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 법 연 화 경
법화경은 원 이름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Saddharma-pandarika sutra )으로 "무엇보다 밝은 연꽃과 같은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28품으로 이루어진 이 경전은 화엄경과 함께 한국불교사상의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많이 읽히고 사경된 경전이다.
『법화경』은 『화엄경』,『금강경』과 함께 대승삼부경(三部經)중의 하나입니다.
『법화경』은 축법호의 『정법화경(正法華經)』 10권 27품, 구마라집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 28품, 『첨품묘법연화경』 7권 27 품의 삼종 번역본이 있고, 이 중에서도 『묘법연화경』이 제일 많이 봉독(奉讀)되고 있습니다.
『법화경』은 『묘법연화경』의 약칭입니다. 이 경은 부처님의 지혜를 열어(開) 모여(示)함을 목적으로 편찬된 경입니다. 따라서 다른 경에서는 보살만이 성불하고 다른 자는 구제에서 빠져 있었는데 이 경에서는 악인이나 여인까지도 성불이 가능하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회삼귀일(會三歸一), 일불승(一佛乘), 제법실상(諸法實相)을 말한 경전으로 불교경전 중 가장 넓은 지역에 유포돼 많은 민족들에게 애호됐으며, 가장 깊이 지자(智者)에 의해 교학적 사상적으로 조직 정리 됨으로서 천태사상의 발전을 보게 된 천태종 법상종의 소의(所依)경전이기도 합니다.
◆ 법화경의 구성 법화경의 한역으로서는 서진의 축법호(Dharmaraksa)가 서기 276년에 번역한 '정법화경' 10권과 요진의 구마라집(Kumarajiva)이 406년 번역한 '묘법연화경' 7권, 그리고 수나라 때 사나굴다(Jnanagupta)가 601년 번역한 '첨품묘법연화경' 7권이 있습니다. 이상의 3역 본 가운데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 아름다운 문체와 평이한 번역으로 가장 널리 수지 독송되어 왔습니다.
특히 '법화경'의 총 28품 가운데 제 25품 '보문품(普門品)'은 일명 '관음경'이라 불리면서 관음신앙 성립에 큰 영향을 준 민간 경전으로 독송되었습니다. 또한 수나라의 천태대사 지의는 '법화경'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립, 해석함으로써 화엄사상과 함께 중국불교 교학의 쌍벽을 이루는 천태종을 수립하였습니다.
이상의 3역 본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법화경 : 10권 27품
첨품법화경 : 7권 27품
묘법연화경 : 7권28품
서품, 방편품, 비유품, 신해품, 약초유품, 수기품, 화성유품, 오백제자 수기품, 수학무학인기품, 법사품, 견보탑품, 제바달다품, 권지품, 안락행품, 종지용출품, 여래수량품, 분별공덕품, 수희공덕품, 법사공덕품, 상불경보살품, 여래신력품, 촉루품, 약왕보살본사품, 묘음보살품, 관세음보살보문품, 다라니품, 묘장엄왕본사품 보현보살권발품
◆ 법화경의 내용 법화(法華)라는 뜻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경지를 진흙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결코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답게 피어난 연꽃에 비유한 말입니다.
법화부 경전은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넒은 지역과 가장 많은 민족들에 의해 수지 독송된 대승경전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법화경의 28품 중 핵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이 등장하는 ‘방편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회삼귀일(會三歸一)이란 3승이 일불승(一佛乘)으로 통일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이 ‘방편품’에서 지혜제일이라고 하는 사리불에게, 여래가 깨달은 진리는 심심무량하여 그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바, 설령 사리불과 같이 지혜가 출중한 자라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인 가르침보다는 여러 가지 교묘한 방편을 써서 가르침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중생들을 집착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3승의 가르침을 편 것도 일종의 방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3승이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을 말합니다.
성문승과 연각승은 홀로 이 세상의 온갖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승불교이고, 보살승은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승불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진정한 가르침은 오직 하나이며 제2, 제3의 가르침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분명 일불승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락한 시대의 중생들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여래는 교묘한 방편을 써서 3승을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삼승방편 일승진실(三乘方便一乘眞實)’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합니다.
법화경 해설 - 민족문화대백과사전(정리 : 不二)
1. 법화경은 현재 한국불교 근본경전의 하나로서 원래의 이름이 묘법연화경이며, 그 뜻은 "진흙에 물들지 않는 하얀 연꽃과 같은 가르침"이다.
화엄경과 함께 한국불교사상의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이 경은 예로부터 모든 경전의 왕으로 인정받았고, 초기 대승경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경이다.
2. 법화경은 전체가 7권 28품으로 이루어 져 있으며 그 구성을 보면 1품부터 14품 까지를 적문(迹門), 그 이하를 본문으로 나눌 수 있다.
적문이란 현세의 모습을 나타낸 부처님(석가모니불)은 그 근원불(법신 비로자나불)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본지(本地)로 부터 흔적을 드리운다는 뜻이다.
본문은 진실한 부처님은 옜날에 이미 성불하였으며, 이 부처님의 본지와 근원과 본체를 밝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우주의 진리자체인 법신불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응신불인 석가모니불이 되어 이 세상에 출현하여 법을 설한 것을 구별하는 것으로 이는 석가모니불이 구원의 부처임을 나타낸 것이다.
3. 이 법화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은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이다. 삼승(三乘)이 결국은 일승(一乘) 으로 귀일한다는 이 사상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과 연각과 보살의 무리들에게 맞게끔 가지가지의 법을 설 했지만, 그것이 모두 부처의 지견을 열어보이고 깨달음으로 들어오게 하기위한 방편이었을 뿐, 시방불토에는 오직 일불승의 법만이 있음을 밝힘으로써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 회삼귀일사상은 화엄경의 원융무애(圓融無碍)사상 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꽃을 피워서 한국불교의 전통을 회통적귀일불교로 이끌었고, 한민족의 화(和)사상 에도 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일부 학자들은 신라의 삼국통일이 이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회삼귀일사상은 제2품 방편품, 제3품 비유품, 제4품 신해품, 제5품 약초유품, 제7품 화성유품 등에서 높은 문학성을 지닌 불타는 집의 비유, 방탕한 자식의 비유, 주정뱅이의 비유 등을 통하여 그러한 입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4.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류의 한역본중 구마라즙스님이 번역한 묘법연화경 8권이 가장 널리 보급 유통되었다. 28품으로 된 이 경은 그 전체가 귀중한 교훈으로 되어 있어서 어느 한 품만을 특별히 다룰만큼 우열을 논하기 어렵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제 25품 관세음보살 보문품이 관음신앙의 근거가 되어 특별히 존숭을 받아 왔고, 따로 "관음경"으로 편찬되어 많이 독송되어 왔다.
또한, 제11품 견보탑품은 보살집단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불탑(佛塔)숭배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다보탑과 석가탑의 조성에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
제15품 종지용출품에서는 대지하(大地下)의 허공속에 살고 있던 보살이 대지의 틈바구니로부터 솟아오르듯이 나타나 허공에 서는 장면들을 그리고 있는데, 학자들은 이 광경을 오랫동안 표면에 나타나지 못했던 보살집단이 강력한 세력으로 출현하게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허공에 선다는 표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입장에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전통적 교단에서 오직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불만을 숭배하는 피상적견해를 탈피하여, 무량한 생명의 상징인 부처를 보려는 보살들의 깊은 성찰의 결과를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제16품 여래수량품은 영원한 생명, 근원적인 생명으로서의 부처를 체증(體證)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보살들의 새롭고 깊은 불타관(佛陀觀)이 반영되어 있다. 부처는 언제나 이 사바세계에 머물면서 중생을 교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성불하게 한다는 지극한 이상이 담겨져 있고, 이것이 우리나라 법화신앙의 근거로서 크게 작용하였다.
법화경의 핵심 - 사사끼 고오껜 / 일본立正대학교수. 문학박사
1. 법화경과 부처님
법화경은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경일까? 이런 의문을 가질 때가 자주 있을 것이라 생 각된다. 경전을 읽어 보면 별로 어려운 교리도 아니다. 그렇지만 학자들이 설명하는 것이 여 러 가지 있어 그 해설을 읽고 있으면 어떤 것이 바른 것인가 헤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원래 보석상자에는 그 안에 훌륭한 것이 들어 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여의주 같은 훌륭 한 가르침이 들어 있어 열어 보면 그 고마움을 알게 된다. 그런데 법화경이라는 보석상자는 뚜껑을 열어 보아도 중심이 되는 명확한 말씀이 발견되지 않는데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 게 되는 것이다.
법화경은 부처님의 생애에 대하여 말씀한 것과 깊은 관계가 있으므로 아무래도 부처님의 전기를 머리에 두고 읽어 가지 아니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 하신 것이 30세(35세 설도 있다), 그후 약50년간 교화하시고 80세에 열반에 드셨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대하여 그들의 능력에 알맞는 법을 설하셨다.
제자들은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고 실천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는 제자들이 암기 하고 있던 가르침을 경전 또는 계율이라는 형식으로 묶어 그것을 의지처로 하였다. 뒷날 그 것을 문자로 적어서 경전으로 성립됐다. 이렇게 하여 이루어진 경전 첫머리에는 반드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는 말을 두게 되었다.
2. 법화경의 구성
법화경을 읽으신 분은 다 아시는 것처럼 전체의 구성에는 두 요점이 있다. 서품(序品)에서 시작하여 제14분인 안락행퓸(安樂行品)까지가 그 하나이고, 다음에 제15분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부터 그 이후가 또 하나의 중점이다.
앞 부분을 적문(迹門)이라 하고 뒷 부분을 본문이라고 구분한 것은 천태대사인데, 천태대 사는 법화경에 대한 주석과 사상적인 것을 탐구하여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이라는 책을 남겼다.
법화경의 전반의 중심 주제를 적문이라 하여 부처님께 자취를 보이시어 이 세상에 태어나 신 것을 말씀한 부분과 뒷 부분의 중심 주제를 분문이라 하여 원래의 부처님에 관하여 말씀 하신 부분과를 명확하게 나눈 것은 오랜 전통이 되는데 이것은 천태대사 이전부터 일러온 것이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새로운 불교학의 입장에서 볼 때 분명히 두 부분으로 되어 있지만, 그 14분과 15분에서 구분하느니 보다 제9분 수학무학인기품과 제10분 법사품 사이에 선을 그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제9분까지는 성문을 성불시키기 위하여 말씀한 것이고 제10 사품부터 제22촉루품까지는 보살의 활동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22품 이하는 여러 보살들의 자비행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으므로 작품별로 독립된 장이 되어 있으므로 아마도 이 부분은 본래의 법화경과 좀 성질이 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촉루품이란 부처님께서 설하신 교법을 제자들에게 이것을 널리 많은 사람에게 전하기 바란다고 홍법을 위탁하는 부분이므로 최후에 두어야 할 부분인데 이것이 법화경에는 가운데에 나온다.
이런 점으로 보아 법화경은 촉루품까지가 옛 모습이고 최후의 약왕보살본사품이하는 뛰어 난 덕을 지닌 보살들이 부처님 대신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을 말한 부분이 되어 있 으므로 본래의 일반된 입장에서는 좀 다른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3. 법화경의 배경
법화경은 반야경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라고 일러 온다. 그러나 방대한 반야경 사상을 전 하는 말은 사뭇 적으므로 과연 반야경이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부처님 재세시에는 제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부처님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언젠 가는 열반경지에 도달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정진했었는데, 부처님이 열반하 신 뒤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차차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자기 능력의 부족을 느끼게 되었다. 여기서 부처님과 제자 사이에 넘기 어려운 절대적 차이가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수행하는 석문 제자들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번뇌가 다한 아라한 의 지위까지는 이를 수 있지만 그 위에 대자대비의 큰 활동을 발휘할 부처님이 될 수 없다 는 생각이 소승불교라는 불교도 사이에 믿어져 왔다.
이런 전통적 계통인 소승학 파에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라는 큰 교단이 있었다. 이 교단 의 교학을 정돈한 것이 대비바사론인데 여기에는 교학적으로 석문수행에 든 자는 부처님이 되는 코스에로 전향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을 구제하는 대승불교에 의해서 불교 를 이해하는 우리들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반야경에서는 이러한 석문의 생각들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유마경에서도 역시 그 렇다. 유마경에서는 기성교단의 전문 비구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고루한 생각으 로는 부처님께서 가르친 경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소승불교 승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보살은 대승의 주역자가 되는데 소승의 경우에는 보살은 부처님이 될 특별한 후보자로서 존재가 인정되어 있었다. 보살이란 원래는 부처님이 출가하여 오도하실 때까지를 이른 말인 데, 이 보살에서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은 깨달음의 지혜와 일체중생을 건지시는 자비가 혼 연일체가 되어 위대한 인격자가 되시고 제자들을 인도하셨다.
제자들은 부처님에 대한 무한의 신뢰를 바쳐서 수행에 힘썼던 것이다. 불교교단의 역사를 보면 당초의 출가자들은 한 곳에 정주하지 아니하고 여러 곳을 유행하면서 수행하고 전도하 셨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승원이 생기고 한곳에 정주하게 되니 거기서 전문적 학문 과 수행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런 경향이 고정해가니 저절로 민중과 떠난 전문가의 불교가 되어 갔다.
이런 가운데서 전통적 입장을 지키려는 그룹과 발전적 주장을 하는 그룹과의 사이에 대립 이 표면화하여 마침내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뉘고 그것이 다시 20부파로 분열되었다.
이것이 부처님이 열반 후에 인도 불교의 상태였다. 이런 부파 교단은 본래의 부처님의 생 각과는 먼 곳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비판적 사상이 표면화한 것이다.
4. 법화경과 일승사상
부처님의 본래 정신은 일반 민중을 구제하는 것이고 그 정신을 민중 가운데 살려가는 것 이 이상이었다. 그러므로 부처님에 대한 절대적 찬양이 생기게 되고 신앙이 두터워 갔던 것 이다.
이러한 사상에서 전문가에 의한 출가 불교를 소승이라고 비판하고 일반 민중을 지도하는 새로운 불교를 대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소승인 성문과 연각은 성불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이처럼 소승인을 제외해 버리는 것도 또한 본래의 부처님의 뜻과는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일어난다. 이런 생각을 대표한 것이 법화경이다. 성문 연각을 포함한 모두가 성불한다고 하는 것이 본래 불교라는 말이다. 그래서 모두가 성 불한다는 일승사상(一乘思想)이 나타나 2승, 3승이라는 구별을 넘어서 통일된 입장에서 깨달 음을 구해가자는 것이다.
법화경 서품에서 제9분 수학무학인기품까지는 성문이 등장하여 지금까지의 가르침은 과정 의 가르침이고 참된 가르침은 누구나 성불하는 일불승의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거기에는 성문제자들을 차례로 불러 이제까지의 성문수행에서 보살 수행을 함으로써 부처 가 된다고 보증을 하였다.
수기(授記)란 부처님이 미리 성불을 보증하는 것으로서 부처님과 제자 사이에 절대적 신 뢰가 없으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은 성불의 근본이라고 생각되어온 지혜를 얻는 일 이 신앙의 확립이라는 형태로 바뀐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문 성불이라는 것이 법화경의 중심사상의 하나라고 말하게 되고 부처님 이 모든 사람을 성불시킨다는 자비심과 그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제자와의 마음의 교통 이 그 바탕에 있어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다음에 부처님의 대자비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이 성불하는 가르침을 어떻게 사바 세계에 넓혀가느냐 하는 것이 하나의 안목으로 되어 있어 부처님의 사자로서 사바 세계에 그 가르침을 넓혀 가는 보살의 활약상을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다.
다시 나아가 견보탑품(見寶塔品)에는 부처님께서 성문이 성불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시자 별안간 땅에서 거대한 탑이 솟아 오른 것을 말하고 있다. 그 탑 가운데 다보여래가 계셔서 석가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이라고 큰 목소리로 증거하신다.
다보여래는 과거 먼 옛날부터 좌선하고 계시는데 이것은 영원한 부처님 법신의 표현이라 고 생각된다. 이 다보여래의 권을 따라 석가 부처님이 그 곁에 앉으시니 이것을 이불병좌 (二佛 坐)라 한다. 이것은 영원한 부처님과 현세에 인격적으로 완성하여 성불한 사람이 하 나가 된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해석되고 있다.
즉 영원한 이법(理法)을 의미하는 법신과 우리들과 함께 살며 자기 완성을 한 석가모니불 이 된 사람이 일체가 됐다는 것으로서 이것은 또한 석가불이 진리의 모습으로서 이 세계에 오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가르침은「견보탑품」에서 「종지용지품」,「여래수량품」 에로 이어져 설명되고 있다.
5. 법화경 바탕을 흐르는 것
법화경 가운데서 어느 점이 핵심이라고 할 것인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나, 신앙 적 입장에서 본다면 역시 여래수량품이 중심이라 할 것이다. 부처님은 먼 옛날에 이미 성불 하셨지만 중생을 위하여 거짓 이 세상에 몸을 나투시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주체적 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앙을 떠나 학문적 입장에서 보면 방편품을 중심으로 하는 성문 성불쪽이 법화경의 중심 이라고 보는 편이 유력하다. 그 방편품에는, 부처님이 이 세간에 나타나신 것은 사람들에게 불지혜를 알리고 불지혜로 인도하여 깨닫게 하고자 하는 일 때문이라고 역설하신 것처럼 법 화경 전체를 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흘러 내려오고 사람들에게 간절한 마음을 일으키기 위 하여 80세에 입멸하신 뒤에도 부처님 보기를 원하며 일심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간절히 신 행한다면, 부처님은 항상 그 앞에 모습을 나타내어 구원의 손을 펴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내가 멸도에 든 것을 보고 널리 사리를 공양하여 모두가 연모의 뜻을 품고 갈앙심을 내며 중생이 그와 같이 신복하여 질직하고 유연한 마음이 되어 일심으로 부처님을 보고자 하여 신명을 아끼지 않으면 그때에 내가 대중과 함께 영취산에 나타나리라.」말씀하 고 있는데, 여기에서 법화경은 부처님의 대자비 위에 성립된 신앙경전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싸늘한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 위대한 부처님의 생명의 흐름이 영원한 과거 에서부터 현재로, 다시 미래로 흐르고 있고 그 가운데 우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법화경의 많은 부분에 어떠한 고난이라도 무릅쓰고 부처님 진리에 이르도록 정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법화경을 널리 펴기 위하여는 모두를 희생하고 자기 몸마저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반복 설하고 있다.
이 점에서 혹자는 법화경이 광신을 설하는 기묘한 경전이라 하든가 또는 거기서 어떤 저 항감을 품는 사람도 있으나 당시의 인도에서 보면 만인의 성불과 평등을 말하는 법화경은 대단한 이단 사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큰 반발도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은 법화경 뿐만 아니라 반야경에도 처음에는 마설 이라고 생각된 때도 있었고 또한 반야바라밀을 구하는 보살들이 신명을 버려 노력하는 것도 역설되어 있다. 신명을 아끼지 않고 진리를 구하며 가르침을 널리 펴는 것은 대승 경전 전 반에 통하는 보살의 이상인 것이다.
법화경의 근본은 부처님의 절대적인 자비심과 그것을 신뢰하고 신앙하는 사람들 사이의 너그러운 마음의 교통을 설하고 잇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