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10 13:39
[경전공부방] [아함경] 아함경 -1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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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戒)정(定) 혜(慧)를 닦으라

부처님은 아난다와 함께 콜리성 북쪽의 한 나무 아래 머무르시며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선정(禪定)을 닦으며 지혜를 구하여라. 청정한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지 아니하고, 선정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되며, 지혜를 구하는 이는 애욕에 매이지 않으므로 하는 일에 걸림이 없다.계, 정, 혜가 있으면 덕이 크고 명예가 널리 퍼지리라. 또 세 가지 허물을 떠나면 마침내 아라한(阿羅漢)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이 몸으로 삼매(三昧)을 얻고자 하면 부지런히 깨닫기를 구해 이 생이 다하도록 청정한 도에 들어가라. 마땅히 실행할 것을 행하면 죽은뒤에 다시 윤회(輪廻)하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은 아난다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제자들에게 세 가지 요긴함을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계를 지니고 선정을 생각하며 지혜를 깨달으라.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는 사람은 덕망이 높고 명예가 드날리게 될 것이다. 음란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과 잡된 생각이 없어질 것이니, 이것을 일러 해탈(解脫)이라 한다. 이 계행(戒行)이 있으면 저절로 선정(禪定)이 이루어지고, 선정이 이루어지면 지혜가 밝아지리니, 이를테면 흰 천에 물감을 들여야 그 빛이 더욱 선명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세 가지 마음이 있으면 도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고, 일심으로 부지런히 닦으면 이 생을 마친 후에는 청정한 데에 들어갈 것이다. 이와 같이 행하면 스스로 이 몸을 버리고 다시 나지 않은 줄을 알아라.

 


만약 계, 정, 혜의 행을 갖추지 못하면 윤회에서 벗어 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갖추면 마음이 저절로 열리어, 문득 천상. 인간, 지옥, 아귀, 축생 들의 세상을 보게 되고, 온갖 중생들의 생각하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시냇물이 맑으면 그 밑에 모래와 돌자갈의 모양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깨달은 사람은 마음이 밝으므로 보고자 하는 것이 다 나타난다. 도를 얻으려면 먼저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마치 물이 흐리면 그 속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마음을 깨끗이 지니지 못하면 세상에 나고 죽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스승이 보고 말하는 것은 제자들이 마땅히 실행해야 할 것이다. 스승이라 할지라도 제자의 마음 속에 들어가 그 생각을 잡아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이 청정한 사람은 도를 스스로 얻을 것이다. 여래는 청정함을 가장 즐거워 한다."

 


- 長阿含 般泥洹經-

 


주제 : 네 가지 진리(사성제) 

 


부처님이 파탈리풋타로 가시던 도중 라자가하(王舍城)에서 멀지 않은 왕원(王園)에 쉬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도를 닦는 이는 반드시 네 가지 진리를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해 오랫동안 바른 길에서 벗어나 생사(生死)에 매여 헤매느라고 쉴 새가 없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괴로움이니 이것을 고(苦)라 한다. 둘째는 괴로움은 집착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집(集)이라 한다. 세째는 괴로움과 집착이 없어져 다한 것이니 이것을 멸(滅)이라 한다. 네째는 괴로움과 집착을 없애는 길이니 이것을 도(道)라 한다. 괴로움의 뜻을 알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므로 오랫 동안 먼 길을 헤매어 생사가 쉬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이 세상 모든 것이 괴로움임을 알 것이니, 괴로움이란 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 번민,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 구하는 것이 얻어지는 않는 것 등이다. 그러므로 오온(五蘊) 으로 된 이 몸이 모두 괴로움이다. 이 것이 괴로움인 줄 알고 애욕의 집착을 끊으면 눈을 얻었다고 하리니, 이 생을 마치고는 뒤에 다시 괴로움이 없게 된다.

 


집착 때문이라 함은 애욕을 따라 생긴다는 것이니, 괴로움과 집착을 모두 없애고 그 길을 따라 진리를 행하여 눈을 얻으면 이 생을 마친 뒤에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이미 진리를 보아 도의 눈을 얻은 이에게는 다시 나고 죽음이 없다.

 


그리고 도를 얻으려면 여덟 가지 행을 닦아야 한다.첫째는 마음을 다하여 여래의 가르침을 듣고, 둘째는 애욕을 버려 갈등을 없애며, 세째는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 같은 것을 저지르지 않고, 네째는 속이고 아첨하며 나쁜 말로 꾸짖는 일을 하지 않으며, 다섯째는 질투하고 욕심내어 남들이 믿지 않는 일을 하지 않고, 여섯째는 모든 것이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공(空)이고 무아(無我)임을 생각하며, 일곱째는 몸의 냄새나고 더럽고 깨끗하지 않음을 생각하고, 여덟째는 몸에 탐착하지 않고 마침내는 흙에 들어갈 것이라고 아는 것이다.지나간 세상의 모든 부처님들이 다 이 네 가지 진리를 알았고, 앞으로 올 부처님들도 이 진리를 볼 것이다.

 


세속적인 은혜와 사랑을 탐하고 바라거나 혹은 세상의 부귀 영화와 명예와 오래 살기를 원하는 이는 세상을 벗어나는 길을 끝내 얻지 못한다.길은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마음이 깨끗해야 길을 얻을 수 있다. 그 마음이 청정하여 다섯 가지 계율을 범하지 않으면 천상에 태어난다. 만약 지옥, 아귀, 축생의 길을 끊으려거든 일심으로 여래의 가르침과 계율을 받들어 행해야 할 것이다. 이제 여래가 중생을 나고 죽는 데서 해탈케 하려고 바른 길을 열어 보였으니,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잘 생각해 보아라"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나서 부처님은 아난다와 함께 파탈리풋타에 이르러 성 밖 어떤 나무 아래 머무셨다. 그 곳 바라문과 거사(居士) 들은 부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오셨다는 말을 듣고 모두 부처님 계신 데로 모여 들었다.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앉을 방석을 가지고 혹은 물병과 등잔을 들고 와서 예배하였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세속에서 함부로 탐욕을 즐기면 다섯 가지 소모되는 현상이 있다. 스스로 방종하므로 재산이 줄어 들고, 몸을 위태롭게 하고 도를 잃게 되며, 사람들이 공경하지 않고 죽을 때에 뉘우치게 되며, 추한 소문과 나쁜 이름이 널리 퍼지고, 스스로 방종하므로 죽은 뒤에는 삼악도 (三惡道) 에 떨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이 마음을 조복(調伏)받아 방종하지 않으면 다섯 가지 덕을 갖추게 된다. 검소하고 절약하므로 재산이 날로 늘어나고, 도의 뜻에 가깝게 되며, 사람마다 우러러 공경하고 죽을 때도 뉘우침이 없으며, 덕망이 세상에 널리 퍼지고, 검소하고 절약하므로 죽은 뒤에 천상이나 복된 곳에 태어난다. 사람이 방종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다섯 가지 좋은 일이 있으니 잘 생각해서 행하여라."

부처님께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 가르침을 펴시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長阿含 般泥洹經-

 

 

주제 :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부처님이 바라나시의 녹야원(鹿野苑)에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곳 녹야원에서 일찌기 어떤 사람도 또 어느곳에서도 굴린 적이 없는 최상의 법륜을 처음으로 굴렸었다. 그것은 네 가지 진리(四聖諦)인데, 곧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이다.

 


비구들,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잘 섬기고 받들어라. 그들은 지혜로와 청정하게 수행하는 이의 보호자가 될 것이다. 사리풋타는 너희들의 생모(生母)과 같고 목갈라나는 양모(養母)과 같으리라. 사리풋타는 처음 발심하여 수행하는 이를 잘 길러주고, 목갈라나는 그들을 이끌어 깨달음에 이르게 할 것이다. 이제 사리풋타가 너희들에게 네 가지의 진리를 잘 가리어 말해 줄것이다"하고 부처님은 그 자리를 뜨셨다.

 


사리풋타는 모인 대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은 이 녹야원에서 일찌기 어떤 사람도 또 어느 곳에서도 굴린 적이 없는 최상의 법륜을 굴리셨으니, 그것은 곧 고, 집, 멸, 도의 네가지 진리입니다.그럼 어떤 것이 고의 진리(苦諦)입니까.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고요, 원수를 만나게 되는 것이 고요, 사랑에는 이별이 있으니 그것이 고요,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으니 고요, 걱정 근심과 번민과 슬픔이 고입니다. 한 말로 한다면 인생의 존재 그 자체가 고의 집합체인 것입니다.

 


나는 것(生)을 고라 함은 무슨 뜻입니까. 중생들이 각기 그 종류를 따라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목숨을 이룬 후 세상에 태어납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나와 그 생명을 보존하고 키워 가려면 천만 가지 고통을 겪게 되므로 이것을 태어남의 고라 합니다. 늙는 것을 고라 함은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머리털이 희어지고 이가 빠지며 얼굴이 쭈구러지고 등이 굽으며 기력이 쇠해집니다. 몸은 날로 무거워 앉으면 허리가 아프고 아닐 때는 지팡이에 의지하게 되니 이것을 늙음의 고라 합니다. 병드는 것을 고라 함은 무슨 뜻입니까. 온 몸은 균형을 잃고 기혈이 순조롭지 못해 두통이나 치통 요통을 앓으며 눈이 어둡고 귀가 먹습니다. 혹은 열병 냉병 풍병 습병으로 사지가 뒤틀리고 온갖 고통이 엄습하니 이것을 병고라고 합니다.죽음의 고라 함은 무슨 뜻입니까. 중생들이 그 몸의 기력을 다하고 목숨이 끝나려 할 때 아직 끊어지지 않은 잔명이 죽음의 막다른 길에 이르러 여러 가지 견디기 어려운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죽음의 고라 합니다.

 


또 원수를 만나는 고라 함은, 일찌기 서로 마워하며 원한을 품고 해치거나 죽이려 했던 자와 만나게 되는 고통을 말합니다. 사랑에 이별이 있는 고라 함은, 아무리 친하고 가까운 부모와 처자라도 언젠가는 서로 이별하게 되는 고통을 말합니다.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고라 함은, 모든 중생은 나지 않으려고 해도 업을 따라 나게 되며, 나거든 늙거나 병들어 죽지 말든지, 죽거든 나지 말든지 해야 할 텐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는 동안 부귀영화를 원하고 온갖 재난과 슬픔이 없기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니 그것이 또한 고통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 일단 생명을 받아 태어난 것은 결국 모든 고통의 집합체인 것입니다. 이것이 고(苦)의 진리입니다.

 


다음 어떤 것이 집의 진리(集諦)입니까. 그와 같은 고의 원인은 집착에 있습니다. 이 다음 생의 업보를 부르게 되는 애욕과 번뇌를 말합니다. 어떤 것이 멸의 진리(滅諦)입니까. 저 애욕과 번뇌를 남김없이 없애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것이 도의 진리(道諦)입니까. 멸에 이르는 방법 즉 여덟 가지의 바른 길(八聖道)입니다. 그것은 바른견해(正見), 바른 생각(正思) 바른 말(正言), 바른 행위(定業), 바른 생활(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기억(正念),바른 선정(正定)입니다.

 


바른 견해란 네 가지 진리를 바로 보는 견해요, 바른 생각이란 번뇌 망상을 멀리하고 성냄과 원한이 없은 생각이요, 바른 말이란 거짓말 악담 이간질 부질없은 잡담을 떠난 도리에 맞는 참된 말이요, 바른 행위란 살생 도둑질 음행을 하지 않고 올바른 계행을 지키는 일입니다. 바른 생활이란 출가자의 생활 방법으로부정한 장사나 점술 따위의 수단을 떠나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을 얻어 생활하는 것입니다. 바른 노력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쁜 생각을 일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나쁜 생각은 없애버리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착한 생각을 일게 하고, 이미 일어난 착한 생각은 원만히 키워 나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바른 기억이란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하여 몸과 마음과 진리를 바로 관찰하고 탐욕에서 일어나는 번뇌를 없애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선정이란 모든 욕심과 산란한 생각을 가라 앉혀 선정에 들어감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진리입니다.

 


- 中阿含 分別聖諦經

 

 

 


주제 : 존재의 관찰 - 12연기 

[목록으로..]

부처님은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깨달음을 이루지 못했을 때, 혼자 고요한 곳에 앉아 선정을 닦다가 이렇게 생각했었다. '세상에는 들어가기 어렵다. 생 노 병 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생 노 병 사와 그것이 의지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있다.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었다. '무엇이 있어 생(生)이있고 무엇을 인연하여 생이 있는가? 그러다가 마침내 참다운 지혜로써 알게 되었다. 즉, 존재가 있기 때문에 생이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생이 있다. 그러면무엇이 있어 존재가 있고, 무엇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는가? 그렇다, 취(取)가 있기 때문에 존재가 있으며, 취를 인연하여 존재가 있다. 취는 사물에 맛들이고 집착하여 돌아보고 생각하여 마음이 거기 묶이면, 애욕이 더하고 자라나게 된다. 그 욕망이 있기 때문에 취가 있고, 또 욕망을 인연하므로 취가 있다. 취를 인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인연하여 생이 있으며, 생을인연하여 노 병 사와 근심과 괴로움이 있다.

 


이렇게 해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인다. 등불은 기름과 심지를 인연하여 켜지고 기름과 심지를 더하면오래 가게 된다. 그와 같이 사물을 취하고 맛들이고집착하며 돌아보고 생각하면 욕망이 무더기는 더하고자라난다. 그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없어야 노 병 사가 없어질까?' 그렇다, 생이 없으면노 병 사도 없을 것이다. 존재가 없으면 생도 없다.

 


취가 없으면 존재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욕망을 떠나 마음을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아니하고 마음이 묶이지 않으면 욕망도 곧 멸할 것이다. 그 욕망이멸하면 취가 멸하고, 취가 멸하면 존재가 멸하고, 존재가 멸하면 생이 멸하고, 노 병 사와 걱정 근심과괴로움도 멸한다. 이렇게 해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멸하는 것이다.

 


기름과 심지로 등불을 켜는 것이므로 기름을 더하거나 심지를 돋우지 않으면 등불은 얼마 아니하여 꺼지고 말 것이다. 그와 같이 모든 것은 덧없이 생멸하는것이라고 관찰하여, 욕망을 끊어 버리고 마음이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않고 묶이어 집착하지 않으면 마침내는 괴로움의 무더기로 멸해 없어질 것이다."  

 


- 雜阿含 佛 經

 

 

 


주제 : 여래는 가장 큰 복을 짓는 이다 

 


육안을 잃어버린 아니룻다의 일상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불편하였다. 어느 날 해진 옷을 깁기 위해 바늘귀를 꿰려 하였으나 꿸 수가 없었다. 그는 혼자말로 '세상에서 복을 지으려는 사람은 나를 위해 바늘귀를 좀 꿰어 주었으면 좋겠네'라고 하였다. 이때 누군가 그의 손에서 바늘과 실을 받아 해진 옷을 기워 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부처님인 것을 알고 아니룻다는 깜짝 놀랐다.

 


"아니 부처님께서는 그 위에 또 무슨 복을 지을 일이 있으십니까?"

"아니룻다, 이 세상에서 복을 지으려는 사람 중에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섯가지 법에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법이란 , 보시와 교훈과 인욕과 설법과 중생 제도와 더없는 바른 도를 구함이다"

아니룻다는 말했다.

 


"여래의 몸은 진실한 법의 몸이신데 다시 더 무슨법을 구하려 하십니까? 여래께서는 이미 생사의 바다를 건너셨는데 더 지어야 할 복이 어디 있습니까? "

그렇다, 아니룻다. 네 말과 같다. 중생들이 악의 근본인 몸과 말과 생각의 행을 참으로 안다면 결코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쁜 길에 떨어진다. 나는 그들을 위해 복을 지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힘 중에서도 복의 힘이 가장 으뜸이니, 그 복의 힘으로 불도를 성취한다. 그러므로 아니룻다, 너도 이 여섯 가지 법을 얻도록 하여라. 비구들은 이와 같이 공부해야한다."

 


- 增一阿含 力品

 

 

 


주제 : 여래법은 바다와 같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녹야원에서 오백 명의 비구들과같이 계실 때였다. 그때 부처님은 바다를 좋아한다는 젊은이를 만나 물으셨다.

 


"바다 속에는 무슨 신기한 것이 있기에 너희들은 그렇게 바다를 좋아하느냐?"

젊은이는 대답했다.

"바다 속에는 여덟 가지 처음 보는 법이 있으므로저희들은 거기서 즐깁니다. 첫째, 큰 바다는 매우 깊고 넓습니다. 둘째, 바다에는 신비로운 덕이 있는데네 개의 큰 강이 각각 오백의 작은 강을 합쳐서 바다로들어가면 그것들은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립니다. 세째, 바다는 모두 똑같은 한맛(一味)입니다. 네째, 드나드는 조수가 그때를 어기지 않습니다. 다섯째, 여러 중생들이 그 속에서 삽니다. 여섯째, 바다는 어떠한 것을 받아들일지라도 비좁아지지 않습니다. 일곱째, 바다에는 진주와 같은 여러 가지 진귀한 보석이 있습니다. 여덟째, 바다에는 금모래가 있고 네 가지 보배로 된 수미산이 있습니다.

여래의 법에는 어떤 것이 있기에 비구들이 그 안에서 즐깁니까?"

 


"내게도 여덟 가지 처음 보는 법이 있어 비구들이그 안에서 즐기고 있다. 첫째, 내 법 안에는 계율이 갖추어져 있어 방일한 행이 없다. 그것은 저 바다처럼 매우 깊고 넓다. 둘째, 세상에는 네 가지 계급이 있지만 내 법 안에서 도를 배우게 되면 그들은 그 네 가지 계급을 떠나 한결같이 사문이라 불리운다. 마치 네 개의 강이 바다에 들어가면 한 맛이 되어 그전의 이름이없어지는 것과 같다. 세째, 정해진 계율에 따라 차례를 어기지 않는다. 네째, 내 법은 결국 똑같은 한 맛이니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다섯째, 내 법은 갖가지 미묘한 법으로 가득차 있다. 바다에 여러 중생들이사는 것처럼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 그 안에서 즐긴다. 여섯째, 바다에 온갖 보배가 있듯이 내 법에도 온갖 보배가 있다. 일곱째, 내 법 안에는 온갖 중생들이 집을 떠나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고 도를 닦아 열반에 든다. 그러나 내 법에는 더하고 덜함이 없는 것과 같다. 여덟째, 큰 바다 밑에 금모래가 깔려 있듯이 내 법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갖가지 삼매(三昧)가 있다. 비구들은 그것을 알고 즐기는 것이다. 젊은이는 감탄해 마지 않았다.

 


"거룩하십니다. 부처님. 여래의 법 가운데 처음 보는 법들은 바다의 그것보다 백배 천배 뛰어나 견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인의 여덟 가지 길입니다"

부처님은 그를 위해 차례로 법을 말씀하셨다. 보시와 계율과 천상에 나는 법을 가르치셨고, 탐욕은 더럽고 번뇌는 큰 재앙이므로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훌륭하다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열리고의심이 풀린 것을 보시고 괴로움(苦)과 그 원인(集)과 없앰(滅)과 없애는 길(道) 등의 네 가지 진리를 말씀하셨다.

 


- 增一阿含 八難品

 


주제 : 올바른 수행과 고행 

 


부처님이 녹야원(鹿野苑)에 계실 때였다. 발가숭이 이교도(裸形外道) 카샤파가 부처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당신은 온갖 고행을 싫어하고 고행자를 비방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카샤파, 그것은 내 뜻이 아니오. 또 내 말을 바르게 전한 것도 이니오. 나는 천안(天眼)으로써 고행자가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봅니다. 이와 같이 고행자 중에는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천상에 태어나는 이도 있는데, 어떻게 통틀어 고행을 싫어하고 고행자를 비방할 수 있겠소"

 


카샤파는 말했다.

"부처님, 알몸이라든가 공양을 받지 않는 일, 또는 쇠똥을 먹고 나무껍질이나 짐승의 가죽으로 몸을 가리며, 항상 서 있거나 하룻밤에 세 번씩 목욕을 하는 것 같은 고행은 사문(沙門)에게 도 바라문에게도 알맞는 일이라고 합니다"

 


"카샤파, 아무리 그와 같은 고행을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계행과 선정과 지혜가 없으면 그것은 참된 사문이나 바라문과는 멉니다. 화내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이 없으며 자비심을 기르고 번뇌가 없어 현재에 깨달아 있으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문이요 바라문이라고 할 것이오"

"부처님, 사문이나 바라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 어려움이 곧 고행을 닦는다는 뜻은 아니오. 고행쯤이야 물항아리를 나르는 하녀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화내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이 없으며 자비심을 기르고 번뇌가 없이 현재에 깨닫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교도 카샤파는 다시 물었다.

"부처님, 그러면 그 계행과 선정과 지혜의 성취란 어떤 것입니까"

 


"계행의 성취란 이런 것이오.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여 스스로 깨닫고 남을 가르칠 때에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듣고 신심(信心)을 내어 출가합니다. 그래서 계율에 따라 행동을 삼가고 바른 행동으로 즐거움을 삼으며, 조그마한 허물도 두려워하고 감관을 다스려 바른 지헤를 갖춥니다. 산 목숨을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으며, 여자를 범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거나 거친 말을 쓰지 않으며 바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오. 또 선정의 성취란, 눈으로 사물을 볼 때라도 감관을 잘 지켜 그 모양에 팔리지 않고, 가나 오나 앉으나 누울 때에도 항상 마음의 눈을 밝히어 바른 마음과 바른 생각에 머뭅니다. 새가 날개밖에는 아무 것도 갖지 않듯이 몸을 가리는 옷과 배를 채우는 밥으로 만족하고,나무 밑이나 동굴 속, 숲이나 묘지 등 한적한 곳을 찾아 고요히 앉소. 그래서 탐욕과 성냄과 게으름과 의심을 버리고, 건강하고 자유롭고 안전한 사람이 되어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오. 그리고 지혜의 성취란, 선정에 의해 고요하고 맑고 밝아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으로써 이 세상의 덧없음과 〈나〉라고 내세울 것 없음을 알며, 다섯 가지 신통(五神通)을 얻고 네가지 진리를 알아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어 해탈했다는 분명한 자각을 가지는 것이오.

 


카샤파, 이보다 더 뛰어난 계행과 선정과 지혜의 성취는 없소. 계와 고행과 지혜와 해탈을 칭송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지만, 여래처럼 맑고 높은 계와 고행과 지혜아 해탈을 갖춘 사람은 없을 것이오. 그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한 자가 바로 여래입니다.

 


나의 이 말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사문 고타마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자후를 하지만 그것은 신념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한다 할지라도 만족시키거나 믿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와 같이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신념을 가지고 사자후를 합니다. 많은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고 만족시키며 믿게 합니다. 카샤파, 일찌기 라자가하의 영축산에서 당신과 같은 고행자 니그로다는 욕망을 없애는 최고 형식에 대해서 내게 물어 대답을 듣고 무척 기뻐한 일이 있소"

 


이 가르침을 듣고 이교도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부지런히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 南傳 長部經典 八 -

 

 

 


주제 : 출가 수행한 과보 

 


부처님이 많은 제자들과 함께 라자라하의 신의(神醫)인 지바카 소유의 암라 동산에 계실 때였다. 마가다의 다자타삿투왕은 사월 보름날 밤에 재계(齋戒)하고 궁전 누각에서 밝게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곁에 있는 신하들을 돌아보며, 이 밤에 덕이 높은 사문이나 바라문을 모시고 설법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이때 지바카는 마침 부처님이 천 이백 오십 명의 제자들과 함께 암라 동산에 와 계시니 부처님을 모시고 법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왕은 지바카의 말을 듣고 곧 암라 동산으로 갔다. 왕은 부처님께 공손히 예배드린 후 이렇게 물었다.

 


"부처님, 이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 기술과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보수로써 부모 처자를 부양하고 자기도 안락을 누립니다. 그런데 출가 수행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현세에서 어떤 과보를 받게됩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여기 왕을 섬기는 한 사람의 종이 있다고 합시다.그는 왕을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할 것이오. 아침 일찍일어나 밤늦게 자며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고 말씨도 공손히 하여, 왕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항상 애을 쓸 것이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을 돌이켜 출가를 합니다. 머리를 깍고 가사를 걸치고 몸과 말과 생각을 조심하고 변변치 않은 음식과 의복에 만족하며 세속을 떠나 고요한 숲에서 살게 될 것이오. 이때 어떤 신하가 숲에서 수행하고 있는 예전의 종을 보았다고 왕께 전하는 말을 듣는다면, 그 사람에게 예전처럼 돌아와 시중을 들으라 하겠소"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먼저 그에게 절하고 그를 맞아 가사와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며, 병이 나면 약과 필요한 물건을 대주면서 그를 보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곧 눈앞에 보이는 사문의 과보가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눈에 보이는 사문의 과보입니다"

 


- 南傳 長部 沙門果經

 

 

 

 

 

주제 : 계행을 잘 지킨 과보 

 


아자타삿투왕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 눈앞의 과보보다 더 뛰어난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귀족의 가장이나 자제나 혹은 천민의 자제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듣고 믿음을 내어 장애 많은 세속 생활을 떠나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는 청정한 계행을 닦고 정진하여 조그만 허물도 두려워하고 깨끗한 몸과 말과 생각을 지니며, 모든 감관의 문을 잘 보호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두루 갖추게 될 것이오.

 


그러면 어떤 것이 계행을 갖춘 것인가. 살생을 하지않고 모든 생물을 가엾이 여기며, 주지 않는 물건은 갖지 않고 남의 것을 가지려고 하는 생각도 내지 않으며, 떳떳하지 못한 음행을 하지 않고 밝고 깨끗한 행동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한 말만 하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화합하고 친밀한 말을 좋아하며,거친 말을 하지 않고 누구나 들으면 기뻐하는 말을 하고 부질없는 말을 하지 않고 도리어 교법에 맞는 말을 합니다.

 


하루에 한번 먹고 연극이나 노래, 춤, 오락 등의 유흥장에 가지 않으며, 몸을 꽃다발이나 향수로 치장 않고 높고 큰 침상이나 의자를 사용하지 않소. 금 은 같은 귀금속과 곡식을 저장해 놓은 일도 없고, 부인이나 소녀 또는 남녀의 노예를 받아 부리는 일이 없으며, 코끼리 말 소 산양 등의 가축이나 토지 전답을 받는 일도 없소. 공사(公私)간의 심부름이나 중매 혹은 팔고 사는 행위를 하지 않고, 속이고 거짓말하는 모든그릇된 행위를 하지 않소. 이것은 또한 비구계(比丘戒)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오.

 


비구가 이와 같은 계행을 두루 갖추면 이 계행의 위력으로 어느 곳에 갈지라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마치 사방의 적을 정복한 위력 있는 왕은 어디를 가나 두려울 것이 없는 것과 같소. 비구가 청정한 계행을 갖추면 마음속으로 티없이 깨끗한 평안을 누리게 되니 이것이 비구가 계행을 구족한 현세의 과보인 것이오."

 


- 南傳 長部沙門果經

 

 

 


주제 : 비구는 계행과 정진으로 평안을 얻는다 

 


부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는 또 눈, 귀, 코, 혀, 몸, 생각 등 감관의 문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치 부자가 창고의 문을 단속하여 도둑의 침범을 막듯이. 비구가 눈으로 사물을 볼 때에는 어떤 현상이나 특수한 환경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생각을 다스리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둔다면 탐욕과 애착과 비애 등의 부정법(不淨法)에 흘러가고 말 것이오.

 


그러므로 눈을 잘 단속하여 감각 작용을 조절함으로써 보는 감각이 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고 항상 순결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해야 하는 것이오. 소리를 듣는 귀와 냄새를 맡는 코, 맛을 보는 혀, 차고덥고 거칠고 부드러움을 느끼는 몸, 시비와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도 그와 같아서 어떤 현상이나 특수한 환경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의식하는 것이 모두 제 길을 벗어나지 않고 항상 순결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오. 이와 같이 모든 감관을 잘 단속하여 그 공덕이 갖추어지면, 마음속으로 티없이 깨끗한 안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오. 이것이 감관의 문을 보호한 공덕의 과보입니다.

 


또 어떤 것이 비구의 지족(知足)인가 하면, 그 몸을 보호하는 옷과 얻은 것에 만족하여 어디를 가든 한벌 옷과 한벌 바리때를 지니고 가는 것이오. 마치 새가 어디를 가든 날개만을 가지고 날으는 것처럼. 비구는 이와 같이 청정한 계행과 감관과 만족을 갖추어 조용한 숲속이나 나무 아래, 동굴이나 묘지 등 세속을 떠난 한적한 곳을 가리어 한 그릇 밥을 빌어 먹은 뒤에는 단정히 앉아 바른 생각에 편안히 머무는 것이오.

 


그는 세속의 탐욕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에 머물며 남을 해치려거나 성내고 미워하는 생각을 여의고, 모든 생물을 가엾이 여기어 이롭게 하려는 마음에 머물며, 정신이 혼미한 데서 벗어나 산뜻하고 올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 머뭅니다. 산란하고 헐떡거리는 생각을 쉬어 고요하고 차분한 마음에 머물며, 망설이고 의심하는데서 벗어나 깨끗하고 의심하지 않는 마음에 머물러 그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남에게서 빌린 돈으로 사업을 경영하여 그 일이 잘 되면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처자를 부양하고 스스로도 만족하는 것과 같이, 비구도 계행과 정진으로 묵은 죄업을 청산하고 새로운 도업(道業)에 의해 스스로 평안을 얻어 만족하는 것이오.

 


또 한 가지 비유을 든다면, 남의 노예가 되어 마음대로 오고 가지 못하다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으면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떳떳한 자유인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과 같이, 비구도 청정한 계행과 줄기찬 정진의 힘으로 세속적인 오욕(五欲)의 노예에서 벗어나 독립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오. 이것이 비구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갖추어 만족할 줄 알고 번뇌에서 벗어난 현세의 과보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니, 마가다의 왕 아자타삿투는 감격한 끝에 이렇게 여쭈었다.

"거룩하십니다.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고, 파묻혀 있던 것을 드러내 놓으며, 길잃은 사람에게 길을 보여 주고, 어둔 밤에 불을 밝혀 주는 것과 같습니다.이같이 온갖 방편을 들어 진리를 말씀해 주시니, 저는 지금부터 부처님께 귀의하고 교법에 귀의하고 승단에 귀의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이 목숨이 다하도록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신도가 되고자 하오니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리석고 무지하여 왕권을 얻기 위해 잔인하게도 덕이 많은 부왕(父王)을 살해하였습니다.부처님, 앞으로 제가 잘못 되는 일이 없도록 저의 이 죄악을 죄악으로 인정하시고 저를 받아 주십시오."

 


"대왕, 참으로 당신은 어리석고 무지하여 큰 죄악을 저질렀소. 당신은 그처럼 덕이 많은 부왕을 살해하였소. 그러나 당신이 죄악은 죄악대로 인정하고 법에 따라 그 죄를 참회하겠다니 나는 그것을 받아 들이겠소. 누구든지 죄를 인정하고 법답게 참회하여 앞으로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계를 지키려 한다면 성자의 계율이 번창할 것이오."

 


아자타삿투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왕이 물러간 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아자타삿투왕은 진심으로 뉘우친 것이다. 만일 그가 부왕을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바로 이 자리에서 마음의 때를 벗고 청정한 법의 눈을 얻었을 것이다."

 


- 南傳 長部 沙門果經

 

 

 

 

 

주제 : 너무 조이거나 느슨하게 하지 말라 

 


부처님이 라자가하의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실 때였다. 소오나 비구는 영축산에서 쉬지 않고 선정(禪定)을 닦다가 이렇게 생각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정진하는 성문(聲聞)중에 나도 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번뇌를 다하지 못했다.

 


애를 써도 이루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집에 돌아가 보시를 행하면서 복을 짓는 것이 낫지 않을까? ' 부처님은 소오나의 마음을 살펴 아시고 한 비구를시켜 그를 불러 오도록 하셨다. 부처님은 소오나에게 말씀하셨다.

"소오나, 너는 세속에 있을 때에 거문고를 잘 탔었다지? "

"네, 그랬습니다."

"네가 거문고를 탈 때 만약 그 줄을 너무 조이면 어떻드냐?"

"소리가 잘 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었을 때는 어떻드냐?"

"그때도 잘 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거나 조이지 않고 알맞게 잘 고루어야만 맑고 미묘한 소리가납니다."

부처님은 소오나를 기특하게 여기면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너의 공부도 그와 같다. 정진을 할 때 너무 조급히 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느리면 게으르게 된다. 그러므로 알맞게 하여 집착하지도 말고 방일하지도 말아라." 소오나는 이때부터 항상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문고를 타는 비유를 생각하면서 정진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번뇌가 다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阿羅漢)이 되엇다. 소오나는 아라한이 되어 마음으로 해탈한 기쁨을 지니고 부처님을 찾아가 뵈었다.

 


"부처님, 저는 부처님의 법 안에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모든 번뇌는 다하고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무거운 짐을 벗어 버렸습니다. 또 바른 지혜로써 욕심을 떠난 해탈, 성냄을 떠난 해탈, 멀리 벗어난 해탈, 애욕이 다한 해탈, 모든 취(取)로부터의 해탈, 늘 생각하여 잊지 않는 해탈 등 여섯 가지 해탈을 얻었습니다.

 


부처님, 만약 조그마한 신심으로 욕심을 떠나 해탈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지 못합니다. 탐욕과 성냄과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참으로 욕심을 떠난 해탈이라고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소한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써 자기는 성냄에서 해탈했다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못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참으로 성냄을 떠난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양(利養)을 멀리 벗어나려고 닦아 익힌 것으로써 멀리 벗어난해탈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옳지 못합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참으로 멀리 벗어난 해탈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한 것을 가리켜 애욕이 다한 해탈, 모든 취(取)로 부터의 해탈, 생각하여 지 않는 해탈이라고 합니다." 존자 소오나가 이 법을 말하였을 때 부처님은 기뻐하셨고 수행자들도 한결같이 환희에 젖었다.

소오나가그곳을 떠나자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잘 해탈한 사람은 마땅히 그와 같이 말해야한다. 소오나는 지혜로써 말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추켜세우지도 않고 남을 낮추지도 않고 그 이치를 바로말하였다"

 


- 雜阿含 二十億耳經

 

 

 

 

 

주제 : 법이 바르지 못하면 해탈의 길로 갈 수 없다 

 


부처님이 많은 비구들과 함께 파바에 있는 어떤 동산에 머무르고 계실 때였다. 부처님은 달이 밝은 보름밤에 맨 땅에 앉아 비구들에게 법을 설한 다음 사리풋타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사방에서 많은 비구들이 모여 함께 정진하면서 자지 않는다. 난는 등이 아파 좀 쉬고 싶으니, 네가 비구들을 위해 법을 설해 주어라."

 


부처님은 가사(袈裟)을 네 겹으로 접어 깔고 오른쪽옆 구리를 바닥에 대고 사자처럼 발을 포개고 누우셨다. 사리풋타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이 파바성은 이교도 니간다(尼乾子)가 살던 곳인데 그는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그 후 제자들은 두 파로 갈라져 서로 잘잘못을 캐면서 시비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법을 잘 알지만 너는 그것을 모른다. 나는 바른 법을 가졌는데 너는 사견(邪見)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말이 서로 얽히어 앞뒤가 없이 저마다 자기 말만을 참되고 바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니간타를 따르던 이 고장 사람들은 다투는 무리들을 싫어합니다. 옳다고 주장하는 그 법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법이 올바르지 못하면 해탈의 길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허물어진 탑에는 다시 흙을 바를 수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여래의 법은 올바르고 참되어 해탈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탑은 장엄하게 꾸미기 쉬운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은 마땅히 교법과 계율을 모아 그들과 같은 다툼을 막고 청정한 수행을 쌓아 모든 중생들에게 이익과 안락을 얻게 해야겠습니다.

 


수행자는 반드시 안으로 살펴야 합니다. 만약 성냄과 원한을 가지고 저들처럼 대중을 어지럽힌다면 화합한 대중을 모아 널리 방편을 베풀어 다툼의 근본을 뽑아야 합니다. 맺힌 원한이 다했을 때는 그 마음을 거두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성냄이 뒤틀어지면 시기하고 교활하여 스스로 자기 소견에 말려들어 사견(邪見)에 헤매고 치우친 편견에 떨어지고 맙니다"

부처님은 사리풋타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셨다.

 


- 長阿含 衆集經

 

 

 


주제 : 붓다는 길을 가리킬 뿐 

 


부처님이 사밧티의 녹자모 강당(鹿子母講堂)에 계실 때였다. 바라문 출신인 수학자 목갈라나가 부처님을 찾아와 말했다.

"부처님, 여쭐 말씀이 있는데 들어 주신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목갈라나, 마음대로 물어서 의문을 풀도록 하시오."

 


"부처님, 이 녹자모 강당의 층계는 일층을 오른 뒤에야 이 삼 사 층으로 오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층계를 따라 차츰차츰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코끼리를 다루는 사람도 순서를 따라 길들일 수 있습니다. 바라문들도 차례를 따라 베다를 배웁니다. 우리들이 수를 배우고 수학으로써 살아가는 것도 또한 순서를 따라 차츰차츰 이루어집니다.

부처님, 부처님의 법과 율에는 어떠한 순서가 있어 차츰차츰 성취하게 됩니까"

 


"목갈라나, 바른 주장이라면 그것은 순서대로 차츰차츰 성취하게 될 것이오. 나는 이 법과 계율을 순서대로 성취하였소. 만약 나이 어린 비구가 처음으로 와서 도를 배우고자 하여 법과 계율에 들어오면 나는 먼저 이렇게 가르치오. '너는 와서 목숨을 다해 몸을 지켜 청정하게 하고 말과 뜻을 지켜 청정하게 하라. ' 그가 시킨 대로 하면 나는 다시 그 다음을 가르치오. '너는 홀로 멀리 떠나 나무 밑이나 숲속 혹은 무덤 사이같은 한적한 곳에서 살아라. 그런 곳에 가서 단정히 앉아 원을 바로 세워 생각이 다른 데로 팔리지 않도록 하여라. 남의 재물과 가구를 보더라도 탐심을 내지 말고 마음을 깨끗이 가져라. 성냄과 수면에도 그렇게 하고 의심을 끊고 미혹을 막아 그 마음을 깨끗이 지켜라.'

 


목갈라나, 그러나 장로 비구나 학덕이 높은 바라문에게는 더 깊은 것을 가르치오. 구경(究竟)에 가서는 모든 번뇌가 다하고 지혜를 얻는다고 가르치오."

"부처님, 그와 같이 가르치고 훈계하면 제자들은 다 구경의 지혜를 얻어 반드시 열반을 얻게 됩니까"

"누구나 한결같을 수는 없소. 얻는 사람도 있고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소"

"열반은 있고 열반으로 들어가는 길도 있으며, 더구나 부처님은 현재 그 길을 가리키시는 분인데, 어째서 그들은 구경의 열반을 얻기도 하고 얻지 못하기도 합니까"

 


"목갈라나, 당신에게 묻겠소. 당신은 라자라하를 알고 거기로 가는 길도 알고 있소?"

"예, 알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라자가하와 그 곳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면 당신은 아는 대로 가르쳐 줄 것이오. 그러면 그는 가르쳐 준 길대로 따라가면 거기에 도달할 것이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바른 길을 버리고 잘못 길을 들거나 게으름을 부린다면 끝내 그 곳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오. 라자가하가 있고 그 곳으로 가는 길도 있으며, 그리고 당신은 그 길잡이였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은 가고 또 어떤 사람은 가지 못하오?"

 


"부처님, 저는 그 일에 책임이 없습니다. 제 가르침을 따른 사람은 도달할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소, 나도 또한 책임이 없소. 열반이 있고 열반으로 가는 길도 있어 나는 길잡이로서 비구들에게 가르치고 훈계하였지만, 열반을 얻은 이도 있고 얻지 못한 이도 있소. 그러니 그것은 저마다의 행동에 달린 것이오. 나는 다만 길을 가리킬 뿐이고 그의 행을 보고 '마침내 번뇌가 다하였다' 고 인정할 따름이오."

 


수학자 목갈라나는 모든 의심이 풀렸다.

"부처님, 저는 알았습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은 지금부터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승단에 귀의 합니다. 원컨대 저를 받아 신도가 되게 해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하도록 삼보에 귀의하겠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수학자 목갈라나와 비구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 中阿含 산수목건련경

 


주제 : 열반은 게으르지 않음을 먹이로 삼는다 

[목록으로..]

부처님은 기원정사에서 많은 대중을 위해 법을 설교하고 계실 때였다. 그 자리에는 아니룻다도 있었는데그는 설법 도중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부처님은 설법이 끝난 뒤 아니룻다를 따로 불러 말씀하셨다.

"아니룻다, 너는 어째서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느냐? "

"생로병사와 근심 걱정의 괴로움이 싫어 그것을 버리려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너는 설법을 하고 있는 자리에서 졸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이냐? "

 


아니룻다는 곧 자신의 허물을 뉘우치고 끓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제부터는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부처님 앞에서 졸지 않겠습니다"

이때부터 아니룻다는 밤에도 자지 않고 뜬 눈으로계속 정진하다가 마침내 눈병이 나고 말았다. 부처님은 그에게 타이르셨다.

"아니룻다, 너무 애쓰면 조바심과 어울리고 너무 게으르면 번뇌와 어룰리게 된다. 너는 그 중간을 취하도록 하여라."

 


그러나 아니룻다는 전에 부처님 앞에서 다시는 졸지 않겠다고 맹세한 일을 상기하면서 타으름을 들으려고하지 않았다. 아니룻다의 눈병이 날로 심해진 것을 보시고 부처님은 의사 지바카에게 아니룻다를 치료해 주도록 당부하셨다.

아니룻다의 증세를 살펴본 지바카는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아니룻다님이 잠을 좀 자면서 눈을 쉰다면 치료할수 있겠습니다만, 통 눈을 붙이려고 하지 않으니 큰 일입니다."

 


부처님은 다시 아니룻다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니룻다, 너는 잠을 좀 자거라. 중생의 육신은 먹지 않으면 죽는 법이다 눈은 잠으로 먹이를 삼는 것이다. 귀는 소리로 먹이를 삼고 코는 냄새로, 혀는 맛으로, 몸은 감촉으로, 생각은 현상으로 먹이를 삼는다. 그리고 여래는 열반으로 먹이를 삼는다."

아니룻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면 열반은 무엇으로 먹이를 삼습니까?"

"열반은 게으르지 않는 것으로 먹이를 삼는다."

아니룻다는 끝내 고집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눈은 잠으로 먹이를 삼는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차마 잘 수 없습니다"

아니룻다의 눈은 마침내 앞을 볼 수 없이 되고 말 았다. 그러나 애써 정진한 끝에 마음의 눈이 열리게 되었다.

 


- 增一阿含 力品

 

 

 


주제 : 설법과 침묵 

[목록으로..]

부처님은 어느 날 오후 아난다를 데리고 아지타바티강으로 가서 목욕을 하셨다. 목욕을 끝낸 후 부처님은 아난다의 청을 받아들여 바라문 람마카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 마침 람마카의 집에서는 많은 비구들이 모여 설법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문 밖에 서서 비구들의 설법이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이윽고 설법이 끝난 것을 안 부처님은 문을 두드렸다. 곧 비구들이 나와 문을 열고 부처님을 맞아들였다. 부처님은 자리에 앉은 뒤 물으셨다.

 


"너희는 아까 무슨 이야기를 하였으며 무슨 일로 여기 이렇게들 모였느냐?"

"부처님, 조금 전에 저희들은 법을 설하였으며, 그 법을 설하기 위해 이렇게 모인 것입니다."

"착하다, 비구들. 너희는 모여 앉으면 마땅히 두 가지 일을 행해야 한다. 하나는 설법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침묵을 지키는 일이다."

 


- 中阿含 羅摩經

 

 

 


주제 : 출가자가 여인을 대하는 법 

[목록으로..]

아난다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아직 가르침을 받지 못한세상 여인들을 출가 사문은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서로 마주 보지 말아라."

"만약 서로 마주 보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불어 말하지 말아라"

"만약 더불어 말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스로 마음을 다 잡아라. 아난다, 너는 여래가 열반한 뒤에는 보호할 사람이 없어 혹시 닦아 오던 것을잃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을 말아라. 내가 지금까지말한 교법(敎法)과 계율이 곧 너를 보호하고 또한 네가의지해야 할 곳이다. 오늘부터는 비구들에게 사소한계율은 버리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화목하여 마땅히 예절을 따르라고 일러라. 이것이 출가한 사람들이 공경하고 순종할 법이다"

 


- 長阿含 遊行經

 

 

 


주제 : 신통을 금하다 

[목록으로..]

부처님이 나란다성 바바리암라 동산에 계실 때였다. 하루는 견고(堅固)라고 하는 남신도 한 사람이 부처님을 찾아왔다.

"부처님, 이토록 번화하고 잘 살고 있는 나란다 사람들이 부처님을 공경하며 믿고 있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어떤 비구로 하여금 신통 변화를 나타내 보이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이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부처님의 법을 믿고 공경할 것입니다"

 


"나는 비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