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요를 강의 시작하겠습니다.오늘로써 선요 강의 3일째이지요?
고봉 화상 선요서를 3일째하고 있습니다.
고봉 화상이 쓴 이 선요의 다른 이름이 하나 있습니다
회현록(會玄錄)이라고 합니다.
이 선요를 회현록이라고 한 것은 그윽한 말씀 진리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 말도 되겠지요?
고봉 화상이 법문 하신 것은 지난번에 한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일반 서체가 아니고 대화체 또는 구어체이기 때문에 더 실감이 나고
어떤 때는 글들이 우리들은 잘 알수 없고 해석하기 곤란한 글자들이 있어서
당황하게하는 그런 부분도 있읍니다만 상당히 가슴에 와 닿은 구어체로 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물론 서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문은 정교조가 썼지요?
한번 보겠습니다. 먼저 한자가 어려운 글자가 있을까 싶어 살펴 볼까요?
雙 쌍쌍. 둘쌍. 綱 벼리강. 獲 얻을획. 剋 이길극. 藥 약약.
刁 바라조. 흔들리고 헝클어진모습... 靈 신령령. 符 부적부. 상서.
點 점찍을점. 畫; 그림화. 글획. 驅 몰구. 邪 간사할사. 치우칠사. 探찾을탐.
寄 붙일긔(기) 몰아내다. 몰기. 秘 숨길비. 禽 새금. 禦 막을어. 寒 찰한.
與 줄여 더불어여. 顧 돌아볼고. 廣 넓을광. 應 응할응. 狹 좁을협. 具 갖출구.
耶 어조사야. 乘 탈승. 頂 이마정. 정수리정. 攝 섭할섭. 縷 실루. 耶 어조사야.
易 쉬울이. 바꿀역.
** 刁(바라조)가 무슨 뜻이냐면 굉장히 미세한 가루를 귀후비개정도의 작은 수저로
떠 넣는 것을 한 바라, 두 바라 그렇게 씁니다.
한문을 보면
我師高峰和尙(아사고봉화상)이 自雙峰(자쌍봉)으로 而西峰(이서봉)히
二十餘年(이십여년)을 念此之故(념차지고)로 不獲已(불획이)하사.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 스승 고봉 화상께서, 우리 스승은 누구를 말하는가 하면
이 글을 받아 쓴 시자가 있었습니다. 그 시자 이름이 지정(持正)이라고 있었는데
이 고봉 화상의 법문을 시자가 다 기록을 하고 홍교조가 이것을 목판에다
조각을 하게 됩니다. 조각을 해서 책이 나온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 스승인 고봉 화상 이를 께서 라고 새길 수 있습니다.
고봉 화상께서 自雙峰(자쌍봉)으로 했는데, 自는 어디 어디로부터 얘기가 됩니다.
서봉으로 부터, 쌍봉으로부터, 쌍봉이라는 것은 쌍봉사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저 쌍봉사에서부터 서봉사에 이르니, 서봉사가 있고 쌍봉사가 있는가 보지요.
쌍봉사에서도 사시고 서봉사에서도 사시고 그런 얘기지요
20여년을 念此之故 (염차지고) , 오직 이것만 생각했다.
20여는 동안을 이것만 염려하셨다. 그런 얘기지요
20년 동안 뭘 염려하셨겠어요?
우리들이 참선을 해서 도를 깨닫고 하는 이 일을 염려했다는 말이지요.
20여년을 염차지고로, 생각하신고로
不獲已(불획이)하사. 부득이 하다 그런 말입니다.
불획이라는 것이 얻을 획자를 써서. 획득하지 못하사, 부득이 하사,
示人剋的(시인극적)하시니, 극적하신 것을 적극적으로, 극명하게 그런 뜻이고
극명하게 보이시니 극명하게 뭐를 보시냐하면
如神藥(여신약)이 刁圭而起死( 조규이기사)하고, 마치 신약이, 한자에서
如자는 마치, 뭐와 같이, 같다는 의미도 있고, 뭐 마치라고 새기기도 합니다.
마치 신약이 조그마한 적은 량으로도, 조그마한 수저는 적은 량으로 그런 뜻입니다.
조그마한 수저로서 기사(起死) 하고, 죽었던 사람이 일어나고,
신약을 먹으면 약은 적지만 그 적은 량을 먹고도 살아난다 이런 말입니다.
靈符 點畵而驅邪(영부 점화이구사)라, 신령스러운 부적은 한점의 획이 삿된 것을
몰아낸다. 그랬어요. 그런데 이런 비유는 조금 부적절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부적이 정말 삿된 것을 몰아내고 뭐한다는 것은 지금 시대에 부적을
믿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불자님들이 제일 많이 믿는 것 같아요.
부적은 부적일 뿐이지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옛날에는 그것을 다 믿었지요. 그래서 정초면 집집마다 써 붙이고 그러는데
부적을 부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신주라고 생각하시면 괜찮겠습니다
신령스러운 주, 주문이라는 얘기지요. 주는 우리말로 하면 주문이지요.
참말, 참뜻, 다라니를 우리는 보통 주라고 하지요?
그래서 신묘장구대다라니 주 라고 하는데 긴 것은 다라니 라고 합니다.
다라니 라는 말이 진언 이라는 말이고, 진언을 다른말로 하면 주 라고 씁니다.
주력, 주문 이렇게 얘기할 수 있고 이 주문을 다른 말로 한자로 쓰면 진언이라 그랬습니다.
이 부적을 신령스런 진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만
가끔은 조계종의 스님들도 다른 여러종파들이 더 많습니다만
사주 관상이나 보고 부적이나 써 주고 이런 짓을 하면 이것은
불교도 아닐 뿐더러 부처님을 욕 되게 하고 불교를 욕 되게 하고
불교를 훼손시키는 역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은 찾지도 말고 그런 것을 방편이라고 아무리 누가 외워도
귀담아 듣지 말아야 됩니다.
만약 불자가 부처님 참말씀을 어기고 그런 것을 쫓아 다닌다면
그것은 비불자요, 부처님 말씀을 다 위배하는 길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절대로 그런 곳에 찾아가면 안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라고 하는 것은 뭐냐?
참선이라던가 이런 것으로 참된 공부를 하고, 일대사를 공부하고
8만4천 대장경을 공부해서 바른 길을 가려는 것은 정도요,
그러나 그런 방편을 써서 뭐을 한다, 이상한 짓을 해서 무엇을 얻는다
이런 것을 감언이설하는 것은 모두다 사도입니다. 삿된 길이지요
그래서 세상은 사언마어가 많다고 했습니다.
삿된말이 너무 많아서 사언마어에 사람들이 모두 현혹되어 가지고
그것으로 쫓아 간다고 그랬어요.
이 사회는 불교외에도 다른 종파를 보면 수도없이 삿된 무리들이
사언마어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거기에 현혹된 사람들이 모두다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잖습니까?
심지어는 하늘나라간다고 떼죽음을 하지 않나,온갖 짓을 다 하지요.
이런 사언마어에 긍정하거나 그것을 쫓아가거나 한다면 이 사람도
역시 사도입니다. 삿된 무리지요.
여러 삼지삼천에 보면 타화자재천이 있는데 타화자재천이 마왕이 산다고 그랬어요
이 마왕이 항상 무엇을 좋아하는고 하면 인간들이 그 삿됨을 좋아하는 것을
손뼉치고 춤을 추며 좋아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마왕이 항상 마군들을 모아 놓고서 명하기를
너희들은 세상에 나가서 저 중생들이 삿된 길로 가도록 현혹시키고
그 마음 속에 항상 삿된 것이 깃들어서 수시로 그 마음을 괴롭혀라.
정도를 못 가도록 해라. 그렇게 시킨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세상을 살면서 조금이라도 우리들이 삿된 마음을 냈다고 하면
이것은 내 마음이 아니지요?
누구 마음입니까? 삿된 마왕이 마군들을 보내서 그 마군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깃들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마음이 아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부처님 마음으로 바로 공부하는 것,
그것이 정도요, 사언마어에 현혹되지 않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이 짧지만, 조사 스님들의 말씀이 긴 말씀이 아니지만
이 조사스님 말씀이나, 부처님 말씀을 듣고 깨우치는 자가 수도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공부하는 여러분들도 이 고봉 화상의 말씀을 듣고
깨우친다면, 이것이야 말로 당시에 고봉 화상을 뵙고도 못 깨우친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므로 참 신유한 일이다.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故(고)로 , 그런 까닭으로 그런 얘기지요?
有探其奇方秘呪( 유심기기방비주)하야, 신기한 처방과 주문을 찾아서
그런 까닭으로 신기한 기특한 기묘한 방(方)과 방이라는 것은 처방과
신비한 비밀 주력을 찾아서, 참 말씀을 찾아서 그런 얘기지요.
得以爲學徒綱領者(득이위학도강령자)러라 . 배우는자로서 배움을 강령으로 삼이러라.
배우는 무리가 누구인가하면 우리들이 배우는 무리입니다.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 참선을 하고자하는 사람들, 경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던가, 여기서는 참선하는 자들이겠지요?
참선 공부 하고자하는 사람들이 강령을 삼음이러라. 이랬어요.
或(혹)이 , 어떤 사람이 그런 얘기지요. 혹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을 얘기합니다.
혹 어떤이가 그런 얘기지요.
曰獲禽(왈획금)을 在目(재목)이라, 짐승을 잡는 것은 [禽(새금)] 새를 잡는 것은,
새를 잡는 것은 그물코에 있음이라 그랬어요.
새를 잡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모를 것입니다
다 도시인이고 도시에서 살아서..
옛날에 보면, 요즈음 참새가 많이 없답니다
그런데 우리 사찰은 도시지만 뒤에 산이 펼쳐져 있어서 그런지
요즈음 참새를 더러 봅니다. 시골에 가도 참새가 없다고 그럽니다.
어떻게 해서 다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옛날 우리들이 클 때는 참새가 제일 많았지요?
참새 때문에 곡식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이런 새를 새가 안보이는 곳에 아주 작은 실로 만든 그물를 쳐 놓고서
새몰이를 하면 새머리들이 그물코에 머리들이 다 끼어서 못 날라가지요?
옛날에 그렇게 새를 잡아서 먹었답니다. 잔인하지요? 인간들이.
인간만큼 잔인한 동물을 아마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먹으니까.
曰獲禽(왈획금)은, 새를 잡는 것은
在目(재목)이라. 그물에 있음이라. 그랬어요.
不在綱(부재강)이요, 벼리에 있지 아니함이요. 그랬어요. 그물코에 있지
그물줄에 있지 않다. 이 말입니다
禦寒(어한)은 在縷(재루)라. 찬 것(추위)를 막는 것은 실에 있음이라.
여기서 실이라는 글자는 옷깃입니다. 옷이지요. 옷.
찬 것을 막는데는 옷에 있음이라.
不在領(부재령)이니, 옷깃에 있지 않다. 그랬어요.
八萬四千法門(팔만사천법문)이 門門可入(문문가입)이라. 팔만사천 법문이 모두다 들어
갈 수 있다. 可入(가입)이다. 문문마다 다 들어갈 수 있다.
어디로 들어간다는 얘기지요? 공부하는데 들어간다.깨달음에 들어간다 그런 뜻이겠지요?
부처님이 팔만사천 수없이 많은 법문 가운데 모두가 문문이다.
문이 아닌 것이 없다. 이 말이지요.
가끔을 그럽니다. 어떤 분들은 금강경이 좋다, 화엄경이 좋다, 능엄경이 좋다
법화경이 좋다. 어느 경이 좋다고 하지만 어느 경이 특별하게 좋다고 편견을
갖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화엄경은 화엄경 나름대로의 진리 설법, 화엄경에서 말하고자하는 진리가 들어 있고
금강경은 금강경에서 말하고자하는 진리가 들어 있고
법화경에는 법화경에서 말하고자하는 진리들이 들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 경이어야 된다 하는 것은 좀 편엽한 얘기겠지요.
머 일본 같은데는 법화경만 최고이고 다른 경은 다 마군중들이 외우는 것이라 하고,
염불을 마군중의 염불이라 하고 그렇게 비방을 합니다만 그렇게 해서
나무묘법연화경이 최고다 하고 말합니다만, 어떤 경전이 최고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안되겠지요?
그래서 팔만사천대장경 모두가 다 깨달음에 들어가는 문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目與縷(목여루)는 , 그물코나 옷은
果非要耶(과비요야)아, 요체가 아닌 것이 없다.
옷이라던가 그물코는 과히 어떤 것이 요체이고 어떤 것이 요체가 아니겠느냐?
모든 것이 다 요체가 된다 이말이지요?
전부다 요체라 이 말입니다. 요체가 아닌 것이 없다.
將應之曰世尊法門(장등지왈세존법문)이, 장차 응하다 ,
장응이 말하기를 세존(부처님)의 법문이
信廣大無邊(신광대무변)이나 , 그 광대무변한 것을 다 믿으나,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이 다 요체가 되고 무변하지 않은 것이 없지요?
응당히 세존의 법문이 진실로 광대무변하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광대무변하지요? 어찌 광대무변하지 아니하리요.
광대무변함이 아니함이나,
顧乃設爲方便(고내선위방편)은 狹小一門(협소일문)이라하야,
딱 돌아보면 방편을 설해 놓은 것은, (이에 방편을 시설해 놓은 것은,)
경전에 보면 많은 말씀들이 있는데, 이 많은 말씀이 다 필요 없지만
그것도 다 방편입니다. 그 많은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기 위한 방편이겠지요?
방편은 狹小一門(협소일문)이라하야, 이 방편의 작은문을 시설하여,
방편으로 부처님이 한량없이 했지만 돌아다보면 그 작은 문을 시설해사.
使諸子(사제자)로 ,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出火宅而入大乘(출화택이입대승)하시니, 불타는 집에서 나와 대승에 들게 하시니
이 부분은 어디 비유지요? 여러분들 법화경 공부하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법화경 비유지요? 화택이라고 하는 것은 사바 세계를 화택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부처님이 비유해서 한 화택은 집에 불난 것이지만 넓게 보면
사바 세계를 화택이라고 합니다. 즉 화택입니다. 불타는 집이지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불타는 집에서 놀고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결국 불타 죽겠지요?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는고로
불타 죽을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시기 위해서 팔만사천 법문을 다 시설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팔만사천 법문은 팔만사천 방편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 방편문을 시설하셨다.
문문마다 들어가셔서 부처님 세계가 아닌 곳이 없다. 그런 얘기겠지요?
是(시)는, 이것은
攝目縷(섭목루)하야, 그물코와 옷을 모두 섭해서, 그것을 가지고 그런 얘기지요.
爲綱領耳(위강령이)니라, 강령을 삼았음이라.
무엇을 강령을 삼았냐하면 모두다 그물코와 옷을 가지고 강령을 삼았다.
사실은 강령은 따로 있지만, 옷깃과 그물코를 가지고 강령을 삼았다 그런 얘기입니다.
然則綱耶(연즉강야)아, 그러한즉 강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 그러면
目耶(목야)아 領耶(령야)아, 어떤 것이 벼리인가, 어떤 것이 그물코인가?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을 위해서 팔만사천 법문을 시설하시고
또 여기에서는 고봉 화상께서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방편을 시설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縷耶(루야)아, 어떤 것이 옷깃이냐? 어떤 것이 옷이냐?
要耶(요야)아 非要耶(비요야)아,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이냐?,
어떤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냐?
특별하게 중요한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옷이 없이 옷깃이 있을 수 없고, 그물코가 없이 벼리가 있을 수가 없지요?
그물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물이 없는데 그물줄만 무엇에 필요하겠습니까?
그물코가 있어서 그물줄이 필요한 것이고, 옷이 있어서 옷깃이 필요하고
옷소매도 필요하고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것은 특별하게 어떤 것, 그물코를 찾고 벼리를 찾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전체가 다 벼리요, 전체가 다 그물코다. 그런 말도 되겠습니다.
未具頂門正眼(미구정문정안)인댄 未可以易言也(미가이역언야)니라.
정문정안을 갖추지 않았을진대는 未具(미구) 갖추지 않았다)
정문이라는 것은 저 바른 문, 제일 꼭대기 문,
(頂, 이마정) 이마는 사람의 저 위에 있지요?
頂門(정문)이라는 것은 가장 위대한 문,진리의 문 그런 문도 됩니다.
正眼(정안) 바른 눈,
바른 눈을 가져야 모든 것을 바르게 본다, 이 말이지요.
정문 정안을 갖추지 못했을진대
未可以易言也(미가이역언야) 이 말은 가히 쉽지 않다, 쉽게 말할 수 없다.
정문 정안을 갖춰야만이 이런 말들을 쉽게 할 수 있다.그런 얘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 글 내용을 보면 그렇게 글 내용은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들이 어떻게 공부하느냐 이것은 마치 조사께서 신약과 같아서 조금만
써도 죽었던 사람이 일어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팔만사천 가지 모든 법문이 다 문문이듯이
조사 스님의 말씀도 다 문이 아닌 것이 없다
다 말씀을 들으면 전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