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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7-0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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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공부방] 불교 기초 교리<제13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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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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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신앙(마지막 강의)
불교의 역사관(歷史觀)에는 삼법관(三法觀)이라는 것이 있다. 삼법관이란 불교의 발전과정을 세 가지 시대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역사관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의 시대를 정법(正法)과 상법(象法)과 말법(未法)으로 분류한다. 이 시대들을 연대별로 구분하는 방법에는 정법 5백년, 상법 5백년, 말법 1만년 그리고 정법 5백년, 상법 1천년, 말법 1만년 또는 정법 1천년, 상법 5백년, 말법 1만년 그리고 정법 1천년, 상법 1천년, 말법 1만년으로 나누는 네 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정법 5백년, 상법 1천년, 말법 1만년이라는 설이 가장 일반화되어 있다.
정법이란 부처님의 말씀이 있고 수행하는 이가 있고 깨달음을 얻는 이가 있는 시기이다. 상법이란 부처님의 말씀도 있고 수행하는 이도 있지만 깨달음을 얻은 이가 없는 시대이고, 말법이란 부처님의 말씀은 있지만 수행하는 이도 깨달음을 얻는 이도 없는 시대를 말한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여 말법이란 불법이 쇠퇴하여 가는 시기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 말법에 있어서 부처님의 말씀만 있고 성불하는 이가 없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말법에 부처님의 말씀만 있다는 것은, 말법은 부처님의 말씀으로 성불하는 그러한 시대가 말법이라는 것이다.
즉 정법이란, 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도 성불할 수 있으며 또 자신의 수행에 의지하여도 성불할 수 있고 부처님의 말씀이나 자신의 수행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성불할 수 있는 시기이다. 또 상법이란 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도 성불할 수 있고 자신의 수행에 의지하여도 성불할 수 있지만 부처님의 말씀이나 자신의 수행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성불할 수 없는 시기이다. 그리고 말법이란, 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서만 성불할 수 있는 시기이고 다른 방법으로는 성불할 수 없는 시기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법의 신앙심은 행복은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 의지하여도 얻을 수 있고 또 어떠한 종교에 의지하지 않아도 자신이 노력함에 따라서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상법의 신앙심은 행복은 불교를 비롯한 어떠한 종교든지 그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말법이란 행복은 오로지 불교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불교에 입문한 이의 신앙은 정법의 마음에서 상법의 마음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말법의 마음을 가짐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첫째 염불은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여야 한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선업과 악업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겪게 된다. 예를 들면 기쁜 일, 분노와 원망을 가지게 하는 일, 절망적인 일 등 말이다. 기쁜 마음이 생길 때에는 그 기쁨 마음 그대로 분노와 원망이 내 마음을 가득 차게 했을 때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찬 마음 그대로 그리고 절망적일 땐 절망적인 마음 그대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노와 원망의 마음을 누르고 억지로 기쁜 마음을 내거나 기쁜 마음을 자제하면서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또 절망적인 마음을 희망적인 마음으로 바꾸어서 염불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 하는 염불이지 부처님께서 나를 부르는 염불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에게 불리어지는 염불을 하여야 기쁜 마음에 침착함이 생기고 원망과 분노의 마음에 용서의 마음이 생기고 절망의 마음에 희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둘째 업장을 피하려는 마음이 아니고 받으려는 마음에서 염불하여야 한다.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일들은 자신이 지은 업에 의하여 생기는 일들이다. 그런데 "내가 지은 이 업을 어떻게든지 받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는 마음에서 염불한다면 이것은 염불의 근본취지와 너무나도 어긋나 있는 기복적인 염불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은 업이라면 내가 모두 받아 낼 수 있는 장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나 "이 업을 받는 곳에 항상 부처님이 함께 하심을 알도록 하여 주십시오" 라는 마음으로 염불하여야 하는 것이다.
셋째 가장 고마울 때 또 가장 증오스러울 때 나오는 것이 염불이어야 한다.
우리들의 이웃 중에는 중오하고 싶은 인간들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사람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할 욕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로 염불하는 자에게 있어서 가장 심한 욕은 염불이 되어야 한다. 미운 이를 향하여 염불하여 보라. 우리가 화가 날 때 그때는 아마 미타정근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근하고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화가 가라앉을 것이다.
또 가장 감사하고 싶을 때 감사의 말 중 가장 좋은 말이 염불임을 알고 염불할 적에 이렇게 염불행을 할 때 나와 만난 악연도 나에게 염불을 시키는 은인이요, 선연도 나에게 염불을 시키는 은인이 될 것이니 삶 그 자체가 업을 만들지 않는 공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아미타부처님과 함께 살고 있음을 믿고 부처님에 의하여 자신이 하는 행동이 전부 관되어짐을 생각하여 이러한 자신을 부처님이 구원해 주겠노라고 서약하고 노력하는 것에 감사하여 염불하는 것이 바른 염불법인 것이다.
이렇게 염불하는 이에게는 찾아오는 세 가지 이익이 있다.
첫째, 제불보살들과 신장들의 보호를 받는 이익.
나무아미타불의 염불은 『무량수경』의 48원 중 17원의 '제불칭찬원(諸佛稱讚願)'이나 『아미타경(阿彌陀經)』의 '육방찬(六方讚)'에 나와 있듯이 제불여래의 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염불을 하면 제불여래와 불법을 지키는 여러 신장들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염불자는 제불보살과 신장의 보호를 받는 다는 설화가 있어서 소개하여 보겠다.
어떤 이가 친구와 길을 가다가 갑자기 친구가 죽어 버렸다. 그래서 묻어주고 마을로 돌아오니 마을 사람들과 친구의 처가 그가 친구를 죽였다고 의심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억울한 사나이는 친구의 무덤에 가서 하소연을 하니 친구의 영혼이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설명하여 그 억울함을 풀어주겠노라 하여 친구의 영혼과 걷던 중 항상 하는 입버릇으로 '나무아미타불'하고 염불을 하였다. 그러자 친구의 혼이 갑자기 사색이 되면서 "네가 염불할 적마다 신장들이 나타나서 무서우니 염불 좀 하지 마라"하는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뒤 그 사나이는 염불수행에 더욱 정진하였다 한다.
어쨌든 염불은 제불여래의 원에 의하여 중생구제의 방편으로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염불을 하는 이는 제불보살들의 보호는 물론이요, 제불여래를 호위하는 신장들의 보호도 받게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지옥으로 간다 하여도 제불여래와 신장들의 보호 속에 받는 지옥고이므로 그 지옥의 고통도 제불보살과 신장들의 보호를 받으며 업장을 녹이는 즐거움으로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둘째 건장하고 부유한 젊은 영혼을 가지는 이익
육신의 병은 그것이 아무리 죽을병이라도 죽으면 없어진다. 또 아무리 찢어질 듯한 가난이라도 죽으면 없어진다. 또한 우리들 신체의 장애도 죽으면 없어진다. 또한 우리가 추구하는 재물, 명예, 사랑 등도 죽으면 모두가 없어지고 만다. 하지만 영혼이 병이 든 사람은 죽어도 환자이고, 영혼이 장애인인 이는 죽어도 장애인이며, 영혼이 가난한 이는 죽어도 가난하다. 그러나 영혼이 건강하고 부유한 자의 건강과 부유는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염불이 우리에게 주려는 것은 육신의 건강이나 육신의 부귀영화가 아니다. 우리 영혼의 건강과 부귀영화인 것이다. 염불하여 얻는 육신의 부귀영화와 건강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염불하여 얻는 두번째 이익은 건강하고 부유하고 또 젊은 영혼을 가진다는 것이다.
셋째, 죽어서 극락에 가는 이익.
『무량수경』의 제18원인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은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 부르면 극락으로 왕생시켜 주겠노라는 부처님이 서약하고 계시며,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下品下生)은 오역죄를 지은이라 하더라도 임종 때 선지식을 만나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면 극락으로 왕생시겨 성불시키겠노라고 부처님께서 약속하셨다. 또 이 경의 유통분(流通分)에는 위제히 부인이 감옥에서 염불하여 아미타여래를 친견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나무아미타불'하면 극락왕생한다고 설하고 계시니 만약 '나무아미타불'하여 극락왕생할 수 없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럴 리는 추호도 없을 것이다. 염불하여 극락왕생한 예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수없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발징화상이나 엄정스님. 염불사스님, 포천산의 다섯 비구, 욱면 등 무수히 많고, 중국의 『왕생록』에 전해져 내려오는 실례도 상당히 많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표꼬닌덴(妙好人傳)』책을 보아도 그 실례가 많이 열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염불은 반드시 극락왕생을 보장받는 것이며, 이는 사후세계까지도 부처님과 함께 살도록 보장된다.
이제 우리는 불교가 어떠한 가르침이며, 부처님이 어떠한 분이며,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고, 우리가 신앙하는 부처님은 누구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불교를 안다는 것은 어떠한 불교의 용어나 그 철학을 알아야 불교를 아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야 불교를 안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듣고 사색함으로서 부처님 마음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불교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이란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깊은 것이 경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신앙하는 데 있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경전에 의거하여 그러한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출처 http://www.obong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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