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9-29 10:06
[사찰문화실] 92) 연등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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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등의 불교적 유래를 보면-. 사위성(舍衛城)에 한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가난하나마 착한 그 여인은 부처님께 올릴 등을 구하지 못했다. 그녀도 남들처럼 좋은 옷과 침구와 약과 음식을 보시(布施)하고 등을 켜고 싶었으나,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행인에게 동냥을 해서 겨우 기름을 사서 등을 올렸다. 나중에 밤이 되어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가 그 불을 끄려 했으나 꺼지지 않았다. 다른 불은 쉽게 꺼졌으나, 그 불만은 꺼지지 않았다. 그만큼 지극지성이었던 여인의 불심이었다. 부처님은 결국 그 여인에게 수기(受記)를 내려 제자로 삼았다.

  불교에서 등의 의미는 부처님 앞에 등을 밝혀서 불덕을 찬양하고, 대자대비한 부처에게 귀의하려 자신의 마음을 닦고자 하는 데 있다. <법화경>의 약왕보살본사품에서는 등공양의 공덕이 무량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시 밝음을 숭배하던 토속신앙은 불가(佛家)의 연등공덕(燃燈功德) 사상과 결합하여 멀리 신라시대부터 대보름날을 맞아 등을 다는 풍습이 자못 성대하게 전해내려왔다.

  <삼국사기>는 신라 진흥왕 12년(551)에 팔관회의 개설과 함께 국가행사로 매년 정월대보름에 관등행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연등행사는 풍우신인 용신에 대한 시농기원제 기능도 함께 했다. 뿐만 아니라 신라인들의 용신사상은 호국사상으로 발전하였으므로, 따라서 신라의 연등행사는 부처님 칭송․풍년기원․국태민안을 두루 포함하는 다목적 행사로 파악될 수 있다. 종합적 가무제로 행해진 이 행사는 당시 호국대본산 국찰이었던 황룡사를 중심으로 실시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태조의 <훈요십조>에 따라 거국적인 연등회가 계속되었는데 현종 때 이르러서는 한때 영등 때(2월 15일) 실시된 적이 있었으나 여전히 정월대보름날 열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외 특별한 기념일 때에도 국가가 주관하는 연등행사가 열렸다. 그러다가 고려 고종 때 이르러 권신이자 불심이 돈독했던 최이(崔怡)에 의해 음력 4월 초파일(부처님 오신 날)에도 연등행사가 이루어졌다. 궁중 중심이었던 연등행사는 초파일 연등을 시작으로 일반 서민층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조정에 연등도감을 설치하고 연등날을 공휴일로 정하기까지 하였다.

  조선에 들어와 태조는 1415년 숭유배불정책의 하나로 궁중에서의 초파일 연등행사를 금지시켰으나 민중들의 초파일 연등은 꾸준히 계속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