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탐욕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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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카필라성 밖에 있는 니그로다 숲에 머물고 계실 때였다. 사캬족의 왕 마하나마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저는 오랫동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 마음의 더러움이라고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감사히 받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와 같은 번뇌가 제마음을 사로 잡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인이 제 마음에서 버려져야 할 것이 아직 버려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소, 마하마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아직도 당신 마음에서 가셔지지 않았기 때문이오. 만약 마음속에 그와 같은 번뇌가 말끔히 가셔졌다면 당신은 가정에서 살지 않을 것이며, 또 갖가지 탐욕에 허덕이지 않을 것이오. 탐욕이란 어디를 가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오. 탐욕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어 우리들을 절망의 구렁으로 떨어뜨리고 무서운 재앙을 불러들이오. 바른 지혜로써 그것이 그른 줄 알더라도 평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탐욕에 쫓기고 마는 것이오. 그것이 그른 것인 줄 바르게 알고 탐욕을 떠나 평안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탐욕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오.
이것은 내 경험이오만,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 탐욕이 우리를 절망으로 떨어뜨리고 무서운 재앙을 불러들이는 것임을 알기는 알았었소. 그러나 평안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 탐욕에 쫓기면서 지내왔던 것이오. 그 후 그것이 그른 줄 바르게 알고 평안의 경지에 이른 그때부터 비로소 탐욕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오 탐욕에는 즐거움과 재앙이 있소. 탐욕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마음에 드는 물건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이 그것이오.이 다섯 가지 탐욕에 대해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데 이것이 탐욕의 즐거움이오.
또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 벼룩 모기 뱀 들에 시달림을 받고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을 받소. 아무리 애쓰고 고생해 보아도 바라던 부자는 되지 않소. 그래서 낙담과 슬픔에 빠지게 되는 것이오. 아니 그처럼 애쓰고 고생한 끝에 부자가 됐다 합시다. 이제 그는 부(富)를지키기 위해 전에 없던 걱정 근심을 겪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왕에게 몰수당하지 않을까. 도둑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불에 태우지 않을까. 물에 떠내려 보내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귀찮은 친척들에게 뜯기지 않을까.' 이와 같이 온갖 걱정을 하지만 마침내는 몰수당하고 빼앗기고 떠내려 보내고 뜯기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내것이었는데 이제 하나도 내것이 아니구나 하고 비탄에 빠지오. 이것이 탐욕의 재앙이오. 우리가 겪는 현재의 괴로움은 모두 탐욕에 기인한 것이오.
그리고 그 탐욕 때문에 왕은 왕과 다투고 바라문은 바라문과 다투며 부모는 자식과 다투고, 형제끼리 친구끼리 서로 다투게 되는 것이오. 다투고 싸우고 욕질하다가 마지막에 몽둥이를 들거나 칼을 휘둘러 서로 죽이기까지 하니 이것이 탐욕의 재앙이오.
또 탐욕 때문에 사람들은 몸을 망치고 함부로 빼앗으며 간음을 행합니다. 왕은 이들을 붙들어 온갖 형벌을 가합니다. 채찍으로 갈기고 몽둥이로 치며 팔과 다리를 끊고 귀와 코를 자르오. 또 목에서 발끝까지 가죽을 벗기고 팔과 무릎을 쇠기둥에 못박아 불을 지르오. 끓는 기름을 몸에 부어 굶주린 개에게 주고, 몸을 말뚝에 매어 칼로 목을 베오. 이와 같은 고통이 모두 탐욕의 재앙인 것이오.
마하나마, 사람들은 이 탐욕 때문에 몸과 말과 생각으로 갖가지 악을 지어 죽은 후에는 지옥에 떨어져 온갖 고통을 받소. 이것이 다 탐욕의 재앙으로서 미래의 고통 또한 탐욕을 원인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오.'
마하나마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 中阿含 小苦蘊經
주제 : 마음을 맑히고 바른 법을 얻는 사념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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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쿠루수의 서울 캄마싯담마에 계실 때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의 마음을 깨끗이하고 걱정과 두려움에서 건지며 고뇌와 슬픔을 없애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유일한 길이 있으니 곧 사념처법(四念處法)이다. 과거 모든 여래도 이 법에 의해 최상의 열반을 얻었고, 현재와 미래의 여래도 이 법으로 열반을 얻을 것이다. 비구는그 몸(身)과 느낌(受)과 마음(心)과 법(法), 이 네가지에 대해 똑바로 관찰하고 끊임없이 정진하여 바른 생각과 지혜로써 세상의 허욕과 번뇌를 끊어 버려야 한다.
어떤 것이 몸을 바로 관찰하는 법인가. 비구가 숲속이나 나무 밑, 혹은 고요한 곳에서 몸을 바로하고 앉아 오로지 한 생각으로 호흡을 조절하되, 길게 들이 쉬고 내쉴 때에는 그 길다는 것을 알고, 짧게 들이 쉬고 내쉴 때에는 그 짧다는 것을 알아라. 온 몸으로 들이 쉬고 내쉬는 것을 알아 마음을 다른 데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이 몸을 관찰하되, 몸이 어디 갈 때에는 가는 줄 알고 머물 때에는 머무는 줄 알며, 앉고 누울 때에은 앉고 누웠다는 상태를 바로 보아 생각이 그 몸의 동작 밖에 흩어지지 않게 하여라. 어떤 사물에도 집착하지 말고 다만 이 몸 관찰하는 데에 머물게 하여라. 이과 같이 이 몸의 굴신과 동작의 상태를 사실대로 관찰하여 한 생각도 흩어지지 않게 되면, 몸에 대한 형상이 눈앞에 드러나 바른 지혜가 나타나며, 이 세상 어떤 환경에도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이 몸이 애초에 무엇으로써 이루어졌는지 사실대로 관찰해야 한다. 이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 네가지 요소가 한데 어울려 된 것임을 밝게 보아야 한다. 솜씨 있는 백정이 소를 잡아 사지를 떼어 펼쳐 놓듯이 비구도 이 몸을 네 요소로 갈라 눈앞에 드러내 놓아야 한다.
숲속에 버려진 시체가 하루 이틀 지나면 부어 터지고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이 몸은 그렇게 되고 말리라고 알아야 한다. 그 형상이 눈앞에 역력하면 모든 허망한 경계에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숲속에 버려진 시체의 백골, 한두 해 지나 무더기로 쌓인 백골, 다 삭아 가루가 된 해골을 보는 것과 같이 비구들도 그 몸을 주시하되, 이 몸도 저 꼴을 면치 못하리라고 관찰하면 세상의 모든 집착을 버리게 될것이다. 비구는 몸에 대해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때와 장소를 따라 그느끼는 작용에 대해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 느낌에는 세 가지가 있다. 괴로움을 느끼는 작용, 즐거움을 느끼는 작용,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는 작용이다. 즐거움을 누릴 때는 즐거운 줄 알고, 괴로움을 당할 때는 괴로운 줄 알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을때는 또한 그런 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자기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사실대로 관찰하고 타인의 느낌도 객관적으로 관찰하면 그 느낌이 눈앞에 나타난다. 느낌이 시시로 변해 고정된 괴로움이나 즐거움, 고정된 불고(不苦) 불락(不樂)이 없음을 알아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가 느낌에 대해 관찰하는 법이다.
또 어떤 것이 마음을 관찰하는 법인가. 마음에 탐심이 일어나면 '이것이 탐심이구나' 라고 알고, 탐심을 버리면 버린 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성내는 마음,어리석은 마음, 뒤바뀐 마음, 넓은 마음, 좁은 마음, 고요한 마음, 산란한 마음, 해탈한 마음,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스스로 낱낱이 안팎으로 살피고, 그 마음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관(觀)하여 눈앞에 대하듯 하면 세상의 어떤 집착이라도 놓아 버리게 된다. 이것이 마음을 바로 관찰하는 법이다.
끝으로 어떤 것이 관찰하는 것인가. 안으로 탐욕이있으면 있는 줄 알고 없으면 없는 줄 알며, 또 탐욕이 일지 않았더라도 일어나 것으로 관하고, 일어났을 때에는 없어진 것으로 관하며, 이미 없어진 것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내는 마음, 졸음, 산란한 마음, 의혹 등도 안팎으로 관하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하여, 그것이 뚜렷하게 눈앞에 드러날 때에는 세상의 모든 집착을 버리게 될 것이다. 비구들, 누구든지 이 사념처관을 단 한달만이라도 법대로 닦으면 탐욕과 불선법(不善法)을 떠나 성인의 길에 들게 될 것이다. 이 사념처관은 중생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걱정과 두려움에서 건져내며,고뇌와 슬픔을 없애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비구들은 이와 같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다들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中阿含 念處經
주제 :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모두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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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것〉이라는 잘못된 소견이 일어날 수 있는 다섯 가지 경우가 있다. 그것은 물질(色)과 감각(受)과 생각(想)과 의지작용(行)과 의식(識)이다. 무지해서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고 가르침을 모르는 사람은 이 다섯 가지 경우에 대해서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나〉다' 라고 생각하여 그것에 집착한다. 그러나 많이 배우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며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그 다섯 가지에 대해서 그와 같이 생각하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이 없어졌다고 하여 바른 생각을 잃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이때 어떤 비구가 물었다.
"부처님, 어떤 외계의 사물로 인해 바른 생각을 잃고 두려움에 떠는 일이 있겠습니다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이것이 전에는 내것이었는데 이제는 내것이 아니다. 다시 내 소유로 만들 수는 없을까? 그래서 그는 슬퍼하고 탄식하며 가슴을 치고 운다. 이것이 외계의 사물로 인해 바른 생각을 잃거나 두려움에 떠는 일이다. 그러나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않고 가슴을 치고 울지 않는다면 그는 외계의 사물로 인해 바른 생각을 잃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부처님, 그렇다면 마음속의 어떠한 것으로 인해 바른 생각을 잃고 두려움에 떠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 세계와 나 자신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나는 없다' 고 하는 여래의 가르침을 들으면 슬퍼하고 탄식하며 가슴을 치고 울것이다. 이것이 마음속의 어떠한 것으로 인해 바른 생각을 잃고 두려움에 떠는 일이다. 너희들은 영원히 변치 않고 지속되는 것을 가지고 있거나 본 일이 있느냐?"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실체도 없는 〈나〉에 집착하면 항상 근심과 고통이 생기는 법이다. 내가 있다면 내것이 있을 것이고, 내것이 있다면 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내것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세계와 내가 영원히 변치 않고 존재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소견이다. 이 가르침을 안 제자들은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들어서 물질과 분별을 싫어하고 욕망을 버리고 해탈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구를 가리켜 장애를 벗어난 자, 장애를 부순 자, 번뇌의 기둥을 빼어버린 자,걸림이 없는 자,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자, 속박을 벗어난 성자라 부른다.
이와 같이 말한 내게 대해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저 사문 고타마는 사람의 몸과 마음이 없어져버린다고 가르치는 자다' 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와 같이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현재의 고뇌를 말하고 그 고뇌를 끊어 없애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아무리 남들이 비난하고 욕하더라도 나는 조금도 마음을 쓰거나 원한을 품지 않는다. 또 누가 칭찬하고 공경할지라도 나는 조금도 기뻐하거나 우쭐거리지 않는다. 비난하거나 칭찬하거나 나는 '그들이 내게 이렇게 하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다' 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너희 것이 아닌 것은 모두 버려라. 그것을 버리면 영원한 평안을 누릴 것이다. 너희 것이 아니란 것은 무엇인가. 물질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물질을 버려라. 감각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감각을 버려라. 생각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생각을 버려라. 의지 작용(意志作用)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의지 작용을 버려라. 의식은 너희 것이 아니다. 그 의식을 버려라. 어떤 사람이 이 숲속에 와서 풀과 나뭇가지를 날라다 불사른다고 하자. 너희들은 이때 그는 우리 물건을 날라다 마음대로 불사른다고 생각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것들은 나도 아니고 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것은 버려라. 그것을 버리면 너희는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 南傳 中部 蛇喩經
주제 : 욕심을 버리고 버렸다는 생각도 갖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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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베사카라 숲에 계실 때 아니룻다(阿那律)는 파치나 숲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선정(禪定)에 들어 생각하였다.
'아, 이 도(道)은 욕심이 없는 데서 얻는 것이고, 욕심이 있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구나. 이 도는 만족할 줄 아는 데서 얻는 것이고, 족할 줄 모르면 얻을 수 없다. 이 도는 군중을 멀리 떠남으로써 얻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번거로움 가운데서는 얻을 수 없다. 이 도는 정진으로써 얻는 것이고, 게으르면 얻을 수 없다. 이 도는 바른 생각으로써 얻는 것이고, 그릇된 생각으로는 얻을 수 없다. 이 도는 고요 속에서 얻는 것이고, 시끄러운 속에서는 얻을 수 없다. 이 도는 지혜로운 사람이 얻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때 아니룻다의 생각을 아시고 아니룻다 앞에 나타나셨다.
"착하다, 아니룻다. 너는 대인(大人)의 깨달음을 생각하고 있구나. 그 다음 한 가지는 부질없는 궤변을 하지 않는 일이다. 너는 여덟 가지 대인의 깨달음을 생각해 수행하는 동안 욕심과 옳지 못한 것을 버리고 여기에서 일어나는 기쁨을 맛보아 초선(初禪)을 거쳐 제이, 제삼, 제사 선의 경지에 들어갈 것이다. 네가 이 대인의 깨달음을 생각하고 제사선(第四禪)의 기쁨에 들어가면, 여인들이 여러 가지 옷을 옷장에 가득 채워 두고 즐거워하듯이 만족함을 느끼고 기쁨에 넘쳐 다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열반의 길을 가는 너는 남루한 옷도 마음에 들 것이고, 빌어먹는 밥도 맛이 있을 것이며, 나무 밑 풀자리에 앉아도 마음은 늘 즐거울 것이고, 병들어 누워 있을 때 썩은 거름으로 만든 약이라도 만족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신 뒤 다시 베사카라 숲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비구들에게 위에서 말한 여덟 가지 대인의 깨달음을 가르치고 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 욕심을 적게 가졌다고 해서 나는 욕심을 적게 가졌다고 말하지 말라. 만족함을 알았다고 해서 나는 만족할 줄 알았다고 말하지 말라. 멀리 떠나는 것을 즐거워 한다고 해서 나는 멀리 떠나는 것을 즐거워한다고 말하지 말라. 궤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궤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이것이 욕심을 적게 가지는 법이다.
또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의식주나 약을 얻더라도 그것을 만족하게 여김이다. 멀리 떠나는 법이란 비구의 처소에 어떤 비구, 비구니, 신남(信男), 신녀(信女) 혹은 왕이나 이교도가 오더라도 비구는 멀리 떠나는 것을 즐기는 마음에서 진실한 법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정진하는 법은 비구가 나쁜 법을 버리고 좋은 법을 얻기 위해 정진할 때에 확고하게 선법(善法)에 대한 책임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바르게 생각하는 법이란 비구가 바른 생각을 가지고 이전에 해온 온갖 바르지 못한 말과 행동을 돌이켜 보고 새로운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법이란 법의 흥성하고 쇠함을 지혜로 살펴 네 가지 진리(四聖諦)의 도리를 잘 아는 것이다. 궤변을 즐기지 않는 법이란그 마음이 궤변 없는 경지로 나아가 부질없는 이론이 끊겨진 경지에 이르러 마음이 해탈하는 것이다."
- 中阿含 八念經
주제 : 난폭한 사람은 침묵으로 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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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는 부처님의 얼굴빛이 오늘처럼 빛나고 화평스러운 것을 일찌기 보지 못했다. 금빛처럼 빛나는 얼굴을 보고 그는 끓어앉아 여쭈었다.
"제가 부처님을 모신 지 이십여 년이 되었지만 오늘처럼 얼굴빛이 빛나고 화평하신 것을 일찌기 보지 못했습니다. 그 뜻을 알고 싶습니다."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아난다, 그것은 두 가지 인연으로 그러하다. 두 가지 인연이란 내가 바른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열반에들 때이다. 내가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들려고 해서 안색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아난다는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찌 그렇게 빨리 열반에 드시렵니까? 세상에 빛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춘다(純陀)에게 가서 걱정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하여라. 여래에게 공양한 인연으로 좋은 과보을 받을 것이라고 위로해 주어라. 너도 잘 알아 두어라. 반드시 여래를 공경하고 교법을 배우고 섬겨야한다."
이 말씀은 듣고 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찬다카(車匿) 비구는 성미가 급하고 괴퍅하며 욕지거리를 잘하고 말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후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가 열반하고 난 후에는 찬다카를 위해 대중들이 침묵을 지키고 그를 상대해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은 부끄러움을 느껴 저절로 뉘우치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자리를 깔게 하셨다. 그리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무릎을 굽혀 다리를 포개고 누워 성인의 바른 지혜를 생각하셨다.
- 長阿含 般泥洹經
주제 : 나라를 다스리는 일곱 가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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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영축산에서 천 이백 오십 명의 비구들과 계실 때였다. 마가다의 왕 아자타삿투는 밧지국과 서로 좋지 않은 사이였다. 어는 날 왕은 여러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밧지국은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많으며 땅이 기름지다. 해마다 풍년이 들고 진기한 것이 많이 나는 것만을 믿고 나에게 굴복하지 않으니 쳐들어가 정복하고야 말겠다"
왕은 바라문 출신인 어진 신하 우사(雨舍)에게 자기 대신 부처님을 찾아 뵙고 가르침을 받아 오도록 분부했다. 우사는 오백 대의 수레에 기마 이천 마리와 부하 이천 명을 데리고 영축산으로 향했다.
그는 부처님을 뵙고 공손히 끓어앉아 여쭈었다.
"마가다의 왕 이자타삿투는 부처님께 머리 숙여 거처가 편안하고 기력이 좋으신지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고맙소. 왕과 온 백성들과 당신도 다 평안하십니까?"
우사는 찾아온 뜻을 말했다.
"임금님은 밧지국과 뜻이 맞지 않아 여러 신하들과 의논한 끝에 그 나라를 정복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자 저를 보낸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일찌기 밧지국에 머무르면서 본 일인데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근엄합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일곱 가지 법을 말한 적이 있소. 만일 지금도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면 날로 더욱 흥할지언정 쇠약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사는 합장을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여쭈었다.
그 일곱 가지 법을 들려 주십시오. 어떻게 실행하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너는 밧지국 사람들이 자주 모임을 가지고 바른 일을 서로 의논하여 몸소 지킨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른과 젊은이들은 서로 화목하여 갈수록 흥할 것이다. 그 나라는 언제나 안온하여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너는 또 밧지국의 임금과 신하가 화목하고 위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공경한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언제나 안온하여 갈수록 흥성하고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너는 밧지국 사람들이 법을 받들어 삼가해야 할 것을 알고 예의를 어기지 않는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또 밧지국 사람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여 순종한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조상을 공경하여 제사를 지낸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너는 또 그 나라의 부녀자들이 정숙하고 진실하며 웃고 농담할 때라도 그 말이 음난하지 않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 나라 사람들이 수행자를 공경하고 계행이 청정한 이를 존경하여 보호하고 공양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른과 젊은이들은 서로 화목하여 갈수록 더 흥성할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는 언제나 안온하여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일곱 가지 법을 실행하면 어떤 적이라도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우사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밧지국 사람들이 이 일곱 가지 중에서 하나만을 지닐지라도 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일곱 가지를 다 지킨다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나라 일이 많으므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는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자리를 떠났다.
- 長阿含 遊行經
주제 : 땅꾼이 뱀을 잡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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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독수리 잡기를 좋아하는 아리타 비구는 나쁜 소견은 가지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이 언젠가 말씀한 '장애'라는 법도 그걸 직접 실행해 보니 그렇게 장애가 되지 않더라고 말했다. 다른 비구들은 그릇된 그의 소견을 고쳐 주려고 토론도 하고 타이르기도 해 보았지만 아무 보람이 없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아리타를 불러 꾸짖으신 후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땅군이 큼 뱀을 보고 그 몸뚱이나 꼬리를 붙잡았다고 하자. 그때 뱀은 몸을 뒤틀어 붙잡은 손을 물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죽거나 죽을 만큼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뱀 잡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여래의 교법을 배우면서도 가르침의 뜻을 잘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진리를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토론 할 때 말의 권위를 세우려고 곧잘 여래의 교법을 인용하지만 그 뜻을 몰라 난처하게 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여래의 가르침을 들으면 그 뜻을 깊이 생각하여 진리를 바르게 알므로 항상 기쁨에 싸여 있다. 이를테면 어떤 땅군은 큼 뱀을 보면 곧 막대기로 뱀의 머리를 꼭 누른다. 그때 뱀은 자기를 누르는 속이나 팔을 감는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그 때문에 물려 죽거나 죽을 만큼의 고통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뱀 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남전 중부 독유경 -
주제 : 뗏목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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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비구들의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이 집착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 뗏목의 비유를 들겠다. 어떤 나그네가 긴 여행 끝에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는 생각하기를 '바다 건너 저쪽은 평화로운 땅이다. 그러나 배가 없으니 어떻게 갈까? 갈대나 나무로 뗏목을 엮어 건너가야겠군'하고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바다를 건너갔다.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이 뗏목이 아니었다면 바다를 건너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뗏목은 내게 큰 은혜가 있으니 메고 가야겠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가 그렇게 함으로써 그 뗏목에 대해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느냐?"
비구들은 하나같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부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해야 자기 할 일을 다 하게 되겠는가? 그는 바다를 건너고 나서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뗏목으로 인해 나는 바다를 무사히 건너 왔다. 다른 사람들도 이 뗏목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물에 띄워 놓고 이제 나는 내 갈 길을 가자.' 이와 같이 하는 것이 그 뗏목에 대해서 할 일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뗏목의 비유로써 교법을 배워 그 뜻을 안 후에는 버려야 할 것이지 결코 거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 뗏목처럼 내가 말한 교법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법(法) 아닌 것이야 말할 것 있겠느냐."
- 남전 중부 독유경 -
주제 : 독화살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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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말룽캬라는 존자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한한 것인가 유한한 것인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 것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아니면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는가?"라고 질문을 했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약 부처님이 나를 위해 세계는 영원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따라 도를 배우지 않겠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 문제를 풀지도 못한 채 도중에서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독 묻은 화살을 맞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을 때 그 친족들은 곧 의사를 부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되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겠소. 성은 무어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신분인지를 알아야 겠소. 그리고 그 활이 뽕나무로 되었는지 물푸레나무로 되었는지, 화살은 보통 나무로 되었는지 대로 되었는지를 알아야 겠소. 또 화살 깃이 매의 털로 되었는지 독수리 털로 되었는지 아니면 닭털로 되었는지를 먼저 알아야겠소.'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는 그것을 알기도 전에 온 몸에 독이 번져 죽고 말 것이다.
세계가 영원하다거나 무상하다는 이 소견 때문에 나를 따라 수행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세계가 영원하다거나 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생노병사와 근심 걱정은 있다. 또 나는 세상이 무한하다거나 유한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와 법에 맞지 않으며, 수행이 아니므로 지혜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고, 열반의 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한결같이 말하는 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이다. 어째서 내가 이것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하면, 이치에 맞고 법에 맞으며 수행인 동시에 지혜와 깨달음의 길이며 열반의 길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알고 배워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말룽캬를 비롯하여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했다.
- 중아함 전유경 -
주제 : 법을 보는 이는 여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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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라자가하 성밖 죽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그 무렵 박칼리라는 비구는 라자가하에 있는 어떤 도공의 집에서 앓고 있었다. 병은 날로 위독해 회복하기 어려워졌다. 그는 곁에서 간호하고 있는 스님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스님 , 미안하지만 부처님이 계시는 죽림정사에 가서 부처님께 제 말을 전해 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내 병은 날로 더해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소원으로 저는 부처님을 한번 뵙고 예배를 들이고 싶은데, 이 몸으로는 도저히 죽림정사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저의 뜻을 부처님께 좀 사뢰어 주십시오"
간호하던 스님은 부처님을 찾아가 박칼리의 소원을 여쭈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그 길로 성안에 있는 도공의 집으로 오셨다. 박칼리는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앓는 몸을 뒤척였다. 부처님은 박칼리의 머리맡에 앉아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지 못하게 한 다음 말씀하셨다. "박칼리야, 그대로 누워 있거라. 일어날 것 없다. 병은 좀 어떠나, 음식은 무얼 먹느냐?"
박칼리는 가느다란 소리로 말했다.
"부처님, 고통은 심하고 음식은 통 먹을 수가 없습니다. 병은 더하기만 하여 소생할 가망이 없습니다."
"박칼리야, 너는 어떤 후회되는 일이나 원통하게 생각되는 일은 없느냐?"
"부처님, 저는 적지 않은 후회와 원통하게 생각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찾아 뵙고 예배를 드리고 싶었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후회되고 원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처님은 정색을 하고 말씀하셨다.
"박칼리야, 이 썩어질 몸뚱이를 보고 예배를 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법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보는 사람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를 보려거든 법을 보아라."
부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형체를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형체는 덧없는 것입니다"
"감각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것도 덧없는 것입니다."
"박칼리야, 덧없는 존재는 괴로움이다. 괴로운 것은 주체가 없다. 또 덧없는 것에는 나와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봄으로써 내 제자들은 형체와 감각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을 싫어하고 욕심을 떠나 해탈하고 해탈의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박칼리는 지혜의 눈을 떴다.
- 잡아함 발가리경 -
주제 : 진정으로 세속을 벗어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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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강가강을 건너 앙가국 아바나라는 마을 밖 숲 속에 머물러 계실 때였다. 하루는 거리에 들어가 밥을 빌고, 숲으로 돌아오니, 장자(長者) 포타리야가 양산을 받고 신을 신은 채 숲속을 거닐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을 보자 가까이 와서 인사한 뒤 앉지도 않고 머뭇거렸다. 부처님은 그를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장자님, 자리가 있으니 앉으시오."
포타리야는 장자라고 불린 것이 못마땅해 잠자코 있었다. 부처님이 거듭 권하자 입을 열었다.
"부처님 나를 장자라고 부르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장자의 차림을 하고 있지 않소?"
"나는 처자와 살림을 버리고 세속을 떠난 사람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처자와 살림을 버리고 세속을 떠났소?"
"나는 내 재산 전부를 아들에게 물려 준 뒤 아무 간섭 없이 다만 옷과 먹을 것만 받으면서 숨어 살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림을 버리고 세속을 떠났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세속을 떠났다는 것은 내가 말하는 세속을 떠났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말하는 세속을 떠났다는 뜻을 말씀해 주십시오."
"내 가르침에는 여덟 가지 법으로 세속을 떠나오. 그 여덟 가지란,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남이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화합을 깨뜨리지 않으며, 탐욕을 버리고 성내지 않으며, 시기하지 않고, 그리고 교만을 버리는 일 등이오. 그러나 이것으로도 세속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오. 세속을 완전히 떠나는 법은 따로이 있소"
"그 법도 말씀해 주십시오."
"장자님, 이를테면 굶주린 개에게 살이 조금도 붙어있지 않은 뼈를 던져 준다면 개는 굶주림을 달리지 못할 뿐 아니라 그 뼈로 인해 피로와 고달픔은 더할 것이오. 내 제자는 이 뼈의 비유처럼 바른 지헤로 쾌락을 잘 살펴 그것은 고통과 불행의 씨라고 사실대로 알아 오욕(五欲)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오.
독수리나 솔개 같은 날짐승이 고깃덩이 하나를 가지고 날아갈 때 다른 사나운 새가 쫓아와 그것을 덮치려 한다면, 새들은 그 고깃 덩어리를 버리지 않는 한 서로 싸워 죽거나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될 것이오. 또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때 그 횃불을 버리지 않는 한 손을 데거나 타 죽게 될 것이오.
향락은 꿈과 같아 깨어 보면 아무것도 없소. 무서운 독사를 보고 손을 내밀면서 물으라고 할 사람은 없을것이오. 남의 돈을 함부로 빌려 쓰면 마침내는 빚장이에 몰려 곤란을 당할 것이오. 나무 열매가 익은 것을보고 올라가 따먹고 있을 때 누가 도끼로 나무 밑동을 찍는다고 합시다. 그때 나무에 오른 사람이 얼른 내려오지 않으면 손발을 다치거나, 나무에서 떨어져 죽게될 것이오.
이것이 모두 욕락에 대한 비유입니다. 내 가르침을받는 제자들은 이런 비유와 같이 욕락을 관찰하고, 그것은 고통과 불행의 씨라고 바른 지혜로써 사실 그대로를 알아 세상 욕심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있소. 내 제자들은 이렇게 해서 얻은 청정으로 이 세상에서 해탈을 얻소. 이것을 내 가르침에서는 세속을 완전히 떠나는 법이라 하오. 당신도 이와 같이 세속을 떠났습니까"
"부처님, 어떻게 제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전에 다른 가르침에 빠져, 모르는 것을 안다 하고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르는 것을 모르는 줄 알고, 아는 것을 아는 줄 알았습니다.부처님께서는 저에게 사문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존경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목숨을 다할 때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도가 되겠습니다."
- 南傳 中部 포타리야經
주제 : 질그릇이 깨지듯 삶은 반드시 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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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어느날 파세나디왕은 나라 일로 성 밖에 나가 있었다. 그때 왕의 어머니는 백살이 가까운 나이로 오래 전부터병석에 누워 있었는데, 불행히도 왕이 나가고 없는 사이에 돌아갔다.
지혜로운 신하 불사밀은 효성스런 왕이 이 불행한 소식을 들은면 슬퍼할까 염려한 끝에 어떤 방편을 써서라도 왕의 슬픔을 덜어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백 마리의 코끼리와 말과 수레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수많은 보물과 기녀들을 실은뒤 만장을 앞세워 풍악을 잡히면서 상여를 들러싸고 성 밖으로 나갔다. 왕의 일행이 돌아오는 도중에 만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왕은 호화로운 상여를 보고 마중 나온 불사밀에게 물었다.
"저것은 어떤 사람의 장례 행렬인가?"
"성 안에 사는 어떤 부잣집 어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왕은 다시 물었다.
"저 코끼리와 말과 수레는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그것들은 염라왕에게 갖다 바치고 죽은 어머니의 목숨을 대신하려고 한답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했다.
"어리석은 짓이다. 목숨이란 멈추게 할 수도 없지만 대신할 수도 없는 것. 한번 악어의 입에 들어가면 구해낼 수 없듯이, 염라왕의 손아귀에 들면 죽음은 면할 수 없다."
"그러면 여기 오백명의 기녀들로 죽은 목숨을 대신 하겠다는 것입니다"
"기녀도 보물도 다 쓸데 없는 짓이다"
"그러면 바라문의 주술과 덕이 높은 사문의 설법으로 구원하겠다고 합니다"
왕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은 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한번 악어 입에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것. 생이 있는데 어찌 죽음이 없겠는가. 부처님께서도 한번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거늘."
이때 불사밀은 왕 앞에 엎드려 말했다.
"대왕님, 말씀하신 바와 같이 모든 생명 있는 것은반드시 다 죽는 법입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태후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놀랐다.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착하다, 불사밀. 그대는 미묘한 방편으로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구나. 그대는 참으로 좋은 방편을 알고 있다"
파세나디왕은 성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향과 꽃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께 공양하고 나서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로 수레를 몰았다. 전에없이 한낮에 찾아온 왕을 보고 부처님은 물으셨다.
"이 대낮에 웬 일이시오?"
"부처님, 저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백살이 가까운 어머님은 매우 노쇠했지만 저는 한결같이 공경해왔습니다. 만약 이 왕의 자리로 어머님의 죽음과 바꿀수 있다면, 저는 왕위뿐 아니라 거기에 다른 말과 수레와 보물과 이 나라까지도 내놓겠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살아 있는 모든 목숨은 반드시 죽는 법입니다. 모든 것은 바뀌고 변하는 것, 아무리 변하지 않게 할려 해도 그렇게 될 수는 없소. 마치 질그릇은 그대로 구운 것이건 약을 발라 구운 것이건, 언젠가 한번은 부서지고 마는 것과 같소. 네 가지 두려움이 몸에 닥치면 그것은 막을 수 없는 것이오.
그 네 가지란, 늙음과 질병과 죽음과 무상이오. 이것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아낼 수 없소. 마치 큰 산이 무너져 사방에서 덮쳐 누루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것과 같소. 견고하지 못한 것은 아예 믿을 것이 못되오. 그러므로 법으로 다스려 교화하고 법아닌 것을 쓰지 마시오. 법으로 다스려 교화하면 그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천상에 태어나지만, 법 아닌 것으로 다스리면 죽은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오."
왕은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나니 여러가지 슬픔과 근심이 사라집니다. 나라 일이 많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파세나디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물러갔다.
- 增一阿含 四意斷品
주제 : 행위에 대한 세가지 그릇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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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기원정사(祈園精舍)에 계실 때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세가지 그릇된 견해를 가진 외도(外道)이 있는데, 슬기로운 사람들은 그것을 밝게 가려내어 추종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러한 견해를 따른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부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가지 그릇된 견해란 어떤 것인가. 첫째, 어떤 사문이이나 바라문은 '사람이 이 세상에 경험하는 것은 괴롭든 즐겁든 모두 전생의 업에 의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둘째,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은 자재천(自在天)의 뜻에 의한 것이다' 라고 한다. 세째, 혹은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 고 말한다.
나는 언제나 무엇이나 전생의 업에 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 의견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었다.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사람을 죽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음행하고 거짓말하고 탐욕과 성냄과 삿된 소견을 갖는 것도 모두 전생에 지은 업에 불과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이 일은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판했었다.
또 모든 것은 자재천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약 당신들의 주장대로라면 살생하는 것도 자재천의 뜻이고, 도둑질이나 음행이나 그릇된 소견을 갖는 것도 자재천의 뜻에 의한 것일게다. 그렇다면 이 일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이 일은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필요 없이 마음 내키는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판했었다.
그리고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당신들의 주장대로라면 살생하는 것에도 인과 연이 없고 그릇된 소견을 갖는 것에도 인과 연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에 인연이 없다고 한다면, 이일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이 일을 해야겠다는 의지도 노력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제력도 필요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을 정당한 사문 혹은 바라문이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비판했었다.
비구들, 이것이 그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주장하는 사문이나 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비판이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부정되고 마침내는 커다란 혼란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슬기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그릇된 의견을 잘 가려내어 버림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이치로써 차근차근 설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릇된 소견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셨다.
사리풋타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제자의 바른 견해이며, 진리에 대해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통달할 수 있는 길이겠습니까. 불제자는 먼저 어떤 것이 불선법(不善法)인지, 불선법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어떤 것이 선법(善法)인지, 선법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제자의 바른 견해로 그 보는 바가 올바르고 절대적인 신념으로 진리에 통달할 수 있는 길입니다.
불선법이란 산 목숨을 죽이는 일,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일, 사음(邪淫), 거짓말, 악담, 이간질, 꾸미는말, 탐욕, 성냄, 그릇된 소견 등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불선법의 근본은 또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있습니다.
선법이란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으며, 사음을 하지 않고, 거짓말과 악담과 이간질과 꾸미는 말을 하지 않으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버린 것을 말하며, 이러한 선법의 근본은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음에 있습니다.
부처님 제자들이 이와 같은 불선법과 그 근본을 알고 또 선법과 그 근본을 알면, 그는 탐욕과 성냄의 번뇌를 없애어 〈나〉를 내세우려는 아만을 버리고 무명(無明)을 끊고, 지혜의 등불을 밝혀 현실의 괴로움을 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 제자의 바른 견해로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올바른 진리를 통달하게 되는 길입니다"
비구들은 사리풋타의 말을 듣고 모두 기뻐하였다.
- 中阿含 三度經
주제 : 사람의 귀천은 신분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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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사밧티의 녹자모강당(鹿子母講堂)에 계실 때였다. 바라문 출신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한 바셋타와 바라드바자에게 부처님은 물으셨다. "바라문 중에서도 뛰어난 너희들이 집을 버리고 출이 사문의 생활을 하니 바라문들이 혹시 너희를 보고 비난하지 않더냐"
바셋타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 바라문들은 남을 멸시하는 버릇으로 저희를 비난하며 욕하고 있습니다"
"어떤 말로 비난하고 욕을 하더냐 ?"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 중에 바라문만이 가장 높은 종족이고 그 밖에는 다 하잘것 없은 낮은 종족이다. 바라문은 살빛이 희고 다른 종족은 살빛이 검다. 바라문만이 오직 순수한 범천(梵天)의 혈통을 받은 종족이다. 바라문만이 범천의 입에서 나왔고 범천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범천의 상속자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고귀한 계급을 등지고 미천한 계급의 사람들과 가까이 사귀고 있으니 그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머리 깍은 사문 가운데는 범천의 발에서 나온 천한 자들도 있지 않느냐.' 이러한 말로 저희를 비난하고 욕합니다"
"바셋타,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 바라문도 시집가고 장가가며 여인은 임신해서 아이를 낳고 있지 않더냐. 그들의 출생도 다른 사람과 꼭 같으면서 어떻게 바라문만이 최상의 종족이고 범천의 입에서 나왔으며 범천의 상속자라고 남을 욕하고 업신여긴단 말이냐. 세상에는 왕족과 바라문과 평민과 노예등 네 가지 계급이 있다. 그러나 왕족이라고 해서, 남의 생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하거나 음란한 짓을 하고 거짓말과 이간질 악담을 하며 탐욕과 성냄과 그릇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도 또한 죄를 범하게되며 그 갚음을 받게 된다. 바라문이나 평민 노예도 이와 마찬가지다.
또 왕족이 남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약탈과 음행과 거짓말과 이간질, 악담, 탐욕, 성냄 등에서 벗어나 바른 견해를 지녔다면, 그것은 착한 일이며 착한 갚음을 받게 된다. 이것은 바라문이나 평민이나 노예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바라문만이 최상의 종족이요 나머지은 미천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네 가지 종족이나 계급은 그 사람의 혈통이나 신분으로서 차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똑같은사람이다. 누구든지 번뇌가 없어지고 청정한 계행이 성취되어 생사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완전한 지혜을 얻어 해탈의 도를 이루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사성(四姓)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태생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고 성이 다르고 가계이 다르더라도 너희가 출가하여 집을 버린 수행자가 되었을 때 저 바라문들이 '너희는 무엇이냐? '고 묻거든 '우리는 샤카족의 자손이다. 사카무니의 진정한 아들이다. 우리는 그의 입에서 나왔으며 법에서 났으며 법의 상속자이다' 라고 대답하여라 너희는 여래를 의지하여 새로 얻어 성취된 청정한 계행의 몸이요, 선정의 몸이요, 지혜의 몸이요, 해탈의 몸이요, 해탈지견의 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