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9-07-08 10:23
[경전공부방] [능엄경] 능엄경2권 -2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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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본체는 하나라는 것을 밝힘

그때에 대중 가운데에서 배울 것이 없지 아니한 자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자옵고 멍청하게 이 이치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하며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마치 간 직하고 있던 것을 잃은 듯하였다. 여래께서 그들의 정신이 변하여 어리둥절함을 아시고 가엾은 마음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을 위안하시기를 "모든 선남자들아! 위없는 법왕의 진실한 말씀이며 여여 (如如)한 말씀이기에 속이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니, 말가리(末伽梨)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는 네 가지 거짓으로 혼란하게 하는 논의와는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자세 히 생각하여 애모(哀慕)함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 그때에 문수사리 법왕자보살이 여러 사부대중을 가엾게 여기사 대중 가운데 계시다 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기 모인 모든 대중들은 여래께서 밝혀주신 두 가지 정밀하게 보는 것과 물질이나 허공에 대하여 이것인지 이것이 아닌지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허공과 물질의 형상이 보는 것이라면 응당 가리킬 것이 있어야 하며, 만약 보는 것이 아니라면 응당 볼 것도 없어야 할 터 이니, 지금 그 이치의 본 뜻을 알지 못하여 놀랍고 두렵기는 할지언정 그렇다고 이것 이 옛날보다 선근(善根)이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를 밝혀주시옵소서. 이 모든 물상과 보는 정기가 본래 무엇이길래 그 중 간에 이것과 이것이 아님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와 여러 대중들에게 이르시기를 "시방의 여래와 큰 보살들이 그 스 스로 머무는 삼마지 가운데 보는 것과 보이는 대상과 그리고 생각하는 모양은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보는 것과 그 대상은 본래가 보리의 오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실체인데 어찌 그 가운데 '이것이다, 저것이다' 할 것이 있겠 느냐? 문수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문수인 것과 같아서 또 다른 문수가 문수이 냐? 문수가 아니냐?" 문수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진실한 문 수이므로 그러한 또다른 문수는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이 것은 두 문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문수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실제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라고 할 두가지 모양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보는 성품의 오묘하고 밝은 것과 허공과 물질도 역시 이와 같아서 본래 오묘하고 밝은 위없는 보리의 깨끗하고 원만한 참 마음이거늘 이것 이 허망하게 허공과 물질과 듣고 보는 것이라 여겨서 마치 제二의 달과 같으니 어느 것이 달이고 어느 것이 달이 아니라고 하겠느냐? 문수야! 하나의 달만이 참된 것이라면 그 중간에는 자연 '달이다, 달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보는 것과 그 대상을 보고서 여러 가지로 밝 혀냄을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 그 가운데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하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참되고 순수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으로 말미암았 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가리키고 가리키지 않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겠다."

 

[10] 거듭 떨쳐버리고 곧바로 보이심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진실로 법왕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각연(覺緣)이 시방 세계에 가득하여 맑고 고요하게 늘 머물러서 그 성품이 생기고 없 어짐이 아닐진대 선범지(先梵志)인 사비가라가 말한 명제(冥諦)와 투회(投灰)등 모든 외도종자가 말하는 참 나라는 것이 시방 세계에 고루 가득히 있다는 것과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세존께서도 일찌기 능가산에서 대혜보살(大慧菩薩)등을 위하여 이 이치를 말씀하실 적에 '저 외도들은 항상 자연이라고 말하였나니 내가 말한 인연은 저들의 경계가 아니 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관찰해 보건댄 깨닫는 성품이 자연 그대로여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 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체의 허망하게 뒤바뀐 것을 멀리 벗어나니 아마도 인연이 아 닌 것 같고 마치 저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설명하셔야만 우리들로 하여금 모든 삿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오묘하게 깨닫는 밝은 성품을 얻을 수 있게 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이렇게 방편을 보여서 진실하게 말하였 는데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자연인가 하고 의혹을 품느냐? 아난아! 만약 자연이 라고 기필한다면 그 자연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서 자연의 본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너는 또 이를 관찰해 보아라. 오묘하고 밝게 보는 것 가운데 무엇을 자(自)라고 하 겠느냐? 이 보는 놈은 밝음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어두움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니면 허공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막힌 것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밝은 것을 자(自)라고 한다면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허공을 자연의 본체라 한다면 응당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다른 어두운 현상에 이르는 것으로 자연이라 생각한다면 밝을 때에는 보는 성품이 아주 없어질 것 인데 어떻게 밝음을 보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반드시 이 오묘하게 보는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제 가 지금 이것은 인연의 성품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만 마음에 아직까지 분명하 지 못하여 여래께 묻습니다. 이 이치가 어찌하여야 인연의 성품에 맞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인연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 다. 네가 지금 보는 것으로 인하여 보는 성품이 앞에 나타나나니 이렇게 보는 놈은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응당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 고,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은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허공 과 막힘에 이르기까지도 밝음이나 어두움과 같을 것이다. 아난아! 이 보는 것이 밝은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운 것을 따라서 보 는 것이 있느냐,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만약 허공을 따 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허공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밝음으로 인해서와 어두움으로 인해서도 허공이나 막힘과 같나니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정밀한 깨달음의 오묘하고 밝음이 인(因)도 아니며 연 (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며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며, 아닌 것과 아님이 아닌 것도 없으며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도 없어서 일체의 모양에서 벗어나 일체의 법에 나아가 나니라. 네가 지금 그 가운데 어떤 마음을 가지길래 모든 세간에서 장난삼아 논란하는 명 상(名相)으로 분별하려 하느냐? 이는 마치 손바닥으로 허공을 만지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애만 쓸 뿐이지 허공이야 어떻게 네게 잡히겠느냐?"

 

[11] 모양을 여의어야 함을 밝힘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기필코 이 오묘한 깨닫는 성품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라면 세존께서 어찌하여 늘 비구에게 말씀 하시기를 보는 성품 이 네 가지 연을 갖추어야 하니, 이른 바 허공을 원인으로 삼고 밝음을 원인으로 삼 으며, 마음을 원인으로 삼고 눈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을 뜻함입 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그것은 내가 세간에 인연의 모양을 말한 것이지 제일의(第一義)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니라. 아난아! 내가 다시 네게 묻겠는데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나니 어떤 것을 본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는 것을 본다고 하고 만약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지 못한 다고 합니다." "아난아! 만약 밝음이 없을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어두움도 보지 못해 야 할 것이며, 만약 반드시 어두움을 본다고 한다면 이는 다만 밝음이 없는 것이지 어떻게 봄이 없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에는 밝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 금 밝을 때에 어두운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을 또다시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 렇다면 두 모양을 모두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두 모양이 서로 빼앗는다고 할지언정 너의 보는 성품이 그 가운데 잠시라도 없 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본다고 해야지 어찌하여 보지 못한다 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밝음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밝음 이 아니며, 어두움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어두움은 아니며,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것 이 허공은 아니며, 막힌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막힌 것은 아니니라. 네 가지 이치가 성취되었으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는 놈을 볼 적에 보는 놈은 보는 것이 아니니라. 보는 성품은 오묘하여 그것이 오히려 보는 것을 벗어나서 보는 것으로도 미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인연이다 자연이다 어울려 조화된 모양이다라고 말하겠는가? 너 희 성문(聲聞)들이 용렬하고 지식이 없어서 청정한 실상(實相)을 통달하지 못하니, 내가 지금 너에게 가르쳐 주겠으니 마땅히 잘 생각해서 오묘한 보리의 길에서 지치거 나 게을리 하지 말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오직 부처님께서 저 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서로 어울려 조화된 현상과 어울려 조화되지 못함을 설 명해 주셨으나 마음은 아직 열리지 아니하였는데 이번에 다시 보는 놈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심을 듣고서는 더욱 의혹이 짙어집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서 큰 지혜의 눈을베푸시어 저희들에게 깨닫는 마음이 밝고 맑음을 보여주 소서." 말을 마치고는 슬피 울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성인의 가르침을 받으 려고 하였다.

 

[12] 허망한 모양을 따로따로 풀이함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엽게 여기시사 큰 총지문(總持門)과 모든 삼매의 오묘한 수행 방법[길]을 다시 말씀하시기 위하여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비록 기억력은 강하나 다만 많이 듣는 것만 힘썼고 사마타의 미묘하고 정밀하게 비추 어 봄에 대해서는 마음에 아직까지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나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 으라. 내가 너를 위하여 이를 분별하여 보여줄 것이며, 또한 장래에 정기가 새는 것이 있는 자들도 보리의 과업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세간을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분별하여 보는 것이 허망하여 그것이 장소에 따라 발생하며 업보에 따라 흘러 전전하기 때문이 다. 무엇을 두 가지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첫째는 중생의 별업(別業) 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의 동분(同分)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 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별업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세상 사 람들이 눈이 붉어지는 눈병이 생기면 밤에 등불을 볼 적에 또다른 둥근 그림자가 생겨 서 다섯 가지 색깔이 중첩으로 보이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는 이것 이 등불의 빛이냐 아니면 보는 것의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그와 같은 것을 보 지 못하고 그 둥근 그림자는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만 보느냐? 만약 그것이 보는 것 의 빛이라면 보는 것이 이미 빛을 이루었거니 저 눈병이 있는 사람만이 둥근 그림자 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또 아난아! 만약 이 둥근 그림자가 등불을 여의고서도 또다른 것이 있다면 마땅히 곁에 있는 병풍과 휘장과 의자와 자리를 볼 적에도 둥근 그림자가 생겨야 하며, 보는 것을 떠나서도 또다른 것이 있다면 응당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눈병이 있 는 사람에게만 둥근 그림자가 보이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빛깔은 사실 등불에 있는 것인데, 보는 것의 병으로 인하여 그림자가 되었나니라. 그림자와 보는 것이 모두가 눈병으로 생긴 것이지만 눈병을보는 것은 병이 아니다. 그러니 이것을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 고 할 것이 못되며, 또 그 가운데에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라 고도 할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제二의 달은 본체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다. 왜 그런가 하면 제二의 달을 보는 것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들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을 가리켜 '달의 형체다 달의 형체가 아니다 한다거나, 보는 것이니 보는 것이 아니니'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나니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병으로 생긴 것이어니 지금 무엇을 이름하여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고 하려느냐? 더구나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겠느냐?

 

[13] 매듭지어 말씀하심

어떤 것을 '같은 분수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느냐 하면,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 큰 바닷물을 제외하고 중간의 육지에 三千개의 섬이 있으니 한 복판에 있 는 큰 섬을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보면 큰 나라가 二千 三백이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가운데 혹은 삼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혹은 이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혹은 한 두 나라에서 三十, 四十, 五十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니라. 아난아! 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으니 오직 한 나라 사람만이 악한 인연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작은 섬에서 사는 중생은 일체의 상서롭지 못한 세계를 봄에 있어 더러는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달무리나 해무리[暈適], 해의 귀걸이, 혜성[彗], 패성, 흐르는 별똥[飛流], 부이(負珥),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나쁜 모양을 오직 이 나라의 사람들만 볼지언정 저쪽 나라의 중생들은 본래 보지 못하고 또한 듣지도 못하나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앞뒤로 맞춰가면서 밝혀 주리라. 아난아! 저 중생들이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등불주위에 둥근 그 림자가 비록 대상의 물체처럼 나타나지만 마침내 보는 자의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눈병은 곧 보는 것의 피로로 생긴 것이지 빛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눈병을 보는 자는 마침내 보는 잘못은 없나니라. 예컨댄 네가 오늘 눈으로 산과 강, 그리고 국토와 여러 중생들을 보는 것이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놈이 병들므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보는 놈과 보이는 대상은 마치 눈 앞의 대상처럼 나타나지만 본래는 나의 깨닫고 분별하는 것으로 대상 인 물체를 보는 눈병이다. 그러니 깨닫고 보는 것은 눈병이겠지만 본래부터 있어온 깨달음의 밝은 마음으로 대상인 물체를 깨닫는 것은 눈병이 아니리라. 분별할 대상을 분별하는 것은 눈병이고, 분별하는 본각[性覺]의 밝은 근본은 눈병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사실 보는 놈을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다시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그리고 모든 세상의 열 가지 중생을 보는데 그것은 모두 보는 놈의 눈병이지 눈병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저 보는 놈이 정밀하고 참된 이 유는 성품이 병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보는 놈이라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아난아! 저 중생의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한 사람을 예로 들어 비유하면 눈병이 생긴 한 사람은 한 나라와 같으며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가 눈병으로 생긴 것과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상서롭지 못한 것이 보는 것이 같은 업장 가운데 장악으로 생긴 것이니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 부터 보는 놈이 허망함에 의하여 생긴 것이다. 염부제(閻浮提) 三千 개의 섬과 사방의 큰 바다와 사바세계와 그리고 시방의 정기 가 새는 것이 있는 모든 나라들[有漏國]과 모든 중생들을 예로 들면 이 모두가 깨닫 고 분별하는 새는 것이 끊어진 오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여 허망한 병 으로 인하여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서 허망하게 나고 죽나니라.

 

[14] 요체를 들어 결론지어 대답함

만약 화합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 모든 인연을 멀리 여의면 곧 여러 가지 나고 죽 는 원인을 없앨 수 있어서 원만한 보리의 나고 죽지 아니하는 성품을 이루어 청정한 본래의 마음에 본래의 깨달음이 늘 머무르게 되리라.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本覺)의 오묘하고 밝은 성품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깨달음의 근원은 서로 어울려 조화되어 생긴것도 아니며 서로 어울려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닌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나타나는 경계로서 네게 묻겠는데, 너는 지금 오히려 일체 세간의 허망한 생각으로 화합하는 모든 인연의 성품으로 인하여 스스로 의혹하 기를 보리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긴다고 여기는구나. 만약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적에는 마땅히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곳에 보는 것이 섞였느냐? 보는 것과 물질은 분별할 수 있 지만 섞인 것은 어떠한 형상이냐? 만약 보는 놈이 아니라면 어떻게 밝은 것을 보며, 만약 보는 놈이라면 어떻게 보는 놈을 본다고 하겠느냐? 보는 놈은 반드시 밝은 것과는 다르므로 섞이었다면 저 성품 이 밝다는 이름을 잃으리니 섞임으로 해서 밝은 성품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밝음과 조 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네가 지금 오묘하고 청정하게 보는 정기는 밝은 것과 어울린 것이냐, 어두 운 것과 어울린 것이냐, 통한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막힌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만약 밝음과 합한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맑은 모양이 이미 없어질 것이니, 저 보 는 놈이 어두움과는 어울리지 못할 터이니 어떻게 어두움을 본다고 하겠느냐?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음과 합했을 적에도 밝음 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밝음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것이 며 밝은 것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도 역시 이러하니라.

 

[15] 다른 것들도 같음을 밝힘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희 생각 같아서는 이 오묘한 깨달음의 근본이 모든 상대되는 물질과 그리고 마음과 생각으로 화합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또 말하기를 깨달음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묻겠다. 이 오묘하게 보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조 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음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보는 놈과 밝은 것이 반드시 경계선이 있어야 하리니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밝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보는 놈이냐? 보는 놈과 밝은 것이 어디로부터 경계가 되는냐? 아난아! 만일 밝은 것 중에 반드시 보는 놈이 없다면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밝은 모양이 있는데를 알지 못할 것인데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또 오묘하게 보 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 아니라면 곧 보는 놈과 밝음의 성격이 서로 어긋남이 마치 귀와 눈이 서로 닿지 않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너는 아직도 일체의 부질없는 물질인 모든 허깨비 같이 변화하는 모양이 곳을 따라 생기 며 곳을 따라 없어짐을 알지 못하는구나. 허망한 허깨비 같은 것을 물질이라고 하지 만 그 성품은 참으로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이다. 이와 같이 오음(五陰)과 육입 (六入)과 십이처(什二處)와 십팔계(十八界)도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기는 것이 며 인연이 흩어져서허망하게 없어지나니, 진실로 생기고 없어지고 가고 오고 하는 것 이 본래는 여래장(如來藏)이어서 항상 머무르는 것이며 오묘하고 밝은 것이며 흔들리 지 않으며 두루 원만한 오묘하고 참다웁고 변함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 나. 성품의 참되고 항상한 가운데서는 가고 옴과 미혹하고 깨달음과 나고 죽고 함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나니라.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五陰)이 본래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 냐?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맑은 하늘을 볼 적엔 오직 하나 의 맑은 하늘일 뿐이어서 멀리 아무 것도 없거늘 그 사람이 까닭없이 눈동자를 움직이 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가 생기면 곧 허공에서 또다른 광화(狂華)가 보이며 또다시 몹시 어지러워 모양이 없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색음(色陰)도 그러 하니라.

 

[16] 허망한 것인 줄 깨달으면 곧 참됨

아난아! 이 헛보이는 꽃은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미 허공에서 생겼으니 다시 허공으 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가령 나오고 들어감이 있다면 곧 허공이 아니며 허공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 그 꽃 모양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함이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을 쫓아 나왔으므로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 이니 이 헛보이는 꽃의 성품이 눈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마땅히 볼 수 있을 것인데, 만 약 보는 것이 있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에 꽃이 있으므로 돌아올 적에 마땅히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것이 없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을 가리웠으므로 돌아 올 적에 마땅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다. 또 헛 꽃을 볼 적에 눈이 응당 가리움이 없 을 것인데 어찌하여 맑은 허공이라야 청정하고 밝은 눈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색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 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손발이 편안하고 모든 뼈마디가 적절히 조화되었을 때는 홀연히 살아있음을 잊은 듯하여 성품이 어긋나거나 순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 닭없이 두 손바닥을 허공에서 서로 비비면 두 손바닥에서 허망하게 껄그럽거나 미끄 럽거나 차거나 뜨거운 여러가지 모양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라. 수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 여러가지 허깨비같은 허망한 접촉이 허공에서 부터 온 것도 아니며 손바 닥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 닥에 접촉 하였는데 어찌 몸에는 접촉하지 아니하였느냐? 응당 허공이 이를 선택하여 와서 접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손바닥으로부터 나왔다면 손바닥이 합하기를 기다 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합할 적에 손바닥이 느낀다면 뗄 적에는 접촉이 들어가 서 팔과 손목과 골수들이 응당 들어갈 때의 자취를 느껴야 할 것이니라. 반드시 느끼 는 마음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감을 안다면 자연 한 물건이 몸 가운데 오갈 것인데 어 찌 손바닥과 합해져야만 느끼는 것을 접촉이라고 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수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신 매화 열매를 말하면 입 안에서 침이 생기고, 까 마득한 벼랑에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지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상(想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러한 신 이야기가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뉨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 니라.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면 매실이 마땅히 스스로 말을 해 야 할 것이어늘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만약 입을 쫓아 들어갔다면 마땅히 입으로 들어야 하리니 어찌 귀를 기다리겠느냐? 만약 유독 귀만이 듣는다면 이 침이 어째서 귀속에서 나오지 않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상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흐르는 성품이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며, 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물의 성품도 아니며,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곧 시방의 끝없는 허공에 끝 없는 흐름이 생겨서 세계가 자연히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며, 만약 물로 인해 있 는 것이라면 이급히 흐르는 물의 성품은 마땅히 물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능유(能有) 와 소유(所有)의 모양이 지금 마땅히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만약 곧 물의 성품 이라면 맑은 때에는 응당 물의 본체가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이라면 허공은 밖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물 밖에는 흐름이 없어야 할지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행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병의 두 구멍을 막고 가운데는 허공을 가 득히 채워가지고 천리나 되는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사용하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 아라. 식음(識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러한 허공은 저쪽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이쪽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라. 그러하니라. 아난아! 만약 저쪽에서 오는 것이라면 본래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병이 있던 곳에는 마땅히 허공이 조금 줄었어야 할 것이 며, 만약 이곳으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일 적에는 마땅히 허공이 나오 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식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 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