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개당보설 제1, 선요 본문 첫 강의가 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선사님의 아주 간절한 가르침이 어떤 것인가를 음미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당 보설이라는 것은 집을 열여 널리 말하다 인데
개당 보설이란; 開堂은 조사의 설법이 上堂이되며 그러니까 조사스님께서
설법하는 것을 상당법어 또는 상당, 상당까지 해도 역시 법어가 달리지요?
역시 상당 법어다 그런말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상단에 올라가서 법어를 하신다는
얘기지요
깨달은 바를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것을 開堂이라 합니다.
또는 선원을 처음으로 짓고 선방을 열어서 여러 대중들을 모이게 해서
법문하는 것을 개당(開堂)이라고도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 선방 풍경이 어떤 것일까? 아마 궁금증 나시는 분들도 계실거예요.
선방에 다녀 보신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스님이 아니고서야 일반 불자님들은
선원에 간다고 해도 보통 보살 선원 그러지요?
거사님들이 많이 없으니까 여름 하안거나 또는 겨울 동안거일 때 보살님들
특히 노보살님들을 모셔놓고 함께 선방을 하는 풍경들이 한국에서는 여러군데 있습니다.
그런 선방의 풍경도 풍경이지만 특히 선원, 일반적인 스님들의 선방의 풍경은
어떤 것인가 한번 집고 넘어가기 위해 내가 글을 적어 놓았어요.
간단히 소개를 올리면 제일 먼저 선방에서 한철을 시작하면
어떤 사람들이 그 선방에 갈까? 아마 궁금할 것입니다.
그 선방은 누구나 다 갈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해인사 선방, 또는 통도사 선원, 칠불암이라던가, 여러 전국적으로
수도없이 많은 선원들이 있는데 이런 여러 선원들에 갈 때는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자격들이 있습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라면 다 갈수 있지요?
그런데 선방에 다 갈수 있지만 거기에는 몇가지 지켜야될 것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들어갈 때 선원에서 얼마만큼 받아 드릴 수 있느냐?
사람을 무한정 받아들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20명이 정원인데는 스무명 더 받을 수 없고
30명이면 30명, 20명이면 20명, 50명이면 50명 이렇게 딱 정해진 숫자를 놓고서
선객들을 받지요.
그런데 미리 구두로 얘기해도 되고, 미리 찾아가서 입방 원서를 쓰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선원에서 한철 사셔도 됩니다 하는 허락이 떨어지면,
이 허락은 어디서 떨어지냐하면, 큰절에는 물론, 큰절이라고 해도 선원장이나
유나 스님이나 방장스님들이 최종 결정을 하지만 밑의 선원장 정도에서 결정이
되면 위의 어른들은 이유없이 거의다 허락을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받아 준 납자들이 자기 개인 개인의 걸망을 넣어 둘, 사물함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 하나씩 배정 받고, 조그마한 다락입니다. 괴 하나 정도 밖에 안되고,
바루하나, 걸망하나 집어 넣고 필기노트 두어권 집어넣으면 마땅할 그런 좁은 공간이어요.
그것 하나씩 배정 받고나면 그 다음에는 자기가 선방에서 앉을 자리도 정해집니다.
대개 이것을 용상방이라고 해서 결제 들어가기 이틀전이나 삼일전 정도에 다 결정합니다.
이렇게 들어가면 선원 청규라는 것이 있어요.
선원에서만 지키는 청규인데, 이 선원 청규는 역사가 굉장히 오래됐습니다.
부처님 당시로 올라가면 부처님도 제자들이 한가운데만 모여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운데 모여서 살기 때문에 각기 모여 살면서 부처님이 정해 주신 청규들을
잘 지켰고 특히 백장 청규라고 해서 백장스님은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이라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그날 밥을 먹지 않는다. 이런 것도 선원의 청규입니다.
그래서 각기 선원마다 그 선원에 맞게 청규가 있어요
이 청규를 잘 지켜야 그 절에 살수가 있지요
그래서 비구 스님는 비구 스님이 들어가는 선방,
비구니 스님은 비구니 스님이 들어가는 선원, 그렇게 다 따로따로 들어가서
석달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겨울철을 동안거, 여름철을 하안거 그렇게 부르지요.
그리고 결제철에는 개인적 자유는 전연 거의 없습니다.
일반 개인적인 사소한, 절 안에서의 자유야 있지만 밖으로 나갈 자유라던가
개인적으로 행동할 수가 없다 이말이지요?
그래서 모든 삶이 공개적인 삶으로 강요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럿이 살기 때문에 개인적 생활을 하다보면 문란해져서 공부 안되겠지요?
그래서 선원 대중 모두가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3개월 동안은 선원에서 정해진 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선원에 입방이 되면 조실 스님을 만나 뵙고 때로는 여기서
거량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거량할 때는 태산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하고,우주를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하고
극락 천당도 자유자재로 왕래도 하기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깨달은 바를 조실 스님께 보여 줄 수도 있고
조실 스님은 그 수좌에게 간절한 가르침, 지침을 주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선원 대중들하고 함께 한철을 나게 되지요?
수선안거라는 것은 보통 스님들이 참선하는 철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안거라고 하는 것, 옛날에는 1년 단위로 해서 몇 하안거, 3 하안거 하면
3년 동안을 참선을 했다는 것이고 4하안거 그러면 4년 동안 참선했다고 했는데
요즈음은 그렇게 않고, 몇안거했냐하면 여름철 겨울철 두 번씩 있으니까,
사람이 두 번 다 할 수도 있고 한번만 할 수도 있으니까 5안거 했다
6안거 했다 이렇게 요즈음은 안거했다는 것을 바꿔 부르지요.
이와 같이 선방에서 스님들이 참선하는 그런 풍경인데
이것은 중국에서 하안거 동안거는 전해져 온 것이고
부처님 당시에는 어떤 철로 됐냐하면 우기에는 안거에 들어가고
건기에는 만행을 했습니다. 만행이라는 것은 다니면서 부처님법을 전하고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을 만행이라고 그럽니다.
그 다음에 晩參과 小參 법문이 있다고 했는데 만참이란 선원전체 대중이나 사중의
모든 대중을 대상으로 법문하는 것을 晩參 法門 이라고 그래요.
小參법문이란 수시로 선방 수좌들을 위하여 조실스님께서 묻고 답하는 질문에 법문을
말하는 것을 소참 법문이라고 합니다
祖庭錄에 이르기를 佛祖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설법하는 것은 위로는 하늘에 이르고
아래로는 영령들까지 제도하는 것이 개당 보설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법문이 얼마나 중요하냐? 그 만큼 중요하다 이 말이지요?
타종교와 다른 것은 즉 살아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영령까지도 제도하는
좋은 말씀이다 그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자 본문 한번 볼까요?
僧問(승문)호대
어떤 중이 와서 묻대
여기서 스님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납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납자는 선객을 납자라고 그럽니다.
十方同聚會(시방동취회)하야 箇箇學無爲(개개학무위)하나니 此是選佛場(차시선불장)이라
납자가 묻기를 시방 세계에 대중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무위법을 배우고, 개개학무위하나니, 여기는 부처를 뽑는 곳이니라.
시방이라고 하는 것은 동서남북 그리고 간방 그렇게 해서 8방이고 상방 하방 해서
시방이지요, 시방에 있는 모든 것, 사방에 있는 모든 사부대중에 이 자리에 모여서
부처를 뽑는 곳이다, 개당 보설 하니까. 선방을 선불장 그럽니다.
선불, 부처를 뽑는 곳이다.
心及第歸(심급제귀)라하신 龐居士(방거사)의
恁麽道 還有爲人處也(이마도환유위인처야) 無(무)잇가.
무슨 말인가하면 심급제귀라 하신 마음을 급제하다 했어요
급제해서 돌아간다, 급제라고 하는 것은 합격한 것이지요?
합격을 급제라고 하지요? 장원 급제할 때 급제 입니다.
심급제귀 마음은 이제 급제해서 돌아가니, 다 알아서 돌아간다 이 말이지요?
여기서는 마음을 비워 돌아간다 했는데 급제해서 돌아간다 한 방거사의,
여러분들 방거사 아시지요?
이 방거사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방 거사는 유마 거사와 함께 대단한 중국에서 손 꼽히는 거사입니다.
이 분은 설사 스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모든 스님들이 방거사의 법문을
들을 정도로 그런 훌륭한 도를 깨달은 분이지요.
방거사에 대한 신비한 행은 많이 있습니다.
방거사가 하루는 마조 스님을 찾아 뵙고
정말 불도 밖에 할 것이 없다.
다른 것은 정말 배울 것이 없다.
그래서 방거사가 출가를 하게 되는데 이 분은 아마 상당히 늦게 출가했던 것 같아요
결혼해서 아들도 있고 딸도 있습니다. 출가라고 하는 것은 스님 되어 출가 한 것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세상의 인연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갔다는 얘기입니다
산으로 들어갈 때 이 분이 씨족의 장이었는지 상당히 부자였나 봐요.
그래서 산으로 들어가면서 금은보화 많은 보물들을 배에 실고 양자강에 나가
일하는 하인들을 시켜서 전부 강에 빠뜨립니다.
강에 빠뜨리는 것을 보고“마님 이게 왠일이십니까? 주인님 왜 다 내 버리십니까?”“산에 들어가실려면 저희들한테라도 남겨주시고 가지지요?” 그러니까 방거사 말이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 나에게도 독이 되면 너희들에게도 독이 될 것이다”
“어찌 내가 마지막에 너희들에게 독이 될 수 있는 물건을 주겠느냐”
그러셨다는 것예요.
정말 마음이 그렇지 않고서는 도를 이를 것 같지 않습니다.
이 방거사님이 산으로 들어가서
감자를 심어 먹고 부인하고 아들 딸 같이 수행하면서
살고 있는데 하루는 어느날 방거사가 이제는 내가 열반에
들어야 되겠다. 정오가 되면 열반에 들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갖고
딸에게 밖에 나가서 해가 어디쯤 있나 보고 오너라 그랬는데
딸이 들어오면서 아버지 아버지 부르는 거예요.
왜그러냐 하닌까 밖에 해무리가 졌는데 참 아름답습니다.
저것 좀 보십시요.
그래서 방거사가 밖에 나간 사이에 딸은 방으로 들어와서 아버지가 계셨던
평상에 떡 앉아서 열반해 버렸습니다.
그런 뒤 방거사가 들어와서 자기딸이 평상에 앉아서 이미 열반한 것을 보고
“허허 내 딸의 솜씨가 빠르구나” 그랬다고 합니다.
방거사가 내 놓은 하나의 소식, 화두라고 그러지요?
아주 좋은 말씀이 하나 있어요
호설편편(好雪片片) 그랬어요.
무슨 말인고하면 ‘좋은 눈이 펄펄 내리는구나“. 그런 얘기지요?
어느날 어느 승이 와서 묻기를 “거사님 요즘 시절이 어떠 하십니까”. 하니까
아마 밖에 눈이 왔던 모양입니다. “좋은 눈이 펄펄 내립니다” 그렇게 하셨다는 거예요.
그것이 곧 방거사가 남긴 하나의 화두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방거사라는 분은 그런 분인데 간략하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龐居士(방거사)의
恁麽道 還有爲人處也(이마도환유위인처야) 無(무)잇가. 그랬어요
방거사의 이러한 말씀도(이마도) 환은 도리어 유위, 무위할 때 유위입니다.
이러한 말씀도 도리어 사람을 위함이 됩니까? 여기는 유위무위할 때 똑 같은
글자지만 여기서는 위한다는 말이 되고, 사람을 위하는 것이 됩니까?
또 위하는 것이 아니됩니까? 이렇게 두가지로 물은 것이어요.
그것이 사람을 위함입니까 안됩니까 그러니까
師云(사운) 有(유)니라.
대답하기를 유니라 그랬어요. 있느니라 그랬어요.
사람을 위한 것이 된다 그런 얘기지요.
進云(진운) 畢竟(필경)에 在那一句(재나일구)닛고,
진운은 나가서 여쭙다 그것인데 누가 나가서 여쭙겠습니까?
스님이 묻겠지요? 어느 구절에 있습니까?
어느 곳에 유위가 있느냐? 유위처냐 그런 말이지요?
師云(사운) 從頭問將來(종두문장래)하라.
그러니까 스승이 말씀하시기를 그럼 처음부터 물어오너라
스승이 말씀하시기를 그럼 처음부터 물어 오너라. 그랬어요
처음부터 다시 물으라 이 말이지요?
그러니까 다시 처음부터 묻습니다.
進云: 如何是(여하시) 十方同聚會(시방동취회)닛고,
처음에 물었던 얘기지요. 시방동취회야 했으니까
어떤 것이 시방동취회야입니까? 그렇게 물으니까
師云: 龍蛇混雜(용사혼잡)하고 凡聖(범성)이 交叅(교참)이니라.
스승이 답하기를 용과 뱀이 혼잡이라, 섞여 있다 이 말이지요?
범성이 교참이라, 범인과 성인도 함께 있느니라
교참이라는 것은 함께 한다느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가만히 보면 말이지요?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고, 용도 있고 뱀도 있고,
없는 것 없이 다 섞여 있어요. 섞여 있어야 살지 안섞이면 못하는 것 같아요.
저 산에도 가면 소나무만 많이 있으면 그 산 건강하고 좋을 것 같지만
소나무가 병들어서 죽고나면 그 산을 헐벗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나무니 잡목이니 한량없이 많은 나무들이 두루 두루 섞여 있기 때문에
산이 건강한 것이지요?
進云: 如何是(여하시) 箇箇學無爲(개개학무위)닛고,
어떤 것이 한사람 한사람 무위법을 배우는 것입니까?
다함이 없는 배움이냐 물었지요?
師云: 口呑佛祖(구탄불조)하고 眼掛乾坤(안괘건곤)이니라.
입으로는 불조를 삼키고, 부처와 조사를 삼켜버리고
눈에는 하늘과 땅을 거느니라 그랬어요 대단한 말씀이지요? 뭔지 모르지만
그러니까 눈으로는 건곤을 꿴다 그렇게 풀이 했습니다.
進云: 如何是(여하시) 選佛場(선불장)이니고,
어떤 것이 선불장입니까? 부처를 뽑는 곳입니까?
師云: 東西가 十萬(동서가십만)이요 南北(남북)이 八千(팔천)니라.
합하면 얼마지요? 십만팔천이지요. 십만팔천리다 그런 소리지요.
우리 뭐할 때 십만팔천리라 합니까? 뭐가 안맞을 때 어림도 없다.
그럴때 십만팔천리라 하지요.“야 그 답하고는 십만팔천리야”
“어림도 없어”
그러니까 어떤 것이 선불장이냐하면 선불장이라는 것이 정해진 것이
아니니까 여기서 십만팔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선불장이 어디 따로 있습니까? 여러분들 방이 바로 선불장이 될 수도 있고
또 해인사 선원이 선불장이 될 수도 있고, 통도사 선원이 선불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방 온곳, 어느 곳이던지 다 선불장이 될 수 있지요.
進云: 如何是(어하시) 心空及第歸(심공급제귀)닛고,
어떤 것이 마음을 비워 돌아가는 것입니까?
師云: 動容(동용) 揚故路(양고로)하야 不墮(불타) 悄然機(초연기)니라,
무엇으로 마음으로 비워서 급제로 돌아가느냐 물으니
움직임이 옛고장을 찾아 드날리니, 그랬어요
동용이라는 것은 움직이는 모양 그랬는데
선방에서 하는 일거수일투족이 그렇다 이 말이지요.
양고로하야, 고향을 찾아가는 길을 드날린다 이말이지요.
고향이 어디입니까? 여러분들 고향은 바로 부처의 자리가 고향입니다.
우리는 지금 나그네 길을 잘못 걸어와서 중생의 몸을 받고 있는 거예요.
잘못 된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진실인줄 잘못 알고 있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여기서는 모든 모양이 선불장에서 공부하는 것은 모두가 다
고향에 가기위한 것이다. 그런 뜻으로 양고로하야 고향의 길을 닦기 위해 드날려서
불타초연기니라 그랬어요. 낮은 근기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그랬어요.
불타한다, 떨어지지 않는다. 초연기라는 것은 낮은 근기입니다.
하잘 것 없는 근기, 그러니까 낮은 근기에 안떨어지고 모두가 상근기에 있으면
모두가 다 부처님이 되는 것이지요?
進云: 恁麽則(이마즉) 言言見諦(언언견체)요 句句朝宗(구구조종)이로소이다 이마즉, 이러한즉, 그렇다면은 그런 뜻이지요.
그렇다면 말씀 말씀마다 견체로 진리며 구구절절마다 조종이로소이다
으뜸가는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물은 것이어요
그러니까 말씀 말씀마다 다 옳습니다 그런 얘기입니다.
師云: 你(너) 甚處見得(심처견득)고
너는 어느곳을 봤느냐? 고봉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어느곳을 봤느냐
그런 말씀입니다.
僧(승)이 喝(할)한대
계속 진운 진운하다 승이 그랬지요?
여기서 스님이 할하대, 아악하고 소리질렀습니다.
師云(사운) 也是掉棒打月(야시도봉타월)이로다.
막대기를 들고 달을 침이로다.
막대기를 들도 달을 쳐서 안되겠지요?
아무리 막대기를 들고 달을 친다고해서 달이 떨어집니까?
되지 않는 일이다. 니가 할을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헛수작하지 말아라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선방을 열어서 설법하는 개당보설해서 고봉선사께서는
첫대면에 한 납자(객승, 선객)가 찾아와서 스승을 대면해서 이렇게
거량한 얘기입니다.
아까 선방의 풍경을 말씀드리다가 방부를 드리고 조사스님 만나 뵙고
거량도 한다고 했지요?
바로 이것이 거량하는 것이어요.
여기에서 아 이 사람이 몇근이나 되는지 스승이 알아보기도 하고
정말 좋은 스승을 만나서 한소식을 바로 얻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