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0-01-26 10:32
[사찰문화실] 16) 사찰의 비보성(裨補性)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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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비보성(裨補性)

 
  <동문선>에는, 풍수를 ‘대보살이 세상을 구제하고 인간을 제도하는 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조선사찰자료집>에는 ‘산의 기가 너무 지나치면 불상을 모셔서 누르고, 기가 달아나는 곳에는 탑을 세워 머물게 하였으며, 기가 인간을 배역하는 곳에는 당간을 세워 불러들인다’라고 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주에 있는 용암사(龍巖寺)는 신라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도선국사가 진주에 삼암사(三巖寺)를 지으면 전벌(戰伐)이 물러가고 삼한이 통일된다 하여 선암사와 운암사 등 세 절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태조는 <훈요십조>를 통해 ‘이 땅의 모든 사원은 도선국사의 산수(山水) 순역(順逆)을 추점하여 개창한 것이므로 다른 곳에는 함부로 절을 짓지 말라’고 하였다. <동사열전>의 ‘도선’조에 보면, ‘산천비보설은 약쑥과 같다’라 하였고, <조선사찰자료집>에는 도선이 당나라에 들어가 일행(一行)에게 사사할 때, 고려땅 지도를 보여주었더니 산천에 병이 깊어 전쟁이 끊이지 않으므로 혈맥에 해당하는 곳에 침을 놓듯이 절을 짓고 탑을 세우면 국운을 고칠 수 있다며 3천8백여 곳의 점지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평양에 있는 연명사(永明寺)는 조선 현종 때 세운 절로서, 중건비를 보면 ‘북성(北城)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철종 때 세워진 <북한산승도절목(僧徒節目)>에는 산성을 수호하기 위해 절을 지어 승도들을 머물게 했다고 되어있다. 함흥 귀주사 중건기적비에는 태조 이성계가 자신들이 뿌리를 내린 함흥땅을 성지(聖地)로 지켜가기 위해 함흥에다 비보사찰 귀주사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대산 사자암은 신라 때 지어졌으나,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서 페찰된 것을 태종이 운설악(雲雪岳)이라는 노승의 말을 듣고 다시 중창하여 나라의 번영과 왕가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충주땅 말흘산 용두사는 삼국시대 북쪽 오랑캐의 침략을 막고 비보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되어있다. 또, 같은 책에는 전남 옥구의 천방사(千房寺)는 백제 멸망 때에 당나라의 지원을 다급하게 기다리던 김유신이 천 군데의 절을 짓겠다고 산신과 약속하고 도움을 받은 뒤 이를 지키기 위해 세웠다고 전한다. 또, 지리산 실상사는 일본의 기를 누르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한편, <훈요십조>에는 신라말에 승가에서 부도(승묘탑)을 곳곳에 함부로 세워서 신라가 망한 것이므로 이를 경계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조선 중기 보우화상이 문정왕후와 손잡고 불교부흥을 꾀할 때 이를 불안하게 여기던 유가(儒家)들이 화상 사후에 그가 머물던 봉은사 뒷산의 혈맥을 끊어 불교의 번창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