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1-24 15:03
불사에 힘쓴 소의 공덕을 기리는 우공탑, 우공비, 우부도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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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조상은 들소이다. 소는 가축중에서는 비교적 일찍 사람의 손에 의해 길들여진 동물로 정확히 언제부터 인간에 의해 사육되었는지는 모르나, 대개 기원전 3천년 정도로 잡는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늦은 기원전 2천년대로 손꼽고 있다.
소를 타고 가는 목동의 모습에서는 사람의 참된 본성이라는 불교가 동시에 떠오른다.
특히 기계가 없던 시절 소는 불사에 한몫 거들었다. 소가 없었으면 명산대찰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소와 연관있는 사찰은 많다, 또 불자들은 불사에 힘쓴 소의 공덕을 잊지 않고 우공탑과 우공비 우부도를 세웠다.
대표적인 곳이 계룡산 갑사, 월악산 덕주사, 대승사 등이다.


<대승사 우부도>

 대승사 창건과 관련된 전설 가운데 우(牛)부도가 있다. 창건 당시 큰 황소가 나타나 나무와 기와를 실어 날랐다고 한다. 이 황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알아서 건축 자재를 필요한 곳에 놔두었다. 일하던 사람들은 공사가 끝나면 황소가 어떤 행동을 할까 궁금해 하고 있는데, 마지막 짐을 실어 나른 뒤 황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히 여겨 사찰로 올라가 보자 그 중턱에 소가 쓰러져 죽어 있었다고 한다. 이를 가상히 여긴 사람들이 소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우부도이다.  이 부도는 개산 당시 역사를 하던 소가 역사가 끝난 후 죽었기 때문에 이 불가사의한 정체를 전설로 전하는 부도이다.
  개산 당시의 작품이라 하나 조성 솜씨가 세련된 것으로 보아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갑사 공우탑>

갑사에 공우탑이 있는데 공우탑의 내력은 갑사 중건시 공사가 잘 안되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스님의 꿈에 소가 나타나 절을 지어주겠다고 하여 깨어 보니 소가 있었다고 한다.
이 소는 무척 영리하여 절에서 짐을 져주면 혼자서 암자까지 날랐다고 하는데 그 소가 죽으니 스님들이 중건에 공이 큰 은공을 기려 이 탑을 세웠다 한다.
탑은 3층으로 되어 있는데 새겨진 명문에는 ‘쓰러진 탑을 세우니 인도에 우연히 합치되었네. 세 번 수고하고 수고했으니 그 공이 으뜸이라’라고 새겨져 있다.
 

<덕주사 우공탑>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德周公主)가 마의태자(麻衣太子) 일행과 이곳에 들렀을 때 이 절을 세워 절이름을 덕주사라 하고, 골짜기 이름을 덕주골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때 지은 사찰은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 앞에 세워졌었는데, 6 ·25전쟁 때 훼손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사지에서 1.7km쯤 떨어진 곳에 1970년에 중창된 것이다.
당우(堂宇)는 법당과 요사채 뿐이지만 어느 때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우탑(牛塔) 1기(基)가 있는데, 이 우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덕주사에 승려가 많아져 절이 좁아서 새로이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건장한 황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어디론가 실어 날랐다.
뒤따라가 보니 목재를 실어 나르며 일을 마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다. 소의 행방을 찾아 간곳이 지금의 지금 마애불이 있는 바위 아래였으므로 거기에 상덕주사를 짓고, 우공탑을 세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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