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08 11:45
[경전공부방] [법구경] 법구경 개요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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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구 경


「법구경」은 2권 39품으로 법구가 편집한 것을 3세기 초에 유기난 등이 번역한 것입니다.

「법구경」의 품 배열 순서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것이 일치하고 있는 「법구비유경」은 4권 40품으로 4세기 초 법거(法炬)와 법립(法立)이 한역했습니다.「법구비유경」에는 ‘호계품’이 하나 더 들어 있다는 것이 다릅니다.

「법구경」은 운문으로 되어 있는 게송들만 모아놓은 것인 반면, 「법구비유경」은 그 게송이 설해지게 된 인연담을 추가하고 있을 뿐입니다. 고려팔만대장경 속에서 볼 수 있는 법구경계의 이본으로는 「출요경」「법집요송경」이 있습니다.

「법구경」은 아마도 불교경전 중에서 세계에 가장 널리 아려진 경전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내용이 쉽고 간결하며 아름답고도 담박한 시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 세계나 우리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법구경」은 주로 팔리어에서 번역된 것으로, 원어로는 담마파다, 즉 ‘진리의 길’입니다. 이 팔리어본은 모두 26장 423게송을 싣고 있습니다.

 

1. 팔리어본과 범어본의 법구경

원시경전을 보면 팔리어 한문 번역본과 범어 한문 번역본의 차 이에 대한 문제가 생기므로 팔리어와 범어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 리고 범구경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법구경>>의 예문도 보도 록하자. <<법구경>> 자체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있어서 경 이름 의 뜻, 경의 종류, 경의 원본, 경의 대체적 내용을 간추리고 교 리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도 알아아야 하겠다. 어느 경이 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글에서 세우는 체제의 교리와 관계되는 경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루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지금 원시경전의 하나인 법구경에 대해서 처음 살펴야 하는데 원시경전을 보면 팔리어본 경전과 범어본 경전이 나온다. 그래서 팔리어와 범어, 그리고 이 두 언어와 불경과의 관계에 대해 간략히 생각해보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현대의 팔리어가 남방불교의 성전용어가 되기 까지 2천여 년 의 세월을 거치면서 많은 발전 단계를 거쳤으리라고 추측된다. 팔리라는 말은 본디 선(線)이나 원형을 따지는 문제는 부처님 열 반후 제1회 결집 당시에는 마가다국이 강국이었으므로 마가다국 의 방언을 팔리어 원형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결집 당시 보다 약 100년전에 세력이 있었던 코살라 국의 방언도 팔리어 원형으 러 생각할 수도 있다. 인도의 어떤 방언에서 유래되었든 상관없 이 팔리어가 처음부터 현재의 형태로 다듬어진 것은 아니고 많 은 단계의 변화와 발전을 겪어왔. 인도방언 중의 하나가 불교성 전어로 된 이 팔리어는 범어에 비하여 음조가 적고 문법도 간단 하다. 범어는 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이다.범어도 높은 언어와 속스 러운 언어로 나뉘는데 높은 언어는 삼스크리타이고 속어는 프라 크리타이다. 인도 유럽의 대부분 언어들이 이 범어에 뿌리를 두 고 있다. 범어라고 하는 것은 인도의 조물신(造物神)인 범천이 만든 말이라는데서 생긴것이다. 한 비범한 신인이 이 범어를 사 용하여 기록한 것이 베다이다. 기원전 4세기경에 범어 문법학자 인 파니니가 당시 지식계급의 언어를 기초로 문법책을 만들었다. 파니니에가 당시 지식계급의 언어를 지초로 문법책을 만들었 다. 파니니에 의해서 범어의 문법이 자리를 굳힘에 따라 이 범어 가 종교.철학. 문학의 용얼로 사용되어 왔다. 범어라고 하더라 도 문법이 체계화 되기 이전의 베다어와 문법이 체계화된 이후 의 산스크리트어로 구분된다. 한편 인도의 민간인들 사이에 속어였던 프라크리카어로 부터 여러종류의 방언들이 나왔는데 팔 리어도 그 중에 하나다.현재의 힌두어도 프라크리타어에 그 기원 을 두고 있다. 불교경전도 처음에는 인도의 각 지방에서 사용되 던 방언에 의해 기록되었다. 팔리어도 처음에는 방언중의 하나였 으나 차츰 불경을 기록하는데 주로 쓰여졌다. 범어로 불경이 쓰 여진 것은 부파불교시대 부터였고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경전을 범어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의 방언들로 기록되어 있던 경전들도 인도의 표준어로 간주되는 범어로 옮겨지게 되었 다. 그런데 이 범어에 삼스크리타 라는 순수한 범어 프라크 리타라는 일반인이 사용한 범어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대승불교 경전가운데 어떤 것은 순수한 고전 범어로 기록되고 어떤 것은 대중이 사용하는 혼합속어인 범어로 기록되었다. 대체로 초기 경 전은 고전 범어로 시대가 뒤로 가면서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범어 로 쓰여졌다. <범구경>의 팔리어 이름은 담마파다(Dhammapada) 이다. 담마는 진리를 뜻하고 파다는 길을 나타낸다. 합하면 진리 의 길 진리로 가는 길이 되겠다. 진리를 법이라는 말로 길을 구 절이라는 말로 번역해서 <법구경>이 되었다. 법구경에는 크게 두가지의 계통이 있는데 그것을 팔리어본과 범 어본이다. 첫째, 팔리어본은 남방 5부 아함 중에서 소부의 15개 경 중에 있는 하나이다. 이 팔리어본 <법구경>은 다시 두 가지가 있다. <법구경>과 <법구비유경>이다. <법구경>은 423개의 짧은 게송으 로만 되어 있고, <법구비유경>은 그 게송에 인연비유담을 주석적 으로 첨가한 것이다. 게송(偈頌)으로만 되어 있는 <법구경>은 제 1회결집 당시의 원형이 보다 많이 보존된 것으로 여겨지고, <법구비유경>은 후세에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 팔리어본의 <법구경>과 <법구비유경>은 한문으로 번역되어 있다. 단지 팔리 어본과 한문본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팔리어본에 없는 것이 한 문본에 첨가된 것도 있고 또 위치가 옮겨진 것도 있다. 둘째, 범어 계통의 것으로는 <우다나바르가> 즉 <우다나품>이 있다. 이것은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 계통에서 사용하던 것인데 <법구경>과 같은 내용이다. 이것은 티벳어로도 번역되었고 한문 으로는 <법집요송경(法集要誦經)>으로 번역되어 있다. 팔리어의 '담마파다'를 범어로 표현하면 '우다나'가 된다. 한문으로는 '출 요(出曜)'이다. 직역을 하면 '나감을 비추는 것'이 되겠는데 의 역을 해본다면 '윤회의 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비추는 것'쯤 이 될 것이다. 팔리어본 <법구경>과 마찬가지로 범어본도 게송으 로만 된 것은 <법집요송경>으로 불리우고 인연비유담이 붙은 것 은 <출요경(出曜經)>이 되었다. 한문으로 된 <출요경>에 해당되 는 것이 티벳어본에도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범어 원본에서 한 문본과 티벳어본이 생긴 것으로 짐작된다. 이 <법구경>은 세계 각국의 현대 언어로 번역된 중요한 경전 중 의 하나이다. 한글을 비롯해서 영어·불어·독일어·이태리어· 러시아어·일본어 등으로 여러 차례 번역되었다. 한글로 번역된 것 가운데는 한문 <법구경>에서 번역된 것, 일어판에서 이중 번 역된 것, 영어판에서 이중 번역된 것, 팔리어로부터 번역된 것 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최근에 번역된 <법구경>으로는 한국에 서 참선공부를 하다가 남방에 가서 10여 년 수행하며 팔리어를 익힌 거해스님이 편역한 것이다. 이 <법구경>은 부피가 큰 두 권 으로 되어 있다. 거해스님은 그 책의 제목을 <법구경>이라고 했 지만 그 책에는 게송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고 인연비유담까지 삽입되어 있다. 그래서 정확히 표현하자면 <법구비유경>을 펴낸 셈이 된다. 이 인연비유담들은 법구들을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큰 효력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책이 팔리어로부터 직 접 한글로 옮겨진 것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많은 번역의 과정을 거치면서 의미가 굴절될 위험을 안고 있는 <법구 경>을 보았다. 마가다어 또는 다른 인도방언에서 팔리어로, 팔리 어에서 범어로, 범어에서 한문으로,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된 것 을 읽어 보았기 때문이다. <법구경>은 석가모니부처님 재세시의 환경과 경우에 따라서 또 출가한 제자들의 근기에 따라서 설한 것이다. 그 내용은 극히 간 결하고 청초하면서도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향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불교인으로서의 구도자세와 정신을 함양하는 데 기본적 경 전인 것이다. 사성제·삼법인·십이인연이 수학의 공식이라고 한 다면 이 <법구경>에 나오는 내용은 공식을 표면에 내세우지 않 고 그 공식이 목표하는 바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어떤 이론을 내세워서 고통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편 안해지는 마음가집이나 행동거지를 갖게 함으로써 모든 이론을 쉬면서도 실천하게 만드는 것이다.

 

2. 코끼리와 마음 다스리기

<법구경> 예문의 내용을 보고자 필자는 지금 거해스님이 번역 한 파리어본 <법구비유경>을 책상 앞에 놓고 있다. 게송 326부터 는 코끼리를 중심으로 몇 개의 가르침이 나오고 부처님은 자기절 제와 내면적 자유를 강조한다. 먼저 인연비유담에 이어서 게송 이 읆어진다. 한 소년이 부처님 말씀이 담긴 게송을 아주 유창하게 외웠다. 그리고는 그 공덕을 다겁생래(多劫生來)의 부모님들에게 회향한 다고 말했다. 이때, 그 소년의 전생 어머니는 저승에서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소년의 전생 어머니는 저승에서 그 말을 듣고 기 뻐했다. 소년의 회향공덕 때문에 다른 귀신들로부터 존경을 받았 는데 소년이 출가해서 비구가 되기로 결심해야할 순간 소년의 마 음이 변했다. 소년은 때묻고 헤진 옷을 입고 금생의 어머니에게 가서 출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소년의 결심을 안 금생의 어 머니는 소년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둘 작정이었으나 전생의 어머니는 소년이 출가하지 않으면 다른 귀신들 사이에서 체면이 크게 깍일 처지였다. 그래서 소년의 몸에 들어가 소년이 발작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소년의 발작을 보기 위해 모였다. 전생의 어머니 귀신은 소년이 정신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외우게 했다. "저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승가대중을 떠나 세속인이 되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처럼 행동한다면 저는 고통으로부터 벗어 나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려 부끄러워하는 소년에 게 금생의 어머니는 지끔까지 발작해서 정신을 잃은 가운데 일어 난 일을 모두 말해주었다.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소년은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그리고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사정을 말씀드리고 한동안 어리석음을 참회했다. 이때 부처님은 소년에게 게송으로 가르침을 주셨다. 지난 과거 네 마음은 정처없이 방황하며 좋은 것을 따라가 그것을 즐겼었다. 자 이제는 네마음을 현명하게 다스려라 마치 조련사가 발정한 코끼리를 뾰쪽한 쇠끝으로 다스리듯이.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소년은 열심히 수도하여 마침내 고집멸 도 사성제를 깨닫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법구경>의 말씀은 아주 이해하기 쉽다. 게송 앞의 인연비유담 에서 소년이 부처님의 성스러운 게송을 외운 공덕으 자신에게 돌 리는 것을 보고 기뻐하던 전생의 어머니가 소년의 몸에 들어가 소년을 발작하게 하는 장면과 그로 인해 소년이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어서 자신 다스리기를 조련사 가 발정한 코끼리를 쇠끝으로 다스리듯하라고 게송이 나온다. 여 기서 소년이 발작한 것은 자기가 고의로 한 것이 아니었다. 전생 의 어머니 귀신이 소년을 발작하게 만들었으므로 소년에게 발작 의 책임이 없다. 그러나 부처님은 귀신이 자기에게 들어와서 일 을 만들고 나갔더라도 그 책임은 소년에게 있다고 한다. 꼭 출가 해야 할 소년이 마음에 바람이 들어 출가할 마음을 바꿈으로써 마음에 귀신이 들어올 틈을 주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자신을 조 절하지 못하고 발작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게송이 전해 주는 비유가 인상적이다. 세속으로 돌아갈까 하 고 망심(妄心)을 품었던 소년에게 흔들리는 자기자신을 통제를 마치 코끼리 조련사가 발정한 코끼리를 쇠꼬챙이로 다루듯 하라 고 부처님은 설한다. 필자는 코끼리가 발정하면 얼마나 날뛰는 지 도 조련사가 어떻게 쇠꼬챙이로 코끼리의 흥분을 가라앉게 하 는지 보지 못했다. 아마도 발정한 코끼리는 무서울 정도로 날뛸 것이고 조련사는 무자비하게 쇠꼬챙이를 쓸 것으로 짐작된다. 발정한 코끼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아니겠는가. 어찌 꼭 발정을 음 양의 관계로만 해석해야겠는가. 돈과 명예를 향한 흥분도 일종 의 발정이 아니겠는가. 남과 비교하고 남을 시샘하고 남을 원망 하는 것도 일종의 발정이 아니겠는가. 부처님은 쇠끝으로 달아오 르는 흥분을 찌르라고 설한다. 계속해서 다음 코끼리 이야기가 나온다. 젊었을 때 힘이 세고 강했던 늙은 코끼리가 물을 마시려고 늪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빠 졌다. 상황을 살펴본 조련사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코끼리 를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꾀를 내어 군악대를 불렀다. 군악대로 하여금 힘차고 씩씩한 군악을 연주하게 했다. 그 음악 을 들으면서 늪에 빠진 코끼리는 자신이 전쟁에 나가는 듯한 기 분을 일으키며 힘을 모아 몸을 늪으로부터 솟구쳐서 언덕으로 올 라왔다. 그 광경을 목격한 비구들이 그 사실을 부처님께 사뢰자 부처님은 게송을 읊으셨다. 마음을 집중해서 힘차게 수행하여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라. 늪 속의 코끼리가 자기 힘으로 늪을 빠져 나오듯 너희도 번뇌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라. 우리는 목마른 늙은 코끼리이다. 물을 얻기 위해서는 늪 가까이 가야 한다. 다겁생래의 무거운 업의 무게는 우리를 자칫 늪 에 빠지게 하며 우리가 쌓아온 업의 무게를 들 수 있는 것은 아 무것도 없다. 요즘 지하철 공사장에서 일하는 큰 크레인은 코끼 리를 들 수 있을지 모르나 아무리 큰 크레인이라고 하더라도 우 리가 억겁으로 쌓아온 번뇌의 업을 들지는 못한다. 늪에 빠진 우 리를 아무도 건질 수 없다. 코끼리 자신이 일어나야 하듯 우리 자신이 일어나야 한다. 인간 조련사인 부처님은 우리에게 소리 없는 소리로 고요의 음악을 들려 주신다. 그러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의 용맹심을 내는 것은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우리가 뼈를 깎는 집중적인 수행으로 조련사 부처님의 묵언 소리 에 응답해야 한다. 코끼리 이야기가 계속된다. 한때에 비구들이 두 파로 갈라져 다 투었다. 한 파는 계율을 가르치는 스승을 따랐고 다른 한 파는 경을 가르치는 스승을 따랐다. 부처님이 화해를 권했지만 두 파 의 비구들은 싸움을 그치지 않았다. 부처님은 그들을 떠나 다른 숲속에 가서 시중드는 이 없이 코끼리와 함께 3개월 동안의 우기 안거를 보냈다. 비구들이 부처님을 찾아가 참회하고 3개월 동안 시중도 없이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느냐고 여쭙자 부처님은 말씀 하신다. 비구들아, 그런 말하지 말라. 저 코끼리가 여래를 잘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여래는 그동안 아무런 불편도 없이 고요히 지낼 수 있었느니라. 너희가 만일 저 코끼리와 같이 좋은 벗이 있다 면 그와 함께 행동하도록 하여라. 착한 벗을 가질 수 없거든 홀 로 살아감이 훨씬 좋으니라. 연이어 세 개의 게승을 읊으셨다. 만일 총명하고 품행이 바르고 슬기롭고 진실한 벗을 얻을 수 있거든 그와 함께 기쁘고 안락하게 살아가라. 그러면 생사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리니. 그러나 총명하고 품행이 바르고 슬기롭고 진실한 벗을 얻을 수 없거든 자신의 승리로 세운 나라를 버리고 홀로 지내는 왕과 같이 코끼리가 홀로 숲속에 사는 것과 같이 기쁘고 안락하게 홀로 살아가라. 차라리 홀로 살아가라. 어리석은 자와는 벗할 수 없는 것. 저 코끼리가 숲속에서 홀로 살아가듯 홀로 살며 악을 행하지 않고 집착 없이 살아가라. 이 비유담에서 우리는 부처님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다투기 를 계속하는 비구들을 포용하고 살았다는 것을 아 수 있다. 부처 님은 자신이 세운 교단에서조차 하나의 권고자였을 뿐 강제력을 행사하는 분이 아니였다. 총명한 이가 있으면 같이 살고 그렇지 못하면 혼자 살아가라고 한다. 어떤 이가 군대를 일으켜 전쟁에 승리해서 나라를 세웠더라도 어리석은 신하들을 피해 홀로 지내 듯이 선지식이 없거든 홀로 살라고 권한다. 숲속에서 코끼리가 혼자 살듯 아무런 집착과 악행이 없이 홀로 살라고 한다. <법구경>의 이야기는 인도 상황이고 현재의 우리는 아무리 어리 석은 이와 같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인연의 사슬을 끊고 혼 자 떠날 수는 없다. 부득이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혼자가 되어 야 한다면 우리는 도시 속의 고독자가 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 다. 그러나 진정한 고독은 주위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해주는 데 있다.

 

3. 분노를 다스리는 마부

분노의 근원은 자만심이다. 자신을 완전히 낮출때 그 뿌리가 뽑 힌다. 게송 221번째 부터는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가 설해진다. 한 공주가 문둥병에 걸려 바깥 출입을 피하고 있었는데 공주의 오라버니는 출가한 비구였다. 공주에게 인관에 관한 법문을 해주 어 금생의 일이 반드시 전생과 연결되니 복을 짓기 위해서 선방 에 식당을 희사하라고 권했다. 공주는 금.은.보석 등 패물을 팔 아 식당을 짓기로 했다. 공주의 오라버니 비구는 모든 친지들에 게 공주의 치료를 위한 불사에 동참하라고 권했다. 공사가 진행 되는 동안 공주는 스님네의 변소.역실. 쓰레기장 등 험한 곳을 찾아다니며 청소를 했다. 식당이 완성되고 준공식을 하느 날 공 주의 병세는 좋아지기 시작했다. 식당이 완성되고 준공식을 하 는 날 공주는 부처님과 많은 스님네를 초청하여 공양을 올렸다. 공양후에 부처님은 시주자가 얼굴을 내보이지 않자 공주를 불러 금생에 문둥병이 걸린 이유거 전생에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 다. 공주는 전생에 왕비였는데 왕이 총애하던 상궁에게 심한 질투 를 느꼈다. 왕비는 상국의 얼굴에 독한 약을 뿌려 얼굴을 상하 게 했다. 그렇게 마음의 분노를 표시한 과보로 금생에 문둥병을 앓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이야기를 마치자 마자 읊으셨 다. 분노를 포기하라 자만심을 버려라. 모든 집착으로 부터 젓어나라 몸과 마음에 집착이 없는 자는 고통의 불행에 떨어지지 않는다. 공주는 부처님의 가르침으 듣고 더욱 열심히 공덕을 닦아 마침 내 병을 고치게 되었다. 이 인연 비유담에는 불자로서 모범적인 수행 자제가 보인다. 공주는 변소.욕실. 쓰레기장 등 험한 곳만 골라 청소하면서 자신의 전생 업장을 녹였다. 우리주변의 불자들 도 공주처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 참 좋아 보인다. 절에 와서 팔을 걷어 붙이고 구정물 통에 손을 담그며 설거지 하는 보살 수 행자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또 마음의 분노는 근원적으로 자만심 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을 완전히 낮추어야 분노가 없어 진다는 것이다. 공주가 전생에 왕비였는데 왕이 다른 여자를 가 까이 하면 왕비의 마음이 분노가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분노가 일어날 일은 왕실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 리 주변에서도 많이 있다. 나의 파트너에게 특별한 행위가 있으 면 그것으로 인해 배신감과 분노가 생긴다. 어느쪽이나 아무 일 도 없으면 무료하고 심심해서 허송세월하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 진다. 어느 쪽이나 강약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분노는 생기게 마 련이다. 나는 상대에게 잘해준다고 했는데 상대가 불만을 느낀다 면 이쪽에서도 분노를 느낀다. 이 쪽의 분노는 불길과 같아서 상 대에게 옮겨 붙는다. 두개의 장작이 불길을 만들 듯 화력과 화력 은 서로 힘으 합헤서 이 고해를 불태운다고 부처님은 가르친신 다. 분노의 뿌리는 자신을 높이고 집착하는 데서 온다고 한다. 집착과 자존심을 버리면 분노를 쉴 수가 있고 분노를 쉬어야만 고통의 불행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분노를 삭이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한 비구가 선방을 짓기 위해 서 나무를 자르려고 했을 때 그 나무에 거주하던 나무귀신이 비 구에게 말했다. " 이 나무를 자르면 저는 가족들과 갈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러나 비구는 그 나무를 잘라야만 선방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나무를 자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구 의 도끼는 이미 높이 오려져 내려오는 순간에 있었다. 나무가 넘 어지면서 아들 귀신의 팔이 부러졌다. 화가 난 나무 귀신은 비구 를 죽이려고 팔을 치켜 든 순간를 생각했다. 내가 계율을 잘지키는 이 비구를 죽이면 지옥에 떨어져 오랫도 안 과보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한번 선례를 보이면 다른 나무 귀신들도 비구들을 함부로 상하게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나무귀신은 분노를 억누루면서 부처님을 찾아가 사뢰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부처님은 나무귀신에게 아들 이 다친것을 위로하고 분놀를 삭인데 대해서 칭찬하시고 게송을 읊으셨다. 마치 달리는 마차의 속도를 솜씨있게 조절하는 마부처럼 진심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잘 다스리는 사람을 나는 진실한 마부라고 부른다. 다른 마부는 단지 고삐만 쥐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나무귀신은 비구를 죽이려다 말고 두가지 생각을 한다. 일을 저지르면 지에 가서 고생할 것이 두렵다는 생각과 비구를 해치면 그것이 선례가 되어 다른 이들도 자신을 본받게 되리라 는 생각이다. 나무귀신의 인과를 생각해서 비구를 죽이지 않은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더욱 고마운 것은 계행이 청정한 l다. 계 행이 비구를 걱정하는 태도이다. 계행이 나무귀신의 마음을 돌 릴 수 있을 마늠 중요하기는 한데 현대 산업사회의 환경속에소 스님네들의 계행 지키기가 옛날 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큰 스님 들은 설하기를 이 말세에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은 시장바닥에 서 범이 사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설사 계율이 충분하지 못한 슨 님네가 있다 하더라도 달이 뜨기전에는 등불을 의지해야 한고 마 니주가 없는 곳에서는 금.은이라도 보배를 삼아야 하듯이 스님네 를 의지하고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 수행자가 깨달음과 계 행이 부족하다 하더라고 염불. 참선.독경을 하거든 무조건 보호 하라고 한다. 주머니가 더럽다고 해서 황금을 버릴 수 없고 시궁 창을 피하고서는 연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무귀신의 선례를 걱정하는 것도 훌륭한 자세이다. 김구 선생 이 쓴 글 중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깊은 밤에 눈이 덮힌 산길을 걸어 가더라도 함부로 아무렇게나 걸어가지 말고 발자국 표시를 분명히 하면서 또박또박 걸어가라' 뒤에 오는 사람은 앞서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를 것이기 때 문이다. 앞에 걸어간 사람이 산의 눈길을 흩어놓으면 뒤에 오는 사람은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니겠는 가. 발자국 마다 바른게 표시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 나라의 부 패개혁 작업에 있어서 발자국을 분명히 찍지 않은 이들은 걱정해 야 하고 분명한 걸음을 걸어온 이는 편안하다. 언제나 바른 걸음 은 편안할 것이다. 아울러 뒤에 따라오는 이에게 바른 길은 제시 해 주는 이중의 공덕을 쌓게된다. 나무 귀신이 분노를 참고 부처 님께 고했을 때 부처님은 진심(瞋心)이 일어났을 경우 그것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진실한 마부이고 다른 이는 단지 고삐만 쥐 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렇다. 그렇다. 우리중에는 고삐만 쥐 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즐거운 마음이 들면 거기에 끌리고 성내 는 마음이 들면 거기에 끌린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내가 아니 라 환경의 상황이다. 우리는 그저 우i리 마음의 고삐를 잡고 있 는 척만 할 뿐 우리 마음을 제대로 이끌어 가지 못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진짜 마부는 분노가 일어 났을 때 그 마음을 자신이 쥐 고 있는 고삐로 잘 조절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분노를 다스리는 이야기와 게송은 계속된다. 비구들에게 공양하 기를 좋아하던 한 처년가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신심이 없 어 스님네들에게 공양을 올릴 수 없게 되자 친정의 도움을 받아 서 기생 한명에게 급료를 주고 남편을 시중하게 했다. 부인은 스 님들을 초정하여 공양을 대접하기 위해서 준비에 열중이었다. 남 편은 부인이 데리고 온 기생의 용모가 아름다웠으므로 그대로 받 아들이기로 했다. 신심이 없는 남편은 부인이 스님네의 공양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부인이로구나. 아무 이익도 없이 무엇 때문 에 비구들에게 공양을 대접하겠다고 저 고생을 하는가'. 이런 생 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남편이 자가 본부인을 사랑해서 웃는 것 으로 생각한 기생은 강한 질투심이 생겼다. 본부인의 머리에 뜨 거운 기름을 부으려고 하자 본부인은 기생의 악심을 알아 차렸 다. 그러나 그 기생이 얼마 동안 남편의 여자가 되어서 자신이 스님네께 고양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을 고맙게 생각해서 기생에 대한 자비심으로 태연하게 행동했다. 갑자기 기생이 본부인에게 기름을 퍼붓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기생을 두들겨 팼다. 기생은 뉘우치고 부처님께 잘못을 빌었다. 사정을 들은 부처님은 본부인 을 칭찬하며 게송을 읊으셨다. 분노를 정복하는 것은 겸손과 자비' 사악을 정복하는 것은 선과 지혜 인생을 정복하는 것은 관용과 베품 거짓말을 정복한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본부인의 신심이 돋보인다. 기생을 자신의 자리에 앉혀 놓고 스님네들을 공양할 정도라면 그 마음은 중생의 마음이 아 니 이미 보살의 마음이다, 여기서 육바라밀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라는 말은 없어 도 스님네께 공양하는 마음, 자신을 청정하게 간수하는 마음, 기 생의 공격도 인욕하는 마음이 있다. 본부인은 끊임없이 노력하 고 마음을 집중하며 일을 지혜롭게 처리한다. 그 행동 속에 육바 라밀은 그대로 나타난다. 부처님은 분노.사악.인색 등을 정복하 는 것이 겸손.자비.선.지혜.관용.베품이라고 말한다.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행하기 어려운 가르침이다.

 

4. 보시와 선행

가난은 언제나 사실적인 가난이 아니라 상대적인 가난이다. 상대적인 가난의 병은 치료할 수도 없다. 게송 116앞에 죄악을 짓는 문제에 관한 인연비유담이 시작 된다.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너무 가난해서 한 벌의 옷을 가지고 부인과 교대로 입어야 할 정도였다. 어느 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환희심에 찬 나머지 한 벌의 옷을 보시할까 생각하다가 보시해 버리면 부부가 외출할 옷이 없는 것을 생각하고 참았다. 두 번째에도 보시를 생각하다가 또 참았다. 세 번째에는 옷을 벗어서 부처님께 보시하고 말았다. 그리고 큰소리로 "내가 나를 이겼다."고 외쳤다. 부처님의 설법장소 에는 왕도 참석했는데 누가 무슨 이유로 소리를 지르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사정을 들은 왕은 그에게 큰 상을 내렸다. 비구들이 이 이야기를 부처님께 사뢰자 부처님은 비구들 에게 말씀하신다. 만약 그 사람이 보시하겠다고 생각한 처음에 바로 보시를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누구든지 공양을 하려면 처음 일어 난 마음 그대로 해야 하느니라. 다른 착한 일을 할 때도 마찬 가지니라. 너무 선행을 미루면 마침내 생각했던 것을 못하고 마는 수가 많으니라.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에는 착한 일보다 는 악한 일에서 쾌락을 느끼기가 쉽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후 게송을 읊으셨다. 착한 행위는 급히 서두르고 나쁜 행위는 억제하라. 착한 행위에 느린 마음을 가지면 나쁜 행위에 즐거움을 느끼기 쉽나니. 한 벌의 옷을 가지고 부부가 외출할 때마다 교대로 입은 가난한 형편에 보시할 마음을 내기도 어려운데 그 사람은 망설이다가 보시를 했다. 그 보시의 공덕으로 그는 왕으로부 터 상을 받아 모든 경제적인 어려움을 면하게 되었다. 그러 나 부처님은 그의 가난한 형편을 다 알면서도 처음 마음이 일어났을 때 보시하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그 사람에 비하면 우리 모두는 입을 옷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걱정이 있다면 얼마나 비싼 옷을 입고 뽐내느냐에 있지, 옷이 없어서 춥다거나 속살이 보이는 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 <법구경>에 나오는 사람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갑부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항상 가난하다. 더 많이 가져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더 많이 가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나는 아직도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일 터이다. 그래서 우리의 가난은 사실 적인 가난이 아니라 상대와 비교한 상대적인 가난이다. 이 상대적인 가난에 들린 병은 치료할 수도 없다. 아무리 많이 가지더라도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끊임없이 자기를 비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지고 싶으면서도 주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 사람이 많이 가지고자 하는 것은 그것을 쓰기 위해서이다. 물질을 쓴다는 말은 그것을 남에게 준다는 말이 된다. 우리는 호텔에서 팁을 주고 싶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고, 어려운 이도 돕고 싶고, 불사에 보시도 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인색해야만 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아니다. 분명히 보시할 마음이 일어날 때가 있다. 내가 지금까지 귀하게 여기던 것을 누구에게 주고 싶을 때도 있다.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은 때가 있다. 보시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을 때는 빨리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보시뿐 만이 아니라 모든 선행도 그러하다. 보시와 선행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황금 5천 5백만 냥을 들여서 기원정사를 부처님께 보시한 부호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했고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공양 올리는 것 또한 좋아했다. 부호는 한번도 빈손으로 부처님께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보시와 공양을 많이 했기 때문에 마침내 가난해 지고 말았다. 보시할 물건이 없는 그는 수도원에 갈 때 흙을 들고 갔다. 수도원의 나무에 흙을 쏟아 놓기 위해서이다. 그 부호의 집을 지키는 신장은 안타까운 나머지 부호에게 권했다. "당신의 장래를 생각해서 보시를 중지하고 다시 절약해서 부자가 되세요." 그 말을 들은 부호는 신장을 혼내고 쫓아 버렸다. 쫓겨난 신장은 제석천왕(帝釋天王)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했다. 제석천왕은 그 부호가 다시 재산을 많이 가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신장에게 일러주었다. 부호가 남에게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을 되찾아오고 부호의 아버지가 땅속에 묻어둔 많은 돈을 꺼내는 일이었다. 신장은 그대로 했다. 다시 재산을 많이 갖게 된 부호는 고마운 신장을 부처님께 데리고 가서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들으신 부처님은 게송을 읊으신다. 설사 악한 자라 하더라도 아직 악행의 과보가 나타나지 않아 행복을 누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악업의 결과가 나타날 때 그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리라. 비록 착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직 선행의 과보가 나타나지 않아 고통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선업의 결과가 나타날 때 그는 크나큰 이익을 즐기리라. 이 말씀을 듣고 그 신장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여기서 부처님은 현실적으로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잘사는 수가 있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잘 못사는 수가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선행과 악행의 과보를 받는 시기는 세 가지로 정해져 있다. 금생에 짓고 금생에 받는 과보, 전생에 짓고 그 다음 생에 받는 과보, 언젠가 짓고 어느 때 갑자기 받는 과보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나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그는 지금의 악행에 대한 과보는 뒷날 받겠 지만 전생 언젠가의 선행공덕으로 지금 잘살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모든 악행은 바로 과보를 부른다고 한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썩어 있는 경우가 많다. 외면적 부유가 내면적 행복과 일치 하지는 않는다. 또 똑같은 내면적인 행복이라 하더라도 진정 한 행복과 약물중독의 환각상태와는 그 가치면에서 큰 차이 가 있다. 꼭 마약에 의한 환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어긋나는 데서 행복을 찾았을 때 그것은 환각과 다를 바 없다. 아무런 가치가 없다. 어떤 이가 "무엇 때문에 가치를 따질 필요가 있느냐? 그냥 좋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면 그러한 회의 론자, 무정부주의자, 순간적 쾌락제일주의자와는 더 이상 삶의 진정한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지금 참다운 행복, 하늘이나 땅이나 동쪽이나 서쪽이나 저승이나 이승 이나 똑같이 참다운 것으로 인정되는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악을 짓고 있는 사람이 설사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는 필경에 악의 과보를 받을 것이요, 또 악을 짓고 있는 상태에서 동시에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지금 선을 베풀고 있는 사람이 불행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필경에 좋은 과보를 받을 것이요, 또 선을 짓는 상태에서는 불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질적·형상적인 면에서는 악과 선의 열매가 익을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무형적·심리적인 면에서는 악을 짓는 그 자리에서 그는 불행하고 선을 짓는 그 자리에서 그는 행복할 것이다. 다음 게송이 이어진다. 이것이 내게 무슨 영향을 미치랴 하여 작은 공덕 짓는 것을 가벼이 말라.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조금씩 쌓아 큰 공덕을 만든다. 마치 한 방울씩 떨어진 물이 큰 독을 채우듯이. 큰 일을 하려는 사람은 작은 일부터 잘해야 한다. 큰 선을 쌓으려는 사람은 작은 선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중에는 신문과 방송에 날 만한 큰 선행을 꿈꾸면서도 실제 생활에 서는 선행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큰물을 만들 듯, 작은 물방울이 끊임 없이 바위를 치면 바위에는 구멍이 뚫린다. 작은 선행이 모 여서 큰 선행을 만들고 작은 선행이 지속되면 필경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큰 일을 이루게 된다. 게송을 하나만 더 들어보자. 손에 상처가 없으면 독약을 다룰 수 있다. 독약은 상처 없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나쁜 행위를 하려는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악행은 붙을 수 없다. 의미심장한 비유의 법문이다. 두 사람이 똑같이 독약을 다룰 경우에도 상처 없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고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를 통해서 독기를 받게 된다. 마음에 악을 품지 않은 사람은 돈을 만지더라도 돈독이 묻지 않는다. 그러나 악을 품은 사람이 돈을 만지게 되면 돈독이 오르고 일을 저지르게 된다. 사람도 버리고 돈도 버린다. 이 고해의 세계에 있는 한 가지 한 가지들이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에게는 일종의 독이 될 수도 있다. 상처 없는 사람이 되어 야 한다. 아니면 손에 고무장갑이라도 끼고 다녀야 한다. 세상에 독이 몸에 스며들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좌선문 (坐禪文)은 '욕심경계에 살되 욕심을 초월하고 티끌경계를 살되 티끌세상을 초월하라.'고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