여 약사불을 수호하고 약사의 대원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신장이다. 약사 12신장이 약사여래와 함께 등장하게 된 것은 [약사경]에 따른 것인데 석존이 약사여래의 본원공덕을 설명할 때 12야차대장이 크게 감명 받아 12대원을 행할 것을 서원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약사유리광7불 본원공덕경 염송의궤]에 따르면 12지는 각기 다른 지물을 지니고 동물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였다 한다. 시간과 방위에 대응시켜 일상의 척도로 활용된 것은 중국에서부터로 한대(漢代) 중기 이후로 추정된다. 열두 동물을 상정하고 정착하게 된 것은 불교전래 이후라 한다.

12지는 그 대장의 하나하나가 맹, 중, 계(孟仲季)의 삼보(三輔)를 갖추고 각기 칠천의 권속(眷屬)이 있으므로 모두 팔만사천의 보리를 성취한다. 이를 약사의왕(藥師醫王)의 대선교방편(大善巧方便)이라 하였다. 경전에서 말하는 12지의 명칭과 지물은 다음과 같다.

     ①쥐(子) - 宮毘羅 ...쇠망치
     ②소(丑) - 伐折羅 ...보륜
     ③범(寅) - 迷企羅 ...방망이
     ④토끼(卯) - 安底羅 ...칼
     ⑤용(辰) -  彌羅 ...방망이
     ⑥뱀(巳) - 珊底羅 ...쇠망치
     ⑦말(午) - 因陀羅 ...깍지
     ⑧양(未) - 波夷羅 ...칼
     ⑨원숭이(申) - 摩虎羅 ...몽둥이
     ⑩닭(酉) - 眞達羅 ... 쇠망치
     ⑪개(戌) - 招杜羅 ...도끼
     ⑫돼지(亥) -毘 羅 ...쇠사슬

십이지는 가장 이른 예의 12지 표현이라 생각되는 중국 돈황 220굴(642년 개착)의 약사정토변상도에서는 12신장의 머리에 12지를 배치하고 있는데, 신라시대의 석탑(石塔)이나 왕릉(王陵)의 호석(護石)에 조각된 경우는 짐승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한 수면인신(獸面人身)의 형상으로 무장(武裝)을 한 경우가 많고, 문관(文官)의 복장을 한 예도 발견된다.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그 형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호법신장으로 자리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1010년에 세워진 개심사지 오층석탑(경북 예천 남본동, 보물 53호)에는 십이지가 하층기단에 위치하여 그 위로 팔부중과 사천왕을 배치하고 있어 호법신장 가운데 가장 하단으로 설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약사불화에서도 12지가 함께 그려진 예가 많지만 조각에 비해 그 구분이 모호한 편이고 지물도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진의 십이지는 김유신 장군묘라 전하는 능에서 발견된 것으로 지석의 성격도 함께 지녀 우리 나라 12지 조각의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바위 위에서 서서 허리를 약간 뒤로 젖힌 자세나 양 팔에서 휘달리는 동적인 옷자락은 신라시대 조각술의 우수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김유신 묘는 호석에 평복을 한 12지를 새기고 별도로 곱돌의 12지를 능 둘레에 파묻어 이중으로 배치하고 있는데 헌덕왕릉과 함께 12신장에 대한 신라인의 깊은 신앙을 느낄 수 있는 예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