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般若心經) 강의
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반야부경전 중 하나로 원 제목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이 경은 불교의 모든경전중 짧으면서도(260글자) 그 품은 뜻은 여타의 다른경전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어 불교의 모든 의식에서 반드시 독송되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
4장 반야는 이렇게 나타난다
1. 꿈을 깨면 완전한 자유는 저절로 온다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가碍 無가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옮김>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마음에 가애가 없으며, 가애가 없는 까닭에 공포가 없으며, 전도몽상을 멀리 떠나서 구경에는 열반인 것이다.
<풀이>
철저히 텅 비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이 도리, 이 도리를 써야 한다.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이 도리가 반야다. 그러므로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한 삶을 살기에 마음에 아무런 걸릴 것이 없다. 마음에 아무런 걸릴 것이 없으므로 일체 두려움 또한 있을 수 없다. 걸릴 것이 없고 두려움 없는 삶이란 꿈 속을 헤매듯 전도된 삶을 다 떠난 삶이다. 모든 뒤바뀐 상태를 떠나서 바른 삶을 산다는 것은 결국 열반의 삶이요, 보살의 삶이다.
<해설>
이 대목에서는 "무소득"으로 인해서 보살이 궁극적으로 열반을 얻는 내용입니다. "소득"이기 때문에 최상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무소득"은 <반야심경>에서 가장 중심되는 구절입니다. 뜻으로 볼때 "조견오온개공"이 제일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핵심 구절은 이 "무소득"입니다.
"무소득"은 곧 앞의 "무득"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얻을 바가 없다는 것은 공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얻을 바가 없는 깊은 도리 때문에 보살은 깨달음을 성취한 것입니다.
"보리살타"는 줄여서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그 뜻은 각유정(覺有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깨달은 중생이라는 말입니다. 보살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불교 수행을 하는 모든 사람을 보살이라 지칭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 보살은 올바른 지혜의 완성자로서 사물의 실상을 관조하고 그 바탕 위에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무소득"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입니다. 또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체득한 사람입니다.
"의반야바라밀다고"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한 까닭에'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을 "무소득"과 연결지워 생각할 때 얻을 바가 없는 것 때문에 지혜의 완성에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면, 첫째 "심무가애"하고, 둘째 "무유공포"하고, 셋째 "원리전도몽상"하고, 넷째 "구경열반"의 값진 열매를 얻게 됩니다.
첫째 열매인 "심무가애"는 '마음에 아무 걸림이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지혜의 완성은 모든 장애를 없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무소득"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덮는 아무런 장애도 없으며, 마음에 아무런 속박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처에서 마음이 걸리기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좋은 일은 좋은 감정에 걸리고, 나쁜 일은 나쁜 감정에 걸리는 것입니다. 걸리게 되는 것은 나라고 하는 아상(我相)과 아집(我執) 때문입니다. 마음의 걸림은 본래 공이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인연을 만나는 순간 튀어나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지혜의 완성에 의지하면 그 어떤 걸림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마음에 아무런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게 되면 두번째 열매인 "무유공포"의 경지를 얻게 됩니다. "무유공포"는 '두려움이 없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아무 거리낌이 없으면 그 결과로 두려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의 완성에 의해 얻어지는 두번째 열매인 "무유공포"는 일체의 두려움이 걷히고 밝은 세계의 펼쳐짐입니다.
인간에게는 수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내일에 대한 두려움, 남을 믿지 못하는 두려움 등 매순간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려움이란 내것만을 지키려는 데서 비롯됩니다.
아무런 얻을 바도없고 마음이 구속되지 않으면 아무 두려움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자신감이 넘치는 인생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지혜의 완성으로 얻어지는 세번째 열매는 "원리전도몽상"입니다. "원리전도몽상"의 뜻은 '뒤집히고 꿈꾸듯 살아가는 것을 멀리 떠난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꿈꾸듯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멀리 떠나보내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전도몽상"은 결국 뒤바뀐 상태, 올바르지 못한 상태, 직관력이 흐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존재의 본성을 환상적으로 꿈꾸듯 보거나 집착해서 보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들어 있을 동안 경험하는 세계를 꿈이라고 말합니다. 꿈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없이 많지만, 여기서 <반야심경>의 내용과 연관지워 두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한 가지는 인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인도에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똑 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는 거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깨고 나면 왕의 모습인데 꿈 속에서는 거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 성자에게 어떤 것이 자기의 진짜 모습인지를 물었습니다. 성자가 대답하기를, 꿈 속의 거지도 참 모습이 아니고 현재 왕의 모습도 참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참 모습은 그 두 가지를 있게 하는 본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 성자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중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중국에 훤제라는 임금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꿈 해몽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임금은 그가 얼마나 꿈풀이를 잘하는지 시험해 보려고 한 가지 꿈을 지어냈습니다.
임금은 해몽가를 불러 처마의 기왓장 하나가 난조(鸞鳥)라는 새가되어 날아가는 꿈을 지어내어 그것을 풀이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해몽가는 후궁들이 문제를 일으켜 잘못 하다가는 생명이 오고 가는 수가 생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금은 그것은 자기가 정말로 꾼 꿈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이므로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후궁들이 서로 싸우다 물건을 잘못 던져 한 명이 즉사했다는 보고가 들어 왔습니다.
임금은 너무나 이상해서 해몽가에게 그 꿈은 자기가 지어낸 것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해몽가는 꿈이란 바로 몽시신유(夢是神遊)라고 대답했습니다. 즉, 꿈이라고 하는 것은 몸은 잠자고 있는데 정신이 노는 것이란 말입니다.
잠 잘 때만 꾸는 것이 꿈이 아니라 한 생각을 일으켜서 이것저것 망상을 지어내는 것이 바로 꿈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현실이 곧 꿈인 것입니다. 일국의 왕으로서 생각을 함부로 할 때 그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망상으로 뒤덮여 살아가는 상황이 바로 신유입니다. 또한 꿈 속의 자신도 참 모습이 아니며, 꿈을 깼을 때의 모습도 자신의 참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온갖 종류의 다른 모습을 자아내는 그런 주체가 곧 불성이며, 진아이며, 참 주인공인 것입니다.
<반야심경>에서는 뒤바뀐 생각을 멀리 떠난 것이 자기의 참모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존재의 실상을 뒤바뀐 모습으로 보지 말고 깨달음의 눈, 지혜의 견해를 갖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마침내 마지막 내번째의 열매인 "구경열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구경열반"은 보살이 지혜의 완성으로서 얻게 되는 종착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최상의 경지인 것입니다.
"구경열반"에서 "열반"은 범어로 니르바나라고 하는데, 그 원래의 뜻은 '입으로 불어서 끈다'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 적멸(寂滅), 지멸(止滅), 적정(寂靜)' 등으로 표현하는데, 인간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온갖 탐.진.치 삼독과 번뇌 망상을 불을 끄듯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를 뜻합니다.
"열반"은 우리의 의식을 가리고 있던 일체의 번뇌나 망상이 완전히 걷혀서 고요하고 안온함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상태입니다. 다시말해서 몸과 마음이 완전히 자유의 상태를 누리는 경지입니다. "구경열반"은 곧 지혜가 완성된 자리입니다. <반야심경>이 추구한 궁극적 낙(樂)의 상태가 곧 "구경열반"입니다.
지혜의 완성으로서 보살이 얻게 되는 경지를 밝힌 이 대목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즉, 보살은 지혜의 완성으로서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아무 걸림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뒤바뀐 삶을 떠나 마침내 열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 속에서 도둑이 쫓아온다고 이리 도망치고 저리 쫓기면서 식은 땀을 흘립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보면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꿈 속의 상황과 꿈을 깬 상황을 바로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꿈을 깨고 나면 아무런 두려움도, 쫓김도, 걸림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상처투성이의 뒤바뀐 꿈 속에서 깨어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아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꿈을 깨고 지혜의 눈을 뜨는 일만이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