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찰이 산중에 많은 까닭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국교로 한 까닭에 상당수의 가람이 평지에 세워졌으나, 사실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절이 산 속에 세워져 있다. 그 몇 가지 이유를 보면-
첫째는 우리나라의 지형적인 조건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로 되어있다. 산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평야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형적인 데 연유한다.
둘째는 불교의 우리의 토속신앙인 산악신앙을 습합한 데서 오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시 예로부터 산악신앙이 강했다. 따라서 불교가 전래되면서 산악신앙을 습합하기 위해 산 속에다 절을 지었을 것이다. 현재 절마다 있는 산신각 등은 그것을 충분히 유추케 해준다.
셋째, 신라말에 도입된 풍수지리설의 영향이다. 도선국사의 산천비보설(山川裨寶設)에 의하면, 사람이 병이 들었을 때 혈을 찾아 침을 놓고 뜸을 떠서 병을 낳게 하는 것처럼 지리적 조건이 쇠약하고 깨끗하지 못한 곳에 절을 세워 인위적으로 그 결함을 보강하기 위해 산에다 더 많은 절을 세우게 되었다. 산은 국가의 존망성쇄와 직접 관련이 되어 있으므로 이름난 산에 사찰을 지어 산의 기를 지키고 허한 곳을 보강해주기 위해 절을 세우거나 했다. 지리산 등 명산일수록 이름난 절이 많고, 산이름이나 봉우리 이름에 불교용어를 쓴 것도 거기서 비롯된다.
넷째, 불교의 탈속주의적 속성에도 그 영향이 있을 것이다. <불본행집경>에는 ‘나의 죽림원은 마을에서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으며, 다니기에 편하고 세존을 찾아뵙기 쉬우며, 낮에는 혼잡하지 않고 밤에는 조용하며, 사람들로 해서 번거롭지 않고 홀로 앉아있기에 좋은 곳’이라 하였다. 따라서 산지는 조용하여 홀로 앉아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최적의 수도처였을 것이다.
다섯째, 조선시대에 들어와 전개된 숭유억불 정책도 절을 산 속으로 내쫓는 데 한몫을 했을 것이다. 특히 여러 왕들에 의해 전국의 유수한 사찰(특히 평지사찰)들이 폐사되어 결국 깊은 산중 사찰만 남게 되었으며, 승려들도 도성 출입을 금지당해 산속으로 숨어들 수 밖에 없게 된 데도 그 연유가 있을 것이다.
여섯째,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전대의 산성들을 수축하거나 새로운 산성을 많이 쌓았는데, 여기에 상당수의 승려들을 동원하였고, 그 성 안에 절을 지어 스님들로 하여금 산성을 지키고 유지하도록 하였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위봉산성 등에 있는 사찰의 경우가 그러한 예이다.
일곱째, 중국의 산악신앙 영향이다. 우리에게 불교를 전해준 중국은 오래 전부터 문수보살은 오대산에 머물고, 보현보살은 아미산, 관음보살은 보타산, 지장보살은 구화산에 머문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를 세워 문수보살의 도량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