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洞口
서정주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예전에는 선운사 하면 동백꽃으로 유명하였는데
지금은 꽃무릇을 보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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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루에 열린 시화전을 구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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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보전 앞에 선다.
대웅보전은 五如來(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약사여래불)와
六菩薩(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모신 선원사의 중심 법당이었으나 정유재란(1597) 때 피해를 입어 지금은 중앙에 비로자나 부처님과 좌우로 약사여래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 인 삼존불만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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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암이라는 기암 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을 향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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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불상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사후세계의 주존인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우측벽에는 '츰부 다라니'를 나무판에 새겨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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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기도 도량답게 많은 이들이 기도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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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돌아가면 기와 담장과 잘 어우러진 아담한 산신각이 모셔져 있다.

기와 위로 떨어진 상수리 열매를 보며 가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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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탁 트인 정경이 모든 시름을 잠시나마 잊도록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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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궁을 내려오며 바라본 마애불은 몇 해 전 찾았을 때와 같이 변함없는 모습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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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중국행으로 일주일을 늦췄더니 이미 꽃이 많이 지고 있었다.
어렵게 찾아낸 늦게 핀 꽃무릇을 반가이 맞았다.

아직도 무리지어 붉게 물들인 꽂무릇을 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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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꽃과 어우러져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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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달려왔으니 이제는 돌아서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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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에 배불러진 내게 무르익어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눈에 들어와 가을을 실감하게 한다.

가을 하늘도 올려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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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뜨거운 여름을 물들였을 선운사의 아름드리 배롱나무 가지가 오랜세월을 이곳을 지킨 것은 자신이라며 말없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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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불교 사찰기행중에서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