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5-26 10:04
[사찰문화실] 47) 신라의 탑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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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석탑은 분황사 탑이나 의성 탑리 오층석탑에서 보듯이 전탑양식을 이어받은 모전석탑으로 출발하였다. 물론 신라에도 황룡사탑처럼 뛰어난 목탑들이 없지 않았으나, 시기적으로 늦다.

  이렇게 출발한 신라의 석탑은 삼국통일을 기점으로 조금씩 바뀌어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처럼 1층기단이 2층기단으로 바뀌었다. 앞선 시기의 탑에서 볼 수 없었던 목조건축의 축부인 우주와 탱주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탑계 석탑에서 볼 수 있었던 얇고 넓은 옥개석(지붕돌)이 두껍고 투박하게 변하였으며, 전탑계 석탑에서 볼 수 있었던 옥개석 낙수면의 여러 단층들이 없어지고 경사 또한 유연해졌다. 그러나, 옥개석 받침은 여전히 5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고선사지 석탑을 시작으로 전탑에 있었던 감실이 문비로 바뀌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7세기 말부터는 탑의 규모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간략화되었다. 석가탑이 탄생하는 8세기 중엽부터는 균형미있는 전형적인 신라 석탑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9세기 이후 신라사회의 혼란과 도의선사를 기수로 한 중국의 선불교가 들어오면서 경주 중심의 귀족불교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지방중심의 호족불교 또는 민중불교가 태동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힘입어 석탑도 지방으로 크게 확산되어 세워지지만, 대체적으로 규모가 왜소해지고 각 부분의 양식도 간소화의 길을 걷게 된다. 9세기의 석탑들은 하단의 탱주가 2-3개에서 1개로 줄어들고, 옥개석 받침도 3-4단으로 줄어들고, 기단도 다시 1층기단으로 바뀐다. 전체적으로 탑의 규모도 초기의 감은사지 석탑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왜소해진다. 이 시기 탑들의 옥개석이나 탑신은 거의 통돌(1개)로 되어있다. 한편, 설악산 진전사지 석탑이나 선림원지 석탑처럼 기단부나 탑신에 전에 없던 표면장식(조각)이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불국사 다보탑, 석굴암이나 도피안사의 석탑처럼 기단부를 연화대로 한 탑, 화엄사 사사자석탑, 정혜사지 13층석탑 등등의 이형탑들도 이 무렵에 많이 나타난다. 다보탑의 경우는 8세기 중엽 중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탑으로 일본에서도 12세기에 유사한 양식의 탑이 나온다. 정혜사지 석탑은 기단부가 조화롭지 않게 크며, 옥개석과 탑신이 한데 붙어있는 특징이 있다. 실상사 석탑은 전형적인 신라탑에서 크게 벗어나 있으며, 사사자석탑은 화엄사 개창조사의 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형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