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10 16:43
[경전공부방] [선요] 선요 14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0,426  

오늘 선요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고봉화상께서의 말씀을 주로 참선을 하는데는 이런 어려움도 있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공부를 잘 이어가야 된다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먼저 백장 야호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백장야호라는 법문은 아주 유명한 법문이지요?

백장 스님이 계실 때 항상 한 노인이 늘 청중 뒤에서 열심히 듣고
있다가 대중이 물러나면 역시 그 노인도 물러가고,
그런데 그 노인은 백장스님이 계시는 절에 살지 않는 노스님이라는 말이지요.

어느날은 법문을 마쳐서 다 물러갔는데 이 노인이 안물러가고 있어요.
그래서 백장 스님은 이상히 여겨 "면전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앞에 서 있는 분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다는 얘기지요

그 때 노인 말이 "저는 사람이 아니올씨다. 옛적 가섭불의 재세시,
가섭부처님이라고 하면 석가모니부처님 이전이지요? 법전이지요.

이 절의 주지였습니다.
(말이 좀 안되지요? 가섭불 재세시면 석가모니불이전이고
석가모니불이전이면 이 절이 생겨나기 이전 일 것인데 하여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옛적 가섭불 제세시라는 것은 아주 옛날 때 그런말로 됩니다.

그 때 어느 학인이 묻기를  “수행한 스님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수행한 사람이 인과를 받느냐 안받느냐 이런 얘기지요?

이에 제가 대답하기를 '불락인과(因果에 떨어지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잘못 대답한 죄로 五백년 동안 야호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500년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다는 얘기지요.

요위에 옛적 제세시라한 것은 조금전에 제가 설명드렸듯이 아주 옛날을 얘기한
것이다 하는 말이 맞지요?
500년 동안니까? 500년 전에 이 절에서 주지를 했다.
주지를 했는지 뭘 했는지 법문을 했다는 것이지요?

청컨대 스님께서 일전어(한번 뒤집을 수 있는 말씀, 다시 말하면 큰 법문)로
야호를 벗어나게 해 주시오." 여우의 몸을 벗게 해 주십시오 하고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많이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떨어집니까"
하는 이 물음에 대해서 불락인과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 백장 스님이 그럽니다.

그러면 “노장님께서 나에게 똑 같은 질문을 해 주십시요.”
그래서 이 노인장이 백장 스님께 그렇게 질문을 했답니다.
“많이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떨어집니까"그렇게 물었지요?

이 때 백장 스님이 "불매인과(因果에 얽매이지말라)"라고 했어요
인과에 매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락인과라는 말하고는 다르겠지요?
인과에 어둡지 않다, 인과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런 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노인은 야호의 몸, 여우의 몸을 벗었다고 그럽니다.
노인이 이 법문을 듣고 간 뒷산에 가보니까 여우 한 마리가 죽어 있어요
(여우 한 마리가 죽었다 하니 백여우가 생각나네요)

하여간 여우 한마리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백장 스님이 여러 대중들에게 얘기하기를
큰스님과 똑같이 예를 갖춰서 장례를 치루어 줘라.

유나로 하여금 모든 스님들이 여우의 장례식를 지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백장 야호라고 하는 화두입니다.

오늘 백장야호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그 다음에,

百丈野狐(백장야호)와 狗子佛性(구자불성)과
구자무불성은 엊그제 바로 말씀 드렸지요?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질문에서 조주선사가 없다 무 했다는 말씀드렸습니다.

淸州布衫)(청주포삼)과
청주포삼도 말씀 드렸지요?
청주에서 삼베가 많이 나는데 여기서 장삼을 지었는데 7근이더라.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도 화두지요?

女子出定話(여자출정화)를
여자가 정에서 나온다, 이것 열반경이 있는 말씀인데요
이것도 한번 말씀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간화 제42칙 여자출정(女子出定)에 대한 열반경의 이야기.
열반경이 있는 말씀을 한문으로 올려 놨습니다.

世尊昔因에 文殊 至 諸佛 集處하니 値 諸佛 各 還本處하야 惟 有一 女人이
近彼佛坐하야 入於三昧라.

文殊 乃 白佛云하사대 何 女人은 得近佛坐하온데 而我不得고

佛告文殊하사대 汝 但 覺此女로 令 從三昧하라. 汝自問之하라.
文殊 女人三匝하고 鳴指一下하며 乃 托至梵天하야 盡基神力하야도 而不能出이라.

世尊云 假使百千文殊라도 亦 出此女人으로 定不得이리라.
下方 至 一十二億 河沙國土에 有 罔明菩薩이라. 能出此女人定이리라.
須萸 罔明大士가 從地湧出하야 禮拜世尊이라.
世尊께서 勅罔明하사대 却至 女人前하야 鳴指一下에 女人이 於是 從定而出하니라.

한글로 풀이 한 것을 보면
세존께서 계시던 때 문수(文殊)가 모든 부처님 모인 곳에 이르니

모든 부처님께서 각기 본래 처소로 돌아 갔는데 다만 한 여인만이 부처님 가까이에서
삼매에 들어 있었다. 그랬어요
그런데 다 돌아갔는데 한여인만 부처님 가까이서 삼매에 들어 있어요.

이에 문수가 부처님께 여쭸습니다
"왜 여인은 부처님 가까이 있는데 저는 그러지 못합니까?"라고 물었다.
문수가 석가세존께 아무리 가까이 가려고해도 못가는데 이 여인은
부처님 아주 가까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뿐만 아니라 정에 들어 있어요.
그렇게 물으니가

부처님께서 "이 여인을 삼매로부터 깨워 그대가 직접 물라."
삼매로부터 께워서 직접 물어봐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러니까 문수가 여인을 세 번 돌고 손가락을 한 번 탁 튕겨서 범천(梵天)에
이르러 그 신통력을 다해도 깨울 수 없었다. 그랬어요.

이것은 좀 기이하지요? 문수가 여인을 세 번 돌고

세존께서 "가령 백천의 문수라도 이 여인을, 우효삼잡이라는 것은 인도에서는
인도에서는 성인들에게 바치는 어떤 하나의 예의인 것 같아요.

우리가 탑돌이 할 때도 오른 쪽으로 세 번 돌고
부처님께 법문을 청할 때도 세 번 돌았다고 하지요?
한국에서는 스님들께 법문을 청할 때 세 번 절을 하지요?

세 번 돌고서 가운데 손가락을 탁 치니까 탁 튕기는 소리가 범천에까지 이르렀지만,
그런 신통력을 다 해도 이 여인네는 정에서 깨어나지 않더라.그런 얘기입니다.

세존께서 가령 백천의 문수라도 이 여인을 정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리라.
부처님이 그러셨어요. 한 문수가 아니라 백천의 수많은 문수가 와도
이 여인을 정에서 깨게 하지 못하리라.

아래로 12억이란 모래 수와 같은 국토를 지나 망명(罔明) 보살이 있는데
그가 능히 이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라고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잠깐 사이에 망명 보살이 땅에서 솟아 나와서 세존께 예배를 하고
세존께서 망명에게 명을 내려 망명이 여인 앞에 이르러 손가락을 한 번 탁
퉁기니까  여인이 정에서 깨어났다. 그랬습니다.

문수는 백천의 문수가 와서 우효삼잡을 하고 손가락을 튕겨도 깨어나지 않는데
망명이 와서 손가락 한 번 딱 튕기까 깨어나더라 참 신긴한 일이지요?

이 것이 뭐냐하면 여자출정화 라는 화두지요? 하나의 화두.

여러분들한테 왜 망명보살이 손가락을 튕기면 깨어나고 문수보살이 하면 안깨어나는냐
하는 것을 저한테 묻는다면 제가 그것은 대답해 줄 수가 없지요?
대답해 준다면 여러분들이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에
대답을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출정의 화두를 처음부터
從頭密擧驗之(종두밀거험지)호니,
처음부터 낱낱이 증험하여 보니, 증험하니 그런뜻이지요.
낱낱이 정검한다는 얘기입니다. 증험이라는 것은, 증험해서 배우니 그런 뜻입니다.

無不了了(무불요요)라,
요요치 않음이 없다.
요요란 뚜렷하다는 뜻입니다. 뚜렷하지 않음이 없음이라. 모두가 다 뚜렷하다.
구자불성이나, 여자출정화이나, 모두가 다 뚜렷하다,
처음부터 다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 얘기입니다.

般若妙用(반야묘용)이,
반야는 지혜라고 했지요?
반야묘용이라는 것은 그 반야를 묘하게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지금도 숫한 묘용을, 지혜를 쓰고 있지요?
지금 여러분들이 이 컴퓨터 앞에서 법문을 듣고 이 글을 읽는 것도 바로 묘용입니다.
반야묘용인 것을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전에 어떤 사람이 저에게 와서 그런 말을 해요
스님께 저는 마지막으로 한번 여쭈러 왔는데,
이 세상 죽고 싶은데 스님께서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는 것이이요. 참 죽고 싶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겠지요?
좀 살기 어려우면 다 죽고 싶다고 하잖아요.
특히 한국 사람이 죽겠다는 말 제일 잘하잖아요.
좋아도 아이구 좋아 죽겠어. 싫어도 싫어 죽겠어.
전부다 죽겠다고 그러지요?

내가 죽겠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의 반야묘용을 모르게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이 세상 두눈을 뜨고 이 몸을 얻어서 나온 것만 해도 반야묘용을 이룬 것이고
그야말로 신통묘용을 다 이룬 것입니다. 다 성취한 것이어요.

그런 반야묘용과 신통묘용을 몰라서 항상 죽겠다는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께서는 어렵다고 하는 것은 곧 뭡니까?

“너한테 어려움이 있느냐?
그것은 곧 너에게 어려움을 성취하게 하는 길이 되느니라“ 했어요.

그러니까 나한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내가 앞으로 무엇인가 성취하려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나의 어려운 일은 나를 어렵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하게 하기 위해서 앞에 놓여진 다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반야묘용이
信不誣矣(신불무의)러라,
반야묘용이 진실로 거짓이 없더라.
속일무(誣)자. 무당할 때 이 자를 씁니다.
그러니까 무당은 뭡니까? 속인다 이것입니다. 사람을
무속인 할 때도 이 무(誣)자입니다. 속이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남도 속이고 속이면서 뭘 속이는 줄 모르고
속이는 것이지요.
 
前所看無字(전소간무자)는
여기서 말하는 무자는 것은 전에 들었던 그런 얘기예요.
전소간무자는, 앞에서 보았던, 앞에서 들었던,
화두를 든다고 하지요? 본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본다고 하던 든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든다고 하지요.

들어었던 화두는
將及三載(장급삼재)히,
삼년 동안 했는데, 삼년 동안 무자 화두를 가지고 있었는데

삼년동안 가지고 있으면서
除二時粥飯(재이시죽반)하고,
하루에 두끼니 죽먹고 밥먹고,
그러니까 이시죽반이라는 것은 아침은 죽 먹고, 점심은 밥 먹는 것이지요.
저녁은 왜 없냐고요? 원래 스님은 저녁 안먹는 것입니다.
저녁 먹으면 안돼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스님들이 저녁 다 먹습니다.
그것은 부처님 계율상으로는 정해지지 않았지요?

요즈음은 보니까 중국 스님들도 저녁을 드시더라구요.
남방불교는 스님들이 철저하게 저녁을 안먹습니다.오후불식하지요.
하루에 두끼니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침을 죽 먹는 것은 아니고
아침도 밥 먹고 점심도 밥 먹는데,

이것은 남방 스님들이 잘못한다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제가 태국절에서도 조금 있어 봤고
미얀마 절에서도 조금 있어 봤는데 그 스님들 점심에 너무 많이 드세요.
저녁을 안먹을 것을 예상해서 우리말로 하면 한바리떼를 먹는데
저는 그 밥을 가지면 하루 세끼니 먹고도 남을 것 같아요,어찌나 많이 드시는지.
그래서 뱃병이 많이 난답니다.

그래서 조금씩 나눠 먹는 것이 좋을 듯 싶어요.
옛날에는 절에서 솥도 안걸고 살았은데 스님들이 밤낮 바리떼 들고
얻으러 다닐 수 없잖아요.

그래서 부처님 당시에 수행하는 자들이 일도 않고 노는자들이 많이 먹으면
안된다고 해서 하루에 두끼니 먹었던 것입니다.
아침에는 죽 먹고 점심에는 밥 먹고

두끼니 밥을 먹는 것은 제하고
不曾上蒲團(부증상포단)하야,
포단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방석에도 앉지 않았다 이 말이지요.

방석에도 앉지 아니하고
困時(곤시)에도 亦不倚靠(역불의고)하며
곤할 때에도 어디에 기대지 아니하고

雖則晝夜(수칙주야)에 東行西行(동행서행)하니
또한 비록 밤낮으로 동행서행하다.
동행 서행하다. 동쪽으로 왔다 서쪽으로 왔다 한다는 말이지요?
왔다 갔다 스님들 포행한다고 그러지요? 포행하는 얘기입니다.

常與昏散二魔(상여혼산이마)로
항상 눕지도 않았는데 혼침하고 산란해, 마음이 산란하고 마음은 혼침해요.
어두컴컴하다 이 말이지요? 잠들은 것은 것인지, 깬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런 얘기입니다.
이런 것을 스님들은 잠이 많이 오니까 이것을 수마라고 하지요.
마구니 라고 합니다. 수마.
산마 수마 그럽니다.

항상 혼침과 산란이 이마로
輥作一團(곤작일단)하야
곤자는 곤장 친다고 할 때 쓰는 곤자인데
곤작일단이라는 것은 “이런 한덩어리가 됐다.” 그런 얘기입니다.

做盡伎倆(주진기량)이라도,
어떤 기량을 다 경주한다고 하더라도,
공부를 모두다 진력하더라도, 그런 얘기이고
다 그렇게 하더라도

打屛不去(타병불거)라,
쫓아내지 못하더라 그런 얘기입니다.
이 선객들이 선방에서 공부하시는 스님들이 제일 싫어하고 머리 아파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화두도 잘 안잡히고 혼산해서 항상 뭔가가 머리에 꽉 차 있는 것 같고
어두 컴컴하고 뭐 이런 것들이지요.
이런 것들이 안없어지는 것이어요.
아무리 쫓을라해도 쫓아지지도 않아요.

於者無字上(어자무자상)에
저 무자 위에,
무 자의 화두를 들어도 그런 얘기지요,
그렇게 무자를 들 때도

竟不曾有一餉間(경불증유일향간)나
또한 필경에는 화두가 하나도 이루지 못하니
화두를 일향되게, 그야말로 한결같이 그렇게 이루지 못한다 이말이지요.

省力成片(성력성편)이러니
한번도 화두가 일향하게 힘을 못하더니,
그렇게 되지 않더니 이 말이지요.

自決之後(자결지후)에
스스로 그것을 해결한 후에는

鞠其病源(국기병원)호니
그 병원의 근본을 알고보니 그런 얘기입니다.
국(鞠)자는 공국, 공친다고 하는 국(鞠)자 입니다. 축구공 할 때
그러면서 추국할 때 국(鞠) 자여요.
국문한다고 그러지요, 사람을 막 뚜드려 잡는 것,
임금님이 조선시대 같은 때에 사람을 추문하는 것을 국문하다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그 병을 국문해 보니, 국문이 다 알아보니 그런 얘기입니다.

別無他故(별무타고)요
다른 곳에 있던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이지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고(故) 자는 연고 고(故)자 이니까, 다른 연고가 없더라,
별다른 일이 아니더라 그런 얘기입니다.

只爲不在疑情上(지위부재의정상)하야 做工夫(주공부)라.
다만 철저한 의심을 갖고 있지 않아서,
의심을 갖고 공부를 지어가지 않았다. 공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참선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공부하려고 하는 그 마음,
화두를 잡으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되지요.
그래서 대분심이라고 그러지요?
아주 분한 마음을 일으켜야 된다고 하는데
왜 분한 마음을 일으키느냐?
아 석가모니부처님은 2600년전에 이미 성불하셨고
가섭 아란도 벌써 다 성불해 가고
또 백장이라던가, 아니면 조주, 마조 모두다 성불해 가고
이렇게 모두다 성불해 갔는데 나는 지금까지 여기서 무엇하는가?
이런 대분심을 일으켜야 되어요.

그것도 모르고
이 세상 참 좋다, 이 세상 오래 살아야 되는데
한 100살정도 살아야 되는데, 100살도 부족하다, 한 200살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생각을 먹고 있으면 안되지요.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생각을 딱 깨달아서 다음생에는 다시는
이 세상에 오려고 하지 말아야 됩니다.

다음생이 이 세상에 온다면 반드시 모든 것을 다 갖춰서
그야말로 지혜와 덕, 모든 공덕을 다 갖춰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롭게 할 수 있는
그런 큰일을 하기 위해서 그런 묘용을 나타내야 됩니다.

재미 있는 얘기 하나 해 드릴까요?
만약 여러분들께서 다음생에 정말 한번 더 살아보고 싶다면
원력을 한번 세우십시요. 원력을 세우면 다음생에 더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느냐가 문제지요.
자기가 올 것을 예상해서 그런 원력을 세우고 원력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그래서 두몸으로 오고 싶으면 두몸으로 올 수 있고
세몸으로 오고자하면 세몸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장자거사가 되어 오고자하면 장자거사가 되어 올 수도 있고
비구비구니가 되어 오고자하면 비구비구니도 한꺼번에 올 수 있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항상 그런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일체처, 일체 세계에, 어느 곳,
어느 때 있더라도 항상 부처님 말씀을 잊지 않고 산다면 곧 그런 기연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을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