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개의 얼굴을 지닌 관음보살을 일컬어 십일면관음이라 한다.
『십일면관세음신주경(十一面觀世音神呪經)』에 근거하는 십일면관음은 고대인도신화에 등장하는 태풍의 신 루드라(Rudra)에서 연원되는 것으로 보인다. 루드라는 11황신(荒神)이라고도 불리우는 신으로 어느 시기엔가 자비의 화신인 관음으로 변신한 것으로 보인다.
경전에 의하면 십일면관음의 형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정면의 세 얼굴은 보살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자심(慈心)을 내어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함이다.
왼쪽 얼굴은 분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비심(悲心)을 일으켜 악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오른쪽 세 얼굴은 보살의 얼굴과 같으나 흰 이를 드러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정업(淨業)을 행하는 사람에게 이를 더욱 권장하기 위함이다.
뒷 쪽의 1면은 크게 웃는 모습으로 선악의 모든 중생을 웃음으로써 모두 거두어들이려 함이다.
정상의 1면은 부처님의 형상으로 상근기(上根機)의 중생들에게 불도의 궁극적 이치를 설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상을 형상화한 십일면관음은 불교조각사상 크게 유행한 도상은 아니지만 석굴암 내 십일면관음보살 상은 우리나라 불교 조각 가운데에서도 가장 우수한 작품의 하나임으로, 본 보살상이 도상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본존불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 관음상은 석굴암의 부조 가운데에서도 회화성이 강한 작품으로 11면의 얼굴은 일반적인 한국의 불상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체형(體型)에서 벗어나고 있으나, 이는 많은 얼굴과 눈을 통해 모든 중생에게 자비심을 베풀며, 또한 이들을 남김없이 구제하겠다고 하는 관음신앙의 조형화라 할 수 있다.
이후 11면관음상의 제작례는 흔히 찾을 수 없으나 최근의 조각가들에 의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관음보살의 도상(圖像) 가운데 하나이다
자비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관세음보살은 다양한 도상으로 조성되어 왔으며, 이는 32관음응신도를 통해 그 연유를 살펴본 바 있다. 이외에도 수월관음, 십일면관음에 대하여도 알아보았으며, 이들은 한결같이 관음신앙의 형태를 보여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관음신앙이 하나의 독립된 신앙으로서 전각(殿閣)의 주불로 자리하게 되어질 때에는 또 다른 모습을 취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각 사찰의 관음전(또는 원통전)을 참배할 때 볼 수 있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은 십중팔구 화불이 그려진 보관을 쓰고 온갖 영락으로 장업된 채 아미타구품인과 같은 수인을 취하며 앉아 있는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정토신앙에 근거하여 아미타여래의 협시로서 조성되는 관음상에서는 연꽃을 들고 있는 형태가 곧잘 보이고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도상의 차이는 없다 하겠다. 은해사 운부암 청동관음보살좌상은 원통전 안에 자리하고 있는 주불로서 조선조 관음보살의 전형적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보관은 다소 크게 느껴질 정도로 얼굴의 길이와 그 비례를 같이하고 있으며, 화염문 화문 극락조 등이 표현되고 있어 장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한편 어깨까지 내려오는 두 가닥의 보발(寶髮)표현은 보관의 크기와 더불어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부분인데, 이는 조선조 궁중여인들의 다소 버거워 보이는 가발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머리 부분에 비해 약간 왜소해지는 듯한 느낌의 신체이지만 여기에도 갖은 영락의 장식으로 장엄하고 있어 왜소하다는 인상을 덜어주고 있다. 수인은 아미타구품인의 중품하생인을 취하고 있어 한국 아미타여래가 취하는 일반적인 수인과 상통하고 있는 전형적인 관세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인 모습을 볼 때, 은해사 운부암의 관음보살은 15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관음보살상과도 흡사하여 이 시대 양식의 흐름을 이해해 볼 수 있으며, 이후 조선시대 관음보살의 가장 흔한 도상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오늘날 가람에 봉안되어 있는 관세음보살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