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금강경강좌 참고자료-10-(4)묘행무주분
강좌를 듣는 동안 무비스님의 금강경 오가해(1992년/불광출판사)를 참고자료로 사용합니다.
본 자료는 아래 주소에 있는 [공상권의 사경실] 자료를 복사 정리하였습니다.
妙行無住分 第四
묘행무주분 제사
復次須菩提야 菩薩이 於法에 應無所住하야 行於布施니
부차수보리 보살 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所謂不住色布施며 不住聲香味觸法布施니라
소위부주색보시 부주성향미촉법보시
須菩提야 菩薩이 應如是布施하야 不住於相이니
수보리 보살 응여시보시 부주어상
何以故오 若菩薩이 不住相布施하면 其富德을 不可思量이니라
하이고 약보살 부주상보시 기복덕 불가사량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東方虛空을 可思量不아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須菩提야 南西北方과 四維上下虛空을 可思量不아
불야 세존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부
不也니이다 世尊하
불야 세존
須菩提야 菩薩의 無住相布施하는 福德도 亦復如是하야 不可思量이니라
수보리 보살 무주상보시 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須菩提야 菩薩이 但應如所敎住니라
수보리 보살 단응여소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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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금강경 - 묘행무주분 제4
妙行無住分 第四 (묘행은 머뭄이 없음)
묘행무주분 제사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이른바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六祖) 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의 보시는 다만 몸의 단정하고 엄숙함과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과보가 다하면 곧 삼도(지옥, 악귀, 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대자비로
무상보시를 행하게 해서 신상단엄과 오욕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간탐심을 깨뜨리고
밖으로는 일체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하는 것을
색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 하느니라.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에 머물지 않아야 되느니라.
六祖)응당 무상심과 같이 보시한다는 것은, 능히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보지 않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라 하느니라.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六祖)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一說에 布란 普(넓다)요
施란 散(사방에 흩는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 습관 번뇌를 널리 흩어버리고
四相을 끊어 없애서 전혀 쌓여 있지 않게 하는 것이 참 보시라 하며,
또 일설에는 布란 普니 육진 경계에 머물지 않으며 有漏의 分別도 하지 않고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이 공적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못하면 오직 온갖 업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내외가 상응하여야 복 얻음이 무량함이니라.
사람들이 惡 지음을 보아도 그것을 허물로 보지 않아서
自性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能所가 없는 것이 곧 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 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人天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이라 하도다.
항상 不住相布施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생명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須菩提 於意云何 東方虛空 可思量不 不也 世尊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쪽 허공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있겠느냐.”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提 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 可思量不
不也 世尊
須菩提 菩薩 無住相布施 福德 亦復如是 不可思量
“수보리야. 남서북방사유상하허공을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있겠느냐.”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하는 보시의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六祖) 佛言하시되“허공은 끝이 없어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니
보살이 상에 주하지 않고 보시하여 얻은 공덕도 마치 허공과 같아서 헤아릴 수 없고 끝이 없다”
하시니라. 세계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허공만큼 큰 것이 없고 일체 성품 가운데
불성보다 큰 것은 없음이니, 왜냐하면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크다고 할 수 없으나
허공은 형상이 없는 고로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니라.
즉 일체의 모든 성품은 다 한량이 있어서 크다고 하지 못하거니와 佛性은 한량이 없어서
크다고 이름할 수 있느니라.
이 허공 가운데 본래 동서남북이 없으나 만약 동서남북을 본다면
역시 相에 주함이 되어서 해탈을 얻지 못함이요,
불성에는 본래 我人衆生壽者가 없으나 만약 이 四相이 있음을 보면 곧 중생상인 것이어서
佛性이라 이름할 수 없으며 또한 상에 주하는 보시가 되는 것이니라.
비록 망심 가운데는 동서남북이 있다고 설하나 이치에 있어서는 무엇이 있으리요.
이른바 “동서가 참이 아닌데 어찌 남북인들 다르리요.”
自性이 본래 공적하고 혼융하여 분별이 없으므로 如來께서 분별을 내지 않는 것을
깊이 찬탄하셨느니라.
須菩提 菩薩 但應如所敎住
수보리야, 보살은 다만 응당히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지니라.
六祖) 應이란 따른다는 뜻이니, 다만 위와 같이 설한 가르침을 따라서
無相布施에 住하면 곧 보살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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