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 선사 법어 중에 호떡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수좌가 와서 운문 스님께 여쭙기를
“스님! 부처와 조사를 초월할 수 있는 한 말씀 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부처와 조사를 초월할 수 있는 그 어떤 한 말씀을 해 달라. 그런 얘기지요.
그러니까 “ 호떡” 그랬습니다.
호떡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중국 사람들이 먹는 간식이라고 할까요?
식사 대용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은 중국에 운문 선사를 좋아하는 한 청년이 매일 호떡을 10개씩
스님께 갖다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10개를 갖다 드리면 반드시 그 중에 하나를 집어서 가지고 온 친구에게 줍니다.
“엣따 호떡 먹어라”
이 친구가 그렇게 몇 번을 지나다가 아무래도 궁금해요.
호떡은 내가 가지고 왔는데, 나 호떡 장사하니까 안줘도 호떡을 먹을 수 있는데
스님이 호떡을 하나씩 “엣따 먹어라” 처음 호떡을 못먹어 본 사람에게 주듯이 준단
말이어요.
그래서 이 청년이 여쭸습니다.
“스님! 호떡은 제가 드린 것입니다. 왜 꼭 하나씩 저에게 주십니까?”이렇게 말씀드리니까
“그렇지” 다른 말씀이 없어요. 운문 선사는 항상 대답에 간단 명료합니다.
‘그렇지 바로 자네 것이네“ 틀림없지요.
눈을 “희다”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 사람이 눈을 “희다 ”라고 하고
또 영어를 쓰는 미국 사람은 “White"라고 그러겠지요?
그러니까 똑같은 눈을 보고서도 말을 하기를 서양 사람들은 “White" 라고 하고
한국 사람은 “희다” 라고 한다.
눈을 서양 사람들은 “Snow" 라고 한다면 한국사람은 “눈”이라고 한다.
똑같은 것을 놓고 “희다” 라 던가 또는 “눈” 이라던가“snow"라는 말들을 하게 되지요,
또 중국 사람 일본 사람 모든 사람들이 눈을 일러서 부르는 말도 다르고 그렇습니다.
희다, 검다, 붉다 라는 모든 것은 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들이지요?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 수좌가 말하기를 부처와 조사를 뛰어 넘는 그런 초월한 한 말씀 해 달라고
하니까 호떡이라 했다는 말이지요?
그 수좌는 또 말했습니다.
“스님!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호떡이라는 것과 조사나 부처를 뛰어 넘는 것이 무엇이 관계 있느냐 여쭸어요.무엇이 관계가 있습니까 하니까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알았다고 말하지 말라” 그러니까 너는 알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얘기지요?
다른 사람이 조사의 의지를 듣고 곧장 부처님이나 조사를 초월하는 말, 그런 도리를
물은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알았다고 말하지 말라.
조당집 11권에 운문장에 있는 얘기입니다.
이와같이 운문스님의 법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느날 하루는 다른 수좌가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스님! 조사와 부처를 초월하는 한 말씀 해 주십시요“그러니까
“호주에는 마왕이 많이 나고 익주는 부자가 잘 자라지”
이것이 대답입니다.
우리 나라 말로 할 것 같으면
김해들에는 채소가 많이나지요? 채소가 많이 나고,꽃이 많이 난다던가
양산은 공장에 많지.그런 말하고 조금도 다를 바 없지요.
그러면 조사를 뛰어 넘고 부처를 뛰어 넘는 말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당연히 관계가 있지요?
관계가 있는 것은 여러분들께서 스스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한 생각이 곧 나다.”
제가 여러번 말씀 드린 것인데 나라고 규정 지어질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일까?
과연 이 몸이 나 인가, 아니면 눈을 나 라고 할 수 있는가? 입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손을 발을 곧 어떤 것을 나 라고 할 수 있느냐? 이 전체를 나 라고 할 수 있는가?
몸이 나 라고 한다면 나 라고 하는 것이 곧 이 몸이 죽고 나면 몸뚱아리는 썩거나
화장하거나 곧 날라가버리고 없지요? 내가 어디가 있을까요?
그런데 이 나 라고하는 이것을 규정 짓기는“ 한마음”으로 말합니다.
한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의상조사 법성게에 보면 “일념즉시 무량겁”이라고 했어요
“한 생각이 곧 무량겁니다.”
그러니까 내 잠깐 동안 일으키는 한 생각이 그야말로 시간으로 치면
수유, 잠깐이 아니고 영원하다는 얘기지요.
그러니까 이 한 생각이 끊어진 자리가 곧 진리하고 하고
그 끊어진 만년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말년이라고 하는 한 생각이 딱 끊어진 자리.
그 자리를 보아야 바로 진리를 얻는다고 그럽니다.
그러면 한 생각이 뭐냐?
망념을 말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
청정념 깨끗한 마음을 말하는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해도 한 생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있는 듯이 보이나 찾으려면 없고,
없는 것인가 하고 보면 또 그런 것이 아니고, 있는 것 같고
그것이 즉 망념이다.
그래서 마음은 일체 모든 것에 즉할 수도 있고
일체 모든 것에 멀리 떠나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체 모든 것, 지금 이 시각에도 제 말을 듣고 있거나
아니면 이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거나, 느끼고 있거나, 이 모든 것은
다 마음의 작용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일체의 것, 그것을 알고 느끼는 것 모두 마음이 작용이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오늘 배울 것이 뭐냐?
11월 15일 화요일 강의라고 되어 있지요?
이 부분을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雖在稠人廣座中(수재조인광좌중)이라도 如無一人相似(여무일인상사)하야,그랬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수재,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앉아 있지만, 광좌중이라고 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으나 마치 한 사람도 없는 듯하여, 그랬어요.
이 말은 여러분들도 어디서 많이 들어 본듯하지요?
군중 속의 고독이라던가, 젊어서 그런 말들 많이 하지요?
여럿이 있는 중에도 여전히 고독한 나 다. 나 홀로다.그런 얘기하고 가까운 얘기지요.
그러니까 비록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있어도 마치 한 사람도 없는 듯이 하고
從朝至暮(종조지모)하며 從暮至朝(종모지조)히,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기까지
澄澄湛湛(등등담담)하며,
드높고 드높아,
등등담담은 아주 맑고 맑은 것을 얘기하는 것이어요.
아주 맑고, 내가 맑다는 한마디로 표현했지만 맑고 담담한 그런 것이지요.
호수와 같은 것, 이런 말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명경지수 라는 말.
물이 마치 끊어져서, 물이 끊어진다고 하는 것은 물이 어디서 흘러 들어오는데가
있으면 나가야 되고 그러면 물이 움직이게 되지요?
물이 들어오는데도 없고 나가는데도 없다. 그래서 호수가 조용한 것이지요.
마치 거울처럼 그렇게 지수가 된다, 물이 딱 그치면 거울같이 된다는 것이지요.
얼굴을 비치면 얼굴을 비춰주고, 달을 비치면 달을 비춰주지요.
내일을 음력으로 보름이지요? 보름달이 내일인데 오늘 저녁 조금전에 나가보니까
달이 참 휘어청 밝습니다. 둥그런이..
이와같이 저 달이 명경지수가 되면 달이 호수에 뜹니다. 비치지요. 사실은
그런데 저 달이 일천강에 일천월이라, 천강에 천강월이지요?
강이 천개면 달도 천개지요? 그런데 달이 그 강 하나만 떠 있느냐하면
사람 사람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른 달이 떠 있습니다.
한개의 강에도 물이 펼쳐져 있지만 보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달을 본다.
자기 앞에 떠 있는 달을 보게 되지요.
그러면 강에만 달이 떠 있느냐? 작은 그릇에 물이 담겨 있으면 물이 담겨 있는
곳곳마다 또 달이 다 비칩니다.
그것 뿐인가? 이슬 한 개라도 작은 물방울이라도 그 물방울에 역시 달이 비치게 되지요.
이와같이 우리 마음은 일체 곧, 일체 처, 어느 곳이라도 비추지 못하는 곳이 없고
그렇게 늘 여여하게 비춰져 있습니다.
내가 비출라고 해서 비추는 것도 아니고,그런 세계를 볼 수 있는 그 마음이 순정이다.
순청절점이다 그랬어요. 바로 순청절점 나오지요
卓卓巍巍(탁탁외외)하야,
높고 높다는 얘기인데
純淸絶點(순청절점)하고
아주 맑고 맑고 높고 높고 아주 담담하다.
드높다 그런 얘기지요?
순청절점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순수하고 순정하다고 할 때 순자인데
완벽한 것, 그런데 얼마만큼 깨끗하냐, 아주 맑은 것이지요.
깨끗해서 절점이요. 마치 뭐와 같으냐? 점하나도 끊어진 자리입니다.
점도 없어요. 만약 옥에 작은 티가 있으면 좋은 옥이 될 수가 없지요?
다이아몬드가 아주 순수하고 아주 깨끗하고 희고 맑아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단단하고, 깨지지도 않고, 그래서 너무 희어서 다이아몬드를 컷트하면 컷트 한
면면마다 모두 달이 비치고 면면마다 비친 색깔이 똑 같은 색깔로 더 반사해서
밝게 비칩니다. 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화사한 빛을 발하게 되지요?
여기 순청절점이라고 하는 것도
내 마음이 그야말로 순수하고 청정하고 어떤 티하나 없는 절점의 상태에
가도록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다.
참선을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만약 여러분들께서 혹 집에서라도 참선의 경지를 경험하고 싶다면
스님처럼 산중에 안들어가도 괜찮습니다.
한시간도 좋고 30분도 좋고, 아니면 10분도 괜찮습니다.
좌복을 딱 깔고 바르게 정좌하고 딱 앉아서
등등담담하며 탁탁외외 할 수 있는 그런 기개
그리고 순청절점 할 수 있는 아주 어떤 생각도 갖지 않고 딱 끊어진 자리.
잠시 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그런 생각을 한번
가져 보십시요.
그런데 이런 것이
一念萬年(일념만년)이라
한 생각이 곧 만년이라.
그래서 옛 선인들, 조사 스님들이 잠시 동안 삼매에 들어서 눈깜짝할 사이에
삼매에 들어 간 것 같은데 그야말로 1개월이 흐르고, 3년이 흐르고,
10년이 흐른다고 하잖아요. 그런말 들어 봤을 것입니다.
아마 바둑 두는 사람들이 바둑 삼매에 들어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하잖아요.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바둑을 둘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 순청절점이고
일념만년입니다.
부처님 경전에 이런 말씀 있어요.
어느날 유리 보살 또는 유리 비구 라고 할 수도 있고,
유리 나한이지요.
큰 홍수가 나서 산사태가 났는데 둥그런 공처럼 되어 있는 희안한 물건이 하나
바위뜸에서 빠져 나왔어요. 사람들이 참 이것이 무엇인가? 참 희안하다
유리같은 것이 덮혀 있는데, 그 안에 사람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루는 아란이 부처님께 여쭸어요.
“세존이시여! 참 희안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홍수가 났는데, 저 산사태가 났는데, 그 바위틈에서 나왔다는데
유리로 공처럼 둥그렇게 싸여져 있는데 어떤 도인, 신선이 하나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 아란아 저 나한은 삼매를 즐겨해서 벌써 억겁전에 삼매에 들어서
그 사람이 죽지 않았으니까 그 사람의 손톱이 길어서 손톱이 온 몸을 둘러쳐서
싸가지고 마치 유리처럼 되어가지고 갇혀있느니라, 지금도 틀림없이 삼매에
들어 있을 것이다 “ 삼매에서 깨면 죽게 되겠지요?
그러니까 삼매에 들어 있는 동안은 바로 그것이 일념 만년이라,
만년이 아니라 억겁이 지났는데도 그와 같이 삼매를 즐겨해서 빠져있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은 삼매에 즐겨서 그렇게 빠져 있어도 안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면
境寂人忘(경적인망)에 如痴如兀(여치여올)터니,
경적인망이라, 마치 뭐와 같으냐하면 경계도 고요하고 고요적자 지요?
사람도 잊고, 나도 잊고 그런 얘기입니다. 인망이라는 것은 사람도 잊고
나 라던가 법 이라던가 모든 것을 잊는 것입니다. 아공 법공 그러지요?
자타를 다 잊는 것입니다. 경계도 잊고 나도 잊고,
그렇게 전부다 잊어 가지고 마치 어리숙한 것이 나무등걸과 같다.어리석을 치자이지요?
마치 어리석은 것 같과 나무등걸과 같다.
나무 등걸이 뭡니까? 그냥 그렇게 있는 것입니다.
썩으면 썩은대로 있고 안썩으면 안썩은대로 있고 나무등걸이 그대로지 뭐가 있습니까?
不覺至第六日(불각지제육일)하야,
불각중에 깜짝할 사이에 그런 얘기입니다. 불각이라는 것은,
경상도 사람들은 불각중에 그런 말을 잘 써요.
눈깜짝할 사이에 그런 얘기지요.
6일이 지나 이르러서는
隨衆在三塔(수중재삼탑)할새,
삼탑사이에 이르렀을 때, 요전에 제가 한번 말씀 드렸지요?
고봉화상께서 삼탑사에 조금 계셨다고..바로 여기 삼탑사가 나오네요.
내가 대중을 따라서 삼탑사 갔다 그런 말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대중을 따라 갔을 때도 여전히 참선을 하면서 대중을 따라다녔지만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라는 얘기가 이 글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諷經次(풍경차)에
풍경이라는 것은 풍송할 풍자거든요. 경을 풍송한다 경을 외운다는 얘기지요?
스님들이 여러분들 독경한다고 그러지요? 독경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경을 보면 금강경도 독경하고 화엄경도 독경하고 또 아미타경도 독송하고 그러잖아요?
스님이 여러 스님들이 독경하는 차제에
擡頭(대두)하야
머리를 들어서, 대두라는 것은 머리를 들어서,
머리를 떡 들어가지고
忽覩五祖演和尙眞(홀도오조연화상진)하고
줄여진 말이지요? 진은 진영 그런 얘기입니다.
홀연히 오조 법연 화상의 진영을 보고,
여러분들 진영이라고 하는 것이 스님들 그림을 그려가지고,
화상들 절에 가면 크게 그려서 붙여 놓은 것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진영이라고 그래요.
진영이라는 말은 참 재미있습니다.(참진에 그림자 영)
이것이 참 그림자다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진실된 상이 아니고
예를 들어서 옛 조사스님 원효 스님을 떡 그려 놓고서,
원효스님도 화가마다 제각기 얼굴이 틀려요,
그런데 그 옆에 글을 써 놓은 것을 보면“원효대사 진영”그렇게 쓴다 이말이지요.
그러니까 어떤 것이 참 진영이냐 이렇게 말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사진 같으면 사진을 보고 사진이니까, 사 자는 베낄사자 이니까
그대로 얼굴을 베껴 놓는 것이지요. 그것은 사진이고,
진영은 이 분의 진실된 모습이다. 원래의 모습이다. 그런 얘기지요.
그래서 오조화상의 법연의 진영을 보고서, 영정이라고도 그럽니다.
驀然觸發日前仰山老和尙(맥연촉발일전앙산노화상)의 問拖死屍句子(문타사시구자)호니,
맥연은 홀연히 그런 뜻입니다. 갑자기 그런 뜻을 가지고 있고요.
홀연히 진영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촉발하다 그런 생각이 일어났다 이말이지요.
일전에앙산노화상이, 위산앙산이 있습니다.이것을 위앙종이라고 그러지요?
오조법연화상은 임제종 스님이고,전부다 임제종 계통이지만 여기서 떨어져 나간 것이
위앙종입니다. 위앙종이 송나라 때 사라졌어요.
제자가 많이 생기지 않으니까 없어진 것이지요. 종파가.
위산앙산 노화상의 이런 법문이 있는데
노화상께서 물으신 “타사시구자 하니”
그러니까 “이 송장을 끌고 나니는 놈이 무엇인고“ 물었다 이 말이지요. 問은..
이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은 뭐냐? 어느 놈이냐?
여러분들 잘 생각해 보세요. 스님들이 많은 법문 속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살아 있지만 나라고 하는 송장 끌고 다니는 놈,
숨 끊어지면 다른 이름으로 즉시 이름이 붙어요. 송장이라고 그럽니다.
시신이라고 그러지요? 한문자로 쓰는 것이고 우리말로 쓰면 송장이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살아 있는 송장이지요.
숨 안쉬는 즉시 그 송장은 시신이 되고 맙니다.
진짜 송장이 되고 말지요?
그래서 살아있는 나 라고 하는 이 송장이 정말로 다음생에 또 다른 몸을 받아서 고통을 이어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딱 끊어낼 수 있는 지금 절호의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절호의 기회를 만났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얻고서도 그냥 세월을 보낸다면
이것이야 말로 큰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참선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直得虛空(직득허공)이 粉碎(분쇄)하고
그말을 들으니까 허공이 분쇄되고,
곧 허공이 분쇄되는 것 같고, 그런 얘기지요.
大地平沈(대지평침)하야
대지가 꺼지는 것 같다.
허공이 분쇄되서, 허공이 분쇄 될 리가 없지요?
허공이 분쇄되고 대지가 다 가라앉는 것 같다 그런 얘기지요.
꺼지는 것 같아서
物我俱忘(물아구망)이 如鏡照鏡(여경조경)이라.
물아 라는 것은 나와 너 그런 얘기입니다. 나와 너.
아공과 법공 말할 때 흔히 쓰는 얘기들이지요
그러니까 물아가, 나와 너가 함께 사라진다 그랬어요
마치 뭐와 같으냐 거울이 거울을 밝게 비추는듯하다.여경조경이라.
참 멋진 말이지요? 거울이 거울을 비치는 것 같다.
거울이 거울 비치면 어떻게 할까요? 상상을 해 보십시요.
마치 맑고 맑은 호수가 있는데 저 맑고 맑은 하늘을 비치는 것과
똑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한마음이 곧 무량겁이고
무량겁이 곧 한 마음이고,
일념이 만년이고, 만년이 즉 일념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되겠습니다.
늘 이와같이 우리들이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반드시 한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기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만 같은 것이 아니라,
스님이라고 다 성불했다는 소리 들어 봤습니까? 어림없습니다.
스님이 되어서 예를 들어서 적어도 1년에 한명씩은 다 성불 할 것 같으면
10년이면 성불한 스님이 10명이고 100년이면 100명이 나와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렇지 못한거예요.
10년이 지나도 한분이 나올똥말똥하고 100년이 지나도 한분이 나올똥말똥합니다.
아이구 스님도 못하는데 저희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스님만 성인 됐다는 말 들어 봤습니까?
다만 스님은 여기에만 전념하고 부처님법을 연해서, 즉 끊어지지 않게 하는
그런 역할, 그야말로 역할이라면 큰 역할이지요. 그런 큰 역할을 하는 것이고
부처님처럼 그대로 수행하는 그런 공덕은 있으나 스님이라고해서 모두다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께서 열심히 하셔서 큰 깨우침을 얻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