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선요 두 번째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선요를 강의 들어 보시는 분들은 모두다 선객이 되어 보시는 것입니다.
이 고봉 화상의 역사를 보니까 삼탑사에서도 수행을 하셨더라구요.
삼탑사가 어디 있는고 하면 대리시에 있는 절인데
제가 이번 여행에서 다녀 온 절이고, 올려 놓은 사진을 잘 보시면
절 규모를 알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제가 삼탑사를 보고와서 고봉 화상께서 거기서 수행하셨다는 것을 아니까
삼탑사라는 절이 더 새롭게 다가오고 참 잘 다녀 왔다 싶고, 옛선사가 사시던
곳에 내가 한번 찾아 갔었다는 것이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삼탑사가 당대에 그야말로 많은 선사들을 내고 많은 수행자들이 거쳐간
그런 대찰인 것을 새삼느끼게 합니다
먼저 참선을 공부하기 위해서 몇가지 공부를 해야 될 것 같아요.
무엇인가 하면 이미 여러분들께서 공부하실 부분들을 복사했거나
선요 강의를 열고 계시겠지만 오늘 강의분을 올려 놓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간화선 선법에 대해서, 먼저 간화선을 생각해 보면 화두(話頭)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간화선에서 화두.
화두(話頭)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공안(公案)이라고 부릅니다.
공안(公案)은 뭐냐? 공공의 책상.
이것이 무슨 뜻인고 하면
옛날에 사천성에 처음으로 불교가 들어왔다고 그래요
이 사천성으로 불교가 들어왔는데 불교가 들어올 때 스님들이 제일 먼저
가지고 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경전이고, 두 번째가 불상이지요.
이 경전과 불상을 받아 들고서 이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공공의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요즈음으로 말하면 정부청사 이지요.
지방 정부 청사인데, 이 정부청사 안에 그것을 가져다 놓고
이 책들이 외국에서 들여 온 중요한 물건이니까 공공의 장소에 잘 보관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중요한 문서들을 책상 속에 넣어 놓고 열쇠를 잠그지요?
그래서 공안, 화두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중요한 물건이기 때문에
책상 속에 잘 감추어 두는 것, 누구도 함부로 볼 수 없게 하는 것,
그런 것에서 따온 것이 바로 공안(公案)입니다.
공안이라는 것을 나중에 다시 화두((話頭)라고 말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이 화두는 수행 방법이 좀 독특합니다.
위빠사나를 하다가 화두라고 한 것은 참선법을 연구한데 있어서
간화선(着話禪)이라는 말로 대변을 하는데, 화두를 보는 것이다
즉 말머리를 보는 것이다. 말의 본 뜻을 깨닫기 위해서 본다 그런 얘기지요.
그래서 이 화두를 대오(大悟)하기 위해서 좌선(坐禪)하는 방법인데
간화선 또는 좌선 이것은 임제종(臨濟宗)에서 주창하게 되는데
대혜(大慧) 종고라고 하는 스님이 계십니다.
이 대혜(大慧)스님에 이르러서 번성하였는데 이 간화선을 누가 주창 했느냐
하는 것은 아직도 불교계에서는 누가 딱히 주창해서 만들어 냈다고 하는 것을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대혜종고선사의 서장(書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도 강원 교재입니다.
그 서장(書狀)에 보면 여러 선사, 그리고 마을의 거사님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입니다.
주고 받은 편지들인데 스님이 직접 보낸 편지는 3편이고 나머지 64편정도는
모두가 선사께서 답장한 글들입니다.
그래서 대종고선사에 와서 묵조선(默照禪) (묵묵히 있는 것), 위빠사나를 대변하는
선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묵조선(默照禪)과 이전의 선행(禪行)(위빠사나 남방선) 이것을 철저히 비판하고
간화선을 주창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종고 이전 달마 선사가 온 후 얼마 안있어서
지금은 중국땅이 되고 말았습니다만 티벳트의 고승들하고 또 중국의 고승들하고
대승불교 또는 간화선 이런 선법에 대해서 대화한 그런 책도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선사들이 모여서 어느 불교가 더 나으냐?
대승 불교가 나으냐? 소승 불교가 나으냐?
또는 선법을 통해서 정말 깨달음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이런 대화들을 나눈 것들입니다.
그래서 묵조선과 이런 선행을 비판하고 철저하게 “조주(趙州)의 무(無)자”를 통해서만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주창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와서는 고려의 지눌(知訥)스님에 와서, 고려말의 지눌 보조국사입니다
그 원류를 찾을 수 있고《간화결의론(着話決疑論)》을 통해 간화선 사상을 천명했습니다.
그 밑으로 내려가면 제자
고려의 지눌(知訥)에게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고. 그는 《간화결의론(着話決疑論)》을
통해 간화선 사상을 천명하였고, 그의 사상은 제자 혜심(慧諶)-지엄(智嚴)-휴정(休靜)-
경허-우리나라에 와서 용성(龍城) 대종사등 오늘날의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다음에 묵조선을 살펴보면
불교 선법(禪法) 중의 하나요. 조동종(曹洞宗)에서 이 묵조선을 가르칩니다.
묵조선은 간화선을 철저하게 비판을 하지요?
중국 남송 초기에 조동종(曹洞宗)이 생기는데 조동종이 굉지정각(宏智正覺)이라는
선사가 있었습니다. 이 굉지정각이라는 선사가 묵조선을 주창하고
이 묵조선이라는 명칭은 대종고 선사가 묵조 선풍(禪風)을 “묵념부동(默念不動)” 이라고
해서 묵묵히 앉아서 움직이지만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이라해서 묵조선이라고
만들어졌습니다만 조동종의 활발한 선법의 활동, 그 수행 이런 것을 통해서
묵조선이 발전했는데 대종고선사는 묵조선을 상당히 비판하게 됩니다.
그리고 묵조선의 굉지정각 스님이 그러면 간화선은 어떻게 비판하느냐하면
공안(公案) 불교 선종에서 선사들이 수행자에게 제시하는 과제에 구애받아서,
(선사들이 간화선에서는 공안을 하나씩 주지요? 화두를 준다는 말 여러분들이
들어 봤을 것입니다. 화두를 받아간다고 또는 준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이렇게 공안을 주면 그것을 받아가지고 공부하는 것을
굉지정각 스님은 비판하기를 맹봉난갈(盲俸亂喝)을 휘두른다.
눈 먼 봉사가 괜히 할만 꽥꽥 소리 지른다 이 말이지요
그리고 득의만면(得意滿面)해 가지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얼굴에는 득의만면(得意滿面)해 가지고 간화선이 최고라 한다.
참 바보들이다. 이렇게 비판하게 됩니다
천동정각 (天童正覺 1091∼1157)스님을 살펴 보면, 이 스님 참 대단한 스님이예요.
중국 송(宋)나라 때의 조동종(曹洞宗)의 스님인데. 속성은 이(李)씨이고
습주 출신이고 어려서 출가하여 14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18세에 유행(遊行)하였다.
23세 때 허난성[河南省(하남성)]의 단하산(丹霞山)에서 자순(子淳)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고 그 법통을 이었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후에 쓰저우[泗州(사주)] 보조사(普照寺) 등에 들어가 수행하였고,
1129년 저장성[浙江省(절강성)] 천동산(天童山) 경덕사(景德寺)에 들어가
약 30년 동안 머무르면서 이 묵조선 조동종을 부흥하는데 힘썼다고 그랬습니다.
그 선풍(禪風)은 임제종(臨濟宗) 양기파(楊岐派)의 대혜종고가 주창하는
간화선(看話禪)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데,
우리나라도 최근에 조동종이라는 종파가 생기기는 생겼습니다
그러나 수행이라던가 사찰들이 일천하고 모두가 사세가 약하지요.
일본은 조동종이 있는데 일본 조동종은 사세도 크고 종풍 종단도 클 뿐만 아니라
알아줍니다.
그래서 《굉지각화상어요(宏智覺和尙語要,1권)가 있고 다시 말해서 어록이지요
굉지선사가 《굉지각선사어록(宏智覺禪師語錄, 4권)》을 내서 후학들을 위해서
묵조선을 가르치는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동종은 중국에서도 상당한 종파예요.
5세기 후반에 인도에서 건너온 달마(達磨)선을 그 시조하고 그로부터 6대째의
조사(祖師)인 혜능(慧能)에 와서 남종선이 이루어지고 의해서
남종선이 죽 오다가 마조도일(馬祖道一) 이후에 와서 간화선이라고 하는
소의 조계문중이지요, 조계문중이 생기고 그 후에 다른 여러파들이
그러니까 조동종이라던가 아니면 임제종 또 위앙종, 또 운문(雲門)종, 석두종(石頭宗)
등 여러 종파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5가 7종(五家七宗) 그렇게 얘기도 합니다.
이런 많은 종풍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간화선 임제종,
우리나라에서는 조계종이라고 합니다만 중국에서는 임제종이지요
조계종과 임제종은 간화선을 주창하고 간화선을 드날리는 종파로 보면 되겠습니다.
오늘 강의할 부분은 제 1강의에 보면 여러분들한테 빨간글씨도
02 2005년 10월 26일 강의 이렇게 해 놓았는데 02는 강의 순번이고
나머지는 날짜입니다. 한번 볼까요. 한문 다 찾아 보셨지요?
永嘉 云(영가 운)호대 영가께서 말씀하시대, 영가 스님이라고 하시는 스님이 계셨는데
선각이지요. 그래서 영가집도 있습니다. 영가스님이 깨달은 바를 노래 한 것.
일종의 시집입니다. 선시집이지요 그것을 영가집이라고 합니다.
영가집을 읽으면 통쾌하고 참 대단하십니다.
그래서 영가스님이 말씀하시대
摘葉尋枝(적엽심지)는 我不能(아불능)이라하니
잎을 따고 가지를 찾는 것은 나는 능하지 못함이다. 그런 얘기지요
그러니까 이파리를 딴다던가 가지를 딴다던가 하는 것은 나는 능하지 못하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하면
나는 나무를 통채로 잘라버리지 이파리나 따고 가지나 치고 그런 짓은 나는
못하겠다. 그런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보아집니다.
전에 철옹스님이라고 지금 팔공산에 계시지요?
이 철옹 스님이 법문을 하시는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리 절 앞에 감나무가 있는데 감을 어떻게하면 감을 잘 딸 수 있느냐?
같이 간 여러 불자님들이 올라갓 턴다는 사람도 있고, 작대기로 턴다던가
아니면 가지를 자른다고 그러는데 스님은 아니다
감나무 밑을 통째로 비어버리면 전부 딸 것이 아니냐?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아마 이와 비슷한 얘기입니다.
그런 것도 여러 가지 의미로 봐야 됩니다.
감을 따는 것만 보고 말 것이냐? 후에 감이 계속 열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선법에서는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딴다면 어떻게 따느냐? 다 딸수 있느냐?하면 다 딸 수 있는 것만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파리를 딴다던가 가지를 친는다는 것은 요점이 될 수 없다 이런 얘기입니다.
枝與葉(지여엽)은, 가지와 이파리는
非要(비요)요 , 중요한 것이 아님이요. 그랬어요.
가지와 더불어서 이파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요.
根本(근본)이라사, 그 뿌리의 기본이라사
固要也(고요야)어늘, 진실로 중요한 것이거늘,
學者 復昧其根本(학자 복매기근본)이로다. 이것이 근본인데, 참 중요한 것인데
배우는자들은 그 근본을 (복매) 알지 못하기 때문이로다 그랬어요.
배우는 사람들이 왕왕히, 학자라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들이예요.
또는 여기서 학자라고 하는 것은 선법을 하지 않고 학문을 하는 스님의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학문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보면 그 근본 요지를 모르더라”
그것에 매했다, 복매라는 것은 어둡다, 모른다 이런 말이지요.
그래서 鵝湖 云(아호 운)호대 , 아호라고 하는 스님이 있는데
아호가 말하기를
要在當人能擇上(요재당인능택상)이라하니,
아호가 이르기를 긴요한 것은 당연히 공부인이 능히 선택한 것이라 하니,
중요한 것은 능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지요? 무엇이던지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선법을 공부한다던가, 뭐 학문을 한다던가, 뭐든 배우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얘기입니다.
擇善而從(택선이종)이 可也(가야)어늘, 맞는 것을 쫓아 선택하는 것이 가야다, 옳다
그런 얘기예요. 옳거늘, 어떤 것을 선택하냐하면 좋은 것을 선택한다.
善은 좋다는 의미도 있고, 착하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좋다, 맞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의 얘기입니다.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하거늘,
學者 往往(학자 왕왕)에 差決擇於發靭(차결택어발인)하야,
배우는 사람들, 학인들이 자주 자주 일을 시작하매 결정하고 선택함을 잘못해서
終 適越而北轅(종 적월이북원) 이로다, 마침내는 월나라로 가려고 했는데 북쪽나라
원나라도 가더라, 그런 말이지요.
동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서쪽으로 간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잘못 간다 이말입니다. 처음에 자기가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가더라. 그런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여기서 원 나라라는 것은 저 북쪽, 옛날 위그루나 아니면 몽고, 서로 견원지간이지요
월나라도 지금 말하면 월남쪽입니다.베트남쪽.
남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저 북쪽으로 가버리고 말더라.
乃至從上祖師(내지종상조사)의 遺編(유편)이 山積(산적)이라. 그랬어요
이제 조사스님이 남기신 유편(편이 엮을 편인데,엮었으니까 유고, 또는 말씀,
어록, 가르침 이런 것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산적이라
산과 같이 쌓였음이라. 우리가 산적하다는 말 있지요?
산과 같이 쌓였다 그런 뜻입니다.
“내 일이 산과 같이 쌓여서 산적했어.”그런 말씀입니다.
一話一言(일화일언)이 固無非綱領(고무비강령)이로대, 한 말과 한 말씀이, 한구절 한말씀이
그런 뜻입니다.일와 일언이라는 것은. 진실로 강요가 아닙니 없음이로되
강(綱)자는 벼리와 옷깃, 그물에 그물코마다 그물코가 아닌 것이 없으나
그 그물을 들어 올리는데는 벼리가 중요하고 벼리를 잡아야 모두 들어 올릴 수 있고
옷을 만드는데 옷 실로 이루어 짜졌으나 그 옷자락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옷깃을 잡아야 옷을 가지런히 잘 잡아 올릴 수 있다 그런 뜻으로 쓰인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그래서 강령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요즈음도 쓰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강령이라는 말도 선에서 온 용어인데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뜻도 모르고
쓰고 있는 언어들입니다.
“진실로 강령이 아님이 없음이로되”, 강(綱)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런 얘기지요.
“옛 조사 스님 말씀 하나 하나가 강(綱)이 아닌 것이 없다” 이 말이지요.
奈何世降聖遠(내하세항성원)에, 이 세상에 성인이 오셨다가 가심이 참 오래 됐어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가 가신지가 참 오래 됐지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 때는 벌써 천년 전 이야기이니까, 지금은 더 오래 됐지요
2500년이나 됐지요, 오래됨에.
情僞日滋하야, 마음이 좀 먹어, 거짓으로 나날이 불어날 滋 자이지요
불어 난다는 것은 콩이 불어 나듯이 불어 나는 것입니다.
날로 더 불어나서 거짓 된 것이 날로 더 불어나서 그런 얘기입니다.
정(情) 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 됨이 잘못 공부하고, 잘못 되어감이 점점 늘어간다”
그런 얘기입니다.
心意識(심의식)이 有以蠱蝕之(유이충식지)라. 그랬어요.
마음과 의식이 마치 벌레가 이파리를 먹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런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좀 먹는 것과 같다. 제가 좀먹는다고 새겨 놓았습니다만
일식이니 월식할 때 쓰는 蝕 자 입니다. 벌레가 좀 먹는다 그런 얘기지요.
則視綱領(즉시강령)하야, 곧 강령을 잘 봐서.
날로 좀 먹어가니까 강령을 잘 봐서
爲目縷者 蓋悤悤矣(위목누자 개총총의)리요. 그랬어요
바쁠 총(悤) 지요? 벼리와 실가닥을 삼는자 많으니
자, 바쁘고 바쁨을 어찌하리요. 그랬어요.
옛날의 성인의 말씀 또는 조사 스님의 말씀이 모두다 강령인데
이것을 잘 참고 해야 된다 그런 뜻으로 말씀 하신 것이지요.
그러니까 성인이 가신지가 오래 됐고 심의식이 자꾸 좀 먹으니 어찌 할꺼냐?
강령을 보고 어떤 것이 참 좋은 것인지, 실 인지 또는 그물코인지 뭐를 잘 봐야 된다.
그런 뜻으로 쓴 말이지요.
그러니까 벼리와 실가닥을 삼는자가 많으나 다 바쁘고 바쁠 뿐, 어찌하리요.
모두가 다 바쁘게 살아 간다 그런 얘기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근본을 망각하고 엉뚱한데 정신을 파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 모든 수행자들이 처음에 절에 들어갈 때에는 어떤 마음을 먹고 가느냐?
나도 절에 들어가서 10년만 노력하면 깨닫지 않겠느냐? 정말로 혼신을 다해 받쳐서
수행해 가지고 깨달으리라 그렇게 맘을 먹지만 3년 가기가 참 힘이 듭니다.
만약 이 세상에 입산 수행을 해서 선법을 닦는 사람 뿐만 아니라
학문을 하던, 사업을 하던, 무엇을 하던 간에 10년만 죽을 힘을 다 해서
애쓴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들이 10년을 못하지요.
만약 지금부터라도 여러분들께서 나는 참 선객이다. 이 선요를 열심히 공부해서
그야말로 한번도 안빠지고 선요를 잘 공부해 보겠다. 이렇게 마음 먹고
공부 하신다면 반드시 선요를 잘 이해 할 수 있고, 고봉 선사를 잘 이해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못하면 허송세월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여러분들께서도 이 좋은 시절에 좋은 시간을 내셨으니까
열심히 우리 선법을 잘 닦아서 고봉 화상께서 말씀하신 참뜻을 잘 이해하고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남기신 깨달음 법을 잘 이어 갔으면 합니다.
오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