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기원
탑은 탑파(塔婆)의 약칭으로, 범어로는 스투파(Stupa)라 하고 파리어로는 투파(thupa)라고 한다. 그 뜻은 ‘신골을 봉안하여 흙이나 돌로써 높이 쌓아올린 분묘’로, 불교가 시작되기 전 이미 인도에서는 바라문의 전통적인 묘제(墓制)로 이것들이 있어왔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성지(聖地)임을 알리거나 특정인의 덕을 숭모하기 위해 세운 모든 건축물까지도 통칭하게 되었다.
석가모니는 인도의 쿠시나가라에서 열반했으며, 장례는 그곳의 말라족에 의해 치루어졌다. 이 때 인도의 일곱 나라에서 서로 부처님의 사리를 얻어서 탑을 세우겠다고 나섰다. 이 때, 한 바라문이 중재에 나서서 사리를 어덟 몫으로 나누어 여러 곳에 탑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를 근본팔탑(根本八塔)이라고 한다.
원래 탑은 승려들이 아니라 재가자들에 의해 세워지고 관리되어 왔다. 그리고, 부처님의 유언에 따라 초기의 탑들은 주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네거리에 세워졌는데, 이는 불교의 법(진리)를 널리 펴고자 함에서였다. 서구의 영향을 받아 간다라미술에서 불상이 조성되기 전까지 탑은 예경의 대상이었으며, 사찰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탑 자체가 불전(佛殿)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후 불상이 조성되면서 사찰의 중심이 불전으로 옮겨갔다.
그 후, 아쇼카왕이 인도를 통일한 후 카필라바스투의 탑만 제외하고 나머지 탑의 사리를 꺼내 인도 전역에 팔만사천개의 사리탑을 세웠다. 이 때부터 승려들도 불탑 건립과 관리에 참여케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인도의 탑들은 거의 이 무렵의 탑이다.
탑의 배치는 가람배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초기에는 탑이 가람배치의 중심이었으나, 불상이 조성된 후로는 점차 불상이 가람배치에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었다. 특히 일탑일불식에서 쌍탑일불식 가람배치로 옮겨지면서 탑은 점차 숭배의 대상에서 장엄물로 변해갔다. 현재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사찰이 불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